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엄니의 엿 고는 냄새가 그립다
설날 엄니의 엿 고는 냄새가 그립다
  • 이만훈 기자
  • 승인 2019.01.31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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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빼기’ 세찬 꼽히던 시절 엿의 추억과 숨은 이야기
강원 영월군  삼굿 마을에서 어르신들이 옥수수엿을 만들고 있다. <뉴시스>

#. 설날은 명절가운데서도 특별하다. 새해하고도 첫 달의 첫 날이기 때문이다. 으뜸이 세 번이나 겹친 이른바 삼원(三元)의 날. 가는 것 시간이요 흐르는 건 세월이니 아까와 지금, 어제와 오늘, 작년과 올해를 구별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마는 마디를 짓고, 이름을 붙여 마음을 다잡아 온 게 우리의 엄연한 역사요 문화임에랴. 대나무의 마디에서 새 가지와 잎이 돋아나는 이치를 본떴음 직하지만 조상님들의 그 웅숭깊은 속셈을 알 길은 없다.

새 잎을 바라는 건 변화의 추구이고, 궁극적으로 성공은 개인과 소속 집단의 화합을 바탕으로만 가능하기에 자고로 우리 풍속은 이 특별한 마디 날에는 조손(祖孫) 등 세대 간은 물론 돌아가신 분들까지 함께 하는 이승저승 간 소통도 추구했다. 명절을 서양식으로 부르면 축제인 까닭이다. 그래서 명절은 즐거워야 하고, 또 즐거운 것이다.

명절이 명절다우려면 입는 것, 먹는 것이 평소보다 고급스럽고 넉넉해야 한다. 특히 먹는 것은 더욱 그렇다. 명절에 먹는 음식을 절식(節食)이라고 따로 이름 붙인 것도 그 때문이다. 절식 중에서도 설음식은 따로 세찬(歲饌)이라고 한다. 그만큼 특별한 명절이다. 세찬은 떡국을 비롯해 만두·청주·산적·다식·곶감·인절미·저냐(부침개)·강정·식혜·수정과 등 여러 가지다. 지역 따라, 집안 따라 차이가 있지만 조상님까지 모시는 터라 평소 구경하기조차 힘든 것도 많았다.

귀하디 귀한 단맛 ‘엿’

#. 요즘엔 설을 쇠는 것조차 희미해져가는 마당이라 크게 뭐랄 것도 없지만 설빔이란 것도 딱히 없고, 전통 세찬도 대접이 영 시큰둥한 판이라 짠하고도 편치 않다. 조금 배가 불러졌다고 설을 ‘없이 살던 시절의 흔적’ 쯤으로 치부하는 세태가 영 마뜩지 않지만 어찌하랴.

예전엔 필수(?) 세찬이었던 음식 가운데 특히 요즘 볼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엿이다.

요즘이야 단 것이 차고 넘쳐 어떡하면 단 것을 덜 먹느냐가 건강을 위한 화두 중 앞줄을 차지하지만 예전엔 단맛 자체가 귀하디 귀한 맛이었다. 그러다보니 설탕이 없던 시절 꿀 말고 단맛을 제공해주던 엿이야말로 엄지 척일 수밖에 없는 음식이었다. 궁중이나 대갓집에서는 그 이전부터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여와 먹었다고 하지만 서민이 설탕을 먹기 시작한 게 1800년대 말이었으니 말해 무엇 하리오. 엿(조청 포함)은 음식의 단맛을 내는 보조재로 쓰였지만 그 자체로 훌륭한 주전부리이자 명품음식이었다.

