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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세계 최대 명품 백 메이커 시몬느 박은관 회장
세계 최대 명품 백 메이커 시몬느 박은관 회장
  • 이필재 인물스토리텔러
  • 승인 2020.05.02 2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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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백 만들기 40여 년, 그의 재킷에서는 여전히 기름 냄새가 난다
박은관 시몬느 회장. 시몬느
박은관 시몬느 회장. <시몬느>

“6100년의 종사 연륜과 20만 종의 백 스타일 아카이브가 시몬느의 재산목록 1·2호입니다.”

세계 최대의 명품 백 메이커인 시몬느의 박은관 회장은 “사람과 스타일이 오늘의 시몬느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6100년이란 시몬느 본사 직원 약 400명의 경력을 합친 햇수다. 이 회사를 박은관 회장의 경력 41년에 이 업계 최장수 종사 장인의 경력 55년, 신참들의 6개월 경력까지 더하면 총 6100년이 된다. 시몬느엔 환갑을 넘긴 장인만 열한 명이 근무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을 대표하는 명품의 나라에도 이만한 현장 실무 경험을 내장한 명품 메이커는 없다고 한다.

약 20만 종. 시몬느가 설립 후 지난 33년 간 개발한 핸드백 스타일의 가짓수이다. 연간 7000개의 스타일이 고안된다. 거래처인 명품 백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100장의 핸드백 스케치를 보내오면 95%는 이미 자체적으로 시도해 본 스타일이거나 그 변형이라고 시몬느 관계자는 귀띔했다.

시몬느의 글로벌 명품 핸드백 시장 점유율은 10%에 육박한다. 미국 시장 점유율은 30% 선에 이른다. 고객사는 코치, 마이클코어스, 마크제이콥스, 도나카란뉴욕(DKNY), 케이트 스페이드, 로렌 랄프 로렌 같은 쟁쟁한 브랜드들이다. DKNY와는 32년째, 코치와는 22년째 거래한다. 총 19개 명품 브랜드에 시몬느는 B2B로 자사가 생산한 핸드백을 제조자개발생산(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또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공급한다. 고객사의 디자인 및 소재 개발에도 참여하는 ODM의 비중이 70% 선이다. 풀서비스를 하는 ODM 쪽이 마진과 고객사에 대한 영향력 면에서 더 유리함은 물론이다.

핸드백 수출만으로 ‘1조 클럽’ 가입

글로벌 선도 기업 시몬느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127억원(영업이익 1431억원, 순이익 1074억원)이다. 제조한 백은 전량 수출한다. 핸드백 수출만으로 1조원 클럽에 가입한 셈이다. 1조의 매출액은 핸드백 소매가로 따지면 8조원어치에 해당한다.

시몬느가 고객사들과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거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시몬느의 핵심 역량으로 박 회장은 ▲고객사의 서플라이 체인을 대체한 시몬느의 부가가치 창출플랫폼 ▲산업화된 장인정신 ▲고객사와의 협업 파트너십 등을 꼽았다.

“에르메스·샤넬·루이뷔통 등을 제외하면 90% 이상의 명품 백 브랜드 특히 미국 브랜드들은 자체 서플라이 체인을 갖추고 있지 않아요. 전문성·효율성을 갖춘 시몬느의 플랫폼이 고객을 대신해 핸드백 소재 및 제품 개발, 품질관리 등을 맡습니다. 또 명품 백은 소량 다품종 생산을 해야 해 기계화·자동화가 쉽지 않은데 시몬느의 장인들이 손기술을 표준화·산업화했습니다. 다 시몬느의 지적 재산들이죠. 고객사와 협업을 할 땐 피차 집단지성을 발휘해 각자 잘하는 일을 맡습니다. 갑을관계라기보다 수평적 동반자 관계죠.”

시몬느의 최대 바이어인 마이클코어스의 CEO 존 아이돌이 17년 전 그에게 말했다. “켄(박 회장의 영문 이름). 나는 브랜딩과 마케팅 전문가, 당신은 핸드백 개발·제조 전문가. 우리 각자 잘하는 거 합시다.”

