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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19 16:38 (화) 기사제보 구독신청
기계설비업계 최초 여성 CEO 심기석 세일이엔에스 대표
기계설비업계 최초 여성 CEO 심기석 세일이엔에스 대표
  • 강민경 기자
  • 승인 2019.08.01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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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정으로 ‘남초’ 세계서 우뚝 서다

[인사이트코리아=강민경 기자] 1973년 19살 소녀가 기계설비업계에 발을 디딘지 40여년이 흘렀다. 입사한 지 34년 만에 소녀는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고, 13년째 수장을 맡고 있다. 서너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문을 연 회사는 지난해 기준 2000억대 매출을 돌파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고, 곧 상장할 계획이다. 업계 안팎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손꼽히는 심기석 세일이엔에스 대표이사 사장 스토리다.

심 사장이 40여 년간 몸 담으며 내조와 외조를 꾸려온 세일이엔에스는 공조·기계설비 회사다. 건물 내 냉난방 설비 공사를 진행하며,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하이닉스 등 굵직굵직한 국내 대기업 공장 설비를 전담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매출도 큰 폭으로 올랐다. 2009년 매출 1200억원을 올리며 1000억 대를 돌파한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해엔 매출 2100억원을 넘었고 올해는 23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최근 경기가 악화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괄목할 성장이다.

<인사이트코리아>는 지난 7월 9일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세일이엔에스 본사에서 심기석 사장을 만났다. 기계설비업계는 지금도 여전히 ‘남성의 수가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뜻을 지닌 이른바 ‘남초’ 업계로 통한다. 남성이 대다수인 업계에서 여성 사원이 대표이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심 사장은 “모르는 것은 끝까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불독’ 같은 성향과 일에 대한 열정, 상대방에 대한 진심이 바탕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세일이엔에스는 어떤 회사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여름엔 얼마나 시원하게 또 겨울엔 얼마나 따뜻하게 하는지 등의 작업을 수행하는 ‘공조설비회사’ ‘기계설비회사’다. 사람으로 예를 들어 피부처럼 겉을 이루는 것이 건축이라면, 혈관 역할을 하는 것이 기계설비 혹은 공조설비다. 예전엔 냉난방시공이라고도 했다. 요즘엔 냉방·난방·위생 등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통용된다.”

- 최근 작업을 진행한 곳 가운데 대표적인 곳은?
“보통 동시에 작업하는 현장은 30개가 넘는다. 국내를 비롯해 중국과 베트남 등 해외에도 있고, 주로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반도체’ 공사다. 삼성전자 평택·화성·기흥 공장, SK하이닉스 청주·이천 공장 등이다.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선 먼지나 세균이 없는 깨끗한 공간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런 반도체 회사의 ‘클린룸(Clean Room)’ 설비가 대표적이다. 주상복합·병원·호텔·빌딩 등을 모두 작업하지만, 그 중에서 특화된 것은 반도체 공장이다. 현대자동차 공장 내 설비 작업도 맡고 있다.”

