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 슈퍼위크 돌입…정의선 현대차 회장, 세 개의 화살은?

정 회장, 美 25% 관세 부과 전 ‘비공개 외교전’ 전력 현대차그룹 현지 대규모 투자 협상서 적극 활용 필요 현지 생산 120만대 구축…부품 현지화 추진 가능성 ↑

2025-07-28     김동수 기자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24일(현지시각)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한국의 대미 신규 투자를 발표하면서 정의선(왼쪽 세 번째부터)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장재훈 현대자동차 부회장, 성 김 현대자동차 사장,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 등을 호명하고 있다.<뉴시스>

[인사이트코리아 = 김동수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의 운명을 가를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상호관세’ 발효 전 막판 협상에 사활을 거는 가운데, 지난 4월 부과된 한국산 자동차 관세의 인하 여부도 함께 판가름 날 전망이다.

앞서 일본과 유럽연합(EU)은 연이어 미국으로 수출하는 차량의 관세율을 15%까지 낮췄다. 이번 협상 결과에 따라 한국만 현행 관세가 유지될 경우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 일본 토요타, 독일 폭스바겐 등 경쟁업체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협상이 정부 몫으로 넘어간 가운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그동안 물밑에서 준비해 온 ‘백악관 설득전’이 효과를 발휘할지 관심이 쏠린다. 현대차그룹은 ▲대미 인적 네트워크 활용 ▲이재명 정부와의 공조 ▲자체 경쟁력 강화라는 세 개 화살로 승부수를 건다는 계획이다. 

정 회장은 지난 2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세로 꼽히는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골프 라운드를 함께하며 비공식 네트워크를 다졌다. 3월에는 미국 백악관을 찾아 직접 전략적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대차·기아가 미국 경제에 필수적인 ‘동맹 기업’임을 직접 홍보하고 나선 것이다.

車 관세 25% 부과 이전 ‘비공개 외교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현대차그룹 핵심 경영진도 정 회장의 물밑 행보에 발을 맞췄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만찬이다. 현대차그룹은 취임식에 100만 달러(한화 약 13억8600만원)를 기부했으며 이 기부로 취임식 전 열린 만찬에 참석 자격을 확보했다. 이 자리에는 장재훈 현대차 부회장과 성 김 현대차그룹 사장이 참석했다.

특히 성 김 사장은 미국 외교 관료 출신으로 미국 정·재계 인사들과 만나 네트워킹을 활발히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부시 행정부부터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핵심 요직을 맡은바 있다.

‘대관’ 조직도 재정비했다. 현대차그룹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당초 현대차·기아는 워싱턴 사무소라는 대관 기관을 각각 나눠 운영했지만 지난해 두 기관을 HMG워싱턴사무소로 통합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단순한 대관 활동을 넘어 미국 정계와의 전략적 소통 채널을 일원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여기에 조직 수장도 현대차그룹의 주요 생산 거점인 조지아주(州) 출신 연방하원의원을 영입했다. 지난해 5월부터 HMG워싱턴사무소를 맡고 있는 인물은 드류 퍼거슨 소장이다. 그는 공화당 소속으로 조지아주에서 4선을 지냈으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회장은 협상력 강화를 위해 직접 백악관을 찾아 ‘투자 보따리’도 풀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올해부터 오는 2028년까지 미국 내 자동차, 부품·물류, 철강, 미래 산업 등 주요 분야에 총 2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경제 생태계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지 보여주는 수치이자 백악관을 향한 명확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현대차그룹 현지 대규모 투자…韓·美 협상서 적극 활용해야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전경.<현대자동차그룹>

협상의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우리 정부는 미국 정부를 상대로 상호관세와 자동차 등 품목관세를 낮추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다만 미국 측의 요구를 어디까지 들어줄 수 있을지가 협상의 관건이다.

앞서 미국은 일본과 협상을 마무리했다. 일본은 미국과 상호관세 세율을 25%에서 15%로, 일본산 자동차에 부과되는 관세는 27.5%에서 15%로 낮췄다. 대신 일본 자동차 시장과 쌀 등 일부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 미국에 5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도 한다. 투자처는 미국이 정할 뿐 아니라 이익의 90%를 갖는 조건이다.

