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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9 14:40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대한민국 청년들, ‘인생 보릿고개’와 마주했다
대한민국 청년들, ‘인생 보릿고개’와 마주했다
  • 이만훈 언론인
  • 승인 2018.06.29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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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자 역대 최다…젊은이에게 ‘이밥에 쇠고깃국’은 취업

쏜 살 같다더니 참 세월 빠르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이 하마 끝이 있으려나 안달하며 봄을 기다렸더니 고양이 마냥 살포시 왔다가는 봄바람에 취하기 무섭게 어느 새 주명(朱明)이라니…! 노루 꼬리만 하던 낮에도 산야의 흐드러진 꽃향기 속에 참새 혓바닥만한 새순을 연록(軟綠)의 푸르름으로 키워내 연하디 연한 자연의 살 내음을 풍기더니 벌써 쥐어짜면 금세라도 시퍼런 물이 뚝뚝 들을 듯하다. 봄이 가는 게 그리 서럽더니만 이젠 눈이 시원한 녹음(綠陰)이 좋다. 자연이 사람을 공깃돌 다루듯 한다.

당나라 시인 한유(韓愈·768~824)는 ‘올해도 버드나무 우거진 거리에 버들개지 날리는데(柳巷還飛絮)/ 봄은 얼마나 남았는가(春餘幾許時)’하고 봄이 가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지만 송나라 문인 왕안석(王安石·1019~1086)은 만화방창(萬化方暢)한 화려한 봄보다 외려 녹음(綠陰)이 우거진 여름이 낫다고 했다.

‘돌다리 띳집 후미 굽은 방천에/ 시냇물 졸졸 두 언덕사이를 지나다/ 갠 날 따스한 바람에 보리가 향기롭고야/ 푸른 잎 꽃다운 풀이 꽃철보다 나으이(石梁茅屋在灣碕/ 流水濺濺度兩陂/ 淸日暖風生麥氣/ 綠陰芳草勝花時)’ 녹음방초승화시! 이 멋진 구절은 만고에 쩌렁쩌렁 운율을 전한다. 뜻풀이보다는 한문대로가 훨씬 운치가 있다. 오죽했으면 우리 단가에 제목 비슷하게 떡하니 한 자리 차지하고 있을까? 아무렴 어쩌랴! 봄은 봄이어서 좋고, 여름은 또 여름대로 좋다.

세월이 빠른 건 세상의 변화가 그만큼 무쌍하기 때문이다. 올 들어 지금까지 잠시도 조용한 날이 있었던가? 남북정상회담이다 북미정상회담이다 해서 비핵화니 뭐니 정신을 빼놓는 것도 모자라 선거판마저 벌어져 온통 휘저어대는 바람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오죽했으면 요즘 젊은이들이 제 할애비 함자는 몰라도 김정은과 트럼프, 그리고 김여정과 폼페이오, 볼턴, 김영철, 현송월은 줄줄이 꿰고 있고, 그 어려운 CVID가 뭔지 영어단어까지 또박또박 들이대며 뜨르르한 체 한다. TV와 신문은 물론 SNS를 통해 원체 떠들어대니 귀와 눈에 딱지가 앉을 판이라 소경이 경을 읽는 정도의 경지(?)가 된 것일 테다.

더구나 이런 회오리가 끝난 게 아니라 지금도 계속 되고 있고 언제 종을 칠 지 모르게 앞으로도 한참을 이어질 테니 세월은 또 얼마나 더 빨리 갈 것인가?

밤꽃과 찔레꽃, 산야를 절구는 페로몬

자연은 시절을 향기로 말하고, 고사(高士)는 문향(聞香)하는 법-. 암향(暗香)으로 봄 새벽을 알리는 매화로 시작해 한겨울 북풍한설의 살을 에는 매운 냄새까지 사시장철 꽃은 꽃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눈비는 또 그 나름대로 야릇한 향기를 띄운다. 산야가 보내는 페로몬이다.

