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단일민족 아니라 민족 간 융합한 ‘혼혈민족’
한민족은 단일민족 아니라 민족 간 융합한 ‘혼혈민족’
  •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 승인 2019.03.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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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기원과 추정 이동 경로 통한 고고학·유전자·언어학적 분석
테드 괴벨이 그린 인류의 이동 경로.<그래픽=이민자>

세계 인류는 몽골로이드(황인종·Mongoloid), 코카소이드(백인종·Caucasoid), 니그로이드(흑인종·Negroid)로 크게 나뉜다. 몽골인종은 다시 북몽골인, 중앙몽골인(중국의 화화족 등), 남몽골인(인도차이나반도인 등)으로 구분된다.

북몽골인은 구몽골인과 신몽골인으로 나뉘는데 구몽골인에는 축치, 길리약 등이 있고 신몽골인에는 알타이계인 투르크·몽골·퉁구스인들과 우랄계인 위구르, 핀 등이 있다. 한국인은 바로 알타이계인 신몽골인에 속한다.

그러면 한민족은 어떠한 범위의 사람들을 포괄하며 글들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이에 대해 유물과 유적을 토대로 한 고고학적 연구와 미토콘드리아 DNA, Y염색체와 같은 유전자 분석을 통한 연구, 언어학적 연구 등을 참고할 수 있다. 먼저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한민족의 뿌리와 출발점을 보고, 이어 역사학자들이 보는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고고학과 DNA 분석으로 본 한민족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으로 일하다 순직한 고고학자 한영희는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살았던 구석기·중석기 시대의 주민이 채집경제에 바탕을 둔 이동 생활을 영위했고, 발견된 유적이 적은 것으로 보아 인구 밀도가 극히 낮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석기 시대에 와서 수렵과 어로, 채집과 농경에 바탕을 둔 정착생활이 이뤄졌으며, 이전 시기와 문화가 전혀 다르고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다는 점, 그래서 기존의 인종들을 동화, 흡수시킨 점들을 근거로 들어 신석기인들이 한민족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주장했다.

또 한민족의 뿌리로 신석기인들이 살던 지역에 대해서는 현재의 국가 개념으로 한반도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맞지 않고, 신석기 시대의 한반도 문화와 동질성을 가진 지역권인 중국 동북 지방, 발해 연안, 만주 일대, 연해주, 연해주 남부 지방 등을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요약하면 신석기 시대의 주민을 한민족의 직접적 조상으로 봐야 하며 신석기 시대 주민의 거주 지역을 한반도 및 그 주변 지역까지 포함시켜 그 주민 전체를 하나로 묶어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주민 형성과 관련해서는 북방계설과 자체형성설 등으로 나뉘는데 그는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의 한반도 발생설을 부정한다. 즉 신석기 시대 우리나라 각지에 서로 다른 문화의 인종이 살고 있었던 점을 볼 때 계통이 다른 인종이 길을 달리하여 한반도로 유입해 내려온 것으로 보며 그 기원지는 시베리아의 어느 한 지점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문화적 동질성에 의해 따로 형성된 집단들이라 보고 있다.

박선주 충북대 교수는 우리 겨레의 뿌리와 관련해 발굴된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사람의 머리뼈와 현대인을 비교하는 형질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 겨레의 뿌리는 추운 시기에 동북아시아에 퍼져 있던 후기 구석기 사람의 한 갈래로, 빙하기가 끝나며 한반도에 고립된 이 갈래에 새로운 유전인자가 유입되었으며, 바로 신석기 시대에 우리 겨레가 처음 형성되기 시작해 청동기 시대에 이른 후 이웃하는 다른 집단과 오랫동안 떨어져 한 유전집단을 이루었기에 다른 주변집단과 구별되는 특징을 지녔다고 생각된다”라고 결론지었다.