#. 예전에 음력 섣달은 설을 준비하느라 주부들에겐 그야말로 ‘죽음의 달’이었다. 요즘 주부들도 ‘명절 증후군’ 운운 하지만 아예 비교거리가 되지 못한다. 이불과 요를 새로 꾸미거나 홑청을 뜯어내 시치고, 식구들의 안팎 설 입성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묵은 창호지를 뜯어낸 뒤 새로 발라 단장해야 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설음식, 즉 세찬을 마련했다. 고기야 바깥양반이 봄부터 들어온 ‘세찬계(歲饌契)’를 통해 조달하면 그만이었지만 나머지 가래떡과 두부, 술, 엿, 다식, 강정 등은 오로지 안살림 몫이라 미리 미리 만들어 둬야 했다. 이 중에서 가히 ‘대사(大事)’라 할 만한 가래떡, 두부, 술, 엿은 양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인데다 자칫 잘못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라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들 ‘골빼기’ 세찬 가운데 맨 먼저 주부를 괴롭히는 것이 엿을 만드는 일이다. 걸리는 시간으로 치면 숙성기간을 요하는 술을 가장 먼저 만들어야 하지만 엿 만들기가 술 제조의 앞 과정에 해당되므로 엿→술을 잇달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전분을 당화(糖化)한 게 엿술인데 여기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키면 술이 되는 메커니즘을 효율적으로 이용코자 하는 지혜다.

엄니의 속성 엿 만들기

#. 엿 만들기는 이론상으로 간단하다. 밥을 길금(엿기름)으로 삭힌 뒤 밥이 물처럼 되도록 끓이고, 그것을 자루에 넣어 짜 낸 다음 찐득찐득해질 때까지 고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까다롭기 짝이 없다.

우리 집은 식구가 열 명이나 돼 엿도 많이 만들었다. 보통 쌀엿과 수수엿 두 가지를 만들었는데 쌀 두 말, 수수쌀 두 말이 들었다. 길금은 쌀 한 말에 되가웃을 쓰니 엿을 만드는 데만 적어도 여섯 되나 있어야 했다.

음식을 만들 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엄니는 엿을 고을 때도 신중하셨다. 이것저것 챙기다보면 늘 자정을 넘기시는데 엿을 고는 일은 큰 일축에 속해 밤을 낮처럼 쓰셨다. 큰 양푼에 미지근한 물을 붓고 쌀을 담가놓고는 길금을 꺼내 맷돌에 탄다. 길금은 추위가 시작될 즈음에 겉보리를 싹틔워 만들어 둔 것으로 뿌리는 대충 스러져 없어진 상태지만 나머지 몸통과 싹은 그대로여서 삭힘발이 잘 작동되려면 거칠게라도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네댓 시간이 지나 먼동이 틀 무렵이 되자 엄니는 불려놓은 쌀을 일일이 조리질하신다. 예전엔 방앗간에도 시설이 시원치 않아 돌 부스러기나 조그만 흙덩이가 제대로 걸러지지 않았던 탓이다. 이어 건진 쌀을 가마솥에 안치고 밥을 짓는다. 원래 우리 집은 할머니께서 된밥을 좋아하셔서 어떤 밥이건 고슬고슬하기 마련인데 엿밥은 푹 퍼지게 지었다. 밥 김이 가마솥 뚜껑을 들썩이며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진동하면 엄니는 맷돌로 손질해놓은 길금을 미지근한 물에 주물탕을 한 뒤 건더기 째 밥 위에 끼얹으셨다. 그러고는 거지반 죽이나 마찬가지로 된 밥을 그대로 뭉근한 불로 계속 데웠다.

다른 집에서는 지에밥을 지은 뒤 퍼내 질그릇 등에 담아 한 김을 식히고, 그 위에 길금물을 섞은 다음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씌워 모셔두는 방식으로 엿물을 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8~10시간이 지나야 들쩍지근한 엿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엄니가 하신 방식은 속성으로 하기 위한 독창적인 것이었다. 길금가루를 물에 풀어 갈아 안친 뒤 앙금은 버리고 윗물만 쓰는 방식 대신 앙금까지 모두 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속성을 위한 엄니만의 노하우였다.

밥을 삭히는 데는 온도유지가 절대적이다. 너무 뜨거우면 당화효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반대로 너무 미지근하면 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적정온도가 50~60℃라는데, 엄니는 이를 손대중, 눈대중으로 기막히게 맞추셨다. 엄니의 방식으로 삭히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추 5시간 정도. 대충 밥알이 멀건 형체만 띠고 국물이 훨씬 흥건해지고 들척지근한 맛이 돌면 끝이다.

