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코리아 24조 체코 원전 수주...두산에너빌리티, 박정원 회장 효자 부상

박 회장의 '에너지 사업 올인' 뚝심 통했다

2024-07-17     손민지 기자
박정원(왼쪽) 두산그룹 회장이 체코 플젠 시에 위치한 두산스코다파워를 방문해 원전 핵심 주기기인 증기터빈 생산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두산>

 

[인사이트코리아 = 손민지 기자] 한국수력원자력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가 체코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팀코리아의 일원인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그룹 내 효자 기업으로 부상하게 됐다. 두산에너빌리티는 4년 전 두산그룹을 채권단 관리체제에 들어서게 한 ‘아픈 손가락’이었으나 극심한 부진 속에서도 원전 사업 의지를 꺾지 않았던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결단에 힘입어 캐시카우로 급부상하고 있다.

외신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체코 정부는 17일(현지시간) 각료회의를 열고 한수원을 자국 신규 원전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한수원은 최종 계약 체결을 위해 발주사인 체코전력공사(CEZ)의 자회사인 두코바니Ⅱ 원자력발전사(EDUⅡ)와 단독으로 협상할 지위를 확보했다.

'24조 잭팟' 원전 사업...두산에너빌리티, 대규모 수주로 자존심 회복할까

체코 신규 원전 건설은 두코바니와 테멜린 지역에 1.2GW 이하의 원전 4기를 짓는 사업으로 사업비 규모는 24조원대로 추정된다. 한수원은 한국전력기술‧한전KPS‧한전원자력연료‧두산에너빌리티‧대우건설 등과 ‘팀코리아’를 꾸려 프랑스전력공사(EDF)와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팀코리아의 체코 원전 수출이 최종 확정될 경우 원자로·증기발생기 등 1차 계통 핵심 주기기를 두산에너빌리티가 공급하게 된다. 두산 측 관계자는 “시장에서 체코 원전 수주를 대형 호재로 보고 있는 만큼 내부적으로도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고 밝혔다.

수주 성공은 두산에너빌리티에도 뜻깊은 성과가 될 전망이다. 그룹 핵심 계열사였던 두산에너빌리티는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큰 타격을 받으면서 2020년 유동성 위기까지 이어졌던 뼈아픈 과거가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두산그룹의 원전 사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주력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가 큰 타격의 여파로 채권단 관리체제까지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금난에 빠진 그룹은 재무건정성이 악화해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 대응에 나섰다. 2021년에야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서 실적 회복기에 올랐다. 그룹은 채권단으로부터 3조6000억원을 지원받고, 자산 및 계열사 매각과 유상증자 등을 통해 3조원 규모 재무구조 개선안을 마련했다. 결국 1년 11개월 만인 2022년 2월 채권단 체제를 조기 졸업했으나, 그 과정에서 알짜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현 HD현대인프라코어)까지 HD현대에 넘겨줘야 했다.

시장은 팀 코리아의 체코 원전 수주가 확정되면 정치적 영향이 크게 작용할 수 있는 유럽 시장에서 K-원전의 가격 및 공기준수 경쟁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향후 폴란드 이외에도 2분기 이후 입찰 예정인 아랍 에미리트(UAE), 네덜란드, 영국, 튀르키예 등에서의 원전 수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

또한 두산에너빌리티는 체코 원전 외에 미국 최대 SMR 설계 업체 뉴스케일파워가 짓는 370억달러(약 50조원) 규모의 SMR 건설 프로젝트에도 주기기 납품 기업으로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회사 측은 2019년부터 총 1억4000만달러를 뉴스케일파워에 투자하면서 해당 건을 조율해왔는데, 실제로 공급이 실현되면 2조원가량의 설비를 납품하게 된다.

국내에서 원전 사업의 중요성이 확대되면서 시장이 되살아날 조짐 보이는 점도 호재로 작용한다. 최근 정부는 11차 전기수급기본계획에 오는 2038년까지 최다 3기의 원전을 새로 짓고, SMR를 활용한 ‘미니 원전’ 1기도 2035년까지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담았다. 이는 약 9년 만에 나온 새로운 원전 계획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원전 기자재를 공급하는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서는 대규모 수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두산에너빌리티가 얻는 것은?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두산에너빌리티가 소유한 두산밥캣(자회사)의 지분을 인적분할해 두산로보틱스에 넘기는 지배구조 재편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이는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반도체·첨단소재 등 3대 부문을 일원화하고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결정으로, 두산밥캣은 포괄적 주식교환을 거쳐 두산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가 된다. 9월 25일 주주총회, 10월 29일 분할합병기일, 11월 5일 주식교환일, 11월 25일 신주 상장이 예정돼있다.

두산밥캣은 지난해 기준 두산그룹 영업이익의 97%를 차지하는 캐시카우로, 2022년과 2023년 연속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넘겼다. 모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는 2022년부터 연결기준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는 수혜를 입었다. 이 때문에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서는 두산밥캣을 내준 것이 뼈아플 수 있지만, 그 대신 두산밥캣에 차입금을 이전하게 돼 약 1조2000억원의 차입금 감축 효과가 발생하며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얻게 됐다. 또한 두산밥캣 투자 법인에 7200억원의 차입금을 넘기고 비핵심 자산을 매각함으로써 연간 금융비용 660억원을 포함해 조 단위의 순차입금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허민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그룹 지배 구조 재편에 따라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밥캣으로 받는 배당금은 없어지지만 현금 유입으로 순부채 1조2000억원, 금융비용 660억원이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두산그룹이 사업구조 재편을 통해 에너지 사업의 노선을 명확히하게 된 만큼 향후 두산에너빌리티도 중간지주사 역할에서 벗어나 순수 사업회사로 전환하면서 원전 사업에 보다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측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개선된 재무여력을 바탕으로 소형가스원전(SMR), 가스‧수소터빈 등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집중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지난 5월 체코 프라하에서 ‘두산 파트너십 데이’ 행사를 직접 주관하며 원전 사업 수주에 적극적인 행보도 보인 바 있다. 박 회장은 “두산은 에너지 및 기계산업 분야에서 오랜 기간 체코 정부를 비롯해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을 이어왔다”며 “해외수출 1호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에 성공적으로 주기기를 공급한 경험을 바탕으로 15년 만에 다시 도전하는 해외원전 수주에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한편 두산에너빌리티는 올해 1분기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 1조5918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말(1조3958억원)대비 2000억여원 증가한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