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기업시민 포럼] 키노트 스피치_정운찬 전 국무총리
[2021 기업시민 포럼] 키노트 스피치_정운찬 전 국무총리
  • ESG 포럼 사무국
  • 승인 2021.06.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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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기업시민, ESG에 빠지다’ 포럼에서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기업시민, ESG에 빠지다’ 포럼에서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정지선>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기업시민, ESG에 빠지다’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다. 이날 정 총리는 “사회적 책임에 기반한 가치 경영은 선택이 아니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필수요건이 됐다”며 “준법 경영을 넘어 윤리 경영을 정착시키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공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하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기조연설 전문

안녕하십니까. 정운찬입니다.

한국은 2018년부터 인구가 5000만명이 넘으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이상인 7개 국가 일원이 됐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참혹한 민족적 수난을 겪은 후 불과 65년 만에 성취한 경제 성과입니다. 국민, 기업 그리고 정부가 하나 되어 협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경제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경제성장률은 2%대로 주저앉아 몇 년째 답보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 압축 고도성장 과정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들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특히 소득과 자산의 불균형은 우리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스티글리츠(Joseph E.Stiglitz)는 “시장의 여러 가지 의미에서의 불균형은 역동성, 효율성 그리고 생산성을 마비시키고, 파멸적인 악순환 고리를 형성해 결국 사회 전체를 침몰시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현재의 불균형 상태를 균형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노력을 전면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기업의 역할이 아주 큽니다.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되지 말고 사회 발전을 견인하는 건강한 기업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원래 기업 ‘Company’의 어원은 라틴어 ‘Companio’입니다. Companio는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또한 기업가 ‘Entrepreneur’의 프랑스어원 ‘Entrepreneur’은 ‘관계를 중재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기업과 기업가 모두 처음부터 사회적 가치 속에서 규정되어 왔습니다.

한국 경제가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 기업인들, 특히 대기업들은 기업보국, 사업보국, 기술보국과 같은 말을 많이 했습니다. 과거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같은 선각자들은 기업을 경영하여 애국애족을 했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우리 기업관 속에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기업도 혁신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인류번영에 기여해야 합니다.

사실 기업 입장에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도 버거운데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기업들은 이미 사회적 가치까지 고려하며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려고 많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기업들이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구미(歐美)에서는 기업이 주도하는 사회적 가치 창출이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새로운 필요조건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003년을 전후하여 한국 사회에 지속가능보고서라는 형태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소개됩니다. CSR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던 1950년대 구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수익을 극대화해서 고용을 더 많이 늘리고 임금을 더 많이 지불하며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적극성이 요구되면서, CSR은 기업이 수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환경보호, 자원봉사, 기부활동 등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활동으로 인식됩니다. 이와 병행하여 기업에 시민적 의무와 책임을 부여하는 ‘GCC(좋은 기업시민, Good Corporate Citizenship)’도 등장합니다. ‘기업시민’은 성숙한 시민이 사회 공동체를 위해 적극적으로 선행을 실천하듯이, 기업도 경영활동에서 사회발전을 위해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한국에서는 2018년 포스코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 경영을 처음 소개했고 SK, 현대차, 삼성 등 다른 대기업들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려고 합니다. 노스웨스턴대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 교수에 따르면 ‘선행(Good Works)’은 이제 기업 생존과 번영의 필수조건이 되었고, 공익과 기업 이익 간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앞으로 기업의 생존전략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기초한 가치경영이 기업 생존의 필수요건이 되었음을 인지해가고 있습니다.

제가 동반성장 전도사를 자임하면서 힘주어 강조했던 것은 기업의 자발성입니다. 이윤 창출이라는 기업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면서도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경제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대기업이 자주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Environment·Social·Governance)는 2006년 UN이 PRI(책임투자원칙, 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를 발표하면서 주목된 투자원칙이었습니다. 그 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적으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제위기가 촉발되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자들은 각 기업에게 지속가능경영을 요구했으며, 이에 따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투자를 강조하는 ESG가 재조명되었기 때문입니다. CSR이 기업가의 자발적 지속가능노력이라고 한다면, ESG는 투자자에 의한 타의적 지속가능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SG는 환경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은 ESG에서 새로운 의제일 수 있습니다. S가 전통적으로 E와 G에 비하여 뒤처진 이유는 성별·다양성·임금격차 등 사회적 의제가 너무 광범위하고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슈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투자자와 소비자들은 지속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고 있고 기업의 사회적 솔루션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CSR에 대한 고민은 2011년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와 마크 크레이머가 제시한 ‘CSV(공유가치 창출, Creating Shared Value)’로 진화합니다. CSV는 기업 활동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동시에 경제적 수익을 추구하여 장기적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기업성장전략입니다. CSR이 기업 이익의 일부를 사후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면, CSV는 시장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혹은 선행적으로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보다 알기 쉽게 파이에 비유한다면, CSR이 잉여자본을 나눠주는 ‘남는 파이를 나누는’ 방식이라면, CSV는 기업이 사업 목표를 세우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공익과 기업 이익의 균형을 위해 ‘파이를 키우는’ 방식입니다. 여기에는 ‘남의 것을 빼앗아 나눠주자’가 아니라 ‘다 함께 파이를 키워서 나누자’는 동반성장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CSV 즉 동반성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책임에 기반한 가치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필수요건이 됐습니다. 투자자와 소비자들은 기업의 사회 기여를 투자 기업과 제품·서비스를 선택하는 주요 기준으로 삼는 추세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지만 남에게도 이득이 되는 이타자리(利他自利)의 경영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면서, 준법경영을 넘어 윤리경영을 정착시키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여 공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회문제 해결은 기업 혁신의 한계를 돌파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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