이렇게 될 때까지 수시로 솥 안을 살피며 불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잠시라도 졸거나 한눈을 팔아 식거나 졸아버리면 그야말로 산통이 깨지고 난리가 난다.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단물이 만들어지자 엄니는 베자루에 퍼 담아 물을 밭인다. 밖은 엄동의 추위로 꽁꽁 얼어붙었는데 엄니의 얼굴은 벌겋다 못해 땀마저 흐른다. 허리를 피고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이내 자루를 주물러대고, 나중엔 아예 홍두깨를 사용해 비틀어 짜내신다. 거칠게 흰 듯 탁한 빛이다. 이 국물을 다시 가마솥에서 고면 엿이 된다.

엄니의 손길이 빨라진다. 처음에는 불을 세게 하니 좁쌀만 한 거품이 일며 풀떡거리다 네 시간쯤 지나니 절반으로 졸아든다. 불을 확 줄여 뭉근하게 계속 고면서도 행여 누를세라 엿방망이를 쉴 새 없이 저어대시는 품이 수고롭기 짝이 없다. 점차 누르스름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동전만한 거품이 솥 전체를 덮으면서 젓기가 힘들 정도로 걸쭉해지고 이내 검붉은 빛이 돈다. 순간 엄니는 한 숟가락을 떠서 찬물에 떨어뜨리시며 빙긋이 웃으신다. 숟가락에서 묻어나는 끈끈한 실이 하늘하늘 거리는 게 영락없이 엿이 다 됐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엄니는 아직 액체 상태인 엿을 퍼 그릇에 담은 뒤 겨울이 한창인 대청마루로 가져가서는 미리 준비해 둔 판 위에 알맞은 두께로 펴신다. 엿반대기를 만드는 일이다. 밀이나 콩을 볶아 만든 가루를 판 위에 깔아 달라붙지 않게 했음은 물론이다. 날씨가 하 추운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꾸덕꾸덕해지자 엄니는 엿판 위에 긴 바느질자를 대고 칼로 어린 애 손바닥만 한 네모꼴로 모양 지어 자르신다. 후딱후딱 하시는 것 같은데 일매진 게 먹음직스럽다.

한편, 한 방울이라도 허실되지 않게 박박 긁었지만 그래도 솥바닥에는 끈적거리는 엿 기운이 남기 마련이어서 엄니는 물을 살짝 뿌린 뒤 튀밥을 부어 뭉쳐내시기도 했다. 일하는데 알짱알짱 걸리적거리지 말라는 통박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버틴 끝에 엄니한테 얻어먹던 튀밥뭉치며 엿누룽지의 구수하면서도 달콤한 그 맛이라니….

#. 엿 고기가 끝나면 고사떡처럼 이웃에게 돌렸다. 엄니가 애쓰신 보람 있게 잘 생긴 놈들을 목판에 보기 좋게 담아 이웃에 전하는 일이다. 점심때부터 동네를 돌며 “맛이나 보시라”는 인사와 함께 엿을 돌리고 나면 어둑어둑해지기 일쑤였다. 먹을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엿을 골 수 있는 집이 많지 않았던 까닭에 엿을 받은 집에서는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빈 그릇으로 보내는 법이 아니라며 감이며 밤, 고구마 등을 대신 싸주면 이를 받아오느라 심부름은 늘 곱빼기가 되곤 했다.

조선시대 사람 몰리는 곳엔 어김없이 엿장수

광주 '제5회 추억의 7080 충장축제'에서
거리퍼레이드에 참가한 시민들이
엿장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뉴시스>

 

#. 엿은 생각보다 역사가 오랜 식품이다. 후한 말 유희(劉煕)가 지은 <석명(釋名)>에 '묽은 엿은 이(飴), 된 엿은 당(餳), 당보다 딱딱하면서 탁한 엿은 포(餔)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6세기 전반에 나온 농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싹이 푸른 엿기름은 검은 엿을 만들 때 사용하고, 희게 싹을 틔운 엿기름은 흰 엿을 만드는데 사용한다’는 기록이 있어 엿의 역사가 오래됐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에 꿀이나 엿을 사용해 만든 과자류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전에 이미 중국으로부터 엿이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엿에 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은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행당맥락(杏餳麥酪)’이라고 해 '餳'은 단단한 엿이고 '酪'은 감주의 일종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때부터 엿기름을 이용한 엿이나 감주를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허균(許均·1569~1618)의 <도문대작(屠門大嚼ㆍ1611)>엔 흰 엿과 검은 엿이 기록돼 있고, 서울의 모습을 담은 <한경지략(漢京識略)>과 <조선만화(朝鮮漫畫ㆍ1909)> 등에 엿을 파는 모습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엿이 보편화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풍속화 <씨름>의 한 켠에 엿 파는 아이가 있다.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생몰년도 미상)도 엿 파는 아이를 그렸다. 그림 속의 두 소년 모두 엿 목판을 메고 가래엿을 팔고 있다.

