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실적 반토막 났는데도 노조 "성과급 줘" 몽니로 맞서
[노조에 발목 현대차그룹②] 무리한 성과급 요구 사측 직장 폐쇄, 공장 셧다운으로 맞서 美 제철소 설립 발표도 노조에 부담으로 작용 양측 모두 상처 뿐인 7개월, 노조 향한 비판 목소리
[인사이트코리아 = 심민현 기자] 현대제철이 노동조합(노조)과 갈등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2023년부터 중국산 저가 철강재 유입, 건설경기 침체 등 악재가 계속되며 철강업황이 내리막길을 걷는데도 노조는 이에 아랑곳않고 무리한 성과급 인상 요구를 반복하고 있다.
총파업 직전 노조가 한발 물러서면서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그사이 회사는 큰 손해를 봤다.
현대제철 임단협 잠정합의한 가결...상처만 남았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조합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지회가 지난 11일부터 전날 오후 4시까지 진행한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는 총투표율 98.96%에 찬성 57.86%(2375표)·반대 42.14%(1730표)로 가결됐다. 이날 잠정합의안을 가결한 노조는 현대제철 노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당진제철소 소속 노조로 당진 외에도 인천·순천·포항·하이스코 등 4개 노조가 더 있다.
이 가운데 순천 노조는 앞서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를 진행해 58.4%(188명)로 가결됐다. 투표가 진행 중인 3개 지회에서 합의안이 가결돼 조인식을 거치면 교섭이 마무리된다.
현대제철 노사는 지난해 9월부터 성과급 문제를 두고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을 달려왔다. 사측은 지난해 영업이익(3144억원)이 전년 대비 60.6% 감소하는 등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1인당 평균 2650만원(기본급 450%+1000만원) 수준의 성과급을 제안했다.
하지만 노조는 기본급 15만98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사상 최대 규모 성과금 지급, 차량 구매 대출 시 2년간 1000만원 무이자 대출 지원, 정년 퇴직자 대상 3년마다 20% 차량 할인 지원 등 추가 지급을 요구하며 부분 파업을 이어왔다. 자신들의 요구 조건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총파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서강현 사장은 강대강으로 맞섰다. 철강업계가 장기간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만큼 노조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판단, 주도권을 확실히 쥐고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실제 서 사장은 당진제철소 냉연공장 PL/TCM 설비에 대해 지난 2월 24일부터 3월 12일까지 16일간 직장폐쇄 조치를 단행한 데 이어 지난달 27일 인천공장 철근 생산 라인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인천공장은 4월 한 달 내내 문을 닫는다. 이외에도 임원 급여를 20% 삭감하는가 하면 전 사업 부문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기도 했다.
강성 노조에 질린 현대차그룹, 美로 중심 생산기지 이전?
모기업 현대차그룹의 미국 제철소 설립 발표 역시 노조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줬을 것이란 분석이다. 현대제철은 2029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25일 밝혔다.
미국에 총 58억 달러(약 8조5127억원)를 투자해 추진하는 신규 전기로 제철소는 원료부터 제품까지 일관 공정을 갖춘 미국 최초의 전기로 일관 제철소로 고로 대비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해가 거듭될수록 국내 철강·수요가 모두 줄어드는 상황에 미국 현지 제철소가 완공된 이후 자리를 잡을 경우 현대제철의 중심 생산기지가 미국으로 옮겨갈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중국산 철강 제품을 수입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노조 내부에서도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는 후문이다.
가까스로 노사 합의 직전까지 왔지만 양측 모두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은 지난 7개월간의 싸움이었다는 평가다. 노조는 회사로부터 성과급 50만원, 임금 10만원 인상을 더 얻어내는데 그쳤고 사측은 증권업계로부터 올해 1분기 6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낼 것이라는 암울한 예상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협상 조건을 내민 노조에게 더욱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조가 내년, 내후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리스크를 만들어낸다면 경영진 입장에선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미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 역시 유력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