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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리설주 ‘여사’? 어딘가 좀 낯설지 않나
리설주 ‘여사’? 어딘가 좀 낯설지 않나
  • 이만훈 언론인
  • 승인 2018.05.31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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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최고 지도자와 그의 부인을 일컫는 호칭의 변천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1922~2004)의 명시(名詩) ‘꽃’의 일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를 꼽을 때면 늘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시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 시가 뭘 말하려는 지 알 바 없이 ‘어쩌면 이리도 착 감기게 말을 부릴 수 있을까’ 하고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그저 좋으면 좋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시를 두고 사물의 존재론적 세계를 이미지로 표현한 대표적인 주지주의(主知主義) 작품이라고 평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교감과 소통에 의해서 그 존재의 의미가 생성된다. 인간에게 인식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모든 존재는 인간의 마음에 의해서 인식되고 그 명칭과 존재가 규정되기 때문이다. 꽃은 꽃이란 이름을 통해 꽃이 되는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 지, 그리고 제대로 이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는 더 이상 얘기할 필요조차 없다. 오죽했으면 노자(老子)가 도덕경(道德經)의 첫머리를 도(道)와 더불어 이름(名)에 대한 ‘썰’로 장식(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했을까?

‘대통령’ 용어는 ‘통령(統領)’에서 비롯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이름’ 못지않게 중요한 게 ‘위호(位號)’다. 위호란 직위에 대한 호칭의 준말일 테다. 이름이 사람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물을 특정하여 구분키 위한 장치이자 약속이라면 위호 역시 인간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약속이자 장치다.

뭐니 뭐니 해도 위호 가운데 으뜸은 나라살림을 맡아 운영하는 최고 통치자에 대한 것이다. 제국시절이라면 황제(皇帝), 왕정국가라면 왕(王)일 테고, 현대 국가들에선 대통령(大統領)이나 총리(總理), 혹은 수상(首相)이 일반적이다. 물론 중국의 주석(主席)과 대만의 총통(總統), 북한의 국무위원장(國務委員長) 등도 있다.

‘대통령(大統領)’이라는 용어는 ‘통령(統領)’으로부터 비롯된 말이다. 한나라 때 북방 흉노 군대의 장군을 ‘통령’으로 지칭하는 등 소수 민족 군대의 장군을 비공식적인 표현으로 사용했으며 청나라 후기에는 오늘날 여단장급의 무관 벼슬 명칭인 근위영 장관(近衛營 長官)을 이르는 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에 조운선 10척을 거느리는 벼슬을 ‘통령’이라 불렀고, 일본에서는 고대부터 ‘사무라이를 통솔하는 우두머리’라는 군사적 용어였으며, 군사적 수장이나 씨족의 족장을 의미하는 용어로 흔하게 쓰였다.

근대 일본에서는 고대 로마의 집정관이나 베네치아 공화국의 원수, 프랑스 제1공화국의 집정관 등 다른 나라의 직위를 ‘통령’으로 번역했는데 영어 ‘president’에 대해선 익숙한 ‘통령’이라는 용어에 ‘큰 대(大)’ 자를 덧붙여 ‘대통령’이라는 말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일본국어대사전>에는 1852년에 출간된 ‘막부 외국관계 문서지일(文書之一)’에서 처음 ‘대통령’이란 말이 사용된 것으로 나와 있다.

중국에서는 ‘president’의 번역어로 1817년 ‘두인(頭人)’이라는 비칭(卑稱)의 성격을 띤 호칭을 사용한 이래, ‘총리(總理)’ ‘국주(國主)’ ‘추(酋)’ ‘수사(首事)’ ‘추장(酋長)’ ‘방장(邦長)’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 등의 용어를 쓴 바 있다. ‘통령(總統)’이라는 용어는 중국에서 1838년에 이미 나타나고 있고, ‘대통령’이라는 용어도 1875년 경 출현하기는 하지만 두 가지 용어 모두 이후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1870년에 이르러 ‘총통’이라는 용어를 이미 널리 쓰게 되었으며, 현재 중국에서는 ‘president’를 ‘총통’으로 번역하고, 타이완에서는 자국 국가 원수의 직함으로 총통을 계속 쓰고 있다.

한국의 기록에서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다녀온 이헌영(李憲永·1837~1910)이 1881년 펴낸 ‘일사집략(日槎集略)’이라는 수신사 기록에서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신문이 ‘미국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기록한 것이다. 그 뒤 1884년 <승정원일기>에서도 고종이 미국의 국가 원수를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현대에 들어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게 된 계기는 상해임시정부에서 최고통수권자를 칭하는 말로 사용했기 때문으로 이후 정부수립과 함께 민주공화제를 택하면서 줄곧 통수권자를 대통령이라고 칭하고 있다.