요즘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도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엔 어김없이 엿장수가 있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경기도 화성 현륭원(顯隆園)에 행차했을 때 모습을 그린 ‘화성능행도(華城陵幸圖)’에는 왕의 행차주변에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들고 그 사이사이에 떡장수와 함께 엿장수가 있다.

심지어 과거시험장 안에도 들어가 엿을 팔기도 했다. 1773년 4월 9일 자 <영조실록>에는 사헌부 지평(持平) 이한일(李漢一)이 “이번 과거시험장은 엄숙하지 못해 떡과 엿, 술이며 담배를 현장에서 터놓고 팔았다”며 과거장의 질서를 단속하는 금난관(禁亂官)을 파면시킬 것을 왕에게 요청해 왕이 이에 따랐다는 내용이 나온다.

조무래기 몰려드는 엿불림 소리

#. 엿장수는 한 곳에 앉아 파는 좌상(坐商)과 엿목판을 가지고 다니며 파는 행상(行商)이 있다. 좌상은 넓적하고 얄팍하게 만든 엿반대기를 장방형의 엿고리에 담아놓고 주문에 따라 쇳조각을 대고 엿가위 등으로 쳐서 떼어 판다.

나이 어린 엿장수들은 가락을 지어 만든 엿이 담긴 목판의 좌우 양쪽에 천을 둘러 목에 감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찾아다니며 “엿 사려~.” 하는 ‘엿단쇠 소리’를 길게 늘이며 다녔다. ‘엿단쇠’는 엿장수가 엿을 사라는 뜻으로 “엿이 답니다(甘)!”라고 외치는 소리다. 또한 엿을 사라고 크게 외치는 일은 ‘엿불림’이라 한다.

“강원도 금강산/일만하고도 이천봉/달(돌) 많아 구암자/십구세야 나는/우리 딸이 만들어준/울릉도라 호박엿/둥기둥기 찹쌀엿/떡벌어졌구나 나발엿/허리가 잘쑥 장구엿/올곳볼곳 대추엿/네모야 반듯 수침엿/어어 떡벌어졌다 나발엿/이것저것 떨어진 것/운동화 백켤레 밑 떨어진 것도 좋고/신랑 각시 첫날 밤에/오줌 누다가 요강 빵꾸난 것도 쓴다/에헤 좋구 좋다……”〈경상남도 김해지방에서 채집된 ‘엿단쇠소리’의 일부〉

심청전에도 보면 뺑덕 어미가 “쌀을 주고 엿 사먹기”라는 구절과 “저 건너 불똥이 함씨에게 엿 값이 사른 냥”이란 구절이 보인다. 장사와 관계되는 말로는 ‘엿가위, 엿도가, 엿집’ 같은 것이 있다. 이 중 엿가위는 엿장수가 들고 다니는 큰 가위다. 이는 엿을 자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위로 철걱철걱 소리를 내 손님을 모으는 데 목적이 있다. 엿장수가 철걱철걱 엿가위 소리를 내며 「변강쇠가」의 ‘엿 타령’처럼 엿을 사라고 외쳐대면 동네 조무래기는 다 몰려들게 마련이었다.

“철컥 철커덕 철컥~”

엿의 양은 ‘엿장수 마음대로’

#. 시골에서는 현금 대신 곡식을 내어 엿을 바꾸어 먹기도 했던 까닭에 농촌으로 다니는 엿장수는 목판 밑에 직사각형의 대광주리를 받쳐 메고 다녔다. 리어카가 등장하고부터는 여러 종류의 엿이 담긴 목판을 싣고 다니며 현금은 물론 헌책·쇠·빈병 따위의 고물에다 심지어 못 입는 옷이나 솜이불 등 넝마, 고추씨, 묵은 된장 등을 받고 엿과 바꾸어 주기도 했다. 이때 엿의 양을 엿장수가 임의로 결정하기 때문에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도 생겨났다. 엿장수들은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면 리어카에 카바이트로 간델라등을 밝혀 놓아 도시의 밤을 수놓기도 했다.