- 세일이엔에스의 대표에 오르기 전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선대 회장님이 친오빠 친구였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재수를 하고 있을 때 오빠가 ‘친구가 사무실을 냈는데 네가 가서 좀 도와줘라’고 하더라. 처음엔 전화를 받는 업무부터 했는데, 시간이 흘러 46년 동안 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 이 업계에서 여성사원이 사장에 오른 것은 처음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내가 사장이 될 것이란 생각은 사실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일을 중독수준으로 재밌고 열심히 하다 보니 운이 좋게 대표 자리에 올랐다. 지금까지 13년간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이 업계에 관심이 있어서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여기서 내가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일을 좋아했기 때문’으로 정리되더라. 이 일이 재미없고 싫었다면 진작 뛰쳐나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 이른바 ‘남초’라고 불리는 기계업계에서 공을 쌓으며 지난해엔 ‘2018 올해의 여성 리더’를 수상했다. 성공적인 여성 경영자가 되기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불독’같은 성향덕분에 직장생활에서 롱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잘 몰라서 난관에 부딪힐 때 당황하지 않고 하나하나 악착같이 배워나갔던 자세가 큰 도움이 됐다. 처음 이 회사는 정말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19살에 입사했는데 당시 상황이 굉장히 열악했다. 그땐 잠시 일을 도와주고 곧 대학에 진학할 생각으로 들어갔었는데, 회사 살림을 도맡게 됐다. 이후엔 본격적으로 예산을 파악하는 견적업무를 맡았다. 누구에게 묻기 어려워서 독학으로 배웠다. 견적업무에 적응이 좀 되려고 할 때 이어서 구매업무까지 떠안게 됐다. 장비를 만들기 위해 구매를 하려면 상대방과 협상을 하는 능력을 키워야 했는데, 구매업무를 오래 하다 보니 사람들의 성향을 빠르게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됐다. 업무능력을 하나씩 쌓아갈 때 회사 규모도 점차 성장했다. 나라 경제가 힘들어서 다른 회사들이 휘청거릴 때도 운이 좋았던 덕분인지, 우리 회사는 큰 문제없이 위기를 넘어갔다. 그렇게 회사의 안살림을 책임지면서 주요 업무까지 도맡으면서 회사 내 입지가 탄탄해진 것 같다.”

- 기본적인 업무는 독학으로 익혔던 건가.
“그땐 회사에서 쓰이는 업무용어가 전부 일본어였다. 그걸 모르니 노트와 서랍에 여러 개의 쪽지를 계속 붙여가며 하나하나 배웠다. 주판도 혼자 공부하면서 배웠다.” 

- 선대 회장과도 각별했을 것 같다.
“그 분과 44년을 함께 일했다. 내가 모셔서가 아니라 정말 반듯한 분이셨다. 그 분은 ‘회사가 성장한 것의 절반은 네 덕분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오히려 나는 선대회장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우리 오빠에게 참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최근에 돌아가셨는데, 그 분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소녀일 때부터 이것저것 가르쳐주시곤 지금은 이렇게 내가 밖에 나가서도 대접받을 수 있는 자리까지 오르게 해주셨다. 그 분은 정도를 걷는 것을 꼭 지키셨다. 그런 분과 매일매일 오랜 기간 함께 일하다 보니 나도 그런 마인드를 닮게 된 것 같다. 괴팍하거나 편협한 상사 밑에서 일을 했으면 나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존경이라는 것이 어느 위인을 위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참 존경하는 분이다. 또 재작년에 오신 새 회장님도 정말 반듯한 분이다. 자수성가하신 분인데 모든 일에 정말 최선을 다하는 분이다. 이렇게 가까운 데 존경할 수 있는 분들이 계시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 일을 하다가 진학 시기를 놓치게 됐는데 후회를 한 적이 있나. 사실 석·박사를 이수한 이들보다 오히려 더 성공한 케이스다.

“학업에 대한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아주 오랜 기간 현장에서 실무를 익히다 보니 학위보다 더 귀한 능력을 갖추게 됐다. 사람 보는 눈이 길러졌다. 어쩔 땐 그 사람의 미래를 맞추기도 했다. 또 사람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어떻게 일을 해야 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안목이 길러지는구나 싶었다.”

- 직원으로 일 할 때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은데.
“업계 내 구성원이 대부분 남자이다 보니 성향 상 여성의 사고방식과 달라서 마찰이 간혹 있었다. 그땐 여자들의 목소리가 큰 것을 회사에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눈치 보며 속으로만 끓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관을 어필하면서 적극적으로 일을 처리하곤 했는데, 내 방식대로 일을 추진하다보면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업계에서도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심기석’이라는 여직원에 대한 얘기는 좀 퍼졌지만, 당시엔 보통 전화로 상대방과 협상을 했기 때문에 실제로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한 건설회사를 갔더니 ‘드디어 심기석이 나타났다’며 ‘당신이 심기석이냐’고 묻더라.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다소 험난한 현장에서 구매업무를 담당하는 여자라고 해서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웬 선생님이 왔나 싶었다고 전하더라.”

