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 회장, ‘북미 투자‘ 승부수…호반의 경영권 위협에 맞불
48조원 규모 美 항공기·엔진 구매, 캐나다 항공사 지분 인수 호반의 경영권 위협 영향 미쳤나…성과 창출·우군 확보 차원
[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통합 대한항공‘의 미래를 북미 시장에 맞춰 정조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미국 중심의 산업 정책이 부활한 데 따른 것이다. 호반의 경영권 위협에 맞서 확실한 경영 성과를 창출하려는 의도 역시 읽힌다.
美 항공기·엔진 계약 이어 캐나다 항공사 지분 인수
19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3월 보잉과 GE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총 327억 달러(약 48조원) 규모의 항공기와 엔진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미국 제조업 보호주의’에 발맞춘 대규모 대미 투자로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우군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대한항공은 이어 이달에는 캐나다 사모펀드(PEF) 오넥스파트너스로부터 캐나다 2위 항공사 웨스트젯의 지분 10%를 2억2000만 달러(약 3000억원)에 인수, 북미 항공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웨스트젯은 전 세계 29개국 120개 공항에 취항하고 있으며 총 296개 노선 중 미주 대륙에서 120개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거래에는 대한항공의 오랜 파트너인 델타항공도 참여했다. 델타항공은 웨스트젯 지분 15%를 3억3000만 달러(약 4600억원)에 매입했다. 대한항공은 기존에 델타항공과 태평양노선 조인트벤처를 운영 중이다. 여기에 웨스트젯이 연결되면서 북미·중남미를 연결하는 공동 운항 체계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업계 일각에선 이를 사실상의 ‘하늘 위 한·미·캐 삼각 동맹’으로 평가한다.
조 회장은 트럼프 정부의 기조 변화에 발맞춰 통합 대한항공의 글로벌 전략을 북미에 맞춰 정렬시키고 있다. 관세 전쟁 등으로 전 세계 항공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내년 10월 아시아나항공과 통합 출범을 앞두고 되레 투자를 늘린 것이다. 대한항공은 이를 통해 세계 10위권 ‘메가캐리어(초대형 항공사)‘ 도약을 꿈꾸고 있다.
호반의 경영권 위협 의식?...성과 창출·우군 확보
조 회장이 북미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또 다른 이유로 최근 경영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도 고려됐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2대 주주인 호반그룹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한진칼 주식 총 67만5974주를 장내 매수했다. 이에 호반그룹의 한진칼 주식 보유비율은 17.44%에서 18.46%로 1.02%p(포인트) 늘어났으며 조 회장과 지분 격차는 1.67%p로 좁혀졌다.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 한진칼 지분은 20.13%다.
호반그룹은 지난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 참석해 이사 보수 한도를 90억원에서 120억원으로 증액하는 안건에 반대하며 조 회장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조 회장으로선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회사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려야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관세가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북미 현지 투자만큼 좋은 명분이 없었던 셈이다.
또 웨스트젯 공동 투자에 나선 델타항공은 한진칼 지분 14.90%를 보유하고 있는 조 회장의 최대 우호 세력이다. 조 회장은 2019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반도건설‘ 3자 연합과 경영권 분쟁 당시 델타항공 등을 우호 세력으로 확보해 경영권을 방어한 적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투자로 델타항공과 더욱 끈끈하게 엮여 보험 장치를 마련했다. 향후 호반과의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될 경우 델타항공이 다시 한 번 조 회장의 백기사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은 북미 투자로 트럼프 대통령의 눈도장과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성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며 “투자에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북미 네트워크 강화에 집중할 경우 통합 대한항공 출범 이후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