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 비밀병기 ‘쇄빙선‘...트럼프 “도와줘요 한화·삼성”

조선업계 슈퍼사이클 종료 조짐...새 먹거리 찾기 분주 韓美 주목받고 있는 쇄빙선 낙점, 고부가 수익성↑ 한화오션·삼성중공업, 세계 최고 수준 기술력 보유 

2025-07-16     심민현 기자
한화오션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차세대 쇄빙연구선 조감도.<한화오션>

[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2021년부터 시작된 슈퍼사이클(초호황기)로 4년여 동안 호시절을 보낸 국내 조선업계가 ‘피크아웃(성장 정점 통과)’ 우려 등에 직면한 가운데 쇄빙선이 새로운 돌파구로 부상하고 있다.

선박 발주량 급감 속 수익성 높은 쇄빙선 주목

16일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조선사들의 수주량은 1938만CGT(표준선 환산톤수)로 전년 동기(4258만CGT) 대비 54% 감소했다. 

특히 국내 조선 3사(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화오션)가 강점을 보여온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 감소가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다. 조선 3사는 같은 기간 LNG 운반선 8척을 수주해 지난해 같은 기간(65척)과 비교했을 때 87.6%가량 급감했다. 

여기에 중국, 일본 등 경쟁국들이 조선사 합병 등을 통해 몸집을 불려가고 있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중국은 1·2위 조선사 중국선박공업주식유한회사(중국선박)와 중국선박중공주식유한회사(중국중공)의 합병을 앞두고 있다. 합병 이후 해당 조선사는 세계 조선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 조선사로 재탄생한다. 수주·건조량은 물론 자산 규모와 매출, 영업이익 등에서도 모두 세계 1위가 된다.

최근 정부 주도로 조선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일본도 1위 조선업체 이마바리조선이 2위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인수가 완료될 시 이마바리조선은 세계 선박 건조량 순위 6위(2024년)에서 한화오션을 제치고 4위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조선 3사는 이 같은 위기 신호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차세대 먹거리 찾기에 분주하다. 특히 쇄빙선을 고부가가치 틈새시장으로 주목하고 있다. 쇄빙선은 단순한 선박을 넘어 극한의 해양 환경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고도로 정밀하게 설계된 고기술 집약형 선박이다. 

일반 선박과 달리 두꺼운 해빙을 깨며 나아가기 위해 특수한 선체 구조와 초강력 추진 시스템이 요구되며 제작 난이도와 단가가 매우 높다. 쇄빙선 한 척의 건조 비용은 수천억 원에 달하며 일부 원자력 쇄빙선은 1조원을 넘는다. 이처럼 높은 기술력과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쇄빙선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분류된다. 

미국과 한국 모두 쇄빙선을 주목하고 있는 점도 조선업계 입장에선 구미에 맞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쇄빙선은 업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LNG 가스전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1300km에 달하는 가스관을 놓기 위해선 알래스카 두터운 얼음을 뚫을 쇄빙선이 필수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조선업 쇠퇴로 인해 자국의 역량 만으로 쇄빙선을 건조할 수 없다. 결국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동맹국 중에서 쇄빙선 건조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때문에 쇄빙선이 대미 관세 협상의 카드로 사용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대선 공약이었던 ‘북극항로 개척’이 국정과제로 추진되면서 국내에서도 쇄빙선이 조명받고 있다.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통과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상 운송 경로를 뜻한다. 기존 수에즈운하나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것보다 항해 거리를 30~40% 줄일 수 있어 물류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다만 두꺼운 얼음층을 깨며 항로를 개척해야 하는 만큼 쇄빙선 기술이 절대적이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쇄빙선.<삼성중공업>

한화오션·삼성중공업, 세계 최고 수준 쇄빙선 기술력 보유 

쇄빙선 국내 선두주자는 한화오션이다. 한화오션은 2008년부터 북극항로에 대한 가능성을 내다보고 극지용 선박 개발을 시작하는 등 쇄빙선 건조 기술력을 쌓아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쇄빙 LNG운반선을 건조 실적으로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2014년 15척, 2020년 6척 등 총 21척의 쇄빙 LNG운반선을 수주해 성공적으로 건조한 바 있다. 

지난 1일에는 극지항해와 연구를 위해 해양수산부에서 추진하는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 사업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빠른 시일 내 본 계약 체결 뒤 설계에 돌입할 예정이다. 2029년 12월까지 건조해 우리나라 극지 연구 임무를 보완·확장한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압도적 실적으로 검증된 세계 최고 쇄빙 기술력으로 이번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 사업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쇄빙선 수요가 커지고 있는 미국 측에도 한화오션의 쇄빙선 건조 역량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쇄빙선 사업의 재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러시아 야말 프로젝트를 통해 쇄빙 LNG 운반선 건조 경험이 있는 삼성중공업은 최근 북극항로 관련 기술 연구를 재정비하며 관련 수주 기회를 모색 중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쇄빙선은 기술력이 집약된 특수선박으로 중국이나 일본이 단기간에 따라오기 어렵다”며 “한국이 틈새시장이자 고부가 영역인 쇄빙선 시장을 선점할 경우 슈퍼사이클이 종료되더라도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