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은행·거래소 ‘눈 가리고 아웅’…암호화폐 투자용 은행계좌는 없다?
정부·은행·거래소 ‘눈 가리고 아웅’…암호화폐 투자용 은행계좌는 없다?
  • 이정문 기자
  • 승인 2021.04.23 15:52
  • 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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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가산자산 거래소에 실명확인 입출금 계좌 등록한 회원만 투자 가능
은행, 법적 자산 인정 못 받은 암호화폐 투자 목적으로 계좌 개설 불가능
거래소, ‘가상자산은 금융거래 목적에 해당 안 해 다른 증빙서류 지참’ 안내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6회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 대해 밝혔다. (뉴시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2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6회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상자산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 대해 밝혔다. (뉴시스)

[인사이트코리아=이정문 기자] 지난 3월 5일 특금법이 시행 되면서 암호화폐 거래소는 시중 은행과 계약을 맺어 실명확인이 완료된 입출금 계좌를 등록한 투자자만 거래를 하도록 해야 한다. 가상자산이 정부의 요구대로 자금의 흐름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정부가 가상자산 거래자를 투자자로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은 위원장은 “많이 투자한다고 보호가 되냐”며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어른들’은 누구며 ‘잘못된 길’은 무엇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한 투자자는 “‘어른들’이 설마 기존 금융권에서 거래를 하고 있는 자신들을 지칭하는 거냐”며 “바로 얼마 전까지 투자자 자산 보호를 위해 특금법을 시행해 놓고, 지금 와서 가상화폐 투자에 ‘잘못된 길’ 운운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암호화폐 투자 목적으로 계좌 개설 불가능

가상자산 투자에 관심이 갖게 된 A씨는 며칠 전 국내 4대 거래소 중 한 곳인 빗썸을 찾았다. 빗썸이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부여된 조건 중 하나인 ‘시중은행과 계약을 맺은 암호화폐 거래소’라는 말을 들은 적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자금을 투입해 암호화폐 매매를 시작하려고 보니까 원화를 거래소로 입금하기 위해서는 실명 인증이 완료된 NH농협은행의 개인 계좌가 필요하다고 했다. A씨에게는 NH농협은행 계좌가 없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이 은행의 지점을 찾아갔다.

계좌 개설을 위해 왔다고 하자 은행 안내 업무를 보는 직원이 순번 대기표를 뽑아줬다. A씨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창구에 앉아 “입출금 계좌를 개설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러자 창구 직원은 계좌 개설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A씨는 “가상자산 거래를 위해 계좌를 개설하려 한다”고 말했다.

은행의 입장은 단호했다. 암호화폐 투자 목적으로 계좌를 개설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실명 계좌 개설을 위해서는 증빙서류가 필요한데, 가상자산은 현행법상 법적 자산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명 계좌 발급에 필요한 법적 증빙서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A씨가 그러면 그냥 생활비 관리 목적으로, 혹은 저축 목적으로 통장을 개설하겠다고 하자 창구 직원은 이미 A씨가 암호화폐 거래를 위해 계좌를 개설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인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도 한도제한이 걸린 계좌밖에 개설할 수 없다”고 말했다. A씨는 하루 이체 한도가 100만원이라는 말을 듣고 원하는 만큼 투자금을 거래소에 보내기 위해서는 며칠 동안 입출금을 반복해야 할 것 같았다.

주식 투자도 이렇게 어려웠나 생각해보니 증권사에 돈을 입금하는 과정은 몇 번의 스마트폰 인증 절차를 거치면 됐었다. 은행 창구 직원은 “만약 생활비 관리 목적으로 계좌를 개설할 경우 3개월치의 공과금 납부 내역 증빙서류가 필요하다”고 했다. 예적금 목적의 계좌를 한도제한 해제하는 방법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계좌 개설 목적 거짓말 해야 코인 투자 할 수 있다니…

A씨는 스마트폰에 빗썸의 앱을 깔았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는 A씨와 유사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많았다. 누군가는 “빗썸이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그걸 연동하는 게 그나마 편리하다”는 댓글을 남겨 뒀다. A씨가 앱을 열고 NH농협은행의 입출금 계좌가 없다는 버튼을 클릭하자 ‘NH농협은행 계좌 개설 시 유의사항’이라는 안내문이 떴다.

NH농협은행에서 개설한 계좌만 연결할 수 있으며, 계좌 개설 시 금융거래 목적의 확인 서류 제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붉은 글자로 강조돼 있었다. 금융거래목적 확인 증빙 서류 예시로는 급여 목적, 공과금 자동이체 계좌, 아르바이트 계좌, 신용카드 결제 목적이 적혀 있었고 각 계좌의 한도를 해제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도 적혀 있었다. 안내문의 맨 마지막 줄에는 붉고 진한 글씨로 ‘가상자산 거래 목적은 금융거래 목적에 해당하지 않으니 위의 예시를 참고하시어 증빙서류를 지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

정부의 방침으로 안전한 가상자산 거래를 위해서는 실명 확인 계좌가 필요하기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시중 은행과 계약을 맺어야 했다. 그런데 막상 거래소와 계약한 시중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려고 하니 ‘가상자산 거래 목적으로는 계좌 개설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기존에 100만원의 한도 제한이 걸려 있지 않은 은행 계좌를 지닌 사람들은 계좌 연결이 비교적 수월하겠지만 신규 투자자들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계좌를 개설해 거래소에 등록하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투자자 자금 보호와 불법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대책을 마련한 정부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시중 은행도 마찬가지로 합당한 법적 증빙서류 없이는 실명 계좌 개설이 불가능하며 한도 해제를 위해 증거가 될 만한 서류를 지참해야 한다는 지침을 지키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역시 기존의 시중은행과 계약을 맺고 실명 인증이 완료된 계좌를 보유한 회원만 투자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마련했으니 제도권 안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거래를 목적으로 시중 은행에서 신규 계좌를 발급 받을 수 없다. 거래소와 협약을 맺은 은행도 마찬가지다. 결국 가상자산 투자자는 법적으로 보호받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A씨는 “꼭 몰래 도둑질 하듯 코인을 사고파는 것 같은 기분”이라며 “불법 거래를 하러 온 것도 아닌데 거짓말까지 해 가며 통장을 발급받고, 가상자산 거래와 아무 관련 없는 서류들을 제출해야지만 거래가 가능한 현 상황은 모순적”이라고 주장했다.

2018년 비트코인 거래가 열풍을 불러일으킬 당시, 가상자산을 규제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커졌지만 아무런 법과 제도도 마련되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거래소를 이용하면서도 투자금에 대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특금법이 제정된  올해도 상황은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암호화폐 실체 자체가 모호하다며 내재가치가 없는 자산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편으로 “정부가 다 보호해줘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3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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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동 2021-04-26 12:29:31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피카츄 2021-04-25 14:51:25
느그집 뽀삐가 말 더 잘하겠다

은성수 2021-04-25 14:50:34
코인 270 만원 ㅠㅠ

ㅁㄴㅇ 2021-04-24 20:41:02
큰일이구만 큰일이야 참..

윤수일 2021-04-24 16:40:05
뭐만 하면 다 나라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