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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8 19:19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단독] 장영자 “520억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준 해외공작금”
[단독] 장영자 “520억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준 해외공작금”
  • 이호 대기자
  • 승인 2019.01.17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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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이 공작금으로 쓰고 남은 돈”...장씨가 가짜 CD 보유하게 된 경위 밝혀져야

[인사이트코리아=이호 대기자] 1980년대 최대 사기사건의 주역이라는 세칭 ‘큰손 장영자’ 씨가 도합 30년 넘는 옥중생활을 마감하고 만기 출소했던 2015년 1월, 그녀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것이 세상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74살의 나이로 출소 3년 만인 2018년 1월, 또다시 사기사건으로 네 번째 구속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세간의 이슈가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지만 정작 언론에서는 모르고 있었다.

거의 1년여만인 2018년 12월 20일, SBS가 잊혀져갔던 80년대 희대의 사기사건 주역 큰손 장영자 씨에 대해 “또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돼 재판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라는 단독보도를 하면서 충격파를 던졌다.

장씨에 대한 범죄행위는 일반적인 사기사건처럼 몇 줄의 기사로 요약하기에는 그녀의 이름이 너무 컸다. ‘큰손 장영자’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30~40대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할 수도 있는 그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저지른 사기사건으로 1982년 5월 4일 첫 번째 구속됐을 때 나타난 사기액수와 인맥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목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 계성여고를 거쳐 숙명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장씨는 교생실습을 나갔던 무렵 성폭행을 당해 첫딸을 낳았다는 것을 근년에 필자에게 언급하기도 했지만 재학시절 빼어난 미모와 뛰어난 언변, 화려한 무용과 문학적 재능 등으로 단연 돋보였으며 5월의 여왕 ‘메이퀸’에 뽑히기도 했던 터였다.

‘건국 이래 최대 금융 사기사건 주역’ 장영자

그런 그녀가 ‘건국 이래 최대의 금융 사기사건 주역’이라거나 2016년 11월 3일 구속된 최순실 사건이 터졌을 때 ‘희대의 금융사건 주역 장영자 vs 희대의 국정농단 주역 최순실’이라고 빗대는 평이 나올 정도로 장씨의 80년대 사건은 규모면에서도 엄청났고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의 대명사처럼 불리기도 했지만 그러했던 배경은 그녀의 남편과 집안이 속칭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38세였던 1982년, 그녀의 남편은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이면서 유정회(유신정우회:대통령이 지명하는 의원으로서 지금의 비례대표와 직무가 유사하지만 임기는 2년이다)국회의원을 지낸 이철희 장군이었고,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의 부친인 고(故) 이규동 전 장군의 친동생인 고(故) 이규광 씨의 처제였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부인이 장씨의 고종사촌이었다. 그러니까 장씨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으로 보면 처삼촌의 처제였던 것이다.

사회적인 파장도 정치권을 흔들어놓았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공영토건과 일신제강을 비롯한 중견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씨를 비롯해 조흥은행장과 상업은행장 등 32명이 구속 됐으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민정당 창당주역이었던 권정달 사무총장과 두 명의 법무부장관까지 경질됐다. 이어서 장영자 사건 처리 문제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항명’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권력실세 중의 실세였던 허화평 당시 정무1수석마저 사임할 만큼 온통 우제지어(牛蹄之漁) 상황을 만들었다.

38세의 나이에 첫 구속돼 15년 형을 선고받은 것도 경제사범으로는 최초였지만 82년 당시 남편 이철희 씨와 함께 총 7111억 원 중 6404억 원을 할인해 사용한 어음사기였다는 것도 놀라왔다. 그때의 검찰수사만 해도 이종남 부장검사(전 법무부 장관), 이명재 주임검사(전 검찰총장), 정홍원 검사(전 국무총리), 박주선 검사(현 국회의원), 안대희 검사(전 대법관) 등 국내 최고의 수사 베테랑들이 동원될 정도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 수사 상황에서도 ‘경제는 유통’이라고 자신의 행위를 경제이론에 접목시키려 했고 때로는 자신을 ‘권력투쟁의 희생양’이라며 난데없이 정치권과 결부시키려 애를 쓰기도 했지만 결국 이때 그녀에게 언론이 붙여준 닉네임은 ‘큰손’이었다. 희대의 어음사기꾼으로 ‘큰손 장영자’가 각인된 것이다.

