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혁 칼럼] 개정 상법과 '개와 늑대의 시간'
사위가 어슴프레한 동틀 녘, 또는 해질 녘. 목동들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짐승이 양치기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랑스인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는 관용어를 만들어 냈다.
우리 경제도 지금 개와 늑대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개인지 늑대인지 헷갈리는 대상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이다. 이 법은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문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취지대로만 된다면 개정 상법은 한국 증시의 양치기 개로 여겨질 것이다. 반대로 재계 일각의 우려처럼 부작용이 더 도드라진다면 “알고 보니 늑대였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개정 상법에 담긴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그동안은 이사가 충실의 의무를 이행해야 할 대상이 ‘회사’로만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대상이 ‘회사 및 주주 전체’로 확대됐다. 둘째는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이에 따라 물리적으로 주총 참석이 어려운 소액주주들도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셋째,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3% 룰. 감사위원 선출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행사를 3%로 제한해 소액주주에 의한 경영 감시가 강화된다. 넷째, 사외이사 명칭 변경 및 의무 선임비율 상향.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고 이사회에서 독립이사 최소 비중을 4분의1에서 3분의1로 늘린다.
개정 상법의 이런 내용들이 겨냥하는 것은 대주주 중심의 의사결정과 소액주주 권리 침해 등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병인’들이다. 실제로 우리 증시에서는 그동안 대주주의 일방적 의사결정에 의한 물적분할과 자회사 ‘쪼개기 상장’ 사례가 빈발했고 이는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의 신뢰 상실을 초래했다.
반면 이같은 취지와 달리 개정 상법이 늑대가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첫째는 소액주주가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 '주주대표소송'이 남발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이 경우 혁신적이지만 모험이 따르는 투자 등에서 이사들의 경영판단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둘째, 외국 투기자본에 의한 법의 악용도 우려된다.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과도한 수익추구에 주주충실의무 조항이 동원되거나 투기성 자본에 의한 경영권 분쟁에 이사회가 휘말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셋째, 공공성이 요구되는 기업의 경우 주주충실의무가 강조되다 보면 공공성이 약화될 수 있다. 이를테면 한전이 주주에게 충실하려면 전기료를 되도록 많이 인상해야 하지만 이는 정부의 공공요금 정책과 충돌할 수 있다. 또 시중은행의 배당금도 주주에게는 많을수록 이익이 되겠지만 자본안정성을 감독해야 하는 금융당국으로서는 배당 확대를 마냥 은행 자율에 맡길 수도 없다.
이처럼 개정 상법은 양치기 개가 될 수도, 늑대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개정 상법의 정체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권 여당이 자사주 의무 소각,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 2차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재계의 좌장인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 7월 18일 CEO하계포럼에서 이구동성으로 속도조절을 요구했다. 류 회장은 “한꺼번에 모든 조치를 취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페이스를 좀 늦출 필요가 있다”고 했고 최 회장은 “실제 운영을 해보고 뭐가 달라지는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고치거나 대응책을 내도록 건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두 사람의 발언은 결국 “개정 상법이 개인지 늑대인지 확인해 본 후 2차 상법 개정을 결정하자”는 얘기인 셈이다. 재계 좌장들의 이 같은 호소에 집권여당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