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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9 19:07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농사꾼에게 단풍은 숨 가쁜 凋落일 뿐이다
농사꾼에게 단풍은 숨 가쁜 凋落일 뿐이다
  • 이만훈 기자
  • 승인 2018.10.31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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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에 눈코 박고 가을걷이에 매달리는 農心

 

#. 이 땅에 단풍은 대충 한로(寒露)에 시작해 상강(霜降)에 마무리된다. 24절기 가운데 17번째인 한로는 문자 그대로 ‘찬 이슬’이 내리는 시기로, 이때가 되면 얼추 활엽수들은 낙엽을 만들고 그 준비단계로 울긋불긋 물들여 단풍을 선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산으로, 산으로 빠져든다. 햇볕마저 기운이 기울어 어딘가 스산한 느낌이 짜한데 새빨갛거나 샛노란 원색이 눈앞에 살랑거리니 목석이 아니고선 제아무리 항우장사라도 못 본체 버틸 재간이 없다. 계절의 블랙홀이다.

하지만 농사꾼만은 예외다. 애당초 그들한테 단풍이란 없다. 오직 저물어가는 철에 수확을 재촉하는, 뿌듯하면서도 숨 가쁜 조락(凋落)일 뿐이다. 그 잘난 도시내기들이 ‘농투산이’라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원래 농사란 게 그런 것이니까.

쌀 한 톨 얻으려면 ‘88번’의 손길 거쳐야

모든 식물은 이때가 되면 죽음을 준비한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도 그렇지만 식물도 죽기 전에 꼭 하는 일이 있다. 대를 이을 자식을 남기는 작업이다. 어쩌면 식물들은 삶 끝에 후손을 남기는 게 아니라, 아예 이 일을 위해 한 해를 사는 지도 모른다. 그네들이 한 해를 산 결과를 우리는 ‘씨’라고 이름붙이고, 거침없이 자기 것으로 알기어 거둬들인다. 이것이 농사일이다.
벼이삭이 누렇게 물들면 벼를 걷고, 고추가 빨개지면 고추를 따는 것일 뿐이다. 또 그렇게 하는 게 마땅하다. 농부는 수확을 위해 한 해를 사는 게 아니라 수확을 하다 보니 한 해를 사는 것이니까. 그래서 남들이 단풍놀이니 뭐니 법석을 떨 때도 그저 “미친놈들 땐스한다!”며 콧방귀나 슬쩍 튕기고는 사정없이 논밭에 눈코를 박고 가을걷이에 매달리는 게 농심(農心)이다.
가을에 수확하는 일이 추수다. 추수는 봄의 파종과 마찬가지로 ‘타이밍의 예술’이다. 너무 일러도, 너무 늦어도 탈이다. 더구나 그야말로 오곡백과가 동시에 손을 벌리니 눈 코 뜰 새가 없다. 모내기철에 못지않게 정신이 없다. 오죽하면 이 시절엔 ‘대부인(大夫人) 마나님도 나막신 짝 들고 나선다’거나 ‘부뚜막에 졸던 부지깽이도 뛴다’는 속담이 생겨났을까?
추수철에 해야 하는 일이 오만가지이고, 어느 한 가지 허수히 할 수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손이 워낙 째는 터라 완급의 순을 매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으뜸으로 할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네의 주식거리인 벼 거두기. 쌀 한 톨을 얻으려면 워낙 손이 많이 가는 탓에 그 회수가 무려 ‘여든 여덟 번(八 十 八·쌀을 가리키는 米의 破字풀이다)’이라는 절묘한 해석까지 동원할 정도로 끔찍이도 중하게 여긴 것이 벼농사다.
사실 이른 봄 볍씨를 쳐서 못자리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타작을 거쳐 볏가마를 집안에 들여놓기까지 얼마만큼의 손길이 가는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나무과일이나 인삼 등 일부 특용작물을 제하고는 일반 작물 가운데 벼처럼 거지반 한 해를 들여야 하는 농사는 없다. 따지고 보면 농사라는 게 수확을 궁극의 목표로 하는 일인 만큼 어쩌면 씨를 뿌리는 것부터 수확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 년 내내 수확 철이라고 하는 것이 우스운 일일 테니, 현실적으론 벼를 베어 이삭에 달린 낟알을 거둬들이는 요즘 같은 가을철 작업을 수확이라 할 것이다.