80년대의 큰손 장영자 씨가 교도소에서 출소한지 3년 만에 “불교재단 설립, 브루나이 사업투자, 삼성전자 주식 등을 내세운 사기로 가로챈 액수만 6억2천만 원에 이른다”는 검찰 발표와 함께 그녀가 네 번째 구속됐다는 2018년 12월 20일 SBS의 뉴스는 쇼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9년 1월 12일, SBS의 간판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큰손 장영자 씨를 분해했다. 분해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척까지 연루됐다(장씨 표현)는 구권사기사건에 이르기까지 세 번에 걸쳐 파헤칠 수 있는 구멍은 다 헤집고 뒤집었을 텐데 또 사기사건이라 하니 이제는 장 씨를 분해해보는 것밖에 남지 않았겠다 싶어서다.

필자는 기자이기에 앞서 작가로서 장영자 회장(전직 직함으로 호칭)을 구속되기 근전까지 만났다. 장씨의 회고록 집필을 부탁 받아서였다.

장영자 “금융권력도 쟁취, 직접 나서야 이뤄진다”

필자가 아는 한, 장씨는 이른바 ‘금융권력’에 끝없는 야망을 보여 온 사람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시로서 막강한 권력의 집안 배경을 바탕으로 그녀의 개인적인 야심을 채우려 했다고 볼 수도 있고, 비록 허황된 충정이라 하더라도 국가경제를 위해 자신이 기여할 수 있다는 명분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기도 했다. 이것은 평소 장씨가 강조하거나 또는 힘주어 장시간 얘기했던 내용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장씨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지 밀려오는 게 아니듯이, 금융권력(경제권력)도 쟁취다. 직접 나서야 이뤄진다.”

이러한 발언의 행간을 통해 장씨의 그동안 행위들을 이해하고 분석과 접근을 해야 사건의 본질이 보이지 않겠나 싶기도 한데, 그녀가 필자에게 들려준 말이다.

“재벌들, 어느 재벌이 돈 있나. 자기 돈 있나? 재벌들한테 경제 살리라고, 은행 돈 쓰라 해놓고 전부 재벌이 아니라 ‘죄벌’들로 만들고 있는 게 정치 권력자들 아니냐. 국가경제가 뭔지도 모르면서. 금융이 뭔지 아는 사람이 한국에는 세 사람 정도뿐이다. 나에 대해 전부 소설 쓰고 있다. 내용도 모르면서.”

이런 말도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를 너무 모르고 공부를 하지 않은 정권이 등장하면 결국 국민들이 혹독한 피해에 시달린다는 걸 우리는 경험하고 있지 않느냐. 권력에도 철학이 있어야 하는데 그 어떤 철학도 국민을 감동시킬 정도를 보여주지 못하니까 내부고발이니 정보유출이니 공직기강 해이니 하는 문제가 자꾸 발생하는 건데, 추상같은 최고 권력자가 금융이 뭔지, 경제가 뭔지를 알고 중심을 꽉 잡아줬으면 장영자가 나타나지도 못했고 장영자 사건 안 일어났다.”

어느 시절을 말하는지 헷갈리게 했지만 그녀의 논리는 거침없이 계속됐다.

