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두산’ 리밸런싱, 시장 반응에 온도 차이...이유는?

두산 개편 논란에 ‘밥캣 방지법’까지 등장…금감원, 증권신고서 정정 요청 ‘제동’ 전망보다 합병 비율 낮춘 SK…증권가 “SK 합병 비율 합리적”

2024-07-25     이숙영 기자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각 사>

[인사이트코리아 = 이숙영 기자] SK와 두산의 리밸런싱이 최근 자본시장의 ‘뜨거운 감자’다. 두 그룹은 계열사 간 인수합병(M&A)를 통해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불공정한 합병 비율로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만 그 비판의 강도는 SK와 두산간에 확연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두산에 비해 SK는 그나마 소액주주의 이익을 나름 배려했다는 평가 때문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지난 17일 리밸런싱(그룹 재구조화) 계획을 발표했다. SK이노베이션이 SK E&S를 흡수합병하는 것이 핵심이다. SK이노베이션 밑으로 그룹 캐시카우(현금창출원)인 SK E&S를 넣어 재무 안정성을 보완한다는 전략이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적자 행진으로 인해 채무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두산그룹도 지난 11일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떼어 내 투자법인을 신설한 뒤, 이 투자법인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사업구조 재편 계획을 공시했다. 합병 후 두산로보틱스가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두산밥캣을 품는 구조로, 두산도 SK와 마찬가지로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통해 적자 기업 두산로보틱스를 보완하는 방향을 택했다.

두 그룹은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 발전을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지만, 이를 바라보는 자본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각 그룹의 알짜배기 기업과 적자 기업을 합병하기 위해 주식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각 기업에 매긴 가치가 소액주주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오너가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는데에만 목적을 둔  리밸런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구조재편 후 지분구조.<SK>
두산 지배구조 개편안.<편집=이숙영>

다만 두 그룹을 향한 비판의 수위에는 차이가 느껴진다. 먼저 두산의 경우 불공정합병이라며 뭇매를 맞았다. 주주 반발도 거셌다. 주주들은 알짜 기업인 밥캣이 로보틱스로 옮겨가며 에너빌리티 주가가 하락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1대 0.63으로 산정된 밥캣과 로보틱스의 합병 비율도 적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밥캣은 로보틱스에 비해 순자산 규모가 5조원 이상 크고, 매출 규모도 10조원 이상 높다.

이번 사태에 실망한 외국인들도 두산그룹 관련 주식 처분에 나섰다. 개편 발표 다음 날인 12일부터 22일까지 외국인은 두산에너빌리티 422억원, 두산밥캣 1942억원을 팔아 치웠다. 지난 23일 열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서 미국계 펀드 테톤캐피탈의 션 브라운 이사는 두산그룹의 개편은 “날강도 짓”이라며 “너무 격분하고 실망해 지분 대부분을 장내 매도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산과 같은 사례를 막자는 취지의 ‘밥캣 방지법’까지 등장하자 급기야 금융감독원이 두산 리밸런싱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24일 금감원은 두산이 합병을 위해 제출한 ‘주식의 포괄적 교환 및 이전’ 증권신고서에 대해 정정을 요구했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가 엇갈린 합병안과 관련해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의 이 같은 행보가 두산의 합병 비율 논란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SK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두산에 비해 그 수위가 훨씬 낮다. 합병 비율에서 소액주주를 향한 나름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은 1대 1.19로, 시장의 당초 전망 보다 낮게 결정됐다. 앞서 증권가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E&S의 합병 비율이 1대 2로 결정될 것이라는 말이 돌며 이 경우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이 피해를 볼 것이란 지적이 제기됐었다. 하지만 SK가 최종적으로 시장 전망보다 낮은 합병 비율을 정하며 소액주주들로서는 당초 예상보다는 조건이 개선됐다.

증권가의 분석도 이번 합병 비율에 대해 대체로 합리적이었다는 의견이다. 전우제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시장 우려 대비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비율은 합리적”이라며 “실제 합병 비율은 주식 기준 1대1.2, 주식수를 감안한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1대 0.6이다. 결과적으로 SK(주)의 신설법인 지분율은 예상치인 72% 대비 낮은 55.9%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도 “합병 비율이 시장에서 예상했었던 1대 2보다 SK이노베이션 주주들에게 유리한 방향이다. SK E&S 흡수합병은 SK이노베이션에 매우 긍정적”이라며 “신주 발행으로 인한 주주가치 희석보다도 E&S가 가져올 기업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SK E&S의 기업가치는 대략 6~7조원으로, 이는 신주발행으로 인한 주주가치 희석율인 35%를 상쇄한다는 설명이다.

일부 SK 주주들 사이에서는 합병을 지지하는 흐름도 보이고 있다. 합병 반대 의견이 압도적인 두산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날 SK이노베이션 종목토론방에는 한 누리꾼은 “두산 사태와 SK이노베이션보다 돈 잘버는 회사랑 합병하는 것이 같냐”며 “두산은 합병 비율이 말이 안되지만, SK이노베이션은 SK온 때문에 적자가 커져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합병”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