- 실례되는 얘기일 수 있지만, 당시 이름만 들었을 땐 여직원이라고 생각 못했을 것 같다.
“맞다. 가끔 이름 때문에 남자 세계에 들어왔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심기석’이라는 이름이 참 남성스럽지 않나.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 사실 어릴 적엔 ‘아유, 무슨 여자 이름이 이렇나. 그렇게 예쁜 이름들을 놔두고’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일을 하고 보니 이 이름이 너무나 편하고 좋았다. 남자들이 많은 곳에서 남성스러운 이름이 튀지 않아서 정말 편했다. 원래 ‘석’이 항렬자다. 특이하게도 집안에 아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오빠가 세 명이나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딸인 내 이름에 항렬자를 쓰셨다. 위로 언니 두 명이 있는데, 언니들 이름엔 항렬자를 안 쓰고 나와 밑에 여동생에게는 항렬자를 쓰셨다. 여담이지만, 골프장에 갔을 때 프론트에서 이름만 보고 남자 탈의실 라커키를 준 적이 수도 없이 많다.”   

- ‘심기석’이란 이름, 한자로 무슨 뜻인가?
“기이할 ‘기(奇)’자에 주석 ‘석(錫)’자다. 보통 이름엔 터 ‘기(基)’자를 많이 쓰는데. 사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내가 이란성 쌍둥이였다. 그런데 나올 때 남자아이가 사산됐다고 하더라. 우리 할아버지 입장에선 그것이 참 기이한 일이었던 거다. 그래서 내 이름에 기이할 ‘기’자가 쓰였다. 결혼할 때 주례선생님이 신랑 신부 이름을 혼동하시는 바람에 ‘심기석 군’이라고 말해서 결혼식장에서 웃음이 터진 적도 있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는 내 이름이 참 좋다. 남자세계에서 내 이름이 영희나 미경이었다면 너무 여성스러워서 오히려 더 튀었을 것 같다.”

- 리더의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직원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잘 다룰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들을 알긴 어렵다. 그러나 함께 일을 하다보면 서류를 잘 만드는 사람, 회계를 잘 보는 사람, 발표를 잘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능력을 캐치하는 능력이 생긴다. 이들을 잘 이끌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 직장에서 어떤 사람이면 좋을까. 인생선배로서의 조언은?
“매력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예쁘기만 해도 안 되고 똑똑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취약한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을 영리하게 감추면서도 남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매력이 사람들 인식에 자리 잡게 되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장점을 잘 나타내는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어느 모임에 가도 찾게끔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 것은 돈만 많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 예를 들면? 
“예를 들자면, 배려있는 사람. 나는 자식들에게 모임 시간보다 항상 10분 전에 도착하라고 한다. 일찍 도착해서 좋은 자리를 맡아 놓는 것도 모임에선 필수적이고 중요한 일이다. 그런 일, 그런 배려를 하라고 말한다. 이게 여러 번 쌓이면 모임 내에서도 ‘걔는 오늘 안 와? 언제 온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나를 찾게 만드는 매력을 개발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 심 대표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일까.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매력 포인트 혹은 주위의 평판이 궁금하다. 
“누가 어떤 부탁을 하든 한번도 ‘NO’를 한 적이 없다. ‘급할 땐 미스 심에게 부탁해!’라는 말도 있었다. 물론 해결을 완벽하게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대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면 된다. 한 번은 어떤 업체서 회식 1주일을 남겨놓고 회식자리를 잡아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한 적도 있다. 부탁을 받고는 열 몇 곳에 전화해서 결국 장소를 마련해주고, 다신 이런 부탁을 하지 말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사람은 그 때부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면서 우리 둘 사이의 관계가 조금은 더 깊어지게 되는 거다. 업무상 관계를 넘어 인간관계라는 게 그렇다. 안된다고 바로 말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한 번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 나의 매력 포인트 아닐까.”