총리는 ‘전체를 모두 관리한다’는 뜻으로 국무를 총괄하는 직위나 사람을 일컫는데 ‘총리대신(總理大臣)’이나 ‘총상(總相)’으로도 쓰인다. 또 수상(首相)은 의원내각제에서 내각의 우두머리에 대한 호칭으로 고려와 조선 때도 조정의 우두머리에 대해 사용됐다.

국가 원수를 일컫는 다양한 별칭들

동양에서 황제는 자신을 ‘짐(朕)’, 제후국의 왕은 ‘고’나 ‘과인(寡人)’이라 했고, 아랫사람들이 부르는 경칭의 경우 황제는 ‘폐하(陛下)’, 왕은 ‘전하(殿下)’로 각각 달리 부르도록 했다. 중국에선 고래로 황태자를 ‘전하’로 불렀는데 조선에서는 왕세자에게 따로 저하(邸下)라는 경칭을 사용하였다.

일본은 고대부터 군주의 칭호로 ‘오키미(大王)’를 사용하다가, 7세기부터 ‘천황(天皇)’이라 칭하면서 황태자를 ‘전하’라 하였다. 이렇게 한자말에는 상대방을 높이기 위해 상대방의 호칭을 직접 말하지 않고, 상대방이 거처하는 공간 명칭 다음에 아래 하(下)자를 쓴다. 아래 하(下)자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일 때 쓰는 표현이다.

예전에는 대통령이란 호칭 뒤에 반드시 붙이곤 했던 ‘각하(閣下)’란 경칭도 마찬가지다. 고려 때 ‘각하’는 문하시중(門下侍中)과 평장사(平章事), 참지정사(參知政事) 및 중추원(中樞院) 재상(宰相) 및 6부 상서(六部尙書)를 부르는 존칭으로 쓰였고, 조선에서도 정승과 판서, 왕세손을 부르는 존칭(이와 비슷한 격의 또 다른 호칭으로는 대감(大監)과 영감(令監)이 있다. 대감은 정2품 이상, 영감은 정3품과 종2품의 관원을 부르는 말이었는데 오늘날 영감이란 말은 그냥 나이든 할아버지를 낮춰서 말할 때 쓴다. 그나마 예전에는 영감마님이던 것이 영감태기, 영감쟁이로 격하되고 말았다)으로 쓰였다.

하지만 널리 쓰이지는 않았고 뒤에 나오는 ‘합하(閤下)’라는 호칭이 흔하게 쓰였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도 이 호칭을 사용해 왔는데, 일본어로는 ‘갓카’에 가깝게 발음된다. 막부 때까지는 고급 각료에게 쓰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문관 중에서는 천황이 직접 임명하는 칙임관(勅任官), 무관 중에서는 육군 소장 이상에게만 쓰도록 했다.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 국무총리, 부총리, 장관과 심지어는 육군 장군들에게도 ‘각하’를 붙였다. 일제 때 이전에는 그다지 우리 역사에서 흔히 쓰이지 않던 용어였다. 일종의 왜색문화였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오로지 대통령에게만 이 존칭을 붙이게 했으나 은밀히 국무총리 각하, 중앙정보부장 각하 등의 호칭을 붙이기도 했다. 갑자기 존칭을 없애려니 어색하기도 했을 테고, 한편으론 그럴수록 아부의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후 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공식적으로 각하라는 표현을 금하게 했고(다만 청와대 내부에서 비공식적으로는 각하 호칭이 통용됐다), 15대 김대중 대통령부터는 청와대 내에서도 ‘대통령 님’으로 부르게 되었다.

우리와 달리 오늘날 중국에선 직함 외에 별도 호칭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우대할 때는 중국 특유의 존칭인 선생(先生)이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하는데 주로 외국 국가원수한테 사용한다. 직함 자체에 이미 존경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부 당시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한국 정치인들이 ‘각하’라는 호칭을 쓴 적이 있는데 중국인들은 이를 제국 시절 고관대작에게 쓰던 호칭으로 여겨 당혹스런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미국의 경우 건국 초에 별도 호칭을 붙이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으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결정으로 높낮이 없는 호칭인 ‘Mr.President’로 정착돼 지금까지 대통령의 고유 호칭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도 다른 나라의 정상에 대해서는 ‘각하’에 해당하는 ‘Exellency’란 경칭을 사용한다.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북미정상회담 취소 편지를 쓰면서 첫 머리에 쓴 게 ‘His Exellency Kim Jong Un’이었다.

