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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9 18:38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황금돼지의 해', 진짜 돈이 굴러 들어올까
‘황금돼지의 해', 진짜 돈이 굴러 들어올까
  • 이만훈 기자
  • 승인 2018.12.31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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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己亥年)’에 돌아보는 민초들의 삶과 돼지

 

2019년은 ‘돼지 띠’의 해다. 그것은 해마다 우리네 방식으로 붙이는 타이틀 상 기해년(己亥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해년은 왜 돼지띠이고, 그 것은 무슨 의미일까? 더구나 이번엔 돼지 중에서도 ‘황금돼지’띠라며 야단(?)들인데….

‘띠’라는 코드, 거기에는 심오한 철학과 논리가 숨어 있다. 물론 그 바탕은 동양식 우주론인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이다. 해와 달, 하늘과 땅으로 대별 상징되는 음양과 세상의 기본요소인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다섯 가지가 서로 감응·작용해 우주가 운용된다는 것을 기본원리로 하고 있는 사상체계이다.

‘기해년’은 육십갑자 중 36번째 해로 십이지 상 ‘해(亥)’에 해당하는 돼지를 띠로 한다. 육십갑자란 바로 음(地支)과 양(天干)이 서로 어울리며 세상을 빚어내고 움직이게 하는 조화의 원리를 60주기로 표현한 우주순환의 풀이다. 십간이 해(日)요 몸통이라면, 12지는 달(月)이요 가지로, 10간(干) 12지(支)가 우주의 진리를 간직해 모든 자연의 섭리를 지배한다는 철학이 그 바탕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사람이란 하늘의 이치와 땅의 이치의 합작으로 생겨난 존재요, 그 힘과 조화에 의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과 생활관으로 연결되었다. 다시 말해 사람은 천지의 힘, 즉 음양의 이치와 조화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동양사상에서 음양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오행(五行)이다. 오행은 음양에서 파생된 것으로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요소인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를 말하는데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의 작용으로 역동성을 발휘한다.

방위·색(色)·계절·장기(臟器)·맛(味)·감정·오상(五常: 仁·義·禮·智·信)는 물론 간지에도 같은 원리로 적용된다. 천간은 甲·乙, 丙·丁, 戊·己, 庚·申, 壬·癸가 각각 짝을 이뤄 목·화·토·금·수에 대응되고, 지지 또한 寅·卯는 木, 巳·午는 火, 辛·酉는 金, 亥·子는 水에 대응되고 나머지 辰·未·戌·丑은 土가 된다.

‘돼지’는 시간으론 오후 9~11시, 달은 10월, 방위론 북북서(北北西), 음양은 음, 오행은 수(水)에 각각 해당한다. 또 십이지를 선행해 제어하는 천간인 ‘기(己)’는 음양으론 음, 오행으론 토에 해당하므로 결론적으로 ‘기해년’은 ‘음기가 성한 돼지의 해’인 것이다.

돼지=재물의 유래

#. 돼지는 한자로 ‘豚(돈)’, ‘猪(저)’, ‘豕(시)’, ‘彘(체)’, ‘亥(해)’ 등으로 쓰는데 이 가운데 흔히 집돼지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豚이 화폐를 뜻하는 우리말 ‘돈’과 발음이 같아 돼지하면 돈, 재물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떠올려지게 마련이다.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고 돼지띠가 잘 산다는 믿음도 여기에서 유래된 우리네 풍속이다.

다만 ‘황금 돼지의 해’ 운운하는 것은 천간이 토이다보니 오행에 따른 오방색(五方色) 가운데 토의 색인 누런색(黃色)을 강조하는 듯한 데 장삿속으로 떠벌리는 것일 뿐 별 의미는 없다. 누렇다고 다 황금은 아니잖은가. 누런 돼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난해는 ‘황금개띠’라고들 난리를 쳤는데 올해 또 다시 ‘황금돼지’ 운운하는 것이 뭔가 어색하지 않은가. 더구나 꼭 12년 전인 2007년 정해년(丁亥年)에도 丁이 오행상 ‘붉은색(朱,赤,紅)’인 것을 굳이 불꽃의 색이라고 비튼 뒤 이는 다시 황금색과 통한다는 억지를 써가며 “600년 만에 맞는 황금돼지의 해”라고 설레발치지 않았던가 말이다.

