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화의 ‘뉴 포스코‘①] 36년 철강맨, 그린 스틸·이차전지 승부수
수년째 이어진 철강업황 부진, 장 회장 취임 이후 쇄신 칼바람 주요 계열사 사장 교체, 비핵심 자산 매각 등 포트폴리오 재편 올해 1분기 실적 선방에 안도...실질적 성과 아쉽다는 지적도
포스코를 비롯해 국내 철강산업은 최근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중국산 저가 물량 공세, 미국발 관세 폭탄 등 끝날 줄 모르는 악재에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맏형격인 장인화 포스코홀딩스 회장은 지난해 3월 취임 후 희망을 잃지 않고 ‘뉴 포스코‘를 향한 쇄신의 고삐를 더욱 단단히 죄고 있다. <인사이트코리아>는 장 회장의 지난 1년 4개월여 간의 여정을 돌아봤다.
[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지난해 3월 장인화 회장이 포스코홀딩스 새 선장으로 취임할 당시 분위기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 건설 경기 불황 등 계속된 악재에 철강 본업은 수년째 보릿고개를 넘지 못했다. 여기에 그룹의 미래 성장축으로 주목받았던 ‘신사업 핵심’ 이차전지 소재 사업마저 수요 정체(Chasm·캐즘) 여파로 글로벌 수요 둔화에 직면해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사업 효율성과 구조 혁신에 대한 뼈아픈 자기 점검이 절실했으며 외부적으로도 탈탄소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춘 전략 재정립이 요구됐다. 하지만 1년 4개월 남짓 한 시간에 포스코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뚝심 있게 체질 개선을 추진한 장 회장의 전략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36년 ‘포스코맨’ 장인화, 쇄신 위해 팔 걷어붙였다
장 회장은 1955년생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포스텍 산하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연구원으로 첫발을 내디디며 포스코와의 인연을 맺었다.
이후 포스코 기술투자본부장, 기술연구원장, 철강생산본부장(부사장) 등 요직을 거쳐 2018년부터 포스코 대표이사 사장을 맡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회장 선임 당시 36년 ‘포스코맨’ 출신으로 내부 승진이 주는 조직 안정감과 동시에 본업인 철강과 미래 신사업을 두루 챙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장 회장은 취임 이후 3분기까지 외부에 별다른 액션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움직임이 없다"는 조심스러운 우려도 나왔다. 다만 이는 ‘정중동(靜中動)’이었다. 그는 내부 현안을 면밀히 살피고 각 계열사의 수익구조와 리스크 요인을 철저히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그 조용했던 시간이 끝난 건 지난해 연말이었다. 장 회장은 과감한 인사 단행을 통해 쇄신의 첫 신호탄을 쐈다. 본사를 비롯해 포스코이앤씨, 포스코퓨처엠 등 주요 계열사 사장 거의 대부분을 교체했다. 또 임원 규모를 15% 축소하며 1963년생 이전 임원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했다.
비핵심 자산 매각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작업에도 본격 착수했다. 저수익 사업과 비핵심 자산 구조 개편 프로젝트 125개 중 45개 매각을 완료해 현금 6625억원을 확보했다. 올해도 연말까지 61개 프로젝트 매각을 마무리 지어 약 1조5000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달 기준 9500억원을 손에 쥔 상태다. 포스코는 향후 총 2조1000억원가량 현금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철강·이차전지 등 핵심 분야 성장을 위한 재원으로 쓴다는 방침이다.
장 회장은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흐름에 발맞춘 ‘그린 스틸(Green Steel)’ 투자 확대, 리튬 등 미래소재 분야에 대한 선제 투자도 적절히 병행하고 있다. 철강 부문에선 수소환원제철 기술 하이렉스(HyREX)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하이렉스는 기존 석탄 기반 고로(용광로) 방식에서 벗어나 철광석을 녹이기 위해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하이렉스를 적용했을 때 탄소 배출량은 고로 방식 대비 5배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하이렉스를 2030년까지 상용화하고 2050년에는 전면 도입해 완전한 탄소중립 제철소를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차전지 소재 부문 역시 풀 밸류체인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차전지에 필요한 리튬·니켈 등 원료부터 양극재·음극재 등 소재 생산, 폐배터리 재활용까지 가치사슬을 이루는 사업 간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장 회장의 이 같은 체질 개선 노력은 올해 1분기부터 조금씩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포스코는 1분기 매출 17조4370억원, 영업이익 5680억원을 기록했다. 전분기 대비 매출(17조8050억원)은 2.1% 감소했지만 영업이익(959억원)은 무려 493% 증가했다.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폭의 실적 개선을 이뤄냈다.
WSD 명예의 전당 등 경사, 실질적 성과 아쉽다는 지적도
지난달 18일에는 글로벌 철강사 중 처음으로 ‘WSD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영구 헌액되는 경사를 맞이했다. 장 회장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WSD 포럼에 직접 참석해 “명예의 전당 헌액은 글로벌 철강업계의 격려와 응원의 의미”라며 “모든 포스코 임직원의 값진 땀과 헌신에 깊이 감사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글로벌 철강 전문 분석기관 WSD는 2002년부터 전 세계 35개 철강사를 대상으로 기술 혁신, 생산 규모, 원가 절감, 가공비, 재무 건전성 등 23개 항목을 심사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기업’을 선정해왔다. 포스코는 2010년부터 15년 연속 이 분야 1위에 오르며 글로벌 철강업계에서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고 성과를 인정받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올해에도 그동안 유럽 국가들이 독점해온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플랜트 사업에 HIC 인증 에너지 강재를 처음으로 납품하는 등 글로벌 성과를 이어나가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1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양호하게 나왔다지만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철강 관세라는 리스크가 추가됐고 글로벌 이차전지 시장의 회복 속도도 지지부진하다. 정권 교체 이후 더욱 민감해진 안전 문제에도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장 회장이 어려운 업황 속 사실상 구원등판 해 다양한 방법으로 돌파구를 찾아가는 모습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임기 절반을 넘어가는 4분기부터는 실적, 안전 등 실질적인 부분에서 성과를 도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