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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30년 커리어, 광고 카피의 '귀재' 박선미 엠허브 대표
30년 커리어, 광고 카피의 '귀재' 박선미 엠허브 대표
  • 강민경 기자
  • 승인 2020.09.29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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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헤드에 찢어진 청바지 입은 남자직원과 '딱', 그 순간 내가 가야 할 길이란 느낌이 왔다"
박선미 대표.엠허브
박선미 대표.<엠허브>

[인사이트코리아=강민경 기자] 대홍기획의 자회사 엠허브를 이끌고 있는 박선미 대표는 ‘롯데그룹 여성임원 1호’다. 당시 업계 최초의 여성 간부로도 화제를 모았다. 대학 졸업 후 카피라이터로 광고계에 입문한지 30여년, 그간 박 대표는 광고업계서 손꼽히는 히트 캠페인을 만들어왔다. 현역시절에는 라네즈, 자일리톨,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2% 부족할 때’ 등 선풍적 인기를 끈 광고와 카피를 만들었고, 뉴욕 페스티벌과 클리오어워드 등 해외 유수 광고제에서 수상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커리어를 가진 그에게도 ‘미스 박’이라 불리며 커피를 탔던 시절이 있었고, 광고업계에 들어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잘 나가던 시기에도, 임원이 되었을 때에도 여성이기 때문에 마주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리더로 자리했지만, 여전히 카피라이터로서의 존재감을 내려놓기 힘들어 고민을 거듭하기도 했다.


<인사이트코리아>는 지난 9월 22일 박선미 대표를 만나 그의 30여년 커리어를 들었다. 커리어 궤도에서 ‘전환기’에 접어들었다는 박 대표는 광고회사 대표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리더가 되면 내 아이디어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내가 어떻게 끄집어내고 발전시켜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여태껏 쌓아온 카피라이터로서의 전문성을 조금 버리는 것이 내 경험 확장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발 물러나니 더 넓게 볼 수 있었다. 리더는 큰 맥락을 잡아준 후 지원자로서 구성원들을 지지해주고 서포트해주는 역할이다.”

서울대 졸업 후 카피라이터로 광고계에 입문한 지 약 30여년이 됐다. 광고를 전공했던 건가.

“대학에선 국문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서울대를 졸업했다는 이력이 언급되는 게 사실 불편하다. ‘서울대’라는 타이틀, 학력은 중요한 게 아니다.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학력, 학벌이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더욱 느꼈다. 열심히 즐기면서 일하면 학벌에 상관없이 누구나 일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 광고업계다. 본인의 능력에 자신 없는 사람들이 본인의 과거 학력을 어필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광고업계에 발을 들일 때가 1990년대 초다. 다소 생소한 업계일 수 있는데 전공을 하지 않았는데도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었나.

“대학 시절에 정말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모른 채 시간이 흘렀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버지의 훈수에 등 떠밀려 외국계 무역회사에 처음 입사했다. 당시 연봉도 국내 대기업보다 훨씬 높았고, 이미 주5일 근무제가 도입돼 주말에도 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대의 고정관념이 문제였다. 외국계 회사였는데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다양한 취향의 커피를 대접해야 했다. 같이 입사한 남자 동기는 첫날부터 업무 보조를 맡았는데 말이다. 6개월 만에 사표를 썼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고, 우연히 한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지원하게 됐다. 방송국 스크립터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었고, 소녀감성으로 끄적였던 솜씨로 최종 면접까지 가게 됐다. 그날 회사 입구에서 스킨헤드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남자직원과 마주쳤는데, 그 순간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느낌이 왔다. 제멋대로인 옷차림에서 느껴지는, 직원의 개성이 존중받는 직업이라는 믿음이 들더라. 그렇게 1992년 광고업계에 발을 들였다.”

‘카피라이터’라는 직군명은 많이 들어봤는데, 광고업계 종사자들의 직군과 그들이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궁금하다.

“광고주를 처음 영입해서 광고주가 원하는 니즈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AE(Account Executive)다. 마케터가 AE를 도와 마케팅적 부분에서 필요한 전략을 짜주기도 하며, AE는 이러한 것들을 총합해서 기획서를 작성한다. AE가 기획서를 크리에이터에게 전달하면, 크리에이터는 그 기획을 분석해 어떤 캠페인 등을 통해 계획을 실현해 낼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 크리에이터 내에는 업무를 총괄하는 CD(Creative Director)가 있고 그 아래에 카피라이터와 아트디렉터, 프로듀서 등이 있다. 카피라이터는 그야말로 카피를 통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다. 나는 카피라이터로 시작해서 CD가 됐고, 마케팅까지 총괄하는 이그제큐티브 디렉터 등을 거쳐 올해 초에 CEO가 됐다.”

처음 발을 들인 광고업계서 맡게 된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은 어떤 매력이 있었나.