사실 띠 동물에 색깔을 입히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거 없는 유행이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가 생겨난 게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이 역시 상술의 영향도 받았을 테지만 기본적으로 황금을 좋아하는 중국인이 ‘황금+재물=황금돼지’를, 용의 전지전능과 상서로움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청운을 상징하는 ‘푸른색+출세=청룡’을 자가 발전시켜 온 혐의가 짙다.

우리가 흔히 ‘백말띠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고 하는 것도 일본에서 들어온 발칙한(?) 오류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는 안 그럴까마는 특히 일본에선 드센 여자를 싫어하는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며느리가 무늬만 여자이지 생김새나 품성 등 모든 것이 남자 치고도 거친 형이었다는 것이고, 그 여자가 태어난 해가 마침 병오생으로 ‘붉은 말띠’였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병오’가 ‘경오’로 바뀌면서 이른바 ‘백말 띠의 저주’가 생겼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실제로 1906년 적말띠 여성들이 결혼시장에서 배제되는 바람에 대체로 가난한 독신으로 살았는데, 이런 결과가 다시 피드백 현상을 일으켜 1966년 적말띠 해에는 출산율이 유례없이 감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특히 따지기 좋아하던 조선시대에서 조차 말띠 왕비가 네 명(성종의 후비 정현왕후, 인조비 인열왕후, 효종비 인선왕후, 현종비 명성왕후)이나 됐을 정도로 말띠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을 뿐더러 띠 동물에 색을 입혀 그 해의 운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어떤 역사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기해년 생, 강인한 사업가 기질 타고나

#. 어쨌든 기해년 생은 ‘정직하고 솔직 단순하며 아주 강인한 돼지의 정기’를 타고 난다는 게 띠의 철학이다. 일반적으로 돼지띠인 사람들은 침착하고 이해심이 많아 친구들의 잘못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선량한 성격을 타고나며 재산을 훌륭히 사용해 사회활동과 자선사업을 즐겨한다. 한마디로 동정심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속이기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영리하다. 재산을 잘 모을 수 있는 것도 이렇게 어리숙한 듯 하면서도 잇속을 챙길 줄 알기 때문이다. 저돌적이란 말이 있듯이 튼튼하고 용감해 주어진 임무에 온갖 힘을 기울여 몰두해 틀림없이 그 일을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것도 돼지띠의 사업가적 기질이다.

이는 모두 돼지의 특성을 바탕으로 한 해석으로 불교의 십이지신장(十二支神將)에서 돼지에 해당하는 비갈라대장(毘羯羅大將)은 가난하여 의복이 없는 사람에게 훌륭한 옷을 얻게 하려는 원을 가진 아미타불의 화신이란 점과 통한다.

#. 세계에 존재하는 야생 돼지의 유전 정보를 분석하면 돼지의 조상은 약 350만~530만 년 전인 신생대 초기 플라이오세(Pliocene) 때 동남아시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인지 지금도 동남아시아에는 다양한 형태의 돼지가 많이 살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돼지는 여러 형태로 분화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출발한 돼지는 유럽, 아시아 및 아프리카 대륙으로 서식지를 확장했다. 이때만 해도 야생돼지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야생 멧돼지의 가축화가 진행되면서 인류와 동행을 시작했다. ‘가축 돼지’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가축화된 돼지는 멧돼지(Sus scrofa)에서 개량된 품종이다. 인간의 이동과 상업 활동으로 돼지가 없었던 호주, 남북아메리카 및 기타 여러 섬에도 돼지가 서식하게 됐다.

돼지는 현재 지구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살고 있는 대형 포유동물이다. 국제식량기구(FAO)의 ‘가축 종(種) 다양성정보’에 등록된 1200여 가축 돼지 외에도 멧돼지, 덤불돼지, 수염돼지 등 다양한 야생돼지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각각 형태나 생리학적 특징이 다르다.