옛날엔 엿장수치고 떠돌이가 아닌 사람이 드물었다. 일제 때 독립투사들이 왜놈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위장을 많이 했던 것도 엿장수였다. 엿가위 하나 들고 이 고을 저 고을을 돌아다니다 해가 지면 가까운 엿집에 찾아가 하루 밤 신세를 지곤 했다. 이런 까닭에 엿장수는 천대받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거지도 엿장수한텐 반말한다’는 말까지 생겨났을까마는 아이들에게도 엿장수는 반가운 손님이면서도 놀림감이었다.

“엿장수 똥구멍은 끈끈해~”

#. 엿의 종류는 우선 검붉은 빛깔의 ‘검은엿’과 이를 자꾸 잡아 늘여 희게 만든 ‘흰엿’이 있다. 덜 고아 빛깔이 붉은 것은 ‘붉은엿’이라 한다. 굳지 않을 만큼 묽게 곤 엿은 ‘물엿(조청)’이라 하고, 단단한 엿은 ‘강엿’이라 한다. 가락으로 된 것은 ‘가락엿’이라 하고, 엿목판에 반반하게 깔려 있는 것은 흔히 ‘갱엿’, 또는 ‘엿자박(엿반대기)’라 하고, 밤톨만큼씩 동그랗게 만들어 깨를 묻힌 것은 ‘밤엿(栗糖)’이라 한다.

엿은 굳힐 때 넣는 재료에 따라서 호콩엿, 깨엿, 콩엿, 호두엿, 잣엿, 후추엿, 대추 엿, 박하 엿 등으로 구분되고 호두, 대추, 실백 등을 박아서 굳힌 것은 ‘약엿’이라 한다.

엿은 세찬 중 필수적인 음식이었으므로 겨울철이 되면 집집마다 엿을 고았다. 따라서 장이나 술이 지역에 따라, 집안마다 각각 풍미가 다르듯이 엿 또한 가정이나 지방별로 독특한 엿이 개발됐다.

강원도에서는 전반적으로 옥수수로 만든 ‘황골엿’이 유명했고, 충청도에서는 ‘무엿’을, 전라도에서는 ‘고구마엿’을 각각 많이 만들었다. 제주도에선 엿에다 닭이나 꿩 고기를 넣어 만든 ‘닭엿’ ‘꿩엿’이 유명했다. 차조를 당화시킨 물에 닭고기나 꿩고기를 넣어 짙은 갈색이 될 때까지 푹 고아 만든 것으로 보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는 음식이다.

황해도지방은 조청에 찹쌀미숫가루를 넣어 만든 태식이 유명하다. 근친 갔던 새색시가 시가로 돌아올 때는 나무함지박에 엿을 하나 가득히 만들어 가지고 와서 일가친척에게 돌렸다고 한다. 이밖에 개성 밤엿, 광주 백당, 창평 쌀엿 등이 특히 유명했다.

오늘날 울릉도를 대표하는 특산품으로 ‘호박엿’이 있는데 ‘후박엿’의 와전이다. 본디는 엿물에 울릉도 특산인 후박나무의 껍질을 우려낸 물을 첨가해 들척지근하면서도 쌉싸래한, 독특한 맛이 일품이어서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는’ 후박엿이었다. 이 후박엿은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육지에 전래되면서 호박엿으로 잘못 알려졌다. 여기에다 호박에는 전분이 많이 함유돼 있기 때문에 엿기름으로 삭혀서 엿을 만들 수 있는데다 실제로 울릉도에서 호박을 이용해 엿을 만드는 바람에 아예 ‘울릉도 호박엿’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오늘날 시중에서 유통되는 ‘울릉도 호박엿’은 엿 중에서 맛과 품질이 좋은 엿을 칭하는 말로 바뀌었고, 관광 상품으로 울릉도에서 시판되는 ‘울릉도 호박엿’은 대부분 울릉도에서 많이 생산되는 감자를 이용해 만들고 있다.