王과 妃, 그의 부인을 칭하는 전통용어

그렇다면 최고 권력의 부인에 대한 호칭은 어땠을까? 주례(周禮)에 따르면 천자는 한 명의 후(后)외에 세 명의 부인(夫人),아홉 명의 빈(嬪), 스물일곱 명의 세부(世婦), 여든 한 명의 어처(御妻) 등 모두 121명의 아내를 둘 수 있도록 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 제후국(諸侯國)의 예(禮)를 뚜렷이 하여, 왕의 적처는 후(后)라 하지 않고, 격하해 비(妃)라 하고, 후궁들에게는 내명부의 벼슬을 주어 숙원(淑媛:종4품)·소원(昭媛:정4품)·숙용(淑容:종3품)·소용(昭容:정3품)·숙의(淑儀:종2품)·소의(昭儀:정2품)·귀인(貴人:종1품)의 순으로 올리고, 후궁의 으뜸은 빈(嬪:정1품)이라 했다. 이 빈에는 처음부터 왕의 후사(後嗣)를 위하여 왕비나 세자빈과 같이 금혼령(禁婚令)을 내리고 간택해 들어오는 경우와, 궁녀로 들어왔다가 왕의 총애를 입어 왕자를 낳고 궁녀에서 소용·숙의 등을 거쳐 빈으로 승격되는 경우가 있다. 경종(景宗)의 생모인 장희빈(張禧嬪) 등 선원보(璿源譜)에 올라 있는 역대 빈들은 거의 후자에 속한다. 1897년(광무 1)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어 황제국으로 격상하면서 귀비·귀빈·귀인 등 중국과 같은 호칭으로 올랐고, 이를 아울러 3부인(夫人)이라 하였다. 아랫사람이 이들을 부를 때는 내명부 호칭 뒤에 ‘마마’를 붙이면 됐다. 예를 들어 ‘왕비마마’ ‘귀비마마’와 같은 식이다.

‘여사’가 대통령 아내 경칭이 되기까지

올 들어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격동 속에 ‘비핵화’와 더불어 새삼 주목을 받은 말이 있다. 바로 ‘여사’다. 북한의 김정은이 본격적으로 국제정치무대에 등판하면서 대동한 부인 리설주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된 것이 단초(端初)가 됐다. 1989년 생으로 만 28세밖에 안 된 그에게 ‘여사’라고 부르는 게 과연 합당하냐는 부정적인 시각이 주된 논의의 출발이었다.

여사(女史)는 고대 중국에서 왕후(王后)의 예지(醴胑)를 관장하는 여자 벼슬아치를 일컫는 말이었다. 일종의 여자 서기(女子書記)로 왕후를 따라다니며 그 언행을 기록하게 했는데, 만약 왕후의 과오를 기록하지 않으면 처형당하기도 했다. 진(晉)의 장화(張華)가 ‘여사잠(女史箴)’을 지었고 이를 동진(東晉)의 고개지(顧凱之)가 그림으로 그렸는데 이를 베낀 ‘여사잠도권(女史箴圖卷)’이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 같은 여사의 직무가 나중에는 황제나 왕과 동침할 비빈들의 순서를 정해주는 일로 확대돼 비빈들에게 금, 은, 동 등으로 만든 반지를 끼게 하여 황제나 왕을 모실 순서를 정했고, 생리 중인 여성은 양 볼에 붉은색을 칠하게 하는 등 비빈들의 건강 상태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실질적인 궁중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면 때문에 이후 여사란 호칭을 잘 쓰지 않았는데 그래도 간혹 여류명사의 호칭에 사용되기도 했다. 청초 화훼화(花卉畵)로 이름을 날린 운빙(惲冰)이 난릉여사(蘭陵女史)라고 자신의 호에 ‘여사’를 붙여 사용했다. 하지만 점차 후대로 내려오면서 ‘여사(女史)’란 말이 술집의 포주나 창녀를 뜻하는 말로도 격하전의(格下轉意)되는 바람에 거의 사멸되다시피 했다.

이에 따라 여사의 한자를 ‘女士’로 바꿔 쓰기도 했는데 명말, 청초의 여류 화가로 화조(花鳥)를 잘 그린 이인(李因·1616~1685)이 감산여사(龕山女士)란 호를 썼고, 우리나라에서도 ‘冠禮티 호l 祝辭애 모사 고텨 女士l라 다’란 <가례>와 같은 용례가 있다.

다만 일본에서 ‘女史’를 결혼한 부인의 성씨 뒤에 존칭어로 붙이면서 우리나라에도 쓰이게 되었다. 김씨일 경우 ‘김 여사’라고 부르는 식이다. 학계에선 이 어휘가 우리나라에서 결혼한 여성에 대한 존칭어로 사용된 시기는 대략 조선에서 일본의 세력이 커지기 시작한 1910년 전후로 보고 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경칭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광복 이후에도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영부인에게 ‘프란체스카 여사’란 호칭을 함으로써 그 이후 대통령의 아내에 대한 경칭으로도 관용처럼 사용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리설주 여사’…‘동지’에서 ‘여사’가 된 배경은?

