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의 턴어라운드 4.0] 여행 중 겪은 고생에서 탄생한 혁신 제품

세계 최초 ‘플랫 와이퍼’ 개발 비화

2025-10-01     이창수 전문위원

[인사이트코리아 = 이창수 전문위원] 한국은 12월에 겨울이 오고 2월, 늦어도 3월이면 겨울이 끝난다. 그리고 강설량도 많아야 20~30㎜로 눈이 쌓여도 차량을 운행하는 데 그리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북미의 겨울은 상황이 다르다. 필자가 2년간 거주한 미국 위스콘신주의 경우 11월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3~4월은 돼야 추위가 물러가니 겨울이 6개월은 유지된다. 눈이 한 번 내리면 3~4일간 지속적으로 내리는 경우도 많아 그냥 내버려 두면 밖으로 난 출입구를 열 수도 없고 밖에 주차한 자동차 문도 열기 어려울 정도니 겨울의 강설량과 눈보라가 어떤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온 첫 해 겨울방학에 토론토(Toronto)에 있는 형의 초청으로 위스콘신주 메디슨(Madison)에서 토론토까지 가족여행을 하게 됐다. 형은 꼭 커다란 양초, 담요, 비상식량을 준비해 오라고 했는데, 형의 조언을 무시하고 두꺼운 옷만 챙겨서 토러스 웨건(Taurus Wagon)을 몰고 아내와 뱃속 딸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위스콘신주에서 일리노이주, 미시간주를 거쳐 토론토로 가는 여정이었는데 미시간주에서 캐나다 국경을 넘으면서부터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고 많은 차들이 고속도로 밖에 퍼져 있었다. 주행 중에는 대형 카고 트럭이 옆으로 지나갈 때면 회오리가 몰아쳐 차량이 흔들렸고 눈보라에 자동차 와이퍼 블레이드를 아무리 고속으로 작동해도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그제야 어째서 형이 커다란 양초, 담요, 비상식량을 준비하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우여곡절을 겪고 토론토 형네 집에 도착했을 때 고난의 여정을 형에게 무용담 늘어놓듯이 펼쳐놓았다.

그런데 이 전설의 무용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여정에서는 와이퍼 리벳(Rivet) 부위가 얼어 닦기 기능을 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와이퍼가 고장 나서 잠시 운행하다가 멈춰서 장갑으로 전면 유리를 닦고 다시 운전을 재개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아! 정말 미국과 캐나다 겨울에 대한 무지가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온 여행이었다. 여행은 즐거웠으나 돌아오는 길에서 운전했던 경험은 정말 다시는 하기 싫었다.

고객의 첫 번째 미충족 니즈에서 출발한 신제품 개발

이 경험으로 나는 새로운 사업 가능성을 확신하게 됐다. 고객의 미충족 니즈를 그날의 여행에서 발견한 것이다. 특히 북미 캐나다 겨울은 아무리 와이퍼 블레이드의 닦기 성능이 좋아도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어 시야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눈이 온 후에 낮에 햇빛을 받아 녹았다가 추위가 몰려오면 와이퍼 연결 부위인 리벳이 얼어 닦기 성능이 낮아지고 심지어는 전혀 닦이지 않아 시야를 확보하기 어렵다.

눈이 많이 오고 겨울이 긴 캐나다에서 와이퍼 리벳 부위가 얼어 닦기 성능이 낮아지고 고무도 고유의 닦기 성질이 약화돼 닦기 성능이 더 저하되므로 이를 해결할 신제품 개발 및 사업성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이 때 자사는 프레임이 어는 현상을 개선하는 신제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기존의 일반 와이퍼는 리벳과 요크(Yoke)를 이용한 다층 구조의 금속 프레임으로 유리면 형상에 맞도록 고른 누름압을 만들어 다양한 곡면의 앞 유리에 적합한 밀착 성능이 있었다. 하지만 겨울에 눈으로 리벳 부위가 얼 경우 고른 누름압을 만들기 어려워 닦기 성능이 나빠졌다.

그래서 플랫 와이퍼로 신제품 개발을 진행했다. 플랫 와이퍼는 일체형 금속 프레임으로 리벳 없이 하나의 금속 프레임에 고무 블레이드(Blade)를 삽입해 눈이 오더라도 프레임이 어는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일정한 압을 유지할 수 있어 닦기 성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자사에서 만들고자 한 플랫 와이퍼는 단일 철판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프레임의 가운데에 프레스로 구멍을 뚫어 고무를 끼우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문제점이 발생했다.