요즘 산에 가면 묘하게 진한 향기가 숲을 온통 절군다. 시·거문고·술을 좋아해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불리는 고려 때 문호이자 풍류객 이규보(李奎報·1168~1241·白雲居士) 선생이 ‘봄이 지났어도 빽빽한 잎에 가려진 채 꽃은 남아있네(密葉翳花春後在)’라고 하더니 바로 밤나무 꽃의 체취다. 자고로 밤꽃은 남성을 상징한다. 수꽃에서 풍기는 향기가 남정네 정액냄새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밤꽃이 필 무렵엔 부녀자의 바깥출입을 자제시킨 까닭이요 과부가 밤나무골에 못 사는 사정이기도 하다.

그 시절 이맘때 밤나무 근처를 지나며 얼굴을 붉히는 처자는 처녀가 아니라고 했을 정도다. 실제로 밤꽃 향에는 최음효과(催淫效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동남아의 일랑일랑(Ylangylang)나무의 꽃향기와 비슷한 성분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랑일랑은 말레이어로 ‘꽃 중의 꽃’이란 뜻으로 에센셜 오일은 고급향수 원료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유럽에서는 향이 관능적이라 신혼부부의 첫날밤에 침실에 뿌리곤 한다. 긴장을 풀고 기분을 돋우기 위해서다. 밤꽃 향 역시 불안감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우울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재미있다.

밤꽃에 바로 앞서도 산과 들을 지배하는 강한 향기가 있으니 그 진원은 바로 찔레꽃이다. 아카시 꽃의 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들과 산을 다니노라면 제법 그윽한 향기에 또 다시 정신이 번쩍하게 마련인데 밭머리에 퉁그러지듯 버림받은 돌무지나 산비냥 서덜 끝자락에 멋대로 엉킨 채 소복하니 무리지어 핀 찔레꽃 때문이다. 사는 곳이 외진 탓에 사람이 그리워서인가, 향기로라도 부르려는 듯 바람기라곤 전혀 없음에도 지나는 이마다 고개를 돌리게 해 붙잡는 품이 눈물겹다.

찔레꽃의 한자이름은 ‘야장미(野薔薇)’이다. 찔레꽃은 곱지만 화려하진 않다. 그래서인지 예나 지금이나 ‘화초’로는 축에도 끼지 못하는 신세다. 찔레에서 나온 장미가 ‘꽃의 여왕’으로 대접받는 걸 생각하면 짠할 정도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 때문에 대다수 민초(民草)들에겐 더 정겨운 대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차피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민초들한테는 완상(玩賞)이란 사치일 뿐일 테니 그저 일하러 오가다 풀숲광에 수더분하게 핀 꽃을 보며 지친 맘을 달랬을 거다. 더구나 그건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니고, 반(半) 품이라도 들여 가꾼 것도 아닌 데도 한껏 위로를 주는 존재이기에 더욱 고맙고 정겨웠을 테고. 그러기에 찔레꽃은 유별난 그 무엇이 아니라 아주 친숙한 존재요, ‘고향’의 다른 이름이나 마찬가지였다.

‘보릿고개’ 찔레꽃 피고 밤꽃 떨어지는 절기

하지만 이 땅의 수많은 꽃 가운데서도 특히 찔레꽃과 밤꽃이 우리네 가슴에 유난스런 것은 단지 향기나 아름다움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다름 아니라 찢어지게 가난하던 아픈 추억의 공유이기도 한 때문이다. 찔레꽃이 피고 밤꽃이 떨어질 때까지-, 바로 이때가 태산(泰山·지금 같으면 에베레스트!)보다 넘기 힘든 맥령기(麥嶺期), 즉 ‘보릿고개’였으니까.

