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혁 칼럼] 최태원 SK 회장이 던진 화두

2025-01-21     임혁 편집인

‘화두(話頭)’는 불교 용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몰입하는 ‘생각의 실마리’를 의미한다. 불교에서 나왔지만 불가의 울타리 밖에서도 빈번히 사용된다. 경영계가 대표적이다. 해가 바뀌면 기업인들은 이런저런 화두를 쏟아낸다. 올해는 ESG, AI, 위기 등과 관련된 화두가 많이 언급됐다.

그 중에도 눈길을 끈 것은 최태원 SK회장이 던진 ‘무역질서 변화’라는 화두다. 최 회장은 1월 19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무역질서가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에서 ‘양자주의’ 체제로 바뀌고 있다. 세계 경제 질서가 바뀐다는 것은 마치 씨름에서 수영으로 경기의 종목과 룰이 바뀌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씨름을 잘해왔던 선수라도 당장 수영을 해서 경쟁하라고 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수십년간 활용했던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은 현재의 무역질서에서 과거처럼 작동하기 어렵다.”

최 회장은 자신이 던진 화두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첫 번째는 ‘글로벌 경제연대’다. “지금 (세계 경제) 룰을 결정하는 나라는 1위 미국, 2위 중국, 3위 EU 경제블록 정도다. 우리 혼자서는 국제질서의 룰을 바꿀 힘이 부족하니 함께 연대할 파트너와 추구해야 할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처방이다. 그 유력한 파트너로 일본을 꼽기도 했다.

두 번째는 ‘해외 시민 유입’이다. 최 회장은 “해외 시민을 유입해 단순 관광 정도가 아니라 장기 거주해 국내에서 일도 하고 세금도 내고 소비도 늘리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는 인구의 약 10%인 500여만명의 해외 인력 유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내수 확대를 도모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 회장은 기존 수출 방식을 대체할 모델도 제안했다. 그는 “우리는 경제 규모에 비해 해외에 전략적인 투자를 체계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며 해외투자 다각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통상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문화 상품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 판매할 필요가 있다”며 ‘소프트 파워 강화’에도 방점을 찍었다.

최 회장의 이 같은 화두와 해법 제시에 주목하는 것은 그 내용이 기업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단순히 SK그룹의 생존이 아닌 국가의 흥망에 대한 고민이 이 화두와 해법에 담겨 있다는 얘기다.

그런 맥락에서 최 회장의 화두는 문득 1995년에 있었던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베이징 발언’을 소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 이 회장이 반도체 공장 건설과 자동차 사업 추진 과정 등에서 겪은 정치인과 관료들의 불합리한 행태를 비판한 작심발언이었다.

최 회장 같은 기업인이 대한민국 경제의 화두를 부여잡고 고민하고 있는 이 순간, 정쟁에 매몰돼 있는 정치권과 복지부동 태세에 들어간 관료사회를 지켜보며 30년 전의 베이징 발언을 상기하게 되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임혁 편집인.<인사이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