그동안 인간은 지방형, 베이컨형, 살코기형 등 용도에 따라 돼지를 다양하게 개량해 왔다. 예를 들면 1800년대에는 지방이 많은 돼지일수록 가격이 높았다. 돼지 지방에서 글리세린을 분리해 비누와 초를 만드는 수요가 많았으며, 돼지 지방을 요리용 기름으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한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유가 발견되면서 이러한 수요는 사라졌고, 인류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베이컨이나 살코기를 많이 얻기 위해 돼지는 허리가 긴 날씬한 모습으로 개량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 표현형을 만들 수 있도록 돼지의 유전자가 변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 우리나라의 토종 돼지는 중국의 멧돼지 또는 동남아시아의 멧돼지에서 유래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삼국지’ 부여조에는 저가(猪加)라고 하는 관직 명칭이 있었고, 한조에는 “또한 호주에서는 소 또는 돼지를 기르기를 좋아한다(又有胡州好養牛及猪)”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약 2000년 전에 돼지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토종 돼지는 흑색으로 몸이 작고 주둥이가 길며 체질이 강건하여, 질병에 잘 견디는 장점이 있다. 주로 산간지방에서 사육되었으나 경제성이 떨어져 요크셔, 버크셔, 듀록 등 덩치가 크게 자라는 외래종이 수입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제주 흑돼지 등 이른바 요즘 토종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유전자 세탁 등을 통해 근래에 복원된 돼지들이다.

#. 돼지의 옛 이름은 ‘돝’으로 여기에 새끼를 뜻하는 ‘아지’가 붙어 ‘돝+아지=돝아지→도아지→돼지’가 됐는데 일반적으로 돼지하면 다산(多産)의 아이콘이요, 부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돼지는 자궁이 깊어 한 번에 열두어 마리의 새끼를 낳는 게 비일비재하다. 또 임신기간이 114일인데다 젖을 뗀지 일주일이면 다시 발정이 돼 연중 번식도 가능할 정도이고 생후 8~10개월부터 무려 10년 동안이나 출산이 가능(산술적으로 어미 한 마리가 10년간 200마리를 낳을 수 있다)하니 자손이 귀한 집에서 돼지의 ‘능력’을 부러워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실제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에스파냐 인들이 돼지 수십 마리를 풀어놓고 본국에 돌아갔다가 다시 와보니 몇 년 만에 무려 3만 마리로 불어나 있었을 정도다.

엄니의 유일한 수입원이자 희망이었다

#. ‘家’자가 말해주듯이 돼지는 인류와 역사를 오랜 동안 함께 해온 가축이지만 막상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 돼지는 소나 토끼처럼 꼴만 먹여선 키울 수 없는 놈이어서 아무 거나 잘 먹는 잡식성이라고는 하나 사람들도 먹을 게 늘 부족하던 판에 제몫을 떼어줘야 했으니 말이다. 물론 고통(?)을 견디면 나중엔 맛있는 고기를 맛볼 수 있겠지만 당장 죽지 않으려면 허기진 제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시절에도 우리 집엔 늘 돼지가 있었다. 부자는 아닐지라도 끼니는 거르지 않았으니 가능했을 테다. 농사가 본업이던 때라 가축을 키우는 건 절반은 가욋일이지만 온 식구가 매달려야 할 정도로 품이 드는 일이었다. 식구나 마찬가지여서 생구(生口)로 대접한 소는 당연히 가장인 남정네가 담당했고, 먹이가 부엌에 달려있는 개·돼지·고양이 등은 안식구가 맡았으며, 비교적 먹이를 주기 쉬운 닭·염소·토끼 등은 애들 몫이었다.

우리 집도 다르지 않아 돼지를 키우는 건 엄니의 일이었다. 돼지 사육의 팔 할은 먹이를 주는 일이다. 돼지우리를 치우는 건 바깥의 일이지만 끼니마다 먹이를 챙겨주는 건 전적으로 엄니가 하셨다. 그래서 돼지란 놈은 내둥 자고 있다가도 먼발치에서 엄니의 인기척이라도 들릴라치면 그 시원찮은 꼬리를 살랑대며 꿀꿀거리곤 했다.

돼지우리는 대문간 봉당 옆 외양간 귀퉁이에 있다가 바깥마당 가장자리로, 나중엔 뒷간 옆으로 옮겨갔다. 돼지의 똥오줌으로 범벅이 된 냄새하며 들끓는 파리·모기로부터 떨어지기 위한 조치였지만 부엌과는 점점 더 멀어져 돼지죽을 날라야 하는 엄니로선 그만큼 힘이 더 들 수밖에 없었다. 돼지는 그야말로 ‘돼지’여서 고작 태어난 지 서너 달 밖에 안 된 놈도 한 자배기씩 먹어댔다. 끼니를 대는 게 보통 일이 아닌 이유다.