근간의 DNA 분석과 화석 연구에 따르면 현생인류(신인류)는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나타나 후기 구석기 문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그들이 5~6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로 퍼져 나간 것으로 밝혀졌고, 이전의 일반적인 견해였던 ‘다지역 기원설’ 대신 ‘아프리카 기원설’을 정설로 받아들이게 됐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테드 괴벨(Ted Goebel)이 정리한 후기 구석기 유적의 분포에 따라 작성한 인류의 이동 경로 지도를 보면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아시아쪽으로는 ①중동 지역→카스피해 남부→중앙아시아→몽골 고원→바이칼 호수→만주(→한반도), 베링해(→아메리카) ②아라비아 해안→인도 해안→인도차이나반도→중국 →인도네시아 및 남태평양섬으로 향했고, 유럽 쪽으로는 중동→아나톨리아 반도, 코카서스 지역→동부 유럽→서부유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동에는 기온과 해수면의 변화가 큰 영향을 줬으며 4만3000년 전, 중앙아시아로 사람들이 이동해갔으며 1만5000년 전에는 북미 대륙으로까지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빙하기가 끝나고 1만년 전 마지막 지질 시대인 홀로세(Holocene)가 시작되면서 기후가 온화해지고 인류가 급격히 팽창하게 됐다고 한다.

일본의 인류학자 시노다 켄이치는 중국의 동북부 집단과 한반도, 그리고 본토 일본인은 거의 비슷한 미토콘드리아 DNA의 하플로 그룹 구성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유전자 계통 분석을 통해 하플로 그룹 C는 한반도에서 중국 북부, 중앙아시아 집단의 큰 그룹 안에 변이가 있으며 이러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에 그 분포의 기원이 있다고 주장한다.

김욱 단국대 교수는 동아시아인 집단 간 미토콘드리아 DNA 변이 분석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인 집단이 주로 북방 계통의 유전자풀과 남방 계통의 유전자풀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다기원적 집단이라는 최근의 Y염색체 DNA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한국인 집단은 중국 조선족과 만주족 그리고 일본인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구성된다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활동했던 과거 고구려인의 유전적 특성은 중국 한족 집단보다 한국인과 더 가깝다고 판단된다.

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 그룹의 대륙별 분포도.<그래픽=이민자>

이홍규 서울대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인의 기원>에서 유전학을 중심으로 한 고고학과 언어학 등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한국인의 기원을 밝혔다. “한국인은 대략적으로 남방해안 루트를 거쳐 먼저 정착한 남방계 사람들의 유전자를 30% 정도 가지고 있고,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대륙의 북방 루트를 거쳐 나중에 정착한 북방계 사람들의 유전자를 70% 정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인류가 가진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형을 분석하면 6~7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난 사람들은 그림에서 L3유전형의 후손이고 모두 큰 하플로 그룹 M, N, R에 속한다. 그림의 큰 하플로 그룹 M은 유럽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동아시아에서 나타나며 해안 루트를 통해 한반도와 동아시아로 온 것으로 추정한다. 큰 하플로 그룹 N의 후손들(하플로 그룹 A, N9, X 등)은 동남아 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동아시아와 서부 유라시아에 나타나므로 인더스강을 따라 북상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아시아로 들어간 유전형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가 베링해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홍규 교수는 남성 유전자인 Y염색체 유전 분포 연구에 의해서도 약 3만 년 전에 동아시아의 주류 세력인 O형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북방에서 형성돼 남으로 내려왔고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다시 그 수가 크게 늘어났다는 결과에 도달해 O형의 확장 장소가 바이칼 호수 주변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가 제시한
세계 언어지도에 한국어는 알타이어 계통으로 중국어(시노-
디베트어)와는 다른 언어권임이 확연히 나타난다.<flickr>

