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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실크로드 거점 코카서스에서 기마민족 흔적을 찾다
실크로드 거점 코카서스에서 기마민족 흔적을 찾다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장
  • 승인 2020.11.02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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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 등 대제국 주역들이 활동한 역사적인 땅
조지아 코카서스 산맥. 지평인문사회연구소
조지아 코카서스 산맥. <지평인문사회연구소>

코카서스(Caucasus·Kavkaz)지역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다. 고대부터 동서 교역의 관문 역할을 하며 실크로드의 카라반이 활동해온 곳이다.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육상 경계 지역으로 각종 지도나 통계에서 이 지역 국가를 유럽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서아시아로 분류하기도 한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이루는 코카서스 산맥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이루는 코카서스 산맥은 카스피 해와 흑해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으며 길이 1200km, 넓이 180㎢에 달한다. 북쪽에 대코카서스(볼쇼이 카프카스) 산맥이 있고 남쪽 에는 소코카서스(말리 카프카스) 산맥이 자리하고 있다. 북코카서스 산맥에 있는 엘부르스 산은 유럽 최고봉으로 높이 5642m를 자랑한다. 코카서스 지역에는 석유, 천연가스, 철광석 등 풍부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코카서스 산맥이라는 천혜의 관광자원이 있다.

코카서스의 민족과 국가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대코카서스 산맥을 중심으로 북쪽 지역은 러시아 영역으로 체첸 등 7개 공화국과 2개 지방, 1개 주가 있고 남쪽 지역은 조지아·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세 나라가 있다.

코카서스는 오랜 기간 여러 민족의 이동 경로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200개 이상의 수많은 소수민족이 산재해 살고 있어 민족과 국가 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류 민족은 조지아·체첸 등의 코카서스계, 아르메니아·러시아 등의 인도유럽계, 아제르바이잔 카라차이·발카르의 투르크계 등이다.

이들 국가들 간에도 러시아와 조지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와 터키는 각각 적대 관계에 있는 등 민족과 역사에 따라 상호관계가 다양하게 얽혀 있다. 러시아의 체첸 사태도 이 지역에서 일어났다. 러시아의 체첸공화국은 수천 년 전부터 체첸인이 거주해온 지역으로 인구 130만명 중 90%가 이슬람을 믿는 체첸인이다.

코카서스 국가들. 지평인문사회연구소
코카서스 국가들. <지평인문사회연구소>

1936년 러시아가 정복해 자치공화국으로 편입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소연방이 해체될 때 체첸은 당연히 분리 독립을 요구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 지역에 유전이 있을 뿐 아니라, 카스피해 유전의 송유관이 통과한다는 점, 러시아 남서부 국경지대의 21개 자치공화국들이 연쇄 독립을 요구할 우려가 있다는 점 때문에 이를 묵살해버렸다. 이에 체첸은 1991년과 1994년 두 차례에 걸쳐 독립전쟁을 일으켰으나 러시아가 무력 진압했고 이것이 이른바 체첸 사태다.

코카서스 지역은 동서양의 경계인만큼 그 역사도 역동적이었다. 기원전 8세기 말에는 아시리아가 점령했고, 이후 기원전 6세기경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가 정복했으나 이어 페르시아를 격파한 아시아 기마군단 스키타이가 지배했다. 스키타이 세력이 약화하면서 그리스의 영향력 아래 들어갔고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 세력이 진출한다. 기원후에는 4세기 초 사산조 페르시아가 정복했고 7세기 초 이후 이슬람화 하게 된다.

9세기 말 아르메니아가 독립하고 조지아 왕국이 성립했지만, 아시아 기마군단이 몽골 고원 일대에서 서진하면서 11세기부터 13세기 초까지는 셀주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의 제베 장군이 정복해 킵차크 칸국의 영역이 됐고 14세기 말에는 중앙아시아의 몽골 제국인 티무르 제국이 지배했다가 16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의 속령이 되었다.

18세기에는 남하정책을 추진한 제정 러시아의 세력권에 들어가게 되며 러시아 혁명 후 1920년대 초 코카서스 산맥 남쪽에는 아제르바이잔·조지아·아르메니아 3개국이 독립했다. 그러나 1936년 소연방에 강제로 편입됐다가 1991년 소연방 해체 시 이들 세 나라는 다시 독립하게 됐다.