그 시절엔 대부분 남의 소작을 부치거나 혹 제 땅이라도 고작 메뚜기 마빡만한 땅뙈기이다 보니 이것저것 떼고 나면 늘 양식이 부족해 이때쯤엔 바닥이 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보리가 날 때까지 연명하며 버텨내기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실제로 아주 오래전엔 이 고개를 미처 넘지 못하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제법 됐다고 한다(멀리 갈 것도 없이 1990년대 중후반 국제적인 고립과 자연재해로 인해 대기근(大饑饉)을 겪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의 북한에서 수십 만명이 먹지 못해 죽었다! 북한 외무성은 아사자가 22만명이라고 발표했으나 황장엽은 300만명이라고 주장했다).

찔레꽃이 필 때면 안타깝게도 늘 가뭄(옛날엔 가뭄을 초목을 태워버리는 毒龍, 즉 強鐵의 출현으로 여겼다)이 들어 ‘찔레꽃 가뭄은 꿔다 해도 한다’는 속담마저 있을 정도로 고통을 주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찔레꽃 자체가 배고픔의 고통을 예고하는 메신저나 매한가지였다. 이 고통은 밤꽃이 필 때까지 계속됐다. 그래서 찔레꽃이 피면 꿈에라도 사돈 보기가 무섭고, 또 그러니 무남독녀를 건너 마을에 시집보낸 영감조차 차마 갈 엄두를 못 내고 혼이 나간 듯 멍하니 딸네를 바라다 볼 수밖에 없었다.

시인 신동엽(申東曄·1930~69)이 ‘배가 고파서 연인 없는 봄’에서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이라고 읊고 가객 장사익(張思翼)이 목이 터지도록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밤새워 울었지’를 외쳐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半)양식 나물, ‘나물타령’까지 생겨나

1960년대만 해도 보릿고개를 넘기고 나면 마을마다 여기저기 새 무덤이 생기곤 했다. 특히 엄마 젖이 말라 피어보지도 못한 채 스러져간 어린 것들이 묻힌 애총은 왜 그다지도 많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먹먹하기만 하다.

사실 그 시절 별의별 것을 다 먹었다. 달래·냉이·씀바귀·쑥·민들레·엉겅퀴·취·명아주·비름·머위·소리쟁이·삽주·으아리·둥굴레·닭의장풀·혼잎·뽕잎 등 나물은 물론 청미래 덩굴·칡·무릇·나리 등의 뿌리에다 소나무 속껍질인 송기(松肌)·느릅나무껍질 등 문자 그대로 초근목피(草根木皮)가 주식(?)이다시피 했었으니까. 그것도 양을 늘려야하기 때문에 싸라기라도 한 움큼 생길라치면 가마솥에다 물을 넉넉히 잡은 뒤 이것저것 때려 넣고 끓여내 멀국으로 배를 채우기 일쑤였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통적인 구황(救荒)식물이 초목을 합쳐 851가지나 되고, 그 중에서 요즘도 평소 시골에서 식용을 하는 것만 304가지나 된다고 하니 웬만한 식물은 죄다 먹었던 셈이다.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단오 전이면 식물의 순은 죄다 먹어도 된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 같이 나물은 평소엔 반찬이었고, 비상시에는 반(半)양식이었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남녀노소 모두 나물을 잘 알아야 했다. 하지만 산과 들에 널려 있는 수많은 식물 중에서 독이 없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나물의 이름과 모양새를 일일이 기억하기는 쉽지 않았다. 때문에 나물의 모양이나 특성을 콕 집어 만든 ‘나물타령’이 생겨났다. 그래서 ‘99가지 나물노래를 부를 줄 알면 3년 가뭄도 끄떡없다’는 속담마저 생겼다.

‘한푼두푼 돈나물 / 매끈매끈 기름나물

어영꾸부렁 활나물 / 동동말아 고비나물

줄까말까 달래나물 / 칭칭감아 감돌레

집어뜯어 꽃다지 / 쑥쑥뽑아 나생이

사흘굶어 말랭이 / 안주나보게 도라지

시집살이 씀바귀 / 입맞추어 쪽나물’

예전엔 아홉 살이 될 때까지 33가지의 나물은 아는 게 법(?)이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도 타령대신 ‘나물 동요’를 불렀다.