돼지죽은 보통 설거지를 통해 음식찌꺼기가 들어있는 개숫물에 밥 지을 때 나오는 뜨물을 섞은 다음 쌀이나 보리쌀의 등겨를 한두 바가지 넣고 휘휘 저은 것이었다. 여름철엔 끓이지 않은 채 그대로 주기도 하지만 봄가을, 겨울엔 죽을 쒀 주었다. 때로는 쉰밥에다 호박, 무, 배추, 감자, 고구마 등도 숭겅숭겅 썰어 넣고 끓여주면 돼지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돼지가 기분이 좋으면 사람마냥 주둥이 꼬리가 올라가고 울음소리도 낮고 부드러운 톤으로 리드미컬하게 바뀐다. 출산을 앞둔 암퇘지에게 개구리를 한 깡통 잡아 시래기와 미역을 넣고 푹 고은 특식을 주자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굴굴”거리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하지만 이런 호사는 돼지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고 대부분 영양가 없는 멀국으로 배를 채우는 게 고작이었다. 주인이 땅바닥에 떨어진 밥알 하나도 주어먹고 쉰 보리밥은 물에 헹궈 먹는 가하면 등겨마저 눈곱만큼이나 남아있을 곡식가루를 물에 내려 개떡을 만들어먹던 시절이었으니….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록 토종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다 자란 놈이 기껏해야 150근이 고작이었다. 당시 돼지는 엄니의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고방열쇠를 틀어쥐고 있던 호랑이 할머니께서도 눈감아 주셨다. 돼지를 판돈을 꿍쳐놨다가 벼르던 그릇을 사고, 자식들 설빔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래서 애써 키운 돼지가 근수가 안 나오면 속상해 하셨다. 그만큼 돈을 적게 받기 때문이었다. 눈치가 뻔한 자식들이 봄부터 늦가을까지 산과 들, 냇가로 쏘다니며 올챙이, 개구리, 물고기, 뱀 등을 잡아 돼지한테 주면 엄니가 내심 좋아하신 까닭도 여기에 있다. 엄니는 돼지를 팔 때가 되면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요량으로 며칠 전부터 할머니 몰래 콩을 한 됫박씩 돼지죽에 넣어주기도 했다.

엄니는 돼지를 팔기 무섭게 또 다시 새끼돼지를 들여놓곤 하셨는데 그때마다 호도독 호도독 뛰어다니는 놈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곤 했다. 돼지는 당신의 또 다른 희망이었다.

#. 돼지는 억울한 동물이기도 하다. 오래 전부터 더럽고 지저분한 동물의 대명사로 오해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가축가운데 돼지만큼 깨끗한 동물도 없다. 돼지는 두터운 피하지방으로 인해 땀샘이 발달하지 않아 체열을 식히려면 오줌 등 배설물을 몸에 발라 기화열을 이용해야 하는데 자기 배설물에 뒹굴어 오물을 묻히는 걸 본 인간들이 남의 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멋대로 ‘더러운 동물’이란 낙인을 찍은 것이다.

중학생 시절인 1960년대 4H 활동을 하면서 농촌지도소의 지도를 받아 돼지를 키운 적이 있는데 당시 잠자리와 함께 목욕탕을 만들어주니 목욕탕에서 몸을 식힌 뒤 가려우면 긁기용 말뚝에 비벼대고 대소변도 목욕물 도랑에서만 가려 보는 등 그렇게 청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오해는 아주 오래된 것이어서 유대교인과 이슬람교도들의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으로 쇠고기에 비해 돼지고기를 덜 쳐주는 배경이 됐다.

돼지가 미련하다는 것도 잘못이다. 미국 에모리대 연구에 따르면 돼지는 개나 고양이보다도 지능이 높은데다 뛰어난 기억력도 가지고 있어 다른 돼지와 모의 전투를 하거나 놀기도 하며, 협동 작업을 하거나 공감하는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 돼지는 특히 조이스틱을 사용해 화면의 커서를 움직일 줄도 알 정도인데 이는 돼지 말고는 영장류인 침팬지만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고기부터 신약개발까지…버릴 것 없는 돼지

#. 돼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돼지고기의 성질이 냉하므로 많이 먹으면 안 되며 약의 효과를 없앤다고 해 경계했지만 쇠고기는 왕후장상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어서 서민들한테는 사실상 최고의 고기였다. 오죽했으면 돼지 한 마리를 무려 32가지로 나누어 먹었을까? 돼지고기는 크게 안심, 등심, 목심, 앞다리, 뒷다리, 삼겹살, 갈비, 부산물 등 8가지 부위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다시 부위별로 다음과 같이 세분해 맛을 즐긴다.

