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혁 칼럼] 최태원 이혼소송과 '법적용 안정성'

2024-06-07     임혁 편집인

법학에서 가르치는 세 가지 ‘법의 사명’이 있다고 한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이들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다. 첫째는 ‘정의’다. 여기에는 번거로운 설명이 필요 없다. 둘째는 ‘합목적성’이다. 법은 국가의 목적에 맞추어 형성되고 운용돼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는 ‘안정성’이다. 법의 제정과 시행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법적용은 상식에 부합하고 예측가능해야 한다는 요구일 터다.

요즘 세간의 화젯거리로 떠오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소송 판결을 접하고 법의 이 세 가지 사명을 떠올렸다. 이번 판결이 과연 법의 사명에 충실한 판결이었는지가 궁금해진 것이다. 

기자는 법에는 문외한이다. 게다가 소송 당사자들과는 아무 인연도 없는 일개 기자일 뿐이다. 따라서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처지다. ‘정의’나 ‘합목적성’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부부지간의 내밀한 사정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어느 쪽이 정의인지 제3자가 어찌 왈가왈부할 수 있겠나. 또 어느 쪽을 편드는 것이 ‘국가의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기자가 판단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세 번째 가치 ‘안정성’ 문제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이번 판결이 상식에 부합하고 예측가능한 판결인 지 선뜻 수긍이 안 된다는 얘기다. 

이런 생각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우선 1심에 비해 너무나 크게 늘어난 재산분할 규모 때문이다. 2심 법원이 판결한 재산분할액은 1조3808억원이다. 1심에서 판결한 재산분할액 665억원의 20배가 넘는다. 나아가 그간의 국내 이혼 소송 뉴스에서 나왔던 재산분할액과 비교해도 상상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항소심에서 유무죄나 형량 판단이 바뀌는 여느 사건과는 결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법적 안정성 차원에서 의문을 갖게 하는 두 번째 포인트는 재산분할 근거다. 항소심 재판부가 ‘분할 대상’으로 본 최태원·노소영 부부의 공동재산은 총 4조115억원이다. 그중 99.4%인 3조9883억원이 최 회장 명의의 재산이고 그 대부분은 주식이다. 구체적으로는 ▲㈜SK 주식 2조760억원▲SK실트론 지분 29.4%에 대한 총수익스왑계약(TRS) 계약 7500억원▲SK디스커버리 등 기타 계열사 지분 115억원▲최 회장이 2018년 친족 23명에게 증여한 ㈜SK 지분 약 1조원 등이다. 

결국 전체 분할대상 재산 중 3조원 이상이 지주회사인 ㈜SK 지분인 셈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SK그룹의 성장에는 노소영 관장의 선친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기여가 있었으니 지주회사 지분도 분할대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재판부의 이 판단에는 상식선에서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 측면이 있다. 지주회사인 ㈜SK의 주가는 당연히 그 계열사들의 기업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그 계열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의 자산총계가 약 100조원으로 그룹 전체 자산총계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점만 봐도 그 비중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SK하이닉스를 배제하면 ㈜SK의 기업가치는 지금 수준을 한참 밑돌 것이라는 얘기다.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 것은 지난 2012년으로 여기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기여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의 ㈜SK 지분 전체를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지 의문인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 최종 결론은 대법원의 몫으로 넘어가게 됐다. 항간에서는 2심 판결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듯하다. 대법원은 사실심리보다는 법리적용을 중시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법적용의 안정성을 고려한다면 또 다른 결론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임혁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