벼농사 핵심은 이삭관리

#. 요즘엔 콤바인 하나면 논바닥에서 즉시 벼 베기는 물론 타작까지 끝낼 수 있어 예전에 비해 번거로움이 엄청나게 줄었지만 이 순간을 위한 사전 마무리 과정의 고단하고 분주함은 그제나 이제나 여전하다. 벼농사의 핵심은 이삭관리다. 극(極)조생종은 7월 하순~8월 초에 이삭이 패고, 조생종은 8월 상순, 중생종은 8월 중순, 늦모내기를 한 벼나 중만생종은 8월 하순에 각각 이삭이 패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벼를 베는 적기는 극조생종은 이삭이 팬 뒤 40일, 조생종은 40~45일, 중생종은 45~50일, 늦심은 놈이나 중만생종은 50~55일 되는 시점이다. 단풍이 시차를 두고 위도와 고도가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해 낮은 곳으로 이어지듯이 농사일도 마찬가지다. 서울 근교인 우리 동네에서 대충 입추~처서 사이에 이삭이 패고, 한로~상강 즈음에 벼 베기가 이뤄지곤 했다.

그런데 벼도 이삭이 패기 전 임신기간(?)을 거친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중복 즈음(24절기론 大暑다!) 벼 포기가 불룩해지는데 이를 ‘배동이 선다’고 한다. 어린 이삭(幼穗)이 만들어진 뒤 10~12일 정도로, 한자로는 수잉기(穗孕期)라고 한다. 이 기간에 생식세포가 만들어져 꽃가루와 배낭세포의 완성으로 수정준비가 갖춰지면 이삭이 맨 위의 잎(止葉) 속에서 밖으로 나오게 된다. 이처럼 이삭이 패는 현상을 출수(出穗)라고 하는데 출수한 이삭은 당일 또는 다음날부터 개화하기 시작하며, 하얀 꽃가루가 벌어진 벼 껍데기 사이로 들어가면 수정이 된다. 벼는 바람이나 곤충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수정을 하는 ‘자가수정형(自家受精型)’ 식물인데 한 이삭이 개화를 해 가루받이를 끝내는 기간은 사흘정도다.
벼이삭이 패기 전, 즉 꽃이 피기 전 15일과 패고 난 후 10일 동안은 논에 물을 충충하게 채워줘야 한다. 이때는 이삭이 커가면서 꽃이 피므로 수분의 증발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날씨도 더워 잎에서의 수분증발량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삭이 팰 무렵이 되었어도 아직 줄기가 충실치 못한 벼가 있다면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칫 쓰러지기 쉽다. 이럴 때 노련한 농사꾼은 가끔 물을 빼주어 벼를 강하게 단련시키곤 한다.
개화·수정이 완료되면 씨방이 커지고 통통해지면서 성숙하기 시작하는데 알갱이 껍질 속에 젖 같이 하얀 쌀물(乳粉)이 들어 차오른다. 참새란 놈들이 이 맛을 알고 떼로 덤벼들면 허수아비로도 감당이 안 돼 딱총도 쏘아대고 별의 별 아이디어와 수단이 동원되는 것도 이 무렵이다.
입추 때쯤이면 이삭이 패는 속도가 빨라져 처서(處暑)무렵엔 벌판이 온통 서걱서걱 이삭바람으로 가득해지기 마련이다. ‘입추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놀라 짖어댄다’하고, 무엔가 한꺼번에 무성해지는 걸 두고 ‘처서에 장벼 패듯 한다’고 비유한 까닭이 여기서  비롯됐다. 이 시기엔 두말 할 것도 없이 날씨가 맑아야 하는데 비가 오면 가루받이가 제대로 되지 않을 뿐더러 설사 된 놈조차도 햇볕 부족으로 탄소동화작용이 부실해 쭉정이가 되기 때문이다.

