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혁 칼럼] 임종룡 회장 사과문에 담긴 메시지
이복현-임종룡 '약속대련' 설도
[인사이트코리아 = 임혁 편집인] 요즘 금융권 뒷담화의 주인공은 단연 우리금융이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 사건 때문이다. 금융계 인사들과 만나는 자리에선 으레 이 얘기가 화제에 오른다.
이와 관련해 급기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8일 국민과 고객들 앞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임 회장은 이날 긴급 임원회의 석상에서 예고에 없던 사과문을 내놓았다. 사과문에서 그는 “전임 회장 친인척과 관련된 부당대출로 인해 국민들과 고객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또 “현재 진행 중인 금융감독원 조사와 함께 수사기관의 수사도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금융감독원과 검찰의 조사에 대해 숨김없이 모든 협조를 다해서 이번 사안이 명백하게 파악되도록 해 주시기 바란다”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아울러 조사 혹은 수사 결과가 나오면 임 회장 본인과 조병규 행장을 포함한 임직원은 그에 맞는 조치와 절차를 겸허하게 따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사과문에서 기자의 눈에 가장 도드라지게 들어온 부분은 마지막의 ‘조사 혹은 수사 결과에 겸허하게 따르겠다’는 발언이었다. 여느 사건 같으면 상투적인 발언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번엔 다르게 다가왔다. 예상 외의 저자세라고 느껴져서일 것이다.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바짝 엎드린 임종룡’이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 임 회장의 이런 로우키(low-key) 처신에는 단순히 사과의 메시지 외에 다른 메시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바로 ‘감독당국의 권위에 대한 존중’이라는 메시지다. 임 회장은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거물급 CEO’다. 그런 임 회장의 입에서 나온 ‘조사 혹은 수사 결과에 겸허하게 따르겠다’는 발언은 그간 일련의 금융사건에서 감독당국에 맞섰던 일부 금융CEO들의 모습과 대비된다.
그동안 금융CEO가 감독당국의 제재처분에 불복했던 사례는 숱하게 많다. 그중에도 최근의 대표적 사례로는 채용비리 사건이나 DLF 불완전판매 사태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이들 사건에 연루된 금융CEO들은 거의 대부분 감독당국의 징계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벌였다. 이번 부당대출 사건의 당사자인 손태승 전 회장도 그중 하나다. 그는 DLF사태로 내려진 문책성경고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벌인 끝에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들 사례는 ‘감독당국의 권위 손상’이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감독당국의 처분에 번번이 당사자가 불복한다면 감독당국의 권위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금융시장의 규율을 관장하는 감독당국의 권위가 무너지면 시장의 질서도 그만큼 위험에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임 회장의 발언에는 감독당국의 권위에 대한 배려가 담긴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임 회장 본인이 금융위원장을 지낸 전력이 있고 최근 티메프 사태로 "감독당국은 뭐하고 있었나"라는 여론이 비등한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기자의 이 같은 ‘뇌피셜’에 대해 한 증권사 CEO는 “이번 사태를 두고 이복현 금감원장과 임종룡 회장의 ‘약속대련’이라는 얘기도 들린다”고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다. 약속대련설이 사실이라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대련인지 이번 사태의 결말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