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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영어 모르는 할머니, 아파트에서 길을 잃다
영어 모르는 할머니, 아파트에서 길을 잃다
  • 도다솔 기자
  • 승인 2019.07.12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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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고급화 일환 영문 안내판 표기...어르신들 불편 호소

[인사이트코리아=도다솔 기자] 얼마 전 A씨의 딸은 황당한 일을 겪었다. A씨는 이사 당일 새 아파트의 관리사무소를 찾지 못해 딸에게 사진을 찍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사진을 확인한 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파트 시설 입구마다 영어로만 표기돼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휴대폰 영어사전도 검색해봤으나 도무지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딸은 젊은 세대에 비해 영어를 잘 모르는 어머니가 관리사무소를 찾지 못해 무더위에 단지 안을 헤매며 쩔쩔 맸을 광경을 상상하니 화가 났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신축 아파트 내 영문 표기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오며 화제가 됐다. 이 작성자가 올린 글은 순식간에 수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사진에 관리사무소는 ‘CASTLIAN CENTER MANAGEMENT OFFICE’라고 표기돼 있다. 이외에도 SENIOR CLUB(노인정), LIBRARY(도서관), TEA PLACE(휴게소) 등이라고 적힌 안내판 사진이 올라왔다.

사연 속 A씨는 “사전에도 없는 캐슬리언 같은 단어를 왜 사용하는지 모르겠다”며 “밑에 우리말로 같이 써놓던지, 노인들이 어떻게 ‘SENIOR CLUB’을 읽고 오길 바라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글을 본 누리꾼들은 “공공성을 띠는 장소에서는 영어 남발 안했으면 좋겠다” “영어만 쓰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나보다”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사는 주거 공간으로서 부적합하다” “한글도 같이 써놓도록 법으로 정해놔야 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고급스러움은 영어로만 표현 가능?

1999년 ‘롯데캐슬’ 출시로 브랜드 아파트 개념을 가장 처음 도입한 롯데건설은 롯데캐슬 내 커뮤니티 시설을 ‘캐슬리언 센터’로 지었다. 이것은 캐슬이라는 단어를 의인화한 것으로 롯데캐슬 입주자 전용 커뮤니티 시설을 일컫는 말이다. 롯데캐슬 뿐 아니라 GS건설의 ‘XI’ 브랜드도 2005년부터 입주민 커뮤니티 시설을 ‘자이안 센터’로 명명해 시설물을 관리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고급 브랜드 아파트를 표방하는 단지를 중심으로 시설물에 영문으로만 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노년층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이에 ‘시부모 못 찾아오게 하려고 영어로 아파트 이름 짓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났다.

부산시 강서구의 한 아파트는 영어마을을 조성하겠다며 영어도시퀸덤 링컨타운과 에디슨타운, 아인슈타인타운이라는 이름의 아파트를 내놓기도 했다.

과거 현대아파트, 동아아파트, 장미아파트, 개나리아파트 등 단순한 한글식 작명이 주를 이뤘던 것과는 달리 최근 분양한 단지의 이름을 살펴보면 용산롯데캐슬센터포레, 의정부역센트럴자이&위브캐슬, 이수푸르지오더프레티움, 래미안개포루체하임 등 어느 나라 말인지,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고 긴 외국식 작명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무렇게나 영어로 지은 것 같아보여도 고객들에게 단지 이름만으로 해당 단지의 특장점을 인지할 수 있게 각인할만한 이름을 짓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인다”며 “요즘 아파트는 단순 주거지 개념이 아닌 고객의 품격까지 담을 수 있는 가치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차별화 된 고급화가 느껴지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객들이 과거에 비해 점차 주거의 고급화를 원하면서 건설사도 고객 니즈에 맞춰 변화한 것”이라며 “최근 들어서는 너무 긴 작명은 피하고 임팩트 있으면서도 단순한 작명을 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입주민 모두가 이용하는 시설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없도록 영어를 잘 모르는 노년층이나 저학력층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를 쓰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외국인 거주지가 아닌 이상 한글을 병기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우리말을 이용해 고급스럽고 세련된 표현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영어 디자인 선호? 실제로는 별 차이 없어

2017년 옥외광고물에 한글을 병기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달라는 청원도 등장했지만 법제화되지는 못했다. 지난해 1월 한국공간디자인학회가 한글 간판 디자인 선호도에 대한 연구를 위해 3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카페·이동통신사·베이커리 등 9개 브랜드의 한글 간판과 영문 간판을 함께 보여주고 ▲정서적 주의도(매력) ▲조형적 호감도(친밀) ▲이지적 선호도(조화) 평가를 물었다.

그 결과 전반적으로 영문이 한글보다 선호도가 높게 나타났으나 대부분 항목에서 0.5점(5점 만점 기준) 수준의 근소한 차이를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익숙하지 않은 영어, 불어 등 외래어를 쓰거나 지나치게 복잡한 합성어가 많아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바뀌려는 움직임은 지지부진이다.

지난해 말 중국은 아파트 이름에서 유럽성(毆洲城), 동방의 프로방스(東方普羅旺斯), 캘리포니아 작은마을(加州小鎭), 베니스화원(威尼斯花園) 등 서양식 이름이 많아지자 강력한 단속에 나섰다.

중국 주택건설부 등 6개 중앙부처는 ‘규범에 맞지 않는 지명 단속 개정에 관한 통지’를 발표하고 아파트나 쇼핑몰, 산업단지 작명에 흔한 ‘(大·대)거창하고 화려하게 작명, (洋·양)외국 지명이나 영어 등 외국어 사용, (怪·괴)저속하거나 해괴한 작명, (重·중)다른 인근 아파트 이름과 겹치거나 중복되는 경우’를 바로잡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많은 아파트가 류영방(柳映坊, 버드나무 그림자 마을), 추하방(秋荷坊, 가을연꽃 마을), 탐매리(探梅里, 매화를 감상하는 마을) 등 중국식 작명으로 바뀌게 됐다.

중국처럼 정부가 아파트 작명까지 간섭하는 일은 지나치더라도 고급화를 이유로 과도한 외국어 표기가 소외계층을 발생시키고 반감을 키운다면 누구를 위한 고급화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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