 

벼 베기에 앞서 반드시 해야 할 ‘논물 떼기’

이 시기엔 밤낮의 온도차가 심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냉해를 입을 수도 있어 물을 넉넉하게 채워줘야 한다. 또 어미가 체력이 좋아야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듯이 벼도 이삭이 패기 전후로 특별보양식(?)을 줘야한다. 이른바 이삭거름이다. 이삭 팬 후 이삭거름을 줄 것인지 판단은 수잉기(이삭 패기 10~5일 전)를 기준으로 한다. 대개의 벼는 20일 전 무렵부터 잎이 진해지다가 배동이 서면 퇴색되는데, 그러다 이때를 지나면 다시 색이 푸른색을 띠게 된다.
이삭이 팼는데도 배동이때보다 연해지면 이삭거름을 주어야 한다. 보통 벼는 이삭 팬 후 10일쯤 돼서 퇴색하기 시작하는데 그대로 두면 체력이 약해져 이삭 도열병이 우려된다. 이삭거름을 주는 시점은 녹색이 잎 끝에서 잎 집으로 내려가기 시작할 무렵이다.
음력 7월 보름인 백중(百中)이면 세벌 김매기도 끝나 ‘호미씻이’도 할 정도여서 ‘어정칠월’이라고 했지만 다른 달에 비해서 그렇다는 얘기지 실상은 이렇게 잠시도 맘 놓고 ‘담배  한 대 빠끔할 짬’조차 없다.

#. 이삭 팬 후 벼 알갱이가 익는 등숙(登熟)기간은 40일 이상 걸린다. 일조량이 좋고 온도는 섭씨 20도 이상이어야 한다. 이때쯤은 초가을이지만 햇볕이 뜨겁고 낮에는 기온이 높아 벼가 익는 데 아주 좋다.
요즘은 6월 말~7월 초의 원래 장마보다 7월 말~ 8월 초의 2차 장마 때 비가 많이 내리므로 이때쯤 이삭이 패게 되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어 농심을 타게 한다.
이삭 팰 때는 적어도 다섯 개 정도의 잎이 생생해야 하고 수확하기 직전에는 적어도 세 장 정도가 생생해야 한다. 잎이 살아 있다는 것은 뿌리의 활력이 좋다는 것을 뜻한다. 벼 베기 직전에는 적어도 위의 3~5번째 잎이 생생하여 푸른색을 띠어야 한다.
이삭의 상태는 처음 분화할 때는 150~200알가량 됐다가 감수분열기(減數分裂期)를 거치면서 120알 정도로 준다. 심하면 40~50%까지 줄 수가 있다. 이 감수분열기를 잘 관리해 벼 알이 줄어드는 것을 최소화하는 게 풍작(豊作)을 위한 ‘진인사(盡人事)’의 기본이다. 이를 위해선 출수 전부터 적절한 물 관리로 벼 줄기가 두텁고, 크게 하며 감수분열기에 저온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출수 후 등숙기까지 벼 잎사귀가 푸른색을 띠며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벼 알이 충실하고 싸라기가 없는 온전한 쌀(完全米) 생산이 가능하다. 벼이삭이 팬 뒤 35일까지는 논 상태를 5~7일에 한 번씩 발자국에 물이 고이도록 해줘야 더욱 맛있는 쌀이 생산된다.
벼를 베기에 앞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논물 떼기’다. 기온이 내려가면서 벼 스스로도 감을 잡겠지만 논에서 물을 없애줌으로써 벼로 하여금 생을 마감하기 전에 빨리 튼실한 자손을 남기도록 촉구 사인(sign)을 보내는 것이다. 후손을 남김으로써 영생을 꾀하려는 생명의 원리를 십분 활용하려는 인간의 교활한(?) 지혜가 농사가 아니던가?
일반적으로 논물을 떼는 시기는 이삭이 패고 30~35일 지난 다음인데, 작황을 보고 벼의 상태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배수가 너무 잘 돼서 걱정인 모래 논은 보통 논보다 조금 늦게까지 물을 대줘야 제대로 여물기 때문에 대략 베기 일주일 전까지는 물을 남겨두는 게 좋다.
논물을 떼고 나면 도랑을 치고 논두렁의 풀을 베어준다. 긴 풀이 벼 베기 작업에 걸리적거리는 걸 없앨 겸 풀씨가 여물어 논에 떨어지는 걸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벼 베기는 벼 알갱이의 누렇게 익은 정도가 90%에 달했을 때가 적당하고, 아침 이슬이 마른 뒤 시작하는 게 건조하는 수고를 덜 수 있어 좋다.