“최고 권력을 잡은 사람이 대통령의 철학이 뭔지도 모르고 대통령 연습만 하다가 경제가 뭔지도 모르지, 금융은 더 모르지, 똑똑한 참모들이 이런저런 문제를 자꾸 제기하고, 사채시장, 기업계, 금융계, 여기저기서 말도 되지 않는 보고가 자꾸 들어가니까 대통령이 쥐고 있는 세 개의 칼을 휘두른 게 장영자 사건 아니냐. 나를 희생시킨 거야. 그때 사실 검찰, 국세청, 금융계도 막상 사기사건이라 해놓고 봐도 왜 사기가 되는지도 모르고, 사기법에 꿰어 맞추려고 하니까 이건 이렇게 사기고 저건 저렇게 사기라고 말이야. 금융질서를 어지럽혔다고 했는데 뭐가 금융질서라는 건지, 금융질서의 개념이 뭔지 교과서에 하나도 없는데 내가 새로운 금융수법을 쓰니까 책에도 없는 방법이다 보니 불법이라 하고 사기라고 난리치고! 내가 하라는 대로 했으면 절대 기업들 쓰러지지 않았어. 그거 전부 금융코치를 내가 했으면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했을 거다.”

장씨 묵었던 K호텔 1102호실에 도자기 박스 가득

장씨의 주장은 자기변명으로 그칠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그것이…’의 테마 중 중요 부분을 차지하는 522억여 원(522억5000만 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의 진위여부와, 호텔(양재동 소재 K호텔)에서 그동안 장씨의 밀린 숙박비 때문에 압수한 도자기가 38점 밖에 없었다는 내용은 상당히 의아했다.

‘그것이…’ 제작팀은 많은 수고를 하며 현장 취재와 장씨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했음을 보여주었고, 이미 3번씩이나 세상을 들썩거리게 했던 사건의 주역을 또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려는 그 열성이 대단하게 보여 질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사기는 필자도 알 수 없으나 522억 원의 예금증서가 가짜라는 것은 갸웃하게 만들었다.

물론 방송에서 사기를 뒷받침하는 증언이나 사례 등에서 설명이 부족했다는 것은 아니다. 분석도 당위성이 있었다. 그런데 장씨로부터 필자가 직접 들었던 522억여 원은 남편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해외공작자금으로 받아서 사용하다가 남은 돈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부분이 정확히 밝혀져야 하지 않겠는가. 방송이 나간 후 어느 지인으로부터 필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방송에서 본 똑같은 수표(예금증서)인데 도장의 위치가 다르게 찍혔고, 수표 번호 끝 숫자가 다른 것이 있더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아직도 그런 수표가 시중에 나돌고 있다는 얘기였다.

방송에서는 숱한 고생을 하며 취재한 결과 가짜로 판명됐다고 했으나 어떤 과정으로 장영자 씨가 그 예금증서를 소유하게 됐는지는 밝혀져야 했다. 그래야 장씨도 애초부터 가짜를 가졌는지, 장씨 주장대로 자기 것은 틀림없이 진짜인지 드러날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어딘가에서 돌고 있다는 제보가 위험하지 않도록 당국이 밝혀줘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도자기가 38점 밖에 없었다는 내용은 더욱 의아스러웠다. 호텔 측의 주장을 의심한다는 것이 아니다. 압수에 따른 집행을 하자면 법적조치에 따라 입회자가 분명 있을 것이고, 처분 과정에서도 정확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장씨를 만나던 근전까지도 그녀가 생활했던 양재동 소재 K호텔 1102호실에는 창가에 K비서가 사용하는 간이용 침대를 제외하고 포장된 도자기 박스가 빈틈없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매우 아꼈던 값비싼 도자기 하나를 비서가 실수로 깨트렸던 날, 장씨는 울상을 지으며 1600점을 (1102호실로)옮겨놨다고 직접 얘기했었다.

그랬던 도자기가 진품 가품을 차치하고 38점 밖에 없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다. 장 씨가 다른 것은 몰라도 필자에게 도자기 숫자를 허황되게 부풀려 말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을 일이다.

그런 점에서 네 번째 사기사건으로 가로챈 액수가 6억2000만 원 때문이라는 것도 필자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동안의 회고와 언급된 내용들을 반추했을 때 아직 적지 않은 부동산들이 있다 했고, 그토록 쪼그라진 여인이 분명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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