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엔터 대모’ 이미경 부회장, 세계시민상 훈장으로 CJ 빛냈다
아시아 여성 기업인·문화인 중 최초로 '세계시민상' 수상 한류 현상을 끊임없이 주도해 온 비저너리 리더 美 대중문화업계에서 ‘K-콘텐츠 르네상스’ 일등공신
[인사이트코리아 = 손민지 기자] CJ그룹 오너일가인 이미경 부회장이 유엔총회 기간인 지난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시에서 ‘세계시민상’을 받았다. 세계시민상은 글로벌 과제를 해결하고 자유·평화·번영의 가치에 기여해 세계시민의식을 구현한 리더에게 미국 유력 싱크탱크 애틀란틱 카운슬이 수여하는 상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지난 2017년 문재인 전(前)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다. 아시아 여성 기업인·문화인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이 부회장이 처음이다.
이미경 부회장, “이재현 회장 지원 덕분”
시상식에는 글로벌 정치·경제·문화·산업계를 대표하는 VIP들이 대거 참석했다. 나나 아쿠포아도 가나 대통령,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도 세계시민상 수상자로 함께 시상대에 올랐다. 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람 슈리람 구글 설립 이사회 멤버, 제프리 카젠버그 드림웍스 창업자,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 등 각계 리더들이 참석해 수상을 축하했다.
이 부회장은 시상식에서 “문화는 비록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힘은 아닐지라도, 인류에 대한 배려와 희망, 공감의 다리를 건설할 힘이 있다”며 “‘기생충’과 같은 영화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불평등이라는 중요한 주제에 관한 대화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시상식에서 이 부회장은 삼성의 창업주이자 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회장을 언급했다. 그는 “선대 이병철 회장은 ‘문화가 없으면 나라가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며 “문화는 산소와 같아서 평소에는 그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것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고 밝혔다.
동생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향한 감사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1990년대까지 한국은 서구 콘텐츠와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고 CJ는 식품 사업이 주력인 기업이었다”며 “그러나 동생 이재현 회장과 나는 ‘지금까지는 사람의 입을 즐겁게 해왔으니, 앞으로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 등 당대 최고 거장에게 배우기 위해 드림웍스 투자를 결정하고, 한국의 젊은 창작자들을 지원하며 헐리우드식 스튜디오 시스템을 구축한 과정을 설명하며 “숱한 부침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이 회장의 지원 덕분에 지금까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K-컬처 선봉장, 세계를 홀리다
이 부회장은 국내에선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져있다. 2014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 개막을 앞두고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 국내 경제계 리더 30명과 함께 참석했을 때 오랜만의 공개적인 행보로 주목받았을 정도로 대외 행사 참석이 드물었다. 하지만 글로벌 무대로 시각을 넓히면 이 부회장에 대한 평은 달라진다. 한류 전파의 최선봉에 선 CJ를 움직이는 엔진이다.
브루스 파이스너 국제TV예술과학아카데미(IATAS) 회장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게 국제 에미상 공로상을 수여하면서 그를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과 탁월한 사업적 통찰력을 기반으로 한류라는 세계적인 현상을 끊임없이 주도해 온 비저너리 리더(visionary leader)’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미국 대중문화업계에서 ‘K-콘텐츠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일등공신으로 꼽히며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영화매체 ‘할리우드 리포터’가 뽑은 ‘엔터테인먼트 여성 파워 100인’에 아시아인으론 처음으로 3년 연속 선정됐다. 또한 미국 ‘버라이어티’가 발표하는 '글로벌 미디어 산업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리더 500인(버라이어티 500)' 명단에도 4년 내내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엔 유명 매거진 배니티 페어(Vanity Fair)가 ‘2024 할리우드 이슈’에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비저너리(visionary)’로 이 부회장의 이름을 올렸다. 당시 배니티 페어는 이 부회장을 ‘대모(godmother)’라 칭하며 “올해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총괄 프로듀서로 역량을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 대학원 재학 당시 1주일에 영화 1편을 볼 정도의 ‘영화광’으로서, 대중문화 예술에 대한 애착이 컸던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 내 유명 감독과 제작자, 배우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며 친분을 쌓았다. 이러한 경험은 이 부회장이 K-드라마, K-무비(movie)가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부회장은 콘텐츠 제작에 있어 이익 보다는 작품성에 더 신경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기생충’, ‘헤어질 결심’, ‘브로커’, ‘패스트 라이브즈’ 등 작품의 총괄 프로듀서를 직접 맡았다. 특히 이 중 ‘기생충’은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수상했고, A24와 공동 투자배급한 패스트 라이브즈는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여기에도 이 부회장의 물밑 노력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평소 감독이나 배우, 작가 등 관련 크리에이터들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관계를 맺으며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현재 미국 아카데미 영화박물관 이사회 부의장, IATAS 이사진, 미국 해머 미술관(Hammer Museum) 이사진 등으로 활동 중이다.
CJ는 자산이 1조원대였던 지난 1995년, 미국 영화제작사 ‘드림웍스’에 3000억원의 지분을 투자하며 엔터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재현 회장은 2004년 12월 누나 이 부회장을 CJ엔터테인먼트(영화 제작·배급업체), CJ CGV(극장 사업), CJ미디어(m-net 등 케이블방송국), CJ아메리카(미주판매 법인)를 총괄하는 부회장에 임명하며 남매경영 체제를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