술참-참-술참, ‘뱃심’으로 하는 농사일

#. 요즘엔 콤바인으로 베기부터 탈곡까지 한 줄에 꿰어 수확하지만 1980년대만 해도  일꾼들이 낫으로 일일이 베야 했다. 주로 동네 사람들이 두레형식으로 집집이 돌아가며 벼 베기를 하곤 했는데 수확기가 같아 순서를 정하느라 때론 제비를 뽑기도 했다. 어떤 집에서는 자기네와 친한 사람들을 충충거려 순서를 어겨가며 벼 베기를 감행(?)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쌍알이 질 경우 제 차례인 집에선 일꾼 수가 그만큼 부족해져 두 집이 서로 싸우느라 가을벌판이 시끄러워지고, 심하면 드잡이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모내기철과 마찬가지로 워낙 손이 째다보니 가을 농번기에 흔히 벌어지는 풍경이었다.
어쨌거나 일꾼들은 각자 집에서 아침밥을 먹은 뒤 앞산머리에 해가 고개를 내밀면 하나 둘 벌판을 가로질러 작업할 논으로 모여든다. 아직 햇살이 퍼지기 전이라 논둑길을 타고 오노라면 찬이슬에 잠뱅이가 흠뻑 적셔져 선뜻하기도 하련만 담배 한 대씩 빼물고 사람 수가 찬 걸 확인하곤 이내 한 줄로 ‘나래비((ならび)’서서 베기에 들어간다. 조자룡이 언월도를 휘두르듯 일꾼들의 낫이 벼 포기를 감아 돌때마다 “스악”소리와 함께 몸뚱어리가 잘린 벼가 뭉터기 뭉터기 바닥에 누여진다. 일꾼들 사이에 영좌 턱인 사람이 붙이는 ‘소리’에 따라 일제히 허리를 폈다가는 한 숨을 쉬기 무섭게 또다시 허리를 굽혀 낫을 휘두른다. 벼를 베어 눕히며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논에는 ‘선 자’와 ‘누운 자’의 경계선도 앞으로 전진한다. 진지하게 일사불란(一絲不亂)한 게 마치 전쟁터의 수색조(搜索組) 같다. 일꾼들은 쉴 새 없이 허리를 구부렸다 펴다를 반복하고, 그럴 때마다 등 뒤로 자리가 드러난다.
노련한 상일꾼은 하루 두 마지기(200평)하고도 반 마지기를 더 벤다. 하지만 개중에는 슬슬 농땡이 치는 얌체도 있고, 풋꾼이나 어중탱이도 끼게 마련이어서 대오를 맞춰 일하다 보면 대개는 작업량이 두당(頭當) 한 마지기 남짓한 꼴이 보통이었다. 그래도 워낙 힘 드는 일이라 먹새가 보통이 아니어서 그 참에 쉬기도 하는 덕분에 그럭저럭 작업량을 완수(?)할 수 있는 게 벼 베기였다. 일꾼들은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다가 가벼운 안주를 곁들여 막걸리를 먹는 ‘술참’을 먹고, 이어 중간식사인 ‘참’을 거쳐 다시 술참, 그리고 점심을 먹는다. 오후에도 역시 술참을 한 뒤 참을 먹는데 대개 점심을 두둑하게 채우는 까닭에 오후 참은 느지막하게 잡아 그 사이에 일을 서둘러 마치고 저녁삼아 먹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기엔 너무 시간이 빠듯할 경우 오후 참을 중간에 먹고 벼 베기를 남기지 않고 마무리한 뒤 제대로 저녁을 먹기도 했다.
요즘 젊은이들, 특히 도시내기들이 보면 기함을 하고도 남을 일이겠지만 계속 허리를 숙였다 폈다 해야 하기 때문에 배가 꺼지지 않도록 여러 번 먹고 마셔서 빵빵하게 채울 수밖에 없었다. 농사일은 ‘뱃심’으로 한다는 말이 나온 까닭이다.