- 웃는 인상이 인상적인데, 그 점도 매력 포인트인 것 같다.
“어릴 땐 ‘8등신에 미모도 특출 나고 학력도 좋고 집안도 좋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것들을 가지기 힘들었다(웃음). 그럼 어필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했는데, 항상 웃는 표정으로 상대방을 편하게 대해주자는 마음이 들었다. 어떨 땐 속없이 웃기도 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인상을 굉장히 좋게 평가하더라. 또 나이가 들면서 생각해보니 이렇게 낳아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한 일이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예전엔 남자들이 많은 직업 환경에선 성(性)과 관련해 곤란한 일들이 참 많았다. 그런데 다행히도 수수한 얼굴이어서 감사했다(웃음). 미모가 뛰어났으면 다른 남자 직원들이 일을 할 생각보다 다른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지 않았겠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이것이 남녀 간의 속성이니까. 그런 면에선 참 다행이다 싶었다. 웃는 얼굴과 진심을 다해서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성격이 장점인 것 같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거짓말하지 않는 것도 참 중요하다.”

- 여성 경영자로 성공하기까지 가족들의 지지도 큰 힘이 됐을 것 같다.
“성공이라는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여성이 웬만큼 그 업계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선 가족의 지원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결혼하고 나서 처음엔 남편이 12시 넘어서 들어오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 나는 ‘워커홀릭’ 중증이었다. 다들 그렇게 일을 하는 줄 알았다. 일 때문에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 때마다 아이들의 케어는 남편 몫이었다. 때문에 남편과 가족을 설득하고 이해를 시키기 위한 시간도 필요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럽게 이해를 해주기 시작했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1년에 한두 번 가량 장시간 대화를 나눈다.”

- 경영을 이어오면서 가장 보람이 있었을 때는 언제인가.

“2010년 창립 40주년을 맞아 전 직원들과 백두산에 갔다. 직원들과 백두산 여행을 함께 갈 수 있었던 배경이 내겐 남다른 부분이다. 2007년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오른 후, 차별화 전략을 고심했다. 당시 업계에서 여자가 대표가 된 것은 사상 처음이었고 직원이 사장으로 승진한 것도 처음이었다. ‘센세이셔널’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업계 안팎 사람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듯 했다. 사장이 되고 난 후 초반 1년은 금방 지나갔다. 2년째로 접어들 때 국내에서 ‘안전’이 주요 화두였다. 이 때 안전 관련 시스템을 인증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보건시스템’이라는 명칭의 시스템을 인증 받기 위해 1년가량 소요됐다. 이 시스템을 간략히 설명하면, 작업 전 아침에 현장에서 위험성 평가를 미리 해보는 것이다. 보통 그날의 날씨와 상황에 따라서 평가가 시행된다. 안전보건시스템을 인증 받은 이후 현장에 적용시키자 그때부터 사고 건수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그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그 해에 안전관리비가 2억원 절감됐다. 이 2억원을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그래서 1억원은 여행비로 사용하고, 나머지 1억원은 금으로 나눠줬다. 그렇게 전 직원들과 백두산에 가게 된 것이다. 직원들이 너무 좋아하며 고맙다고 하기에, 고마워 할 필요 없다고 했다. 직원들이 시스템을 잘 따라줘서 사고가 줄었고, 이에 따라 비용이 절감됐기 때문이다. 나는 절감된 비용을 회사에 넣지 않고 직원들에게 준 것 뿐이었다. 다만 돈이 아닌 여행이란 선물로 주고 싶었다. 백두산 여행이라는 문화를 직원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회사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날 백두산 천지에 올랐는데, 직원들이 막걸리 두병을 갖고 왔더라. 여기서 안전제를 지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를 하기에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무사고 무재해 기원을 했다. 백두산이 날씨가 참 변덕스러워서 어떨 땐 눈앞에 있는 자기 손가락도 보기 힘들다고 하더니 그 땐 해가 쨍쨍했고 날씨도 좋았다. 그래서 우리 회사가 잘 될 건가보다 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정말 탄탄대로를 걷게 됐다. 그날은 정말 큰 의미였다.”