해외 명품 백의 헤리티지와 자사의 개발 능력을 결합한 여태 없던 비즈니스 모델이다. “아직도 공장을 하느냐”고묻는 시대에 제조업을 창업한 그는 글로벌 명품 백 회사들에 “우리가 만들면 왜 안 되느냐”고 물어 세계 최대의 명품 백 메이커로 키웠다.

시몬느의 영업이익률이 14~15%에 달하는 건 마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ODM 협업을 고객사와 많이 하기 때문이다. 마진율이 높으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고객사는 시몬느와 손잡고 개발한 제품을 다시 다른 협력사에 OEM으로 맡겨 전체 생산 물량의 원가를 낮춘다.

시몬느와의 이런 협업 덕에 4조 달러어치의 핸드백을 파는 마이클코어스의 핸드백 부문은 단 32명이 근무한다. 가죽을 자른 자리에 하는 에지 페인팅은 자연 건조에 72시간 걸린다. 시몬느의 장인들은 반년 간 고생해 열과 바람으로 말리는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어 건조 시간을 3분의 1로 단축했다. 이렇게 시간을 단축한 덕에 시몬느는 연간 7000개의 핸드백 샘플을 만들 수 있다. 핸드백 메이커로서 획기적인 역량이다.

세계적인 명품 백 브랜드가 왜 시몬느와 협업을 할까. DKNY는 시몬느와 거래한 지난 32년 간 오너가 두 번 바뀌었다. 이 기간 동안 역대 핸드백 담당 사장은 여섯명, 디자이너는 총 150명이었다고 한다. 3년 전 창립 서른 돌을 맞아 고객사 CEO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박 회장이 이들에게 시몬느와 거래하는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회사와 거래하는 데도 다리 뻗고 잘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안정된 품질, 납기 준수 등 일관성이 시몬느에 대한 신뢰를 낳은 것이다. “그 긴 세월 동안 왜 문제가 없었겠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겨도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시몬느가 상식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거로 예상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고객 입장에서 시몬느의 독보적 가치는 그러니까 예측 가능성이라는 거죠.”

박은관 시몬느 회장. <시몬느>

 

40여년 간 3000번 비즈니스 상담

시몬느는 고객사가 많이 어려우면 납품 가격을 내렸다. 단기 거래를 했다면 시몬느도 그렇게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40여년 간 줄잡아 3000번 비즈니스 상담을 했어요. 젊었을 땐 잘 몰랐는데 좋은 상담이란 내가 만족하는 게 아니라 거래 상대방이 잘됐다고 느끼는 상담입니다. 우리는 지난 33년 간 고객사와 계약서를 써 본 일이 없습니다. 고객의 비밀을 준수하겠다는 서류야 물론 작성했죠.”

시몬느가 자사 경쟁사들과도 거래를 하는 건 고객사 입장에서는 일종의 리스크다. 그는 “시몬느 사례처럼, 경쟁 관계에 있는 메이저 업체 대여섯 곳이 한 공장과 거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우리가 철저히 보안을 지키기 때문이에요. 일례로 특정 고객사를 위해 개발한 소재는 다른 회사에 안 보여 줍니다. 우리 회사가 자기들 경쟁사와도 거래하지만 시스템적으로 방화벽이 잘 쳐져 있어 자사 이익을 침해당할 일이 없는 거죠. 이를 위해 다양한 바이어에 노출될 수도 있는 상설 쇼룸을 아예 사내에 만들지 않았고 고객사의 상담이 끝나면 관련 자료를 밀봉해 따로 보관합니다.”

시몬느도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후유증이 크다고 말했다.

“원자재는 아니지만, 시몬느의 일부 부자재는 중국 업체 의존도가 95%나 됩니다. 우리 회사 생산량의 60%를 커버하고 R&D센터가 있는 베트남엔 출장을 못 가고 있어요. 서울·뉴욕의 예정된 상담도 취소됐죠. 우리 회사를 떠나 전체 럭셔리 시장이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일례로 우리가 거래하는 코치의 경우 중국 내수 시장과 구미 중국 관광객 구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25%입니다. 럭셔리 백은 사람들이 좀처럼 온라인 구매를 하지 않아요. 만일 이 사태가 6개월 이상 가면 모든 명품 브랜드들이 큰 타격을 입을 거예요.”

