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한국판 엔비디아 탄생의 조건
[인사이트코리아 = 양재찬 경제칼럼니스트] 미국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세계 최초로 시가총액 4조 달러를 돌파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4조 달러는 약 5520조원이다. 우리나라 주식시장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 13개를 합친 규모를 넘어선다. 인도 국내총생산(GDP) 3조9000억 달러, 영국 GDP 3조6000억 달러, 프랑스 GDP 3조2000억 달러보다도 많다.
엔비디아가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닷컴 시대를 이끌어온 빅테크들보다 먼저 시가총액 4조 달러를 넘어선 것은 글로벌 산업·경제 패러다임이 AI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방증이다. ‘PC 플랫폼 기업‘ 마이크로소프트, ‘모바일 플랫폼 기업‘ 애플의 뒤를 잇는 ‘AI 플랫폼 기업‘ 엔비디아도 작은 스타트업에서 출발했다.
대만계 미국 이민 1.5세대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1993년 공동 창업자 2명과 함께 4만 달러로 회사를 차렸다. 게임 산업이 뜰 것으로 보고 첫 3차원(3D) 그래픽 처리장치(NV1)을 내놓았는데 실패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일본 게임기업 세가(SEGA)의 차세대 콘솔용 그래픽 사운드칩으로 NV2를 개발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플랫폼과 호환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고, 파산 직전에 몰렸다.
젠슨 황은 창피를 무릅쓰고 세가의 미국 지사장인 이리마지리 쇼이치로를 찾아갔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호소하고 설득했다. 이에 반한 이리마지리는 본사를 움직여 500만 달러를 엔비디아에 투자했다. 대반전이었다.
시간과 자금을 확보한 젠슨 황은 1997년 ‘RIVA 128’(NV3)을 개발했다. 넉 달 만에 100만개 이상을 판매하는 히트상품으로 기록됐다. 그 덕분에 기사회생해 1999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 무렵 정한 비공식 사훈이 ‘우리 회사는 파산까지 30일 남았다’라고 한다.
엔비디아는 마침내 세계 최고 성능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만들어내는 기업으로 인정받았다. GPU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묵묵히 딥러닝과 AI를 준비했다. 2016년 8월 샘 올트먼의 오픈 AI에 AI 슈퍼컴퓨터를 전달했고, 챗GPT가 탄생할 수 있도록 GPU를 공급하며 지원했다.
엔비디아가 AI 시대 패권을 장악한 것은 CEO의 도전과 혁신, 변화를 읽고 사업을 시작하고 맞춤형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민함과 열정, 관련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인재를 중시하는 경영 전략 덕분이다. 젠슨 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낮추면서도 인재를 영입했다.
엔비디아(Nvidia) 회사명은 라틴어 ‘인비디아(invidia)’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질투의 여신’이다. ‘모든 사람이 질투할 만한 회사를 만들자’며 서른 살 청년 젠슨 황 등 창업자 3인방의 포부를 담았고, 꿈은 현실이 됐다.
엔비디아를 부러워하지만 말고 우리도 버금가는 기업을 만들자. 그러려면 역량을 갖춘 젊은이들이 열정적으로 뛰게 하고 실패하더라도 재도전 기회를 줘야 한다. 이런 일이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가능할까. 이보다는 특정 분야에서 서울대를 능가하는 실적을 낼 수 있는 연구 중심 대학과 연구소, 기업들이 경쟁하며 협력하는 산·학·연 클러스터 조성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