첫째로, 플랫 와이퍼 프레임의 곡률을 앞 유리의 곡률과 유사하게 유지하기 위해 철을 프레싱해 형상을 만들고 열처리를 해 곡률이 시간이 지나도 일정하게 유지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프레임이 얇고 중간에 고무를 끼우는 홈이 있어서 열처리를 하면 뒤틀림 현상이 발생해 개발이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성공할 때까지 열정과 끈기로

개발에 난항을 거듭하자 비엔지니어인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열처리업체들을 철저히 벤치마킹해 해답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전국의 열처리업체를 방문했다. 다수의 업체를 벤치마킹하던 중 면도날을 만드는 열처리업체를 방문하게 됐다. 면도날은 얇고 작기 때문에 선 열처리를 한 후에 금형으로 면도하는 날 부위를 예리하게 프레싱하는 현장을 보고 나는 이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겠다고 직감했다. 바로 회사로 복귀해 연구소 회의를 열고 선 열처리 후 프레싱 작업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나의 제안에 모든 연구소 직원은 열처리로 금속의 강도가 올라간 상태에서 프레싱을 할 경우 금형이 깨져 절대 할 수 없는 방법이라고 반대했다. 고심은 깊어졌다. 하지만 금속의 두께가 얇아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금형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복수 금형을 제작해 실시하자고 설득했다. 드디어 시험을 하는 데 모두 동의했다. 그 결과 금형의 내구성은 일부 약화됐으나 문제없이 양품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안 되는 것은 끝까지 안 된다. 맞는 이야기다. 단, 그것이 검증된 원리일 경우에는 된다. 실험하고 검증해봤는가? 실험과 분석을 통해 진정한 원리를 탐구한다면 얼마든지새로운 기술에 도전할 수 있다.

선 열처리 후 프레싱을 통해 프레임 뒤틀림 현상을 해결했지만, 또 다른 문제점이 노출됐다. 일반 와이퍼의 경우 다단계 리벳과 요크 구조로 유리면 형상에 맞도록 고른 누름압을 만들어 닦기 성능이 우수했다.

하지만 플랫 와이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누름압을 만들기 때문에 닦기 성능이 안 좋은 문제점이 노출됐고,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에는 닦기 성능이 타 제품 대비 더 안 좋다는 문제점도 발견됐다.

이 문제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을 통해 해결했다. 개방형 혁신이란 외부의 전문가나 조직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제품 개발 또는 혁신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우선 고무 코팅 일본인 전문가를 수소문해 흑연 그래파이트(Graphite) 코팅을 해 닦기 성능을 향상할 수 있는지 테스트했다. 닦기 성능은 개선됐지만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일본 전문가와 협의 중 발수 코팅을 개발했다는 말을 듣고 테스트했다. 발수 코팅의 경우 발수 코팅 물질을 고무에 보관했다가 이를 앞 유리로 전달해 유리면에 도포하는 기술이었다. 계절에 상관없이 닦기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고 눈과 비가 올 때 와이퍼가 작동하지 않아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 기존 제품보다 훨씬 우수했다.

회사 매출이 급감하고 자금 상황이 어려워 위기에 직면한 상태에서 세계 최초의 플랫 와이퍼를 개발해 신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집념으로 여러 가지 기술적 난관을 도전, 열정, 끈기로 극복해 결국 개발에 성공했다. 신기술은 날로 날로 정말 혁명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회사 내에서 이러한 기술을 모두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속적으로 발전되고 개발되는 기술 정보를 취득하고 연구하고 분석해야 한다. 관련 분야의 훌륭한 연구자, 연구소, 기업과 협업해 신기술을 누구보다도 빨리 적용해 제품화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고객 니즈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해 해결

내가 토론토 여행에서 성공을 확신했던 발수 코팅 플랫 와이퍼는 마침내 캐나다 1등 마트 체인, 캐나디언타이어에 ‘리플렉스(Reflex)’라는 상표로 세계 최초로 론칭했다.

판매 가격은 일반 와이퍼의 3~4배로 높아 수익성이 좋았으며 총 매출액도 초년에 100억원에 이르렀다. 당시 회사의 1년 매출액이 100억원대 초반인 것을 감안할 때 정말 대단한 히트 상품이었다.

이 신제품 개발로 얻은 교훈은 따로 있다. 바로 사양 제품은 없다는 것이다. 기술과 고객 취향 변화에 따라 제품이 변화할 뿐이지 사양화 되는 제품은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제품에 고객의 변한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해 해결하는 신기술을 탑재한다면 신제품을 얼마든지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도 더불어 얻은 교훈이다.

제품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캐나디언타이어 또한 동 제품을 ENE 프로젝트(Exotic, New, Exciting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매년 1~2개의 새로운 제품 개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로 선정해 금형비를 포함한 개발비를 지원했고, 캐나디언타이어 중심 진열대에서 판매하고 TV 광고로 홍보해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나와 함께 리플렉스를 담당한 직원은 이 성공에 대한 보상으로 승진했다.

당시 리플렉스 담당 직원과 광고 콘셉트를 어떻게 잡을지 차량과 모델은 어떻게 정할지 등을 서로 협의했었다. 당시 그랜드체로키 지프가 유행이어서 초콜릿 컬러의 동 차량을 선정했다. 광고모델은 연예인이 아닌 회사 직원들로 선발했다. 대중적인 콘셉트에 맞춰 비가 오는 날 ‘워터 리펠런트리플렉스(Water Repellent Reflex, 발수 코팅 플랫 와이퍼인 리플렉스)’는 단 몇 번의 와이핑으로도 선명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만든 이 광고는 선풍적 인기를 끌어 대박 상품의 기반이 됐다. 지금도 도로에서 그랜드 체로키 지프를 보면 그때의 개발 과정이 주마등과 같이 뇌리를 스친다.

이창수 도전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