- 현재 경영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
“요새 건설업계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우리는 몇 년 전부터 ‘리모델링’과 ‘메인트랜스’ 위주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메인트랜스는 특히 미군 기지나 원자력 발전소 등의 설비와 관리를 도맡는 업무다. 작년엔 당진에 1만1000평 정도 규모의 공장도 지었다. 전에는 건설 현장에서 기구를 조립하는 방식이 하나의 문화였는데, 지금은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진 기구를 현장으로 옮기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렇게 되면 현장에서의 공간과 인력, 안전자금 등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장에선 시스템화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생산성도 높아진다. 인력 관리도 쉽다. 본인이 맡은 일만 반복적으로 하게 되니 그 업무에 숙달돼 전문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작업 품질도 높아진다. 무엇보다 치열한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100원을 부를 때, 우리는 80원을 불러야 가격 경쟁력이 있지 않나. 이것이 공장을 이용한 비용절감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 취미생활은?
“등산을 좋아한다. 안나푸르나, 후지산, 알프스 등을 등반한 경험이 있다. 평소에도 아침에 20분씩 집 앞을 걷고 출근 준비를 한다. 나는 CEO의 가장 큰 덕목이 ‘건강’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면 일단 나부터가 만사가 귀찮고, 주위 사람들도 피곤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평소에 건강관리를 꾸준히 하려고 한다. 전에 한창 바쁠 땐, 출근할 때 1층부터 11층 사무실까지 매일 걸어 올라갔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엔, 야외운동 대신 15층 아파트를 두 번 오르내린다.”

- 업계 내 친한 여성인 모임이 있나.
“설비업계 관련 여성들 40여명 정도가 모이는 그룹이 있다. 교수, 업계 관계자 등 다방면의 사람들이 있고 분기별로 모인다. 요즘에는 동종업계 이외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자주 만나려고 한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에게서 생각지 못한 시각과 아이디어를 얻는 기회가 종종 있고, 또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얻게 되는 다른 지식들도 경영에 도움이 된다.”

- 심 대표가 꼽는 자신의 사회생활 노하우는?
“내 별명 중 하나가 ‘건달누님’이다. ‘건배의 달인’이란 뜻이다(웃음). 이 업계에서 여성이 일하는 것은 매우 드물어서 어느 자리에 참석을 하든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보통 그럴 때 홍일점인 나에게 건배사를 하라고 했는데, 별거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라. 그래서  피할 수 없다면 준비라도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건배사를 만들고자 했다. 재미도 있으면서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센스를 보여주고 싶었다. 노래방에 가서 애창곡을 부르는 것처럼 언제든 읊을 수 있는 나만의 건배사를 몇 개 외워 다니곤 했다. 주위 여성경영인들에게도 최소 3개 정도의 건배사를 준비하라고 조언한다. 어디선가 누가 건배사를 요청할 때 우물쭈물하는 것보다 자신 있게 멋지게 한 마디 하는 게 얼마나 모양새가 좋나.”

- 센스 있는 건배사 만드는 비법 좀 알려달라.
“건배사는 그 자리에서의 느낌과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런 센스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긴 어렵다. 건배사도 경험이 중요하다(웃음). 그렇다면 어느 자리에서든 통할 수 있는 기본적이면서도 듣기 좋은 하나를 추천한다. ‘여기 계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정도면 어떨까.”

- 경영철학은?
“철학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지만, 직원들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 일한 만큼 월급도 많이 주고 싶다. 회사만 좋아지는 것이 좋은 경영은 아니다. 회사도 좋아지면서 직원들의 처우와 복지도 함께 좋아져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열심히 일할 동력이 생긴다. 또 평소 직원들에게 ‘사장처럼 일하라’고 한다. 사장 같은 대리, 사장 같은 과장, 사장 같은 부장만 있으면 그 회사는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회사와 직원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경영을 펼치고자 한다.”

- 추후 경영 계획이나 포부는?
“공장 활성화를 통한 모듈화를 계획 중이다. 상장 계획도 있다. 과거 회사 경영 초중반 시기엔 약간 주먹구구식이라도 일단 성장을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의도적으로 매출을 조금 줄이는 방향으로 잡고, 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가까운 시일 내에 상장을 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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