“밥값을 하기까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사실 초보 카피라이터는 존재감이 없다. 선배들이 ‘카피라이터는 처음엔 ‘카피(복사)’만 잘하면 돼’라고 하시더라. 연차가 조금씩 쌓이면서 느낀 점은, 카피라이터는 단단한 사고력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점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자유분방해 보이는 업무 환경 때문에 창의성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논리적 사고가 정말 중요했다. 광고 캠페인의 전략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뽑는 것이 카피라이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경력이 좀 쌓인 이후부터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생겼을 것 같다.

“광고 콘셉트를 어느 정도 해석할 수 있을 정도가 됐을 때, 나는 선배들이 쓴 카피를 흉내 내면서 카피라이팅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나의 스타일을 만들려고 하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의 카피를 관찰하고 흉내 내는 것이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특정 스타일보다 다양한 글과 아이디어를 접하고 관찰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 유명한 작가나 시인의 작품을 통해 섬세한 묘사와 수채화 같은 글의 감성, 냉소적이면서 쿨한 여운을 남기는 문체를 두루 접했다. 그리고 평소 내가 훈련하는 방법은, 항상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다가 어느 장소에서 무엇을 하든 그 아이디어와 연관 지으려고 하는 것이다.”

크리에이터로서 인정을 받게 된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하다.

“처음 CD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 기업의 100억원 규모의 경쟁 비딩에 참여하게 됐다. 회사에서 선배의 팀과 내부 경쟁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운이 좋게 회사 내부 경쟁에서 채택되더니 우리 회사보다 큰 경쟁사들과의 쟁쟁한 3파전에서 결국 최종 승리를 차지했다. 내 CD 인생 첫 경쟁에서 100억원을 수주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부터 회사에서는 크고 작은 비딩들을 계속 나에게 맡겼고, 나는 줄줄이 참패했다. 그렇게 침울해져버렸고 슬럼프를 겪게 됐다.”

큰 기쁨 뒤에 온 낙담이라 받아들이기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어떻게 극복했나.

“그렇게 두 달쯤 흐르자 스스로 패배자로 낙인찍고 나를 부정했다. ‘애초부터 재능이 없었는데, 이럴 거면 그냥 첫 직장에서 커피 타는 편이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본부장께서 내 상태를 알아보시곤 한동안 현업 외에 부담되는 업무는 시키지 않으셨다. 나도 몇 달간 잠을 푹 자고 머리보다는 몸을 쓰기 위해 운동에 매진했다. 그러다 다시 새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광고주도 만족하고 소비자 피드백도 좋았다. 그제야 열정의 불꽃이 다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일이 그런 것 같다. 열 번 넘어져도 한 번 일어설 때의 희열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는 카피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이것도 슬럼프를 극복하게끔 한 성공 사례 중 하나 아닌가.

“많은 이들에게 어필한 성공적 캠페인이었지만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이 프로젝트는 사실 나에겐 반성의 사례다. CD가 되고 2년 정도 지나서 맡게 된 프로젝트인데, 광고가 나가자 캠페인은 물론 음료 판매량도 많이 늘었고, 노래도 전 국민이 부르는 히트송이 됐다. 결과만 놓고 보면 성공작이지만 일을 그렇게 해서는 안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계속해서 내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애썼다. 많은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이 100% 다 작업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그것으로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한다. 나도 그때는 그게 맞는 방법인 줄 알았다. 팀원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몇 개월간 혼자 고민하고, 팀 회의도 거의 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내가 의도한 대로 풀려가니 이게 옳다고 착각했다. 그렇게 내가 독단적으로 일을 한 과정에서 팀원들의 불만을 쌓여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때 후배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더라. 이후에 팀원들과 면담을 했었는데 ‘저 그때 일 재미없었어요’ ‘그거 선배님 작품이잖아요’라는 얘길 하더라. 그때 깜짝 놀랐고 아차 싶었다. 내가 나의 존재감을 뽐내기 위해 그들의 존재감이 사라지게끔 했던 것이다. 리더의 역할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그때야 느꼈다. 그때부터 한 발 물러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했다.”

크리에이터들을 아우르는 리더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업계에서 리더가 되면 내 아이디어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내가 어떻게 끄집어내고 발전시켜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여태껏 쌓아온 카피라이터로서의 전문성을 조금 버리는 것이 내 경험 확장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발 물러나니 더 넓게 볼 수 있었다. 나도 예전엔 그랬지만, 사실 업계 대부분의 직원들이 리더가 돼도 그 ‘전문성’을 놓기 어려워한다. 리더는 내 아이디어를 잘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후배들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그것을 끄집어내서 살을 붙여주고 완성해주는 것이 지금 내가 있는 관리자급, 간부급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변화가 두렵고, 가장 무서웠다. 이건 다른 누구나 마찬가지더라. 다른 회사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영업으로 발령이 나니 좌천된 것 아니냐며 힘들어 하더라.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신입이고 젊을 때는 본인이 맡은 그 부분에서의 전문성을 키우고, 나이가 들고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해서 관리자급 이상의 자리에 오르면 또 여러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리더는 큰 맥락을 잡아준 후 지원자로서 구성원들을 지지해주고 서포트해주는 역할이다.”