타작일꾼 허투루 대하면 쌀이 도망간다

#. 이제 남은 건 벼 알갱이를 털어 가마니나 섬에 담아 거둬들이는 타작. 어찌 보면 타작이야말로 벼농사의 기나긴 여정가운데 마지막 굵은 마디라 할 수 있는데, 타작을 하려면 반드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바로 ‘마당드리기’였다. 여름내 장맛비에 쓸려 여기저기 패인 자리하며 드러난 돌멩이 등을 새로 흙을 발라 평평하면서도 매끈하게 코팅을 함으로써 타작한 벼 알에 잡물이 섞이지 않게 하려는 사전조치인 셈이다. 물에 갠 흙을 발로 밟아가며 잡티를 골라낸 뒤 수비질을 통해 차지게 만든 다음 마당에 고르게 펴 바르면 되는데 사나흘 지나 꾸덕꾸덕해지면 다시 맨발로 밟아 혹시 있을지 모를 갈라짐이나 들뜨는 것을 없애야 한다. 한 이레쯤 지나면 완전히 마른다. 겉이 맨들맨들해져 인절미를 떨어뜨려도 흙고물조차 묻지 않을 정도가 돼야 오케이다.
마당이 제대로 드려지고 낟가리가 비 피해 없이 온전하면 타작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타작은 본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이 역시 모내기나 벼 베기에 못지않게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바람에 동네에서 순서 껏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타작 날이 닥치면 집 안팎이 꼭두새벽부터 분주했다. 잘 드려진 마당이라 해도 전날 미리 깨끗하게 꼼꼼히 비질을 한 뒤 가장자리를 공석으로 둘러쳐놓았어도 다시 한 번 쓸어야 하고, 탈곡기(脫穀機)와 풍구(風具) 등 장비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야 했다. 타작은 다른 일과 달리 일단 벌렸다 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날로 끝내야 하기 때문에 먼동이 트기 전에 시작할 뿐만 아니라 일꾼 수도 넉넉히 잡는 게 보통이었다.

 