코카서스 지역은 아시아 기마군단의 역사 무대였다. 기원전 스키타이의 영역이었고 기원후 11세기부터는 18세기 제정 러시아가 진출하기 전까지 셀주크 제국, 몽골 제국, 오스만 제국이 차례로 차지했던 곳이다.

이 지역은 근세에 한민족과 다시 연결됐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스탈린은 연해주 거주 한인 17만1781명 전원을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6000km 떨어진 중앙아시아의 반사막 지대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끈질긴 의지로 러시아 최고의 집단농장을 건설하며 성공적으로 살아남았다.

러시아 등 CIS 거주 한민족을 ‘고려인’이라 하는데 그들 스스로는 ‘고려 사람’이라 하며 1993년 ‘러시아 고려인 명예회복에 관한 법’ 제정 후 일부는 연해주로 재이주 했다. 현재 CIS에 거주하는 한민족(고려인)은 55만명에 달하며 그중 14만명이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다. 그중 5만명이 바로 이 코카서스 지역에 살고 있다. 코카서스 땅은 이렇게 한민족의 활동 무대로 이어져왔다.

동서양을 연결하는 코카서스 실크로드 탐방

코카서스 산맥 남쪽에 자리 잡은 아제르바이잔·조지아·아르메니아 3국을 방문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서 다시 러시아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편으로 약 3시간 비행을 거쳐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도착해 10일에 걸친 코카서스 일정을 시작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인구 978만명, 면적 8만6600㎢로 우리나라보다 약간 작다. 주민의 90% 이상이 투르크계 아제르바이잔인이며 아제르바이잔인은 이란에 1200만명, 조지아에 320만명, 터키에 244만명이 거주하고 있어 모국보다 다른 나라에 더 많이 살고 있는 민족이다. 종교는 이슬람교(93.4%), 러시아 정교(2.5%), 아르메니아 정교(2.3%) 순으로 이슬람국가나 마찬가지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위)와 아제르바이잔 메이든타워. 지평인문사회연구소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위)와 아제르바이잔 메이든타워. <지평인문사회연구소>

이 나라는 산유국으로 석유 매장량이 세계 20위, CIS국가 중 세 번째이며 예로부터 ‘불의 나라’라고 했고 아제르바이잔은 페르시아어로 ‘불의 땅’이란 뜻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는 코카서스 일대에서 가장 큰 도시로 카스피해 해안 유전 지대에 있는 항구도시다. 오랜 역사를 가진 바쿠 시내에는 박물관, 궁전, 이슬람사원 등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카페트, 보석 등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2세기에 건축된 메이든 타워와 쉬르반샤 궁전은 세계문화유산이다. 바쿠에서 약 60km 남서쪽에 떨어진 곳에 세계문화유산인 ‘고부스탄 암각화 문화 경관’이 있다. 반사막 지대 위의 수많은 바위군에 4만년에 걸쳐 새겨진 6000개 이상의 암각화가 남아있고 사람이 살았던 주거지 등의 유적도 발굴됐다.

선사 시대부터 중세까지 오랜 기간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과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는 다양한 암각화들은 남부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알타이 지역, 몽골 고원, 중국북부 오르도스 지역, 한반도 등지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일대의 암각화들과 더불어 유라시아 대초원을 중심으로 전개됐던 고대인들의 이동 경로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던져준다. 참고로,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출간한 몽골과 중앙아시아 일대의 암각화 탐사 자료는 귀중한 자료다.

다음날 바쿠를 떠나 120km 거리에 있는 중세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쉐마키’를 찾아가 왕가의 무덤인 예디굼바즈, 쥬마 모스크를 둘러보고 150km 정도 달려 ‘쉐키’로 향했다. 쉐키는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당시에 대상들과 낙타들이 묵어가는 숙소인 카라반 사라이, 아름다운 코카서스 산맥을 배경으로 지어진 쉐키칸 궁전, 이슬람 국가지만 기독교 문화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알바니안 교회 등이 잘 보전된 유적들이 도시의 역사를 웅변해주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여행을 마친 후 쉐키에서 북쪽으로 170km를 달려 조지아 국경을 육로로 통과했다. 조지아는 소연방 시대에 ‘그루지야(Gruziya)’라고 불렸다. 조지아는 CIS국가로 인구 493만명, 면적 6만9700㎢의 작은 나라다. 국민은 조지아인(83.8%), 아제르바이잔인(6.5%), 러시아인(1.5%)으로 구성돼 있다. 아제르바이잔과 달리 기독교 국가로 조지아 정교가 83.9%, 이슬람교가 9.9%를 차지한다. 산업은 차·담배·와인 등 농업과 철광석 등 지하자원이 주종이나 근래에 유전이 개발되고 있다.