제품을 전량 수출하는 시몬느는 단기적으로는 환율 등에서 유리한 면도 있다. 그는 그러나 “럭셔리 시장이라는파이 자체가 쪼그라들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IMF 체제, 금융위기 때처럼 유동성 공급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실물경제가 직격탄을 맞았고, 결국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바뀔 겁니다.”

박 회장은 중국 광저우시 명예시민이다. 시몬느가 중국서 만든 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의 격을 높이는 데 기여해 받은 타이틀이다. 광저우엔 세문로(世門路·시몬느 거리)가 있다. 시몬느가 2만 평의 부지에 조성해 기부한 공원인 세문원도 있다. 세문로 1번지에 있던 시몬느 공장이 철수할 때 중국 당국자가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중국을 떠난 건 인건비 상승과 미중 무역갈등 때문이었다.

현재 시몬느의 핵심 생산 거점은 베트남이다. 베트남과 미국의 개도국 관세유예 시스템에 따라 미 수입관세가 없는 인도네시아·캄보디아에 생산 공장이 있다. 이 세 나라의 7개 시몬느 공장에서 총 3만3000명이 일한다. 견본품 만드는 인력만 총 1700명이다. 4개 공장이 있는 베트남엔 서울과 더불어 R&D센터도 있다. 북핵 리스크가 있는 한국 이외 지역에 R&D 거점을 마련해 달라는 고객사들의 요구로 4년 전 베트남에 두 번째 R&D센터가 생겼다.

인공지능(AI) 활용 등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전 산업에 전방위적으로 닥치고 있다. “기본적으로 소량 다품종 생산이라 AI 등의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핸드백 디자인에 이미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고, 일부 디자인 영역이 AI에 넘어갈 가능성은 있다고 봐요.”

박 회장은 핸드백 OEM 수출업체 ㈜청산의 수출부장으로 있다 1987년 시몬느를 창업했다. 청산의 기존 바이어와의 거래를 피하려 미국의 명품 백 시장을 뚫었다. 중저가 제품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미국 현지 백화점에서 구한 DKNY 제품을 국내서 재현한 핸드백 6개로 “싸게 잘 만들었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라 곤란하다”던 미국 시장에 입성했다. 이때 박 회장은 “3대째 핸드백을 만드는 이탈리아 업체도 처음 시작할 땐 나처럼 맨땅에 헤딩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업을 하는 데는 정보 못지않게 배짱(gut)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9년 명품의 고향인 유럽에 진출할 땐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쳤다. 프랑스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그룹 사장단 앞에서 이탈리아 명품, 시몬느 제품 각각 다섯 개씩 총 10개를 섞어놓고 LVMH 내부자들이 이탈리아 명품을 골랐다. 그들이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고 고른 다섯개의 백 중 세 개가 시몬느 제품이었다.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땐 고객들이 ‘메이드 인 차이나’는 안 된다고 해 1년 걸렸습니다. 이 역시 제조국(country of origin) 장벽이죠. 그때 중국으로 옮긴 건 인건비도 쌌지만, 서울 근교에 5000명이 일할 공장 부지와 수공업에 종사할 그 인원의 인력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시몬느 DNA는 도전정신, 캐주얼, 리버럴

박은관 시몬느 회장. <시몬느>

시몬느는 핸드백을 만들어 수출하는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과 시몬느홀딩스로 구성돼 있다. 시몬느홀딩스는 시몬느자산운용 등 금융 자회사 넷을 포함해 여섯 개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박 회장 및 관계인의 시몬느 지분율은 62%다.