‘꼬불꼬불 고사리 / 이산저산 넘나물

가자가자 갓나무 / 오자오자 옻나무

말랑말랑 말냉이 / 잡아뜯어 꽃다지

배가아파 배나무 / 따끔따끔 가시나무

바귀바귀 씀바귀 / 매끈매끈 기름나물’

어디 나물뿐이랴! 심지어 그릇을 만드는 ‘동이찰흙(田丹土)’이나 흰 찰흙(白土)으로 옹심이를 만들어 죽을 쑤어먹기도 했고, 수수와 옥수수의 깜부기까지 먹었다. 그러니 애들은 산이야 들이야 쏘다니며 찔레며 싱아며 삘기며 메 싹은 물론 진달레꽃·아카시꽃·칡꽃 등 먹을 만한 것이면 닥치는 대로 먹어댔다. 미꾸리·돌고기·가재·불거지·쉬리·버들치·모래무지·메기·둑중개 등 물고기도 그렇고 뱀·개구리·땅벌애벌레·굼벵이 등도 빼놓을 수없는 영양식(?)이었다.

‘기근(饑饉)’에 흙까지 먹다 죽는 허망함

먹을거리가 부족해 굶주리는 상황이 올 때 흔히 ‘기근(饑饉)이 든다’는 표현을 쓴다. ‘사흘 굶어 도둑 안 되는 자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먹는 것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에 속한다. 그런데 천재(天災)이건 인재(人災)이건 어떤 이유로든지 먹지 못한다? 그 건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이길 포기하게끔 할 정도로 강력하다. 이는 기근이란 글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饑’는 ‘食’과 ‘幾(기)’가 합쳐진 글자인데 幾에는 극소(極小), 위태(危殆)의 뜻이 있다. 곧 먹을 게 없어서 위태로운 상태가 ‘饑’이다.

또 ‘饉’의 ‘堇(근)’은 원래 ‘黃(황)’과 ‘土(토)’가 합쳐진 글자로 아주 곱디고운 황토를 뜻한다. 워낙 고와 옛날 중국에서 흉년에 밀가루 대신 국수나 떡을 해먹었다. 이처럼 대용식품이자 고와서 다루는데 매우 조심했으므로 堇자에는 ‘조심하다’ ‘삼가다’는 뜻도 들어있다. 그러니까 饉은 황토 흙을 먹던 데서 나온 글자인 것이다. 대체로 먹을 것이 떨어지면 우선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고 그마저 동이 나면 흙을 먹었던 것이니…. 물론 그러다 죽기도 했으니, 살자고 먹다가 죽는다는 게 얼마나 허망하고도 억울하였겠는가?

그런데 옛 사람들은 饑와 饉을 엄격히 구분했다. 굶주리는 것은 같지만 곡식이 부족한 것은 饑, 채소가 부족한 것을 饉이라 했다. 또 과일이 부족한 것을 荒(황)이라 했다. 굶주림을 기근이라 한 것은 곡식과 채소가 대표적인 먹을거리였기 때문이다.

모진 게 목숨이라 죽을 둥 살 둥 하면서도 겨우 ‘보릿동’을 대면 햇보리가 나는데 도저히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보리누름이 오기 무섭게 풋바심을 해먹을 수밖에 없던 게 이 땅 민초들의 가엽고도 눈물겨운 초상(肖像)이었다. 그런 와중(渦中)에서도 가난을 대물리지 않겠다며 자식을 공부시키려 5할의 장리(長利)는 커니와 이자가 100%인 갑리(甲利), 또 그 걸 제 때 못 갚으면 이자를 원금에 합쳐 다시 빌린 것으로 치는 장복리(長複利), 갑복리(甲複利)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그 시절 부모들은 사람 형상을 한 ‘자식 껍데기’나 마찬가지였다. 요즘 젊은이들한테 이 같은 얘기를 해주면 “아무리 그랬겠냐?”고 콧방귀를 뀌지만 이따금씩 소위 ‘먹방’이란 걸 볼 때면 그 시절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쌀밥에 고깃국’ 북한이 바라는 낙원