조지아 와인은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기원전 6000년 전부터 와인이 제조된 흔적이 남아있으며 ‘크베브리’라는 항아리를 사용하는 전통 양조 방법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사페라비(saperavi)’라는 이 지역만의 특별한 포도 품종으로 집집마다 장독대를 땅에 묻고 포도송이를 분리하지 않은 채 그대로 와인을 담근다.

마치 우리나라의 김치나 된장, 간장을 담는 개념과 비슷하다. 주민들이 와인을 굉장히 즐기고 많이 마신다. 이곳 출신인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은 평생 조지아 와인만 마셨다고 한다. 조지아는 스탈린과 그 막후 세력인 베리야의 출신지이며 러시아 외무상을 오래 역임했던 조지아 초대 대통령 세바르드나제도 이곳 출신이다. 필자는 코카서스에서 귀국한 후에도 국내 수입상을 어렵게 찾아 지인들과 나누어 마실 정도로 여행 중 조지아 와인을 좋아하고 즐겨 마셨다.

조지아는 러시아와 영토 분쟁 중에 있다. 1990년 소련 연방 붕괴 후 ‘남(南)오세티야’와 ‘압하지야’ 두 지역은 조지아로 편입됐으나 이 지역들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내전이 발발한다. 러시아가 러시아인 보호를 명분으로 개입하면서 양국 간 갈등이 시작됐다. 2008년 친서방정권의 조지아가 남오세티야를 공격하자 러시아는 군대를 동원해 조지아를 전격 점령해 버렸다. 그 후 평화협정이 체결됐으나 ‘그루지야 사태’는 아직도 휴화산이라 할 수 있다.

조지아에서의 첫 방문지는 아름다운 만년설산 코카서스 산맥과 계곡의 풍광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시그나기’란 곳이다. 이곳에는 ‘보드베’라는 교회가 있는데 그 기원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카파도키아 출신의 성녀 니노가 이곳에서 숨지자, 그녀가 처음 선교했던 므츠헤타로 관을 옮기려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아 이곳에 묻고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인근 마을에서 ‘미쯔와디’라 불리는 방목 돼지고기 바비큐로 점심식사를 하는 중 그곳 식당에서 주민들과 함께 조지아 와인을 마시게 됐다.

그들은 건배 구호로 ‘까오마리쥬스’라고 외쳤는데 ‘승리를 위하여’란 뜻이다. 소뿔잔에 와인을 따라주기에 테이블에 놓을 수가 없어 머뭇거렸더니 원샷하는 잔이라고 한다. 마을사람들의 환대, 전통 춤, 노래, 와인 사랑은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시그나기를 떠나 150km 떨어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당도했다. 코카서스 산맥에 둘러싸인 4세기경에 세워진 온천 도시로, 동서양이 결합된 다양한 건축 양식과 종교,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시내에는 ‘메데키 사원’ ‘나리칼라 요새’ ‘시오니 대성당’ 등 역사적인 건물들이 남아 있다.

트빌리시에서 북서쪽 20km 남짓 거리에 있는 옛 왕국의 수도였던 므츠헤타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즈바리 수도원’과 조지아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세운 조지아 최대의 고대 건축물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이 있다. 이 성당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혔었다는 십자가 일부가 보관돼 있어 방문객들이 줄을 잇는다. 인근에 있는 조지아 왕족의 저택에 세워진 현대식 와이너리 ‘샤토 무크자니’를 방문해 와이너리 투어와 시음을 한 후 다시 서쪽의 ‘고리’로 향했다.

