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부회장, 200억원치 주식을 매입해야 했던 속내는?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5월 한 달 간 29만2348주 매입 매입가 195억원... 장내 매수는 이번이 처음 지분율 5.26%에서 5.63%까지 올라... 배당금 확대
[인사이트코리아 = 김재훈 기자]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HD현대 주식 일정량을 5월 한 달 간 지속적으로 매입했다. 정기선 부회장이 이 기간 주식 취득에 사용한 금액만 200억원에 달한다. 지분 매입에 따라 지분율은 기존 5.26%에서 5.63%까지 올랐다. 업계는 HD현대 자회사인 HD현대마린솔루션 상장 후 주가 하락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라고 본다.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5월 한 달 간 주식 29만2348주를 매입했다. 매입가는 195억원 수준으로 보인다. 매입 방식은 장내매수다. 정 부회장이 장내매수로 주식을 매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이한 점은 5월 한 달 간 1일·6일·15일·30일·31일을 제외하고 매일 1만 내외의 주식을 매입했다는 점이다. 정기선 부회장은 5월 1만주~2만주를 꾸준히 매입했다. 주식 매입에 지분율도 2일 5.26%에서 29일 5.63%까지 올랐다.
HD현대마린솔루션 상장 후폭풍 막기 위한 매입 가능성 ↑
통상적으로 기업 오너가 자기 회사 주식을 매입하는 경우 ‘책임경영’이란 말이 따라 붙는다. 주가가 하락하면 오너가 직접 뛰어들어 주식을 매입해 주가를 끌어올린다는 뜻이다.
실제로 정 부회장이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한 이래 HD현대의 주가는 조금씩 올랐다. 정 부회장이 주식을 처음 매입한 2일 종가 기준 6만4300원에서 31일 6만8700원까지 올랐다.
다만 주식 매입 시기와 HD현대 자회사인 HD현대마린솔루션의 상장 시기가 맞물리면서 정 부회장이 직접 HD현대 주주 달래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국내 증권 시장에서는 모회사와 자회사가 중복상장되는 경우 모회사 주가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국내 기업들이 모회사의 알짜 사업 회사를 분할시켜 모회사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HD현대마린솔루션이 상장 심사 승인을 받은 지난 2월 19일 이후 HD현대의 주가는 한 달 동안 10% 가까이 하락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상장을 앞둔 지난 4월 중순 HD현대의 주가는 7만원에서 6만원으로 급락하며 불길은 더 커졌다. 4월 말 6만원 중반 수준으로 다시 올라왔지만 2월 대비 회복률은 저조하다.
HD현대가 HD현대오일뱅크 상장을 추진하던 2022년 6월에도 주가는 급락했다. 당시 HD현대오일뱅크가 상장 승인을 받은 후 HD현대의 주가는 5만9000원대에서 5만3000원대로 추락했다. 주가 하락 역풍을 맞은 HD현대는 결국 HD현대오일뱅크 상장 철회를 발표했다.
정 부회장 지분 확대... 추가 배당 기대도
주주 달래기 차원의 주식 매입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리지만 정 부회장에게는 지분 확대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HD현대 대주주는 지분 26.6%를 들고 있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다. 정 부회장이 가진 5% 대의 지분율과 차이가 컸던 만큼 정 부회장의 지분 매입은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다.
향후 정 부회장이 그룹 지배권을 늘리기 위해선 정 이사장의 지분을 넘겨받아야 한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안정적으로 지분을 받는 건 상속일 확률이 높다. 31일 종가 기준 정 이사장의 지분 가치는 1조4287억원이다. 30억원 초과 자산에 50%의 상속·증여 세율이 적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9000억원의 세금을 마련해야 한다.
재계는 정 부회장의 자금 마련방침으로 배당금을 꼽는다. 정 사장은 2018년 정 이사장으로부터 받은 3000억원과 금융권 대출 500억원으로 HD현대의 지분 5.26%를 획득했다. 이 시점부터 HD현대의 배당률은 큰 폭으로 늘었다. 업황 악화로 당기순이익이 864억원에 그친 2020년에는 2615억원을 배당했다. 배당성향이 300%에 달한 셈이다.
정 부회장이 그룹을 장악하기까지 고배당 정책은 유지될 확률이 높다. 5월에 매입한 주식으로 추가 배당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HD현대는 정 부회장의 주식 매입에 대해 “주가 흐름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책임 경영의 뜻을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