제조업 창업 CEO인 그는 “기업은 시장, 커뮤니티, 구성원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3자와 좋은 관계를 맺은 기업이 곧 좋은 기업이죠. 이 세 관계가 때로는 상충하기도 합니다. 시몬느의 시장 및 커뮤니티와의 관계는 B학점은 된다고 봐요. 구성원 관계를 개선하려 구성원의 지갑과 머리, 가슴을 채워 주려 노력합니다. 지갑 채우기는 급여 수준이 대기업과 비슷하니 70점, 머리 채우기는 60점, 가슴 채우기가 아직은 50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시몬느 구성원의 DNA는 도전정신, 캐주얼, 리버럴이다. 이 회사는 무에서 시작해 제조에 이어 판매까지 아시아에 없던 럭셔리 시장을 창출했다. 그는 “사훈은 따로 없지만 구성원들에게 자유로운 생각, 열린 감성, 새로운 것에 대한 마르지 않는 호기심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시몬느의 인재관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의왕에 있는 시몬느 본사는 오피스 캠퍼스로 지어졌다. 모든 사무실에 외부 테라스가 있고 테라스는 정원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사옥의 설계자 안길원은 이 설계로 2003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박 회장은 인문학 전공 CEO다. 연세대 독어독문학과를 나왔다. 2018년 EY 최우수 기업가상을 받았다. 그의 집무실은 늘 핸드백 샘플이 그득하다. 요즘도 매달 100개 가량의 핸드백 샘플을 직접 리뷰한다. 올해 65세인 그는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두고 임원들 중 후보군을 만들어 경영 수업을 시키고 있다. 가족 승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두 딸에게 경영자로 살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시몬느는 미국 미네소타주 콩코르디아 언어마을에 한국어마을 ‘숲속의 호수’를 조성 중이다. 1차 건설 비용 500만 달러 중 절반은 박 회장이 사재로 출연했다. 2012년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세계 최초의 핸드백 박물관 백스테이지를 열었다. 2017년엔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과 손잡고 영어·중국어·베트남어·인도네시아어로도 뜻풀이가 된 핸드백용어사전을 펴냈다. 10여년 전 베트남 출장길에 본사서 파견 나간 직원이 현지 직원들에게 기술지도를 일본식 용어로 하는 것을 보고 이 사전을 낼 결심을 했다고 한다.

시몬느는 다음 먹거리 말고는 이렇다 할 리스크가 없어보인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는 업종 특성상 사실상 매출이 1조원을 훌쩍 넘어서기는 어렵습니다. 5~10년 후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견인할 동력이 현재로선 마땅치 않아요. 2012년 론칭한 자체 브랜드 0914를 통한 B2C 시장 진출도 어쩌면 해답이 아닐 수 있어요. 어쨌거나 열심히 노력해 성장의 모멘텀을 찾아야죠.”

0914는 1984년 9월 14일이라는 날짜에서 비롯된 브랜드다. 부인 오인실 씨와 11년 간 사귄 끝에 결혼한 박 회장은 그에 앞서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녀와 헤어졌었다. 연애하던 시절 둘이 드나들던 커피점에서 3년 만에 우연히 마주친 날이 그날이었다. 이상형이라는 뜻의 시몬느라는 회사 이름은 결혼 전부터 그가 부르던 그녀의 애칭이다.

아시아 패선 시장서 도쿄는 지는 해, 서울은 정오의 태양

그는 아시아 패션 시장에서 도쿄가 지는 해라면 서울은 정오의 태양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뜨는 해이다. 중천에 뜨면 서울의 태양보다 훨씬 클 것이다.

“40여년 핸드백을 만든 나의 재킷에서는 여전히 기름 냄새가 납니다. 샤넬 넘버 파이브의 향이 아니라. 그토록 오래 백을 만들었지만 제가 브랜딩 전문가는 아니라는 거죠. 나의 역할은 마중물입니다. 내가 맨발로[인사이트코리아=인사이트코리아] 열심히 뛰면 다음 경영자는 나이키를 신고 뛰게 될지 모르죠. 10년 전부터 고객사들도 이제 당신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때가 됐다고 하지만, 아직은 브랜드의 헤리티지가 약해요.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은 갖췄지만 스토리와 판타지가 부족해요. 꽃을 피우기까지 15~20년은 걸릴 긴 여정이 될 겁니다.”

그에게 창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질이 뭐라고 보느냐고 물었다.

“멀리 내다보는 긴 호흡, 배움의 자세, 성장을 넘어 나눔까지 염두에 두는 성숙함입니다. 실용적인 지식은 머리로 배우지만 가슴으로 배워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원양어업을 하신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때부터 해마다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때 가슴으로, 바다로부터 성실과 겸손을 배웠어요. 시몬느의 나눔은 현재진행형이자 과제입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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