▲안심: 안심살 ▲등심: 등심살·알등심살·등심덧살·가부리살 ▲목심: 목심살 ▲앞다리: 앞다리살·앞사태살·항정살 ▲뒷다리: 볼기살·뒷사태살 ▲삼겹살: 삼겹살·갈매기살·등갈비살·토시살·오돌삼겹살 ▲갈비: 갈비·마구리 ▲부산물: 족발·창자(곱창, 대창, 막창)·간·허파·염통·콩팥·생식기(암뽕, 신)·꼬리·혀·귀·코

식약(食藥)은 동원(同源)이라, 돼지고기 또한 당연히 맛뿐만 아니라 약효도 있을 수밖에 없다. 예로부터 돼지의 허파가 사람의 허파와 해소병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고, 돼지 꼬리에서 뽑은 피는 갑자기 쓰러져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묘약으로 통했다. 등뼈의 골수는 사람의 골수에 좋고, 목덜미살은 술에 체했을 때 얼굴이 노래지고 배가 늘어나는 증세를 막는다고 한다. 이질에는 저간환을, 탈항에는 저간산을 쓰고, 각종 피부병과 천식 등 호흡기질환에는 돼지발톱을 썼다. 돼지꼬리를 태운 재를 대머리에 바르면 머리가 나고, 돼지털을 태운 재를 들기름에 이겨 화상에 바르면 낫는다고 한다. 돼지의 주둥이 부위는 입술의 종기나 식은땀에 좋고, 혓바닥은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 좋으며, 돼지이빨은 단옷날에 태워 가루를 내서 어린이의 경기나 뱀에 물린 데, 또는 쇠고기를 먹고 중독된 데 이용하면 약효가 있는 것으로 믿었다.

돼지뼈, 특히 턱뼈를 태운 재는 천연두를 앓는 아이의 곰보기운을 덜하게 해주는 약으로 쓰여 왔다. 노인의 귀가 잘 들리지 않을 때는 돼지콩팥으로 흰죽을 쑤어 먹으면 좋고, 폐결핵에는 콩팥기름을 술에 풀어서 대나무 통에 넣고 데워 마시면 좋다고 한다. 눈병에는 돼지 간을 먹었고,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는 돼지발을 고아 먹었다.

이밖에 돼지의 피부는 가죽제품을 만들고 털은 구둣솔이나 칫솔을 만드는데 썼다.

#. 최근 돼지가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장기이식이나 신약개발 때문이다. 돼지는 인간에게 장기를 이식해 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돼지의 생리학적, 해부학적 특징이 인간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퇴행성 뇌질환인 치매의 경우 생쥐모델과는 달리 돼지모델에서 인간과 동일한 증상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8개국 과학자들이 모인 ‘돼지유전체해독 국제컨소시엄’이 6년에 걸쳐 연구 끝에 2012년 밝혀낸 돼지의 유전체(Genome)는 19쌍의 염색체와 약 2만6000개 유전자, 26억 개의 염기쌍으로 이뤄졌다. 참고로 인간의 게놈은 23쌍의 염색체와 2만5000개의 유전자, 30억개의 염기쌍으로 이뤄져 있다.

돼지는 색맹이자 근시인 시각에 반해 특히 냄새를 맡는 후각이 발달해 개보다도 뛰어나다.

후각은 포유동물의 생리기능에서 가장 많은 유전자가 관여하는 시스템인데 돼지의 후각수용체 유전자 수가 약 1300개 정도(기능을 잃어버린 유전자까지 포함한다)로 1100개 정도인 개보다 많다. 인간은 기능을 유지한 후각수용체 유전자 수가 약 400개로 포유동물들 중에서는 가장 적다. 즉 인간의 후각은 유전정보 차원에서 퇴화상태에 있다.

돼지는 그 조상인 멧돼지 때부터 후각이 발달되어서 사료·사육자·새끼·대소변 등을 구별할 수 있다. 코끝에는 연골 판이 있고 후각과 촉각이 발달돼 있어서 땅을 파면서 풀뿌리·벌레 등 먹이를 얻는 데 편리하게 돼 있다. 이런 특징을 이용해 유럽에서는 땅속에서 자라는 송로버섯(truffle)을 채취하는데 돼지를 동원하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전자코’를 개발하는데 모델 역할을 하기도 한

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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