유전자 분석 외에 언어를 통해서도 민족의 이동 경로를 추정할 수 있는 연구도 다수 있다. 잘 알려진대로 언어학적으로 한국어는 알타이어에 속하는데 알타이어 분포 지역은 한반도·일본-만주·연해주-몽골 고원·시베리아-중앙아시아-동부 코카서스-아나톨리아 반도 등 유라시아 대초원 지역과 그 인접 지역을 망라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총·균·쇠>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피터 벨우드와 함께 세계 언어지도를 제시했는데 한국어는 알타이어 계통으로 중국어(시노-디베트어)와는 다른 언어권임이 확연히 나타난다. 이 자료와 인류의 이동 경로를 참고해보면 한국어는 일찍이 동남아 해안을 통해 이동해 정착한 사람들의 언어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알타이 지역, 몽골 고원, 바이칼 호수를 지나 만주와 발해만 일대로 이동한 사람들의 언어가 만나 이뤄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한민족 출발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견해

단재 신채호 선생은 한민족의 동래(東來)를 주장하면서 “대개 조선족이 최초에 서방 파미르 고원 혹은 몽고 등지에서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서 동방으로 나와 불함산(不咸山·지금의 백두산)을 바라보고 명월(明月)이 출입하는 곳-곧 광명의 신이 쉬고 잠자는 곳으로 알고 그 부근의 토지를 ‘조선’이라고 불렀다. ‘조선’도 고어의 광명이란 뜻으로 후세에 와서 ‘조선’은 이두자(吏讀字)로도 ‘朝鮮’이라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최남선 선생은 “흑해에서 카스피해를 거쳐 파미르의 북동 갈래인 톈산 산맥으로 하여 알타이 산맥·사얀 산맥·아블로노이 산맥을 따라 다시 남으로 전(轉)하여 흥안(興安)산맥·대행(大行)산맥 이동의 지(地), 조선·일본·유구(琉球)를 포괄하는 일선(一線)에는 Părk(태양을 의미:저자 주) 중심의 신앙·사회조직을 가진 민족이 분포하여, 그 종족적 관계는 차치(且置)하고 문화적으로는 확실히 일련쇄(一連鎖)를 이루고 있었다”고 밝혔다.

즉 흑해-카스피해에서 중앙아시아, 몽골 고원 북부, 바이칼 호수 남부, 만주·한반도·일본 열도로 이어지면서 문화적으로 연결된 민족이 분포하고 있다는 뜻으로 한민족이 중앙아시아와 그 서부 일대에서 동쪽으로 이동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윤내현 단국대 교수는 한민족은 고조선 시대에 출연했고, 한반도와 만주의 거주민들은 오랜 기간에 걸친 연합 과정의 결과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와 만주의 각 지역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는데, 지금으로부터 1만년 이전에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무리사회였고, 1만년 전에 이르러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씨족이 단위가 된 농업과 목축을 하는 마을 사회를 이루었다고 봤다. 또 6000여 년 전 후기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선 일정한 지역의 씨족 마을들이 연맹을 맺어 고을나라를 형성해 종족을 이뤘다고 주장하며, 한민족을 형성했던 주체세력은 일찍부터 한반도와 만주에 거주했던 토착인들이라고 보고 있다.

김정배 교수는 “우리는 지난날 요녕 지역과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제를 깊게 연관시켜 고찰을 해왔으나 최근에는 지린, 창춘에서도 비슷한 계통의 청동 유적들이 나타나고 있어, 고대의 여러 사회 모습을 다시 검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이같이 무문토기 문화 위에서 청동기 문화의 분포와 범위가 일정한 한계를 긋고 있고, 계통론에서도 그 성격이 분명해졌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기원을 그와 같은 상한선에 이르게 하는 데 흡족한 자료가 된다”고 했다.

