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 구원투수 ‘병무 형’, 6개월 분투 결과는?

박병무 공동대표, 취임 후 고강도 ‘다이어트’ 추진 글로벌 시장 진출 통한 파이프라인 확장에도 박차 실적 개선 조짐은 아직...“결국 게임이 잘 나와야”

2024-09-25     신광렬 기자
박병무 엔씨소프트 공동대표.<엔씨소프트>

[인사이트코리아 = 신광렬 기자] 오는 9월 28일이면 박병무 엔씨소프트 공동대표가 취임한지 반 년이 된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자의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한 그가 취임한 후 지난 6개월간 엔씨는 말 그대로 전방위적인 체질개선을 단행했다.

박 공동대표는 지속된 부진으로 위기에 처한 엔씨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아 지난 3월 28일 엔씨의 공동대표로 선임됐다. 그는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시작으로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구)로커스홀딩스)대표, TPG Asia(뉴 브리지 캐피탈) 한국 대표 및 파트너, 하나로텔레콤 대표, VIG 파트너스 대표 등 다채로운 경력을 자랑한다. 2007년부터 엔씨소프트의 사외이사로 참여했으며, 2013년에는 기타비상무이사를 맡는 등 엔씨의 내부사정에도 정통한 인사로 알려졌다.

엔씨는 창사 이래 27년 동안 김택진 대표 단독체제를 유지해 왔다. 게이머들로부터 ‘택진이 형’이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김 대표가 고교선배인 ‘병무 형’을 공동대표로 영입한 것은 그만큼 엔씨의 상황이 절박해졌다는 반증이었다. 실제로 박 대표의 취임 당시 엔씨는 주가가 20만원선이 붕괴되고, 올해 1분기에는 전년 동기대비 68%나 감소한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등 회사를 둘러싼 상황이 좋지 않았다. 김 대표 스스로도 공동대표 체제 도입에 대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덜어내고 잘라내고...박병무, 엔씨의 ‘다이어트’ 나서다

박 대표는 공동대표 취임 후 대규모 조직개편과 구조조정을 필두로 강도 높은 엔씨의 다이어트에 나섰다. 엔씨는 이전부터 회사의 규모에 비해 인원이 지나치게 많고 조직이 복잡하다는 평가를 들어 왔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하게 칼을 댄 것이다.

박 대표는 지난 5월 한 달간 권고사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40대 이상의 저성과자, 비개발 직군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연말까지 전체 인력 중 10%를 정리하는 것이 이번 권고사직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목표로 알려졌다. 당시 박 대표는 “고정비성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권고사직을 단행할 것”이라며 “조직개편을 통해 직원 수를 올해 말까지 4000명대 중반까지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엔씨가 추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인원 구조조정으로 (엔씨의)3분기 인건비는 전년 동기대비 10%, 전분기 대비 7% 감소했다”며 “향후에도 인력 효율화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대표 캐릭터 사업이었던 ‘도구리’의 오프라인 사업을 대폭 축소했다.<엔씨소프트>

박 대표가 줄인 것은 직원의 수만이 아니었다. 게임과 관련이 적은 일부 사업들의 규모를 줄이고, 일부 조직은 본사에서 분리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박 대표는 엔씨의 대표적인 캐릭터 사업이었던 ‘도구리’의 오프라인 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엔씨의 아픈 상처로 꼽혀오던 ‘트릭스터 M’의 서비스를 종료하고 해당 작품의 개발사 엔트리브소프트를 폐업했다.

이와 동시에, ‘QA(Quality Assurance, 품질 보증) 서비스 사업 부문’과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 공급 사업 부문’을 각각 ‘주식회사 엔씨큐에이(NC QA COMPANY)’과 ‘주식회사 엔씨아이디에스(NC IDS COMPANY)’라는 자회사로 분사하기로 결정했다. 엔씨는 해당 부서에서 일하던 인력들에게 ‘회사가 3년 내에 폐업할 경우 복귀를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표는 지난 5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명회에서 “대다수 기능이 본사에 집중된 현재의 엔씨는 효율적이고 신속한 의사 결정을 하는데 제약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히며 분사의 취지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대표의 이같은 정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우려섞인 시선이 나온다. 도구리 캐릭터의 경우 엔씨에 대한 반감이 높은 젊은 층에게 있어 긍정적인 이미지를 환기시키던 역할을 해 왔는데, 해당 사업을 축소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게임 제작에 있어 필수적인 QA팀의 분사 결정에 대해서는 게임 제작의 효율성을 저해시키는 자충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엔씨 노조인 ‘우주정복’과의 마찰도 커졌다. 우주정복은 지난 5월 분사 계획이 언급되었을 당시부터 “우리는 쓰다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반대 성명문을 내고 지속적으로 항의해 왔다. 여기에 분사 대상자들에 대한 고용불안정성까지 대두되며 우주정복은 9월 12일 이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 진출 통한 파이프라인 확장에도 박차

박 대표는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과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엔씨가 직접적으로 만드는 게임이 유저들로부터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하고 있는 만큼, 잠재력 있는 게임사들을 물색하고 이에 투자해 게임의 파이프라인을 늘리고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복안이다.

엔씨는 지난 7월 30일 스웨덴 소재 슈팅 게임 전문 개발사 ‘Moon Rover Games(문 로버 게임즈)’에 대한 투자를 진행한 데 이어, 8월에는 국내 대표 서브컬처 게임 전문 개발사 ‘빅게임스튜디오’에 370억 원 규모의 지분 및 판권 투자를 진행했다. 특히 빅게임 스튜디오 투자는 그 동안 서브컬처에 거부감을 보여 오던 엔씨로서는 이례적인 투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세간의 주목을 모으기도 했다.

박 대표는 “최근 국내외 투자를 통해 올해 초 약속한 신규 IP 확보가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호연.<엔씨소프트>

박병무 등판에도 실적 개선은 아직...“결국 게임이 잘 나와야”

그러나 박 대표의 이같은 노력이 무색하게도, 엔씨에게 끼어 있는 먹구름은 여전히 두껍다.

지난 2분기 엔씨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각각 16%, 75%씩 하락하며 간신히 적자를 면했다. 적자를 면한 것 또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한 인건비 절감이 반영된 결과로, 이후로 추가적인 실적 악화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주가 또한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여 주지 못하고 8월 초에는 15만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엔씨가 결국은 게임사인 이상, 게임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상 엔씨의 실적 개선은 요원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야심차게 발표한 신작들이 잇따라 부침을 겪는 것이 엔씨 실적 부진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엔씨는 지난해부터 ‘쓰론 앤 리버티(이하 TL)’ ‘배틀크러쉬’ ‘호연’ 등의 작품들을 잇따라 출시했으나 이들 모두 현재까지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TL은 BM만 개선된 리니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배틀크러쉬는 기존에 시장에 나와 있던 난투형 액션게임들과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호연은 출시 이전에 서브컬처 유저들과 선을 긋는 행보를 보이면서 부정적인 민심을 안고 시작했고, 출시 후에도 그래픽과 연출 등에서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엔씨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부정적인 선입견까지 겹치며 신작들이 모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박 대표의 사업 수완이나 구조조정을 통한 실적 개선 노력과는 별개로, 엔씨가 실적개선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결국 게임이 잘 나와야 한다”며 “현재 엔씨에게는 게임시장의 트렌드를 읽는 눈과, 인기 많은 게임의 특징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상세하게 분석하고 배우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