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과 폭력, 우린 모두 방관자였다
성추행과 폭력, 우린 모두 방관자였다
  • 최환규 전문위원 겸 한국워라밸연구소 소장
  • 승인 2020.08.0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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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도층의 문제행동, 사라지지 않는 이유
대학생들이 권력형 성폭력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다.<뉴시스>

최근 두 가지 자살 사건이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되었다. 운동선수와 정치인의 극단적 선택은 결과는 같지만, 한 사람은 가해자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은 피해자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삶을 마감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경주시청 소속의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 선수가 감독과 선배 선수로부터 폭행과 폭언에 시달린 나머지 젊은 나이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선수를 보호해야 할 팀의 감독도, 선수의 건강을 책임져야 할 팀닥터라고 불리던 사람도 선수에게 심한 폭행을 했고, 팀 선배들도 폭행에 가담했다.

이 선수는 이런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팀으로 소속을 옮긴 다음 자신이 당한 폭행과 폭언에 대해 관련 기관에 호소했지만, 자신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곳이 없자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선수의 죽음이 알려지자 비로소 여러 기관에서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나섰지만, 선수의 생명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 두 사건을 접하면서 사회 곳곳에 폭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학자들은 폭력을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물리적 힘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행위자의 의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우연이나 실수로 타인에게 입힌 상해는 폭력이라고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폭력의 영역도 확장되어 신체적 상해만이 아니라 심리적 고문과 언어, 사회경제적 학대를 포함해 권력을 행사하고 통제하는 행위를 포함하기도 한다. 또한 여러 가지 언어·비언어적 강요와 협박, 남성으로서의 특권을 이용해 군림하는 행동들도 포함된다. 최근 사회문제가 된 정치인의 성희롱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폭력 경험이 장기적으로 반복되면 만성적인 증상들로 발전된다. 폭력의 후유증으로는 과도한 복수감이나 분노, 자살 충동 등 자해적인 경향을 보이는 감정 및 충동조절 장애, 지속적인 주의 장애와 기억상실증의 해리 장애, 만성적 통증 및 성생활의 곤란과 같은 신체화 장애, 가해자에 대한 잘못된 지각과 복수와 관련된 환상의 대인관계 장애, 일반적인 삶의 의미 상실감 등이다.

최근에 일어난 경험이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이나 과거의 사건들이 심리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설혹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후유증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할 수 있다. 이처럼 폭력은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주변인의 비겁한 태도

폭력은 정신적인 장애를 만들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이 국내 18세 이상 여성 3160명을 대면 조사한 결과 각종 폭력 피해와 정신장애 사이에 연관성이 관찰되었다.

신체에 대한 폭력 피해 여성의 경우 광장공포증·강박 장애, 니코틴 의존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알코올 남용과 같은 여러 정신장애 중 하나라도 발병할 위험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3.6배 높았고, 성폭력 피해 여성은 이 위험이 14.3배까지 증가했다. 이처럼 폭력은 피해자를 평생 고통 속에서 살게 만들 수 있다.

일부 지도자는 폭력을 선수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2008년 여자 배구와 여자 농구 감독이 여자 선수들을 성폭행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KBS 뉴스에서 보도되었다. 보도에 따르면 모 지도자가 “선수는 자기가 부려야 하는 종이다. 선수를 장악하려면 성적인 관계가 주된 방법이고, 두 번째는 폭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방송에 따르면 종목을 가리지 않고 가해지는 성폭력이 초등학생에게까지 미친다고 고백해 방송을 본 시청자를 더 큰 충격에 빠뜨렸다. 이 방송 이후 대한체육회와 해당 단체에서 성폭력 예방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사건이 보도되고 체육계에서 대책을 마련했다고 발표한 다음에도 지도자의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2019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가 코치로부터 오랜 시간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자 체육계는 또 다시 지도자의 폭언과 폭행을 방지할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한다고 했지만, 지도자에 의한 폭행은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사회 지도층에 의한 성추행이나 성폭행 범죄도 마찬가지다.

폭력적인 리더는 체육계 뿐만 아니라 직장에도 존재하지만, 특히 체육 분야에서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추측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도자의 전문 지식과 능력 부족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체육 분야의 지도자는 선수 출신이 대부분이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선수들을 지도할 가능성이 있다.

체육계의 특성인 폐쇄성이 지도자의 폭력을 막지 못하는 원인일 수 있다.

이럴 때 경기력과 관련해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 있다면 선수의 신체 특성을 파악해 선수에 적합한 경기 방법을 알려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선수 시절에 했던 방식만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이 방법이 선수에게 통하면 선수의 기록이 향상되면서 지도자와 선수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 문제는 지도자가 제시한 방법이 선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일어난다. 지도자가 제시한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지도자는 ‘이런 방법으로 하니 기록이 좋아졌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선수의 기록이 향상되지 못하는 것은 선수가 자신의 지도를 제대로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럴 때 지도자의 폭언과 폭행이 시작된다.

