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침체된 방산 DNA 살아났다...1兆 블랙호크 사업 수주
한국항공우주산업 제치고 대형 수주 따내 최근 몇 년간 부진했던 방산 부문 재도약 희망 예상 밖 KAI 패배 원인 관련 ‘설왕설래’ 이어져
[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대한항공이 최근 몇 년간 부진했던 방산 부문에서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를 제치고 ‘블랙호크(UH/HH-60)’ 헬기 개량 사업 수주에 성공한 것이다. 계약 규모는 약 9613억원으로 지난해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방산) 매출의 2배에 육박한다.
조원태 회장이 2019년 취임 당시부터 방산을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점 찍고 적극 육성하겠다는 뜻을 피력해온 만큼 이번 수주와 맞물려 향후 성장 가도를 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조 회장은 지난달 11일 대한항공 신규 기업이미지(CI) 설명회에서도 “항공우주산업본부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한항공, UH-60 헬기 성능개량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24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전날 방위사업청이 발주한 ‘UH-60 헬기 성능 개량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대한항공은 방위사업청과 기술 및 조건 등 세부사항에 대한 협상을 거친 뒤 최종 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UH-60에 대한 성능개량을 마친 뒤 오는 2029년부터 우리 군에 기체를 인도할 계획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UH-60에 대한 전문 역량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군의 특수작전 수행 능력 향상과 국방력 강화에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호크(Black Hawk)’로 불리는 UH-60은 우리 육군·공군에서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다목적 헬기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사태 당시 육군 특수전사령부 소속 무장 병력이 이 헬기를 타고 국회 경내에 진입해 주목받았다.
현재 우리 군에서는 미국 시콜스키로부터 블랙호크를 도입해 현재 총 144대를 운용 중이다. 이번 성능개량 사업 핵심은 144대 가운데 육군 특수작전용과 공군 전투탐색구조용에 쓰이는 36대에 대한 조종실 디지털화와 엔진, 생존장비, 통신장비, 창정비 통합, 전력화 지원 요소 등 전 범위에 걸친 성능개량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번 수주로 대한항공은 UH-60헬기 기체 제작(면허생산), MRO(유지·보수·정비), 성능개량 개조를 모두 담당하는 유일한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실제 대한항공은 1991년부터 1999년까지 UH-60을 생산해 총 130대가 넘는 기체를 전력화했다. 또 현재까지 창정비와 부분 성능개량 및 개조를 수행하고 있다. 본계약 체결 이후 사업이 별다른 변수 없이 진행될 경우 방산 재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대한항공은 2015년 방산 부문에서 9135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1조 클럽 가입을 눈앞에 뒀었다. 하지만 2018년부터는 대형 수주를 따내지 못하며 부진을 이어갔고 2021년 3666억원까지 매출이 하락했다.
그래도 고무적인 대목은 지난해 매출이 5930억원으로 지난 4년간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아울러 이번 블랙호크 사업은 규모는 큰 반면 사업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아 투자 대비 효율이 좋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은 올해 매출 1조원 돌파를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각오다.
예상 밖의 결과?...KAI 패배 원인 놓고 ‘설왕설래’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대한항공 수주전 승리를 예상 밖의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KAI는 국내 첫 국산 헬기 ‘수리온’을 제작, 이라크에 수출한 경험이 있는 데다 블랙호크 원제작사 시콜스키와 한 팀을 꾸려 입찰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KAI가 헬기 개발에 강점을 가지고 있고 방사청이 원제작사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현재 정치적 상황이 이번 수주전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업계 일각의 분석도 있다.
오는 9월 임기가 종료되는 강구영 KAI 사장은 지난 2022년 8월 사장 내정 소식이 전해지자 사내에서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강 사장이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예비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캠프에 합류한 탓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이 지난 4일 탄핵됐고 6월 3일 치러질 대선에서 야당이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면서 KAI의 존재감이 다소 퇴색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치적 상황이 수주전에 작용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면서도 “결과가 나온 시점 등을 고려했을 때 공교로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