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성 하나은행장, 새 격전지 ‘외국인 고객 확보’에 사활 건다

외국인 전용 브랜드 론칭 예정…관련 스타트업 제휴도 전용 센터 등 기존 인프라도 탄탄…선점에 자신감 비쳐

2025-04-23     박지훈 기자
이호성 하나은행장.<하나은행. 그래픽=박지훈>

[인사이트코리아 = 박지훈 기자] 이호성 하나은행장이 은행권의 새로운 격전지 ‘외국인 금융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이를 위해 투자·제휴, 브랜드 론칭 등 여러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타행 대비 우월한 하나은행의 인프라를 함께 활용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그룹이 조성한 ‘하나비욘드파이낸스펀드’는 지난해부터 외국인 서비스 스타트업 등을 중심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 펀드는 하나은행을 비롯해 하나금융 계열사가 디지털 분야 유망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3000억원 규모로 2022년 4월 조성했다.

하나비욘드파이낸스펀드는 투자금 회수 등 이익 실현보다 투자를 매개로 그룹사와 협업을 모색하는 성격이 강한 전략적 투자(SI) 펀드다. 외국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을 물색해 그룹사 서비스에 적용하겠다는 게 그룹의 구상이다.

올해 1월 초 취임한 이호성 하나은행장은 지난해 이 같은 흐름을 이어가 외국인 금융을 본격 확대할 예정이다. 그동안 하나은행이 제공한 외국인 대상 서비스는 대출 등 근본적인 서비스보다 송금 업무, 계좌 발급 등 비교적 단순 서비스 위주였다.

외국인 금융 사업을 겨냥해 이 행장은 우선 외국인 금융 협력 파트너를 구했다. 외국인 근로자 대상 구인구직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와’가 그 주인공이다. 이 회사는 하나은행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원큐 애자일랩’ 16기 기업이다. 하나은행은 해당 플랫폼에 자사 상품·서비스를 올려 새로운 외국인 고객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외국인 금융 시장은 지방은행인 전북은행이 주도하고 있다. 전북은행은 외국인 송금 플랫폼 ‘한패스’ 지분을 확보하고 자사 상품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이 행장은 이 같은 선례와 같이 스타트업과의 동반 성장까지 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행장은 선두주자를 참고한 데 이어 독자적인 행보도 구상했다. 외국인 고객을 위한 전문 금융 브랜드 ‘하나더이지(Hana the Easy)를 론칭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앞서 시니어 고객을 위한 특화 브랜드 ’하나더넥스트(Hana the Next)’, 소상공인 금융을 강화한 브랜드 ‘하나더소호(Hana the SOHO)’를 론칭했다. 이를 감안하면 하나더이지가 겨냥하는 외국인은 시니어·소상공인과 함께 이 행장이 점찍은 미래 고객군인 셈이다.

하나은행은 외국인 서비스 스타트업에 대한 또 다른 투자 기회도 엿보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2024년에는 그룹 본업 경쟁력 강화, 미래성장 동력 확보에 도움이 되는 영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업에 약 36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진행했다”며 “시니어, 외국인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모빌리티 등에 대한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승열 당시 하나은행장(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지난해 9월 개점한 외국인 고객 특화점포 평택외국인센터점에서 AI 통·번역 시스템이 탑재된 투명 패널을 통해 외국인 고객에게 금융 상담을 하고 있다.<하나은행>

격전지서 인프라와 기술로 승기 잡는다

최근 외국인 금융 시장은 은행권의 새로운 격전지로 부각되고 있다. 내국인 시장은 위축되고 있지만 외국인 시장은 확장 국면이어서다. 국내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여전히 0.8명을 밑돌고 있는 반면 외국인 근로자 등 체류 외국인 수는 지난해 말 기준 265만명을 넘어섰다.

이를 눈 여겨 본 은행들은 일제히 외국인 고객 잡기에 나서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해 1월 경남 김해시에 처음으로 외국인 중심 영업점을 열었고, 모바일 웹에는 16개국 언어를 지원하는 외국인 전용 메뉴를 도입했다. 올해 들어 외국인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는 데 더욱 힘쓰고 있다.

기업은행은 상품군을 보다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외국인 전용 통장뿐만 아니라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체크카드까지 내놨다. 우리은행은 외국인 고객 전담창구인 ‘글로벌 데스크’를 전국 12개 지점으로 확대한다고 22일 발표했다.

이처럼 은행권이 외국인 고객 시장을 놓고 일제히 돌격하는 와중이지만, 하나은행은 이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구축한 외국인 대상 영업 인프라가 탄탄하다는 점 때문이다. 평일 은행 방문이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2003년 외국인 밀집지역에 문을 연 하나은행의 ‘일요 영업점’은 현재 16곳으로 국내은행 가운데 가장 많다.

이중 원곡동외국인센터점과 김해외환센터, 평택외국인센터는 평일에도 외국인 고객을 맞이하는 외국인 전용 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평택외국인센터는 국내 생활에서 필요한 다양한 교육과 친목 활동까지 주선하고 있어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인을 위한 서비스 솔루션 측면에서도 하나은행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하나은행은 AI 통·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플리토’와 협업해 은행 창구에서 영어, 중국어뿐만 아니라 태국어 등 38개 언어를 실시간으로 통·번역해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외국인 금융 서비스는 이제 틈새 시장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군이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는 지방은행과 대부업체가 이 시장을 이끌었지만 하나 등 대형은행이 나서면서 외국인 금융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