잘 만든 엿은 어떤 당분보다 좋은 효과가 있다

#. 동의보감에는 ‘잘 만든 엿은 어떤 당분보다 좋은 효과가 있다’고 돼 있다. 특히 검은 엿(갱엿)은 ‘허약한 기력을 보하고 오장을 윤택하게 하며 가래와 기침을 멎게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옛날엔 몸이 허약한 환자나 출산한 여성한테 엿을 고아 먹이곤 했다.

조선시대에는 엿이 왕과 왕비의 밤참거리 중 하나였다. 왕과 왕비는 새벽상, 아침상, 점심상, 저녁상, 밤참 등 하루 다섯 번 수라상을 받았는데, 엿은 약과, 경단, 차 등과 함께 밤참의 주요 메뉴였던 것이다. 영화 <광해>에서 왕(광해군·이병헌 분)이 허균(유승룡 분)과 대화를 나누다 야식이 들어오자 친히 엿을 하나 집어 들고 “엿 드시라”는 대목이 나온다.

실제로 엿의 주성분인 엿당은 체내에서 포도당으로 분해돼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엿기름에도 비타민 B1과 엽산·철분·칼슘 등의 영양소가 풍부하다.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 집에 엿 고는 냄새가 진동한다’는 옛말이 있었을 정도다. 궁중에서 세자한테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물엿(조청)을 두 숟가락 먹인 것도,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선비들의 허리춤에 엿을 달아 준 것도 다 까닭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엿의 맥아당은 빠른 흡수 속도로 다량의 포도당을 공급해 두뇌 활동을 활발하게 해주고, 덱스트린은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오늘날에도 입시 때마다 엿이 등장하곤 하는 것도 이런 역사가 전해진 덕분(?)인데, 오늘날에는 엿의 좋은 성분보다는 끈적끈적한 속성에 기대어 ‘철썩 붙으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 ‘복엿 먹이기’란 것도 있었다. 엿이 끈끈하면서 죽죽 잘 늘어나는 것처럼 복이 달라붙고 늘어나라는 의미에서 행해지던 세시풍속이었다. 정초나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엿을 먹는 풍속으로 이때 먹는 엿은 몸에 좋다고 해 ‘복엿’이라 불렀다.

복엿을 먹으면 얼굴에 버짐이 피지 않으며, 입맛이 없는 여름철에도 보리밥이 꿀맛처럼 달 정도로 일 년 내내 입맛이 좋아져서 무엇이든 맛있게 먹게 된다고 믿었다. 또한 복엿을 먹으면 엿가락처럼 살림이 늘어나서 부자가 된다고 여기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 엿 대신 가래떡에 조청을 발라먹는 것도 마찬가지 풍속이다.

혼례를 치른 뒤 신부 집에서 신랑 집으로 보내는 이바지 음식에도 엿이 들어 있었던 것도 신랑신부가 엿가락처럼 착 달라붙어 백년해로하라는 뜻에서였다. 물론 엿의 달콤한 맛으로 시댁 식구들의 마음을 잡으려는 친정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이 깔려있을 테지만 말이다.

#. 엿이란 단어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바로 ‘엿 먹어라’는 욕 때문이다. 이 욕의 유래로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1964년 서울 중학교 입시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당시 자연과목 18번 문제가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을 고르라’였고 디아스타제, 꿀, 녹말, 무즙이 보기로 제시됐다. 출제 측이 요구한 정답은 디아스타제였다. 그런데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있음을 확인한 불합격생의 부모들이 실제로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문교부(지금의 교육부)와 시교육청에 찾아가 던지며 “엿 먹어보라”고 항의했다. 결국 무즙도 정답 처리됐고 소송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구제됐는데 이때부터 ‘엿 먹으라’는 말이 욕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참 가소롭고 터무니없는 얘기다.

왜냐하면 이른바 ‘무즙파동’보다 훨씬 전인 1920년대에 이미 ‘엿 먹어라’는 욕이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백남(尹白南)이 1929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신석수호전(新釋水滸傳)’ 3월17일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아 저런 죽일 놈 봐라 배를 돌리라니까…아 이놈아 네 목숨이 앗갑지 안흐냐.”

“이놈들아 엿이나 먹어라 나를 누군 줄 아느냐 흥 나는 장소공(張梢公)이다.”

분명히 오늘날과 같은 뉘앙스의 욕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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