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양강' 삼성‧SK가 연 AI 행사, 차이는 '총수 비전'
양사, 4~5일 ‘삼성 AI 포럼 2024’·‘SK 서밋 2024’ 개최 SK, 세계 AI 기업 총수 깜짝 출연해 협력‧파트너십 강조 삼성, 세계적 학자 참석...기술 미래상 모색하는 학술행사
[인사이트코리아 = 손민지 기자] 국내 반도체 양대산맥인 삼성전자와 SK그룹이 지난 4일부터 이틀간 인공지능(AI) 해법 논의를 위한 행사를 열었다. 삼성전자가 ‘삼성 AI 포럼 2024’를 열어 글로벌 석학들과 AI 미래에 대해 논의했다면, SK는 ‘SK AI 서밋 2024’에서 정부, 민간, 학계 전문가들과 미래 AI 시대 공존법과 AI 생태계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두 기업 모두 AI를 다뤘다는 점은 같으나, 몇 가지 점은 차이나기도 했다.
비즈니스 네트워크 vs 학술논의의 장
삼성 포럼과 SK 서밋의 가장 큰 차이는 참석자들이다. SK 행사의 경우 미국 엔비디아, 대만 TSMC를 비롯해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세계 AI 산업계를 이끄는 거물들이 온, 오프라인으로 출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이는 글로벌 빅테크와 오랫동안 파트너십을 중시해온 최 회장의 ‘AI 리더십’과 무관치 않다. 최 회장은 이날도 “AI는 혼자서 혁신하기 어렵다”면서 “SK그룹의 AI 사업 방향은 전방위 협력”이라고 밝혔다.
이를 증명하듯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 회장 기조연설 중 영상으로 깜짝 등장해 “SK하이닉스와 함께한 고대역폭메모리(HBM) 덕분에 ‘무어의 법칙(18개월마다 반도체 집적도가 두 배씩 증가한다)’을 뛰어넘는 진보를 지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더 적은 메모리로도 더 정확한 연산을 수행했고 동시에 더 높은 에너지 효율을 달성했다”고 했다.
SK그룹의 행사가 비즈니스 성사를 위한 성격이라면 ‘삼성 AI 포럼’은 학술계 권위자들이 꾸려가는 토론의 장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기조 강연은 ▲딥러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요슈아 벤지오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 ▲얀 르쿤 메타 수석 AI 과학자 겸 미국 뉴욕대 교수 ▲지식 그래프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이안 호록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등 글로벌 AI 석학들이 맡았다.
벤지오 교수는 대규모 노동 시장 영향, AI를 이용한 해킹, 슈퍼 인텔리전스의 출현 등 AI의 미래 위험성과 함께 AI의 성능이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 수준을 넘어섰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AI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AI가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사전에 안전한 AI 설계가 이뤄지고 ▲AI의 행동과 목표를 인간과 일치시킬 필요가 있으며 ▲국가/기업간 AI 경쟁에 더 많은 조정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2018년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튜링상'을 수상한 얀 르쿤 교수는 기조 강연에서 현 거대언어모델(LLM)의 수준과 한계를 설명하고, 기계가 인간의 지능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포럼에 대해 “올해로 8회째를 맞은 행사”라며 “기술의 최신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향후 연구 방향을 모색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연구소 주관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초청받은 이들 외엔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며 비공개 포럼임을 밝혔다.
총수의 명확한 비전 제시 vs 참모진의 뻔한 말
두 그룹이 AI 행사를 풀어가는 면에서 포착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리더십이다. 최태원 회장은 이번 행사 첫날 약 50분간 오프닝 세션을 이끄는 등 행사를 주도했다. 기조연설에서 그는 “AI의 미래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SK가 보유한 AI 역량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더해 글로벌 AI 혁신과 생태계 강화에 기여하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향후 핵심 과제로는 ▲반도체 설계, 패키징 등 AI 칩 경쟁력 강화 ▲고객 기반의 AI 수요 창출 ▲전력 수요 급증 등에 대비한 ‘에너지 솔루션’ 사업 가속화 등을 꼽았다.
그는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거시 환경 변화를 잘 보고 계열사별 특성에 맞게 사업 환경 예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운영 개선 달성도를 정량화하고 측정하는 것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 행사에는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대신 회사 내 AI 사업을 이끄는 참모진이 나섰다. 다만 이 포럼은 학술적 연구를 위한 자리인 만큼 기존 공식행사에서 언급된 내용 외에 새로운 AI 관련 비전은 없었다는 후문이다.
한종희 대표이사(부회장)는 개회사에서 “AI는 놀라운 속도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고 더욱 강력해짐에 따라 ‘어떻게 AI를 더 책임감 있게 사용할 수 있을지’가 갈수록 중요해진다”며 “삼성전자는 보다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창규 SAIT AI리서치센터장(부사장)은 ‘과학을 위한 AI’ 주제 발표에서 “AI와 반도체 기술은 우리의 삶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개발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등 과학 분야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실험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물질 합성이 어려운 경우에 AI가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다만 포럼 1일차 주제는 ‘인공지능과 반도체 기술을 활용한 지속 가능한 혁신 방안 모색’이었고, 2일차 주제는 ‘모두의 일상생활을 위한 디바이스 AI’로 선정됐다. 이는 AI에 대한 이재용 회장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전자가 현재 처한 위기는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 삼성전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이 해법을 AI로 풀고자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과 SK의 차이점이 이번 AI 행사에서도 드러난다”며 “SK는 총수가 전면에 나서 행사를 주재하고 AI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반면, 삼성은 학술의 장으로 풀어나간다는 게 그렇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