[임혁 칼럼] 이재명과 이재용의 공통점 '사법 리스크'

2025-11-14     임혁 편집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몇 년간 한국 기업사에서 가장 무거운 사법적 굴레를 짊어진 경영자였다. 국정농단 사건, 경영권 승계 의혹, 회계 부정 논란 등으로 인해 ‘산 넘어 산’식의 재판이 이어졌다. 결국엔 한동안 영어의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이 회장 본인 뿐 아니라 그를 보좌하는 경영진들에게도 ‘사법 리스크 탈피’가 지상과제가 됐다. 자연스레 경영상 중요한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잦아졌고 글로벌 투자·M&A 전략의 속도도 눈에 띄게 둔화했다.

이렇게 이 회장과 삼성의 발목을 잡았던 사법 리스크는 작년과 올해에 걸쳐 주요 사건들이 무죄 혹은 무혐의로 정리되면서 사실상 종료됐다. 그 이후 가장 먼저 나타난 변화는 이 회장의 활동반경 확대다. 이전까지 이 회장은 글로벌 경제·기술 리더와의 접촉을 최소한의 범위로 자제해 왔다. 해외 출장도 뜸했고, 공식 행사에 모습을 보이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나 최근 그의 활동반경은 확연히 넓어졌다. 미국, 유럽, 중동 등 핵심 시장으로의 발걸음이 잦아졌고, 반도체·AI·차세대 배터리·바이오 등 미래 사업과 직결된 글로벌 파트너들을 잇달아 만나며 협력 구도를 재정비하고 있다. 특히 미국 빅테크 경영진, 중동 국부펀드 주요 인사, 글로벌 OEM 기업들과의 연쇄 회동은 사법 리스크 와중에는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었던 일정들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의사결정 속도의 변화다. 그동안 계속 지연됐던 회사 조직 개편, 해외 투자, 반도체 사업 로드맵 조정 등 굵직한 이슈 해결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 전격적으로 단행된 삼성전자의 컨트롤 타워 사업지원실 재건과 인적 쇄신은 그 대표적 사례다.

기자는 이재용 회장의 이런 달라진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주지하다시피 이 대통령은 선거 전 대장동 개발사업 의혹 등 5건의 재판에 피고로 불려 다녔다. 이재용 회장처럼 ‘산 넘어 산’식의 사법 리스크에 둘러싸였던 셈이다.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그 리스크는 여전히 불씨가 살아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 본인은 물론 참모진들에게도 ‘사법 리스크 진화’는 지상과제라 할 수 있다. 최근 정국을 달구고 있는 ‘항소포기 외압 의혹’도 그 연장선상에서 빚어졌다. 불을 서둘러 끄려다 오히려 불씨를 키운 격이다.

이런 사법 리스크 와중에도 이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주재, 한미 관세협상 등 주요 현안을 꽤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이들 현안은 말 그대로 발등의 불이었을 뿐이다. 진짜 중요한 국정 운영의 ‘그랜드 디자인’은 아직 그 윤곽조차 희미하다.

이 대통령은 나름 ‘6대 부문 구조개혁’이라는 아젠다를 던지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DJ정부의 ‘4대 부문 구조개혁’과 대동소이하다는 게 솔직한 느낌이다. 흘러간 노래를 다시 트는 것 같다는 얘기다. 게다가 최근 급변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기류 등 대외 환경 변화에 대한 고민의 흔적도 살펴보기 어렵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6대 부문 구조개혁’을 뛰어넘는, 보다 넓은 시야에서의 국정 운영 그랜드 디자인이 절실하다. 그러려면 우선 이 대통령과 참모진들이 사법 리스크 문제에서 시선을 돌려 국정 설계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이 대통령이 ‘임기 후 재판 속행’을 약속하고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소모적 정쟁을 중단하는 장면을 상상한다면 기자가 너무 순진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