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오너家, ‘밥캣’ 지렛대로 배 채우기?...뒤통수 맞은 개미들 뿔났다
두산에너빌리티서 밥캣 인적분할 후 로보틱스와 합병 ‘알짜’ 밥캣과 로보틱스 합병 비율 의문…일반주주에 불리 시민단체 “그룹 이익 충실”...정치권 ‘밥캣 방지법’ 발의 움직임
[인사이트코리아 = 이숙영 기자] 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 가운데 개편 과정에서 두산밥캣을 실제 가치보다 저평가해 일반주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올 들어 정부는 기업가치 제고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두산은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두산은 지난 11일 “두산로보틱스는 두산밥캣을 100% 완전자회사로 편입해 양사의 사업적 시너지 극대화 및 경영 효율성과 시장 경쟁력을 강화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자 주식의 포괄적 교환을 추진한다”고 공시했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밥캣 떼고, 로보틱스 합치고
이번 두산 지배구조 개편 골자는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분리해 투자법인을 신설한 뒤, 이 투자법인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것이다. 합병 후에는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과 포괄적 주식교환을 진행해 완전자회사로 편입한다.
이 과정에서 ▲두산로보틱스와 신설 투자법인 간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간 크게 두 번의 주식 거래가 이뤄진다. 두산로보틱스와 신설 투자법인 간 합병 비율은 1대 0.12,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주식교환 비율은 1대 0.63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합병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두산 계열사 중에서도 현금 창출 능력이 뛰어나 알짜배기로 꼽히는 밥캣과 지난해 상장한 로보틱스가 비슷한 수준의 기업가치로 주식을 교환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로 밥캣의 순자산은 6조원 규모지만, 로보틱스는 4000억원에 불과하다. 실적을 놓고 보면 지난해 두산밥캣은 매출 10조3000억원, 영업이익 1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두산로보틱스의 매출은 530억원에 그쳤고, 영업손실 193억원을 냈다.
두 기업의 실제 가치에서 큰 차이가 나는데도 비슷한 수준으로 주식 교환이 가능한 것은 현 자본시장법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합병 시 합병비율은 두 회사의 최근 1개월간 평균 종가, 최근 1주간 평균 종가, 최근일 종가를 산술 평균한 기준시가를 통해 산정된다.
결국 오너家 배불리기?…“일반주주보다 대주주 이익 충실”
증권가는 이번 사업 개편으로 지주회사 격인 ㈜두산과 두산로보틱스가 큰 이득을 볼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두산의 지배주주에게는 여러모로 이득이다. 두산의 알짜배기인 두산밥캣에 대한 실질 지배력을 3배 가까이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두산의 최대주주는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으로, 지난해 말 기준 7.6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의 동생 박지원 부회장이 5.50%로 2대주주다. 두 사람을 포함해 총수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39.87%다.
올해 1분기말 기준으로 보면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고, 에너빌리티는 밥캣 지분 46%를 보유해 밥캣을 지배하고 있다. 즉, 두산이 실질적으로 밥캣을 지배하는 지분율은 13.8% 수준이다.
하지만 밥캣이 로보틱스의 100% 완전자회사가 되면, 두산은 로보틱스를 통해 밥캣에 대한 실질 지배력을 42%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두산이 두산로보틱스 지분 42%를 보유하고,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을 완전히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논평을 통해 두산의 개편이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며 “지배주주가 사실상 의사결정 하는 계열회사 사이에서 지배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시기와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 또는 주식교환이 이루어지면서 일반주주들은 회사 성장에 따른 수익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두산밥캣 주주는 합병이 싫으면 그냥 최근 주가로 현금을 받고 주식을 회사에 팔아야 한다”며 “좋은 회사인데 주가가 낮다고 생각해서, 결국 본질가치를 찾아갈 것이라고 믿고 오래 보유하려던 수많은 주식 투자자들이 로봇 테마주(로보틱스)로 바꾸던지 현금 청산을 당하든지 양자 선택을 강요 받는 날벼락을 맞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도 이날 “분할합병 비율과 포괄적 주식교환 비율이 두산로보틱스에 유리하다는 비판이 거세지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며 “두산에너빌리티, 밥캣 이사회가 선택한 지배권 이전 방식이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일반주주의 이익보다는 그룹의 이익에 충실했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일반주주 입장에서 가장 유리한 지배권 이전 방식은 가격 협상을 통해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로보틱스에 직접 매각하는 방식”이라며 “분할합병, 포괄적 주식교환 안건 등에 대한 최대주주의 의결권 제한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준비 중이다. 최근 그룹사들이 진행하는 기업 합병 과정에서 합병 비율을 두고 논란이 잇따르자 일반주주의 권익 보호 차원에서 합병가액 산정을 감시할 수 있도록 법안을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두산밥캣 방지법’을 발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장사 합병 비율을 시가 아닌 본질가치 기준으로 결정하도록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