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공룡’ 한화오션·HD현대 갈등...8조 잠수함 수출사업도 진통

8조원 규모 폴란드 잠수함 사업, 양사 모두 입찰 지난해 호주 호위함 입찰서도 ‘원팀‘ 못 꾸려 고배 이번에도 가능성 낮아, 현재진행형 KDDX 갈등 여파

2025-07-15     심민현 기자
한화오션이 건조한 장보고-III 잠수함.<한화오션>

[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국내 해양 방산 라이벌인 한화오션과 HD현대가 약 8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폴란드 ‘오르카(Orka)’ 잠수함 사업 수주전에 나란히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이 추진해온 ‘원팀 코리아’ 구상과 달리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입찰 관련 갈등을 풀지 못한 양사가 독자 행보에 나서면서 또다시 ‘내부 경쟁’ 구도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10조원 규모의 호주 신형 호위함 입찰 당시 양사는 원팀을 이루지 못하고 각자 참여, 일본·독일 등 경쟁국 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았음에도 탈락의 고배를 마신 바 있다.

8조원 폴란드 ‘오르카 프로젝트’, 이번에도 빈손으로 돌아올까

15일 업계에 따르면 ‘오르카 프로젝트’는 폴란드 해군의 노후 잠수함 전력을 대체하기 위한 대형 국책 사업이다. 폴란드 정부는 최소 3척 이상의 3000톤급 최신 잠수함을 도입하는 한편, 기술이전 및 현지 생산 조건 등을 포함해 글로벌 방산업체들을 상대로 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한 상태다. 이르면 연내 오르카 프로젝트를 이끌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될 전망이다.

선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까지 합하면 규모는 50억 유로(약 7조8000억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국을 포함해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6월 20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최된 ‘국제해양 안보포럼’에 참가해 폴란드 해양 안보 솔루션을 제시했다.<HD현대>

한화오션과 HD현대도 각각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럽법인(HAEU), 한화시스템과 함께 바르샤바에서 미디어데이를 열고 1억 달러(1300억원) 규모 투자와 MRO 센터 설립, 기술 이전 등을 포함한 종합 제안 패키지를 선보였다. HD현대중공업 역시 3000톤급(KSS-Ⅲ PL)과 자체 개발한 2300톤급(HDS-2300) 잠수함을 동시에 제안하며 전략적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다만 잠수함 기술에선 한화오션이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대한민국 해군의 장보고(KSS)-Ⅲ 잠수함을 독자 설계·개발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오션이 개발한 공기불요추진체계(AIP)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리튬이온전지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잠수함으로 건조된다. 잠항 중 공기가 필요 없는 AIP와 리튬이온배터리를 결합한 추진체계가 적용된 세계 최초 사례다.

‘원팀’ 참여 시 수주 경쟁력 있지만, 발목 잡는 KDDX 갈등

때문에 한화오션 측은 내심 이번 오르카 프로젝트에서 HD현대가 한 발 뒤로 빠져 ‘원팀‘으로 협력해 주길 바라고 있지만 HD현대는 선을 긋는 모습이다. 지난 2월 방사청 주도 하에 함정 수출 시 ‘원팀’으로 대응하기로 협약을 맺기 전 발표된 사업이라는 것이 골자다. HD현대 관계자는 “오르카 프로젝트는 HD현대 개별적으로 수주에 참여한다“고 말했다.

만약 양사가 원만한 관계였다면 모르겠지만 KDDX 입찰 관련 갈등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원팀’ 구성을 위한 협의는 아직도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KDDX는 2030년까지 해군의 6000톤급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으로 규모만 8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당초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각각 수주했지만 기본설계 개념을 두고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방사청이 KDDX 기본설계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한화오션을 상대로 행정처분을 검토하면서 사실상 HD현대와 수의계약을 맺으려는 사전 작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권교체 이후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이 같은 기류에 업계 관계자들은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즈(TKMS), 프랑스 나발그룹 등 유럽 경쟁사들이 자국 정부의 강력한 외교적 지원을 등에 업고 수주전에 뛰어드는 가운데 국내 업체들이 ‘내전’을 벌이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이 훌쩍 넘은 만큼, 직접 나서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KDDX 관련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폴란드 오르카 프로젝트에서 ‘원팀‘을 구성할지 여부는 향후 예정돼 있는 수많은 해외 수주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며 “이미 실패한 호주에 이어 폴란드마저 고배를 마실 경우 국익 차원에서도 엄청난 손해를 입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