콤바인 등장 이전의 탈곡 방법

하지만 이른바 탈곡기가 등장하고부터는 비록 인력을 이용하는 것일지라도 작업능률이 태질과는 아예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서 이내 타작의 대표적인 수단이자 대명사처럼 됐다. 탈곡기는 커다란 원통을 빠른 속도로 돌려 거기에 촘촘히 박힌 V자를 거꾸로 한 쐐기모양의 철사에 벼이삭을 부딪쳐서 벼 알갱이를 털어내는 기구인데 위아래로 움직이는 발판을 힘차게 밟으면 상하운동이 원운동으로 바뀌면서 원통을 돌리게끔 고안된 기계다. 얼핏 발에 힘을 주어 밟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통이 돌아가는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변환장치에 제때 힘이 전달되도록 리듬에 맞춰 밟는 요령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밟는 힘이 통을 돌리는데 거꾸로 작용해 초짜들의 경우 기계를 세우기 일쑤다.
탈곡기에서 벼를 터는 역할은 힘이 좋으면서도 노련한 상일꾼이 맡게 마련이다. 탈곡기도 혼자서 털어대는 외발기계가 있는 가하면 한꺼번에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쌍발기계가 있다. 물론 쌍발기계는 두 사람의 호흡 맞추기가 절대적이다.
낟가리를 헐어 볏단을 작업대 위에 갖다놓으면 한 사람은 묶음을 풀어 옆으로 밀고, 이를 받은 사람이 적당한 크기로 나누고 가지런히 추려서 애벌 털이꾼한테 넘긴다. 애벌 털이꾼은 서너 웅큼 되는 벼 뭉치(뭇)를 두 손으로 감싸 안고선 발판을 밟는 박자에 맞추어 어깨춤을 추듯이 몸을 들썩이며 이삭이 몰려있는 끝부분부터 기계에 살살 돌려댄다. 절반 넘게 털렸다 싶으면 옆에 있는 재벌털이꾼에게 잽싸게 벼 뭇을 넘기고, 재벌꾼은 이를 받아 볏짚을 발겨가며 속에 쌘 이삭 등 앞에서 미처 털어내지 못한 벼 알갱이들을 속속들이 찾아내 무자비(?)하게 기계에 들이밀고야 만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탈곡기에 이삭이 부딪치면서 벼 알이 훌치는 소리가 마치 소낙비 쏟아지듯이 “쏴아 쏴”한다. 경쾌한 탈곡음이 거듭될수록 앞에는 벼 낟알들이 수북수북 쌓여 임산부 배 마냥 더미가 불러 오른다. 한 쪽에서 갈퀴로 거친 검부락지를 걷어내면 이어 다른 이가 긴 싸리비로 나머지 북때기를 쓸어낸다. 이것으론 부족해 연신 삼태기로 퍼담아 풍구질을 하는 조도 손놀림이 재다. 풍구질을 통과한 벼를 가마니에 담아 묶는 일도 서넛이 달라붙었지만 녹록치 않다.

#. 이러한 인력탈곡방식은 무지 많은 인력과 시간이 드는 탓에 얼마 지나지 않아 동력을 이용한 자동탈곡기로 교체됐다. 동력탈곡기도 손으로 줄기를 붙들고 이삭만 탈곡부에 넣는 수급식(手給式), 손 대신에 기계적으로 붙드는 자동공급식, 줄기도 같이 탈곡부에 넣는 투입식으로 점차 개선됐다. 동력탈곡기는 볏짚을 기계가 물고 들어가 자동적으로 공급하면서 탈곡과 선별작업을 동시에 해주기 때문에 너른 마당이 필요 없어 논바닥에서도 작업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마당을 새로 드리고, 볏단을 마당까지 져 나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다. 어디 그뿐인가? 벼 뭇을 털기 좋게 나눠주고, 일일이 털고, 턴 벼 알을 검불과 분리하기 위한 비질이며 풍구질 등이 사람 손을 타지 않고도 척척 기계가 해주니 정말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동탈곡기의 구조는 체인으로 된 볏짚 자동공급장치, 급동(원통)을 중심으로 한 탈곡장치, 풍구를 중심으로 한 선별장치, 탈곡된 벼를 보내는 이송장치로 구성돼 있다.
털린 벼 알과 지푸라기는 풍구에서 나오는 바람에 의해 무거운 벼 알은 밑으로 떨어져 이송장치에 의해 곡물만 모으는 곳으로 옮겨지고, 가볍거나 불완전한 벼 알과 검불은 밖으로 내보내져 쌓이니 바로 북때기 더미다.
하지만 이런 동력자동탈곡기도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콤바인(Combine)에 비하면 ‘구석기’나 마찬가지다. 콤바인은 아예 벼가 서 있는 논 위를 오락가락하면서 벼 베기를 하는 동시에 탈곡 및 선별작업을 하는 수확기계로, 턴 낟알은 그대로 부대에 담겨 건조장으로 운반된다. 한마디로 기계 하나면 혼자서도 북 치고 장구 치고 할 수 있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 하리오.
그 옛날 두 개의 막대기를 한데 모아 한쪽 끝을 끈으로 묶어 집게 모양으로 만든 뒤 벼이삭을 사이에 끼워서 훑어내는 ‘훑이’나, 납작하고 길쭉한 쇠못을 나무판에 촘촘히 박아 빗 모양으로 만들어 벼이삭을 끼워 훑어내는 ‘홀태(그네)’를  사용했던 우리 할머니가 보신다면 도깨비장난으로 여기셨을 게 분명하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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