둘째, 체육계의 특성인 폐쇄성이 지도자의 폭력을 막지 못하는 원인일 수 있다. 선수는 국가대표나 실업 선수가 되기까지 10여 년 이상을 운동에만 전념해야 한다. 이로 인해 체육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가 폭언이나 폭행을 한다고 ‘운동을 그만두겠다’라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용기를 내어 고발이라도 하면 ‘선배를 배신했다’ 혹은 ‘내부 문제를 폭로했다’와 같은 소문이 돌면서 그 분야에서 일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이유로 인해 선수들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묵히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

셋째, 주변인의 방관이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 지도자의 폭행이나 성희롱과 같은 문제행동에 대해 주변인들은 알고 있다. 서울시장의 비서가 피해를 호소했을 때 이 말을 들은 사람이 ‘비서는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이라면서 피해자의 호소를 무시했다.

트라이애슬론팀에서도 선배 선수가 감독과 팀닥터의 폭행을 방조했고, 때로는 이 선수가 직접 후배 선수를 폭행했다. 팀을 관리하는 경주시청 담당자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몰랐다면 선수단을 관리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지도자의 문제행동을 방관하는 사람으로 인해 문제가 더 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폭력의 늪’서 빠져 나오려면…

주변인은 피해자의 감정까지 자신의 기준대로 통제하려고 한다. 예전에 남성 직장인이 여자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이때 기사의 댓글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댓글 대부분이 ‘나도 당해보고 싶다’라는 글이었다. 그 기사의 내용 중에는 남성들의 이런 반응으로 인해 피해자가 동료에게 하소연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도 있었지만, 부럽다는 댓글을 다는 등 많은 사람이 피해자의 감정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피해자는 주변 사람의 이런 반응에 자포자기하게 될 것이다.

주변인은 피해자보다 자신과 가해자 보호에 관심이 더 많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의 폭행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자 폭행에 관련된 감독과 선수, 경주시청 관계자 그리고 체육계 관계자 모두 ‘하지 않았다’와 ‘몰랐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폭행의 증거가 드러나자 그제야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정치인의 경우에도 주변인들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정치인의 행동을 중단시키는 용기가 필요했지만,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주변인의 이런 비겁한 태도가 사건을 악화시킨 원인이다. 

지도자는 선수가 능력을 발휘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운동선수는 경쟁자보다 더 많이 노력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도자는 선수가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도록 자극할 필요가 있는데, 이때 사용하는 잘못된 지도 방법이 폭언이나 폭력이다. 선수가 지도자로부터 폭언이나 폭행을 당하면 일시적으로 평소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지도자는 선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의 훈련 방법이 통하는구나’라고 착각을 한다.

이후 지도자는 선수의 운동능력이 떨어질 때마다 폭행의 강도를 높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도자의 지도 방법에 대한 전문성 부족이 폭력을 사용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일부 지도자는 폭력을 ‘사랑의 매’로 미화하기도 한다. 지도자 중에는 약한 강도의 폭력은 ‘격려와 같이 선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하면서 폭력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성희롱 가해자 중에도 ‘상대가 예뻐서 그랬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이때 폭력과 희롱을 판단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만약 제삼자가 자신의 자식 혹은 가족에게 똑같은 짓을 하더라도 화가 나거나 불편한 느낌이 없다면 그런 행동은 격려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조금이라도 기분이 불편해진다면 그것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에 속한다.

폭력이나 성희롱과 같은 부끄러운 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지 않기 위해서는 선수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선수를 존중하면 남자든 여자든 다른 사람의 몸에 허락 없이 손을 대지 않고, 폭행이나 폭언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관련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사라져야 한다. 트라이애슬론팀의 사정을 들으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경우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는 팀원들이 서로를 아끼고 돕지만, 실제로는 지도자는 선수를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 상대로 본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수에 대한 폭력이 심각했다. 감독 한 사람의 잘못으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싸늘해졌고, 사람들이 체육계를 바라보면서 ‘아직도 저런 행동이 남아 있다니…’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힘과 지혜를 합쳐야 한다. 이를 위해 관련 분야의 사람들이 폭력을 없애겠다는 굳은 결심과 이에 걸맞은 노력을 해야 한다. 폭력 없는 체육계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퇴출대상이 된 지도자나 선수는 결사적으로 저항할 수도 있다. 만약 지도자나 선수의 저항에 흔들리면 ‘지도자의 폭력을 용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어떤 방해에도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가야 한다.

폭력은 습관이자 중독이다. 한 번 폭력의 늪에 빠져들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지도자나 상사는 폭력이 선수나 부하의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폭력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자. 찾기까지에는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찾고 나면 신세계를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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