아주 지독하게 가난한 형편을 단적으로 ‘째지게 가난하다’고들 한다. 여기서 째지는 것은 항문, 즉 똥구멍이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다보면 지독한 변비가 생기고 결국 억지로 힘을 주다보면 그곳이 째지는 사달이 나는 것이다. 특히 솔잎이나 쑥을 여러 날 많이 먹으면 그런 일이 벌어지곤 하는데 난리 통에 그런 곤란을 겪은 고생담을 어릴 적 꽤나 여러 번 들었다. 그래서 솔이나 쑥으로 끼니를 때울 때는 느릅나무속껍질을 함께 먹어야 하는 데 피난길에 그를 구할 길 없으니 째지기 전에 파내는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많았다.

예전엔 꿈에라도 한 번 쇠고기 국에 이밥 한 그릇 먹어보는 게 원(願)이었던 사람들이 이 땅에 득실거렸으니 바로 ‘째지게 가난한’ 이들이었다. 북한의 김일성이 생전에 툭하면 인민들을 상대로 쌀밥에 고깃국 먹고 기와집에 살게 해주겠다고 ‘뻥’을 치곤했던 것도 ‘낙원’이라던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의 살림살이가 그만큼 가난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이태 연속으로 연두사에서 ‘쌀밥과 고깃국’ 타령을 한 1992년과 1993년의 경우 북한에서는 식량부족으로 3~4명에 한 사람 꼴로 굶을 지경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하루 한 사람이 쌀 600g을 먹어야 하는데 배급량은 100g밖에 안 됐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 하리오. 요즘 김정은이 트럼프를 상대로 빅딜을 운운하는 것도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 일단은 핵을 팔아 인민들에게 ‘쌀밥에 고깃국’을 먹이겠다는 ‘결단’으로 읽히는 이유다.

청년 실업률 역대 최다 기록, ‘현대판 기근’

하지만 한심한 것은 우리가 북한의 ‘과부사정’을 타낼 처지가 못 된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올 5월 기준으로 전체 실업자가 112만1000명이나 되고 이 가운데 4년제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 보유자가 40만2000명으로 35.8%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4년제 대학 졸업 이상의 실업자 수는 1년 전보다 7만6000명이 많은 것으로 역대 최다 수준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전문대 졸업자까지 포괄한 대졸 실업자 비율은 48.8%에 달하는데 2000년 5월에는 실업자 중 4년제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 보유자가 14.2%에 불과했다.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고학력 실업자 비중이 18년 사이에 2.5배 수준으로 확대된 것이다. 더구나 범위를 확대해 청년실업률(15~29세의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의 비율)을 보면 10.5%로 청년실업자는 무려 46만명이나 된다. 21세기 들어 가장 높은 수치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상 최악”이라고 비판했던 박근혜 정부 때의 청년실업 기록을 본인이 집권하면서 깬 형국이다. 지난 2년 새 대기업에서 사라진 일자리만 2만3000개라고 한다. OECD국가 중 청년실업이 개선되는 추세에 있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칠레뿐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헬 조선’ ‘大恨民國’이라고 저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그들한테 실업은 ‘칠년대한(七年大旱)’보다 더 지독한 인생의 ‘보릿고개’나 마찬가지다. 풀떼기고 자시고 뜯어먹을 거리가 아예 없다. 현대판 ‘기근’이다.

조선시대 제일 큰 도적 임꺽정 무리가 날 뛰던 때도 분위기가 꼭 요즘과 같았다. 이 땅의 민초들한테서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를 만났다’는 푸념이 나오지 않도록 모두 힘쓸 일이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밥과 쇠고깃국’은 취업, 즉 직업을 갖도록 해주는 일이다. 새삼 보릿고개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처칠은 영국국민의 내핍을 호소할 때마다 “1년 안에 ‘서로인(Sirloin·쇠고기 등심)’을 식탁에 놓아 드리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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