(위부터) 조지아 시오니 대성당과 조지아 우플리츠케 동굴도시, 조지아 스탈린박물관 집무실. 지평인문사회연구소
(위부터) 조지아 시오니 대성당과 조지아 우플리츠케 동굴도시, 조지아 스탈린박물관 집무실. <지평인문사회연구소>

 

고리는 스탈린의 고향으로 스탈린 박물관에는 동상, 생가, 박물관, 전용객차, 각종 자료, 유품, 데드마스크 등이 전시돼 있다. 고리의 동쪽으로 10km 정도 가면 거대한 동굴도시 ‘우플리츠케’가 나타난다. 기원전 1000년대 전반부터 지어지기 시작했고 한때 잠깐 수도 기능도 했다고 하는데 20세기 중반부터 본격 발굴 중이다.

북쪽으로 160km 떨어진 곳에 있는 구다우리에 도착해 다음날 인근의 카즈베기로 가서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로 향했다. 이 교회는 코카서스 산맥 가운데 높은 곳에 마치 큰 암자처럼 홀로 서 있는 조지아인들의 정신적인 고향 같은 곳이다. 구소련 시대에 모든 교회의 예배를 금지시키면서도 이 교회를 성지로 방문하는 서방 사람들이 많아 계속 예배를 보게 했다고 한다.

해발 2000m가 넘는 이 교회에서 코카서스 산맥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 프로메테우스가 감금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해발 5047m의 카즈베기 산이 우뚝 솟아 있다.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 남쪽 90km에 있는 호수변에 성, 수도원, 교회 등이 들어서 있는 ‘아나누리 요새’를 보면서 조지아 방문을 마무리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 ‘아르메니아’

트빌리시를 떠나 코카서스 마지막 여행 국가인 ‘아르메니아’로 향했다. 아르메니아는 인구 305만명, 면적 3만㎢ 정도의 작은 나라지만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한 곳이다. 주민은 아르메니아인이 97.9%로 절대다수이며 쿠르드인(1.3%), 러시아인(0.5%) 등 소수민족이 있다. 아르메니아인도 아제르바이잔인처럼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이 살고 있다.

러시아 200만명, 미국 100~150만명, 프랑스80만명 등 총 900만명에 달한다. 인근 나라인 아제르바이잔과는 ‘카라바흐’에서 영토 분쟁 중이며 터키와도 사이가 나쁘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터키 전신인 오스만 제국이 터키 동부에서 아르메니아인을 사막으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100만명이 희생됐고, 카라바흐 분쟁에서도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트빌리시 남쪽으로 110km를 가면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지대다. 국경을 통과한 후 알라베르디시에 도착해 인근에 있는 ‘아흐파트 수도원’으로 향했다. 이 수도원 단지는 10세기경에 건축된 주성당과 성그레고리 교회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수도원 단지로 비잔티움 양식과 코카서스 토착 건축양식이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역시 세계 문화유산이다.

아르메니아 가르니신전(위)과 아르메니아 세반수도원. 지평인문사회연구소
아르메니아 가르니신전(위)과 아르메니아 세반수도원.<지평인문사회연구소>

이어 남동쪽으로 130km를 달리면 세반 호수에 다다른다. 이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중 하나이며 코카서스 일대에서 가장 큰 호수로 아르메니아인들이 먹는 생선을 대부분 공급하는 곳이다. 호수 섬에 ‘세반 수도원’이 있다.

세반 호수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km가면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이 나타난다. 많은 건축물이 핑크빛을 띄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터키 국경 너머에 노아의 방주가 멈췄다는 아라랏 산이 보인다. 예레반은 시내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케스케이드 전망대’, 수많은 카페, 아라랏 꼬냑 공장 등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도시 인근에는 기독교 전파 전 태양신을 섬겼다는 ‘가르니 신전’이 절벽 위에 있는데 이곳 역시 세계문화유산이다. 바위에 통째로 동굴을 파서 교회와 묘지를 건축한 ‘게르하르드 수도원’ 역시 세계문화유산이다. 예레반 남쪽으로 1시 간 거리에 있는 코르비랍에는 1000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유서 깊은 수도원이 아라랏 산을 바라보며 서있다. 예레반을 끝으로 코카서스 여행 일정을 마쳤다.

코카서스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인류 이동의 중요한 경로였고 역사 시대에는 동서양이 만나는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한 실크로드의 거점이었다. 또한 스키타이, 흉노, 돌궐, 몽골 등 아시아 기마유목민이 오랫동안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활동해온 역사적인 땅으로 한민족의 고대사를 돌이켜 보는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더구나 다양한 유적과 수려한 경치를 두루 갖추고 있어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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