EU도 최근 협상을 타결했다. 미국과 EU는 대부분 상품에 15% 상호관세율을 부과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던 자동차 관세율도 25%에서 15%로 함께 낮아졌다. 대신 미국산 에너지 7500억 달러를 구매하고 대미 투자를 6000억 달러 확대한다.

일본과 EU가 모두 미국과의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인하한 가운데, 한국은 관세율을 최소 12.5%까지 낮춰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일본 자동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절반인 12.5% 내렸다. 기존 관세율 2.5%에 더해 총 15%를 부과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자동차 수출 시 관세를 부과받지 않았다. 때문에 동일한 조건을 맞추려면 12.5% 수준으로 협상해야 현대차·기아가 미국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연구위원은 “현대차·기아는 현지에서 미국 ‘빅3(GM·포트·스텔란티스)’와 직접 부딪히지 않는다”며 “일본 업체들과 독일 폭스바겐 일부와 경쟁하므로 12.5%를 받아야 한다. 15%를 받으면 현대차·기아 입장에선 손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협상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 소고기, 쌀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과 자동차 수입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빅테크 기업들이 문제 삼는 디지털 플랫폼 규제 완화도 촉구한다. 4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요구도 한국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내 경제에 상대적으로 영향이 덜 가는 부분을 협상카드로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적절한 양보를 통해 자동차 관세나 철강 관세 또는 대미 투자 규모를 줄여 실리를 챙겨야 한다고 말한다.

문성웅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미국산 쌀이 저렴하다고 판매될 가능성이 낮고 자동차 역시 인기가 없다”며 “관세 장벽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에서도 최대한 양보할 건 양보해 우리가 희생해야 할 부분(자동차 관세·상호관세)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현대차그룹의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등 대규모 투자를 협상장에서 활용해야 한다”며 “우리 입장에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반면 미국에서 고용 창출 효과가 있다는 점을 어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 연구단장도 “상대적으로 영향이 덜한 부분을 협상에서 양보하고 당장 손실화되는 자동차·철강 관세율 또는 대미 투자 규모를 줄여야 한다”며 “특히 국익이 달린 품목별 관세를 줄이는 게 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

현지 생산 120만대 구축…25% 관세 대응 여력 충분

정의선(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3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서 인터뷰에 답변하고 있다.<현대자동차그룹>

현대차그룹으로서도 미국 관세에 자체적으로 대응 중이다. 앞서 현대차와 기아는 4월부터 부과된 25% 관세로 올해 2분기 실적에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다. 현대차는 이 기간 영업이익이 8828억원 감소했으며 기아는 7860억원 줄었다. 미국 수입차 관세 25%로 두 회사가 영업이익에서 손해 본 금액은 1조6100억원이 넘는다.

문제는 이러한 실적이 기아의 경우 5, 6월 두 달에만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점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온전히 관세 영향을 받을 경우 손실 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두 회사가 미국으로 수출한 차량은 87만5000대에 달한다. 관세율 인하 없이 현재 상태가 유지될 경우 현대차는 약 40억1300만 달러, 기아는 25억5000만 달러의 타격이 예상된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출구전략은 현지 생산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현지에 생산능력 100만대를 갖추고 있다. 지난 3월 문을 연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연 30만대)와 기존에 보유한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연 36만대), 기아 조지아 공장(연 34만대) 등 생산시설을 보유 중이다. HMGMA는 생산능력을 20만대 증설하고 내년부터 하이브리드차(HEV) 생산도 추진한다. 가동률을 최대로 끌어올릴 경우 차량 120만대는 관세 영향을 피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공급망도 재편도 추진한다. 미국의 자동차 부품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부품 현지화로 영향을 최소화한다. 부품 소싱 다변화 태스크포스팀(TFT)을 통해 200개가 넘는 부품의 최적화 조달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일부 물량은 관세 영향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지난해 현대차·기아가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은 170만8293대다. 현지에서 120만대를 생산해도 50만대는 국내에서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입차 관세가 25%로 유지될 경우 현대차·기아가 이를 자체 부담하는 전략도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다”며 “현지에서 부품을 조달하거나 수출 단가를 조정해 수익성을 낮추는 방식으로 현재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