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들 신기술금융 투자 ‘제자리’…‘생산적 금융’ 역행?

이찬진 금감원장 “여전사도 모험자본 공급 한 축 담당” 주문 카드업 불황에 난처한 카드업계…고민 가득

2025-09-24     남빛하늘 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6일 서울 중구 여신금융협회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여신전문금융업권 CEO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인사이트코리아 = 남빛하늘 기자] 정부와 금융당국이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신용카드업계의 신기술금융 투자가 제자리걸음에 머물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6일 열린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 최고경영자(CEO)와의 상견례에서 “기술 기반 성장단계(스케일업)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모험자본 공급의 한 축을 담당해 달라”며 이재명 정부 핵심 과제인 생산적 금융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우리 경제가 처한 성장 둔화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기술력 있는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양질의 자본 공급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여전사는 신기술금융업을 통해 모험자본 공급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몇 년간 관련 투자가 위축됐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여전사의 신기술금융 투자 금액은 2021년 8조3000억원에서 2022년 5조7000억원, 2023년 5조5000억원, 2024년 5조3000억원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신기술금융업이란 성장 가능성이 있지만 자본이 부족한 중소기업·스타트업 등 신기술사업자에게 투자해 이익을 실현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라이선스 다 있지만…투자 소홀한 까닭은

금융당국은 2016년부터 카드사 겸영업무로 신기술금융업을 허용하면서 현재 8개 전업 카드사 모두 관련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생산적 금융을 구현하기 위한 토대는 마련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카드업계는 신기술금융 투자에 소극적이다.

<인포그래픽: 남빛하늘>

카드업계의 신기술금융자산 현황을 보면 시장은 최근 몇 년째 성장 없이 제자리를 걷고 있다. 금감원 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카드업계 신기술금융자산은 지난 2022년 1068억원에서 2023년 1012억원, 2024년 1013억원, 2025년 1분기 1052억원으로 계속 비슷한 금액이 유지되고 있다.

실제 투자를 집행하고 사업을 이어가는 곳도 신한·KB국민·우리·롯데카드 등 4개사에 그친다. 하나카드는 2017년 말부터 2020년 3분기까지 투자를 진행했으나 이후 기록이 없으며 삼성·현대·BC카드는 신기술금융 자산이 전혀 없다.

카드사들이 신기술금융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카드업황 악화다. 지속되는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로 카드사 본업이 부진한 형편이라 당장은 수익이 보장되는 사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관련 라이선스를 갖추고 있지만 비즈니스 환경이 녹록치 않아 선뜻 나서지 못했다”며 “새 정부와 당국 기조인 생산적 금융에 따라 신기술금융 투자가 주목받으며 고민이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기술금융은 카드사 본업이 아니고 (이 분야는) 전문 벤처투자사가 훨씬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며 “전담 심사역 확보도 쉽지 않고 위험 부담이 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투자를 보류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서지용 한국신용카드학회장은 “카드사들이 신기술금융투자에 소극적인 배경은 벤처투자 특유의 높은 위험, 수익성 불확실성, 건전성 관리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며 “카드업계는 전통적인 카드 영업 안정성을 중시하며, 신기술금융 투자에 따른 리스크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와 당국의 생산적 금융 기조를 실현하기 위해 카드업계는 벤처·첨단기업 투자 확대, 데이터·핀테크 등 혁신 사업과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신사업 개발 및 정책과제 참여를 통해 생산적 자금공급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