광고업계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지, 여성이라서 겪었던 힘듦은 크게 없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

“왜 없었겠나. 회사에서 가장 높은 평가 점수를 받고도 승진에서 밀렸다. 나이는 나보다 많았지만 연차는 나보다 3년쯤 후배였던 직원이 ‘남자’라는 이유로 승진을 하더라. 당시 대표이사가 직접 나를 불러서 위로를 전했지만 많이 섭섭했다.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좌석이 하나뿐인 버스에 남자를 먼저 태우고 가면서 기사님이 머쓱하게 ‘다음 차 곧 와요’리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간 크리에이터로 일하면서 크게 실감하지 못했던 남녀차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위로 올라가면서는 남녀차별을 더 느꼈다. 광고업계에서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기 시작하면서 ‘여자가 이걸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분위기가 있었다. 원래는 팀장급에서부터 여성 인력이 없었는데, 2008년 즈음 그 직급에 여성이 처음 들어왔다고 신기하게 생각하더라. 한 번은 회사 교육원에서 ‘여성리더십 교육’이라는 것이 따로 언급 되길래, 여성과 남성의 리더십이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 남성 리더십 교육은 따로 있는 것인지. 나중에 들었는데, 교육원에서 처음엔 당황했으나 일리 있는 의견이라고 판단됐다고 하더라. 이후에 ‘여성’이라는 단어가 지워지고 다 같이 리더십 교육을 받았다.”

최근 <커리어 대작전>이라는 책을 출간했다고 들었다.

“거의 30년 동안 광고업계에서 일을 해왔는데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 내가 현재와 미래에만 몰두했지, 과거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더라. 늘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는 어떻게 하지 이 생각만 했었다. 30년 업계 경력이 있지만,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지 않아서 그간 내가 어떻게 성장했고 나의 성장 포인트는 무엇이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흘러와 있었다. 나는 과거에 어떠한 전략이나 작전 없이 흘러왔지만, 후배들은 내 경험을 참고해 작전을 통한 큰 성장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냈다. 커리어라는 것을 꼭 상승형으로 볼 필요가 없다. 커리어는 넓고 깊은 방사형일 수도 있는 것이란 걸 말하고 싶었다.”

책을 계기로 뒤돌아 본 30년 경력, 어떻게 정리가 됐는지 궁금하다.

“지나고 보니 누구에게나, 커리어엔 패턴이 있는 것 같더라. 나는 그것을 5단계로 나눠 탐색기·성장기·사춘기·성숙기·전환기로 봤다. 사람마다 각 단계에서 머무르는 기간은 다를 수 있겠다. 나는 지금 전환기에 속해있는데, 100세 인생이다 보니 언젠가 또다시 탐색기로 전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말해주고 싶은 것은, 일에 한창 집중해서 재미를 느꼈다가도 어느 순간 권태기가 올 수도 있는데 이것은 개인 혼자만이 느끼는 힘듦이 아니라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끼는 패턴이라는 것이다. 직장생활도 결국 인생과 마찬가지로 좋을 때가 있으면 힘들 때가 있다. 지금 힘들다고 해서 내가 앞으로 성장이 도태되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일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면 직장 생활을 하거나 업무를 진행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삶의 큰 맥락이 아닌 당장의 소소한 스트레스로 일을 금방 그만 두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일도 일이지만, 사람 관계에서의 갈등이나 직무 변경에서의 스트레스 이런 것 말이다. 나도 당시에는 그런 것 때문에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사사로운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더라. 특히 나의 경우엔 여자 선배가 한 명도 없어서 그런 것들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내 경험에 비춰 이런 것들을 말해주고 싶다.”

본인의 인생을 ‘카피’로 표현하자면?

“‘일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 일은 나와 애증관계다. ‘힘들어서 미치겠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놓을 수가 없다.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끝까지 붙잡는다. 예컨대 1개의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3개, 4개를 만들어서 가져간다. 일 욕심도 많았지만 일단 재미가 있었다. 하나를 성공하고 나면 그 희열과 뿌듯함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

업계 후배들에게 해주고싶은 조언이 있다면.

“이제는 모든 국민이 크리에이터인 시대다.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생각을 크리에이티브하게 드러내고, 이 크리에이터라는 단어 자체도 굉장히 많이 쓰이고 있다. 때문에 나는 이럴 때일수록 업계서 일하는 사람들은 업의 본질에 충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요새 꽤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트렌드를 지나치게 좇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작업 과정 자체도 굉장히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끝없이 생각하고 또다시 생각하고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데, 2시간 만에 카피를 뚝딱 만들어내곤 하더라. 그것이 꼭 나쁜 것이라기 보단 시대가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본과 본질에 충실해야 하는데, 우리에겐 이것이 생업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성실한 노력으로 승부를 띄워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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