또 “우리 민족에 대한 최초의 지칭어는 ‘예맥’ ‘예’ ‘맥’ 등으로서 서주(西周) 초기부터 중국 측 문헌에 보인다. 우리 학계에서는 동북아시아 민족 이동의 관점에서 고아시아족과 알타이어족의 이동을 염두에 두고, 청동기 문화의 주역으로서 예맥족이 신석기 문화의 담당주민이었던 고아시아족을 흡수·통합하는 과정이 우리 민족의 형성 과정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병도·김재원 박사는 “우리 민족도 결코 온전한 단일 인종(협의)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역시 수 개 이상의 다른 요소가 섞여 있다. 즉 한인, 몽고인, 만주인, 왜인 기타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우리 민족의 근간은 중국 고전에 나타나는 맥(貊) 혹은 예맥(濊貊) 그것으로서…맥 혹은 예맥의 명칭은 원래 우리 선민(先民)들을 총칭하는 일반적인 호칭이었다”고 했다.

비교언어학자인 강길운 단국대 교수는 언어학적 연구를 통해 “한민족은 인종적으로 볼 때, 한민족의 대종을 이룬 토착민에, 소수지만 강한 무력을 지닌 알타이계 민족인 터키·몽고·만주·퉁구스족과 높은 문화·해운술을 가진 드라비다족이 동인하여, 토착민인 한족의 협력을 얻어 각 왕조의 지배층을 형성하여 왔다”고 주장했다.

박상남 한신대 교수와 우즈베키스탄 국립 타슈켄트 동방학대학교의 나탈리야 카리모바 교수는 자신들의 저서에서 러시아의 한국학 학자인 유가이 교수의 주장, “현대 한국인의 조상이 수만 년 전 알타이-몽골 지역에서 한반도로 이주해 왔으며 현대 한민족은 신석기 시대(기원전 5000~1000년)와 청동기 시대(기원전 1000~300년)에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했던 몽골계 민족의 후손이며 중앙아시아와 우랄 인근, 알타이 지역이 한민족의 기원이 시작된 주요 장소”라는 것을 인용하면서 한국의 고대 문명은 중국의 황하 문명과는 분명히 다른 북방 문명과 알타이 문명에 뿌리를 두고 있고, 한반도 북부와 만주·몽골·시베리아·알타이 산맥 부근,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북방 기마민족과 맥이 닿아 있다고 썼다.

인류와 역사, 언어학적으로 북방민족을 연구해온 중국의 주학연 박사는 “몽골 인종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이들의 신체적 특징들은 남아시아 지역에 체재하는 동안 형성된 것이었다. 이들은 빙하기가 끝나자 중원 지역으로 북상한 후 다시 북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근동, 나아가 유럽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까지 전 세계로 이동해 갔다”고 말했다. 이는 한민족의 이동 경로에 대해 추론해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한민족의 민족 간 융합 주목해야

단재 신채호 선생은 한민족의 동래(東來)를 주장하면서 “‘조선’도 고어의 광명이란 뜻으로 후세에 와서 ‘조선’은 이두자(吏讀字)로도 ‘朝鮮’이라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DNA 유전자 분석, 고고학적 유물 분석, 그리고 역사학자들의 인식과 연구를 통합해 한민족의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다.

첫째, 한민족의 활동과 역사 범위를 현대 대한민국이 국가를 건설한 한반도뿐 아니라 만주 지역과 발해만 일대를 포괄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의 유전자, 언어, 선사 시대로부터의 유적·유물 등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반도를 따로 떼어 한민족으로 규정하는 것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고조선과부여,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역사를 보더라도 더욱 그러하다.

둘째,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고 하기 보다는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를 거치면서 민족 간 융합이 있었던 것에 주목해야 한다. 즉 선사 시대 아프리카에서 이동한 인류의 이동 경로를 볼 때 한반도 등지에는 동남아 해안루트를 통해 이동한 사람들이 등장했고 후에 중앙아시아-알타이 지역-몽골 고원-바이칼 호수-만주-발해만-한반도로 이동한 사람이 융합돼 한민족이 형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셋째, 한민족은 유전자 분석, 언어, 고고학적 유물 등을 통해 볼 때 중국 북방과 유라시아 대초원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약해 왔던 북방민족과 혈연·문화적으로 가깝고 이들과 교류·이동도 활발히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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