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감점 1년 연장...정기선 HD현대 부회장, KDDX 고민 깊어간다
8조원 초대형 프로젝트....한화오션과 지루한 갈등 당초 수의계약 유력했지만 최근 방사청 미묘한 조치 HD현대重 감점 연장, 일각선 경쟁입찰 가능성 거론
[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두고 2년 가까이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HD현대중공업 보안 감점이 내년 말까지 연장되면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정기선 수석부회장 입장에선 최악의 경우 8조원에 가까운 초대형 프로젝트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재계 절친이자 라이벌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에게 자존심 싸움에서 밀릴 수도 있다.
방위사업청, HD현대중공업 보안감점 기간 연장
1일 업계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전날 HD현대중공업 보안감점 기간을 올해 11월에서 내년 12월까지로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내달 1.8점 감점 적용이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1.2점의 감점이 1년 넘게 더 적용되는 것이다. 보안감점은 방산업체가 보안사고를 일으킬 경우 일정 기간 입찰 평가에서 감점을 받는 제재다.
보안감점은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2013년 KDDX 관련 자료를 부적절하게 수집했다는 논란에서 시작됐다. 실제 해당 직원들은 재판에 넘겨졌고 2022년 11월 8명의 유죄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나머지 1명이 1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받은 대목이다. 검찰이 이에 항소해 재판이 열렸는데, 2심 결론에 양쪽 모두 상고하지 않아 지난 2023년 12월 형이 확정됐다.
그간 관례상 방사청은 동일 사건에 여러 명이 관련됐거나 복수의 사건으로 처벌받은 경우 다수의 확정 판결이 있더라도 최초로 형이 확정된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왔다.
때문에 HD현대중공업은 3년간 보안감점 조치가 2022년 11월부터 3년간, 곧 2025년 11월까지인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결정 만큼은 입장을 바꿔 2022년 판결과 2023년 판결을 별개의 사건으로 보고 마지막 판결인 2023년 12월을 기점으로 3년인 2026년 12월까지 감점 조치를 연장했다.
HD현대중공업은 유감을 표명하며 법적조치 등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해당 보안사고는 ‘하나의 사건번호‘로 기소된 동일 사건“이라며 “(보안감점 기간 연장) 과정에서 방사청은 당사에 의견 제출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 등 마땅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방사청 결정은 국가안보 중추인 방위산업을 책임지며 묵묵히 헌신해 온 기업에 대한 심각한 신뢰 훼손”이라며 “지금 상황은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인식 하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해 재검토를 요청하는 한편, 가능한 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위기의 HD현대중공업, 수의계약서 경쟁입찰로?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들여 해군의 6000톤급 구축한 6척을 건조하는 KDDX 사업을 둘러싼 양사의 갈등은 전 정부부터 지리하게 이어지고 있다. 좁혀지지 않는 입장차 핵심은 기본설계 개념이다. 앞서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각각 수주했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진행한 기업이 상세설계 및 선도함을 맡아온 그동안 전례를 따라 수의계약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 직원들 군사기밀 탈취·누설에 따른 실형 판결을 근거로 들며 HD현대중공업이 법적 리스크를 갖고 있는 만큼 수의계약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과 수의계약을 추진하는 대신 한화오션이 일부 설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상생협력안을 마련해 양측을 설득해 왔다. 이에 한화오션은 사실상 하청에 불과하다며 반발했고 여당 일각에서도 절차 문제가 제기돼 흐지부지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에 페널티를 부과한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수의계약을 배제하고 경쟁입찰로 갈 수 있다는 암시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쟁입찰이 현실화될 경우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기술력은 엇비슷하기 때문에 HD현대중공업이 받은 1.2점의 감점이 승부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정치권에서 기존 방사청이 제안한 상생협력안이 아닌 새로운 방식을 밀어붙일 경우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모두 상세설계에 참여하고 초도함과 후속함을 동시 발주하는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경우 현행 발주 체계와 맞지 않는 탓에 법률과 규칙의 정비가 필요해 그렇지 않아도 늦어진 사업 진행이 더욱 지연될 우려가 크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한미 관세 협상과 마스가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김 부회장이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정 수석부회장이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HD현대가 이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KDDX 주도권을 한화에 내주지 않는 것이 하반기 최대 과제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