리설주가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등장한 것은 김정은이 집권한 첫 해인 지난 2012년 7월 8일 김정은의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에 동행하면서였다. 이어 같은 달 15일 창천거리 경사유치원 방문에도 김정은과 함께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신원을 드러내지 않아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하지만 열흘 뒤인 7월 25일 김정은의 릉라인민유원지 준공식 참석을 전하는 북한 매체들이 “김정은 원수가 부인 리설주 동지와 함께 준공식장에 나왔다”고 밝히면서 그가 김정은의 아내임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줄곧 그에 대한 호칭은 ‘부인 리설주 동지’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호칭이 바뀌었다. 지난 2월 8일 북한의 관영 방송인 조선중앙TV는 이날 오전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건군절(建軍節)기념 열병식 행사장면을 녹화 방영하면서 “김정은 동지와 리설주 여사가 열병식장에 나오셨다”며 처음으로 리설주를 ‘여사’라고 지칭했다. 이어 3월 6일 정의용 안보실장 등 대북 특별사절단 소식을 전하면서도 리설주에 대해 ‘여사’라고 불렀다. 리설주는 전날 저녁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하면서 서방의 ‘퍼스트레이디’에 해당하는 위치임을 드러냈고, 이에 따라 국영방송의 보도를 통해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이는 3월 25~2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북중정상회담 기간과 4월 27일 판문점에서 있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리설주가 보여준 역할로써 증명됐다.

사실 북한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공식석상에 부인을 동반한 적이 극히 드물었고, 이들의 행적이 공개된 적이 흔치 않았다. 또한 북한에서 ‘여사’라는 호칭은 ‘국모(國母)’급(?)에 대한 호칭으로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에게만 부여돼왔다. 김일성의 후처였던 김성애도 ‘부인’이라는 호칭으로만 소개됐고,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도 사실상 북한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지만 공개석상에 나선 적은 없었다.

더구나 4월 15일부터는 리설주한테 아예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존경하는 리설주 여사께서 중국 중앙발레무용단의 ‘지젤’을 관람하셨다”고 보도했다. 북한전문매체 ‘NK뉴스’에서 북한 연구가로 활동하는 피터 워드는 트위터를 통해 새 호칭 등장에 대해 “리설주가 그녀만의 개인숭배를 받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북한, 정치적 함의로 호칭의 격 한껏 끌어올려

‘퍼스트레이디’라는 호칭은 넓게는 사회에서 지도적 지위에 있는 여성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대통령이나 수상 등 국가 최고지도자의 아내를 지칭할 때 쓰인다. 퍼스트레이디라는 용어는 1877년 뉴욕의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미국의 제 19대 대통령 러더포드 헤이스(Rutherford B. Hayes·재임 1877~1881)의 취임식을 보도하면서 처음 사용해 이후 대중화됐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퍼스트레이디를 ‘영부인(令夫人)’으로 부르는데, 정확히는 ‘대통령 영부인’이 맞다. 또한 대통령 영부인의 이름 뒤에 ‘여사’라는 호칭을 붙여서 부르기도 한다. ‘대통령 영부인 ㅇㅇㅇ 여사’라고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 ‘ㅇㅇㅇ 대통령 영부인’하면 될 것을 곰배인비 추어올리느라 그러는 것이니 아랫것들(?)의 어쩔 수 없는 복종과 아부가 반영된 어법인 셈이다. 대통령에 대해서도 ‘ㅇㅇㅇ대통령’하던 것을 언제부턴가 ‘ㅇㅇㅇ대통령 님’하니 더 말할 게 있을까 싶기는 하다만….

그렇다면 북한이 리설주에 대해 사용하는 ‘여사’란 표현은 합당한 것일까? 북한에서 나온 ‘조선어말사전’에는 ‘녀사(女士)’의 용례로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하나는 ‘학식 있고 인품 있는 여자를 대접하여 이르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①‘진보적인 사회정치 활동을 하여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녀성 활동가를 높여 부르는 말’과 ②‘(대외관계에서) 주로 결혼한 여자의 이름 밑에 붙여 쓰는 공식적인 존칭’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단지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첫째 용례는 가당치도 않고, 둘째 용례의 ①과 ②를 합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다 고도의 정치적 함의를 듬뿍 입혀 그들의 표현대로 ‘최고 존엄의 부인’에게만 허용케 함으로써 ‘여사’란 호칭의 격을 한껏 끌어올린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실상 최고지도자의 부인인 리설주한테 ‘여사’란 호칭을 붙이고 퍼스트레이디로서 대접하는 것은 그리 이상할 것도 없고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북한에서도 낯선 표현…리설주, 어린 나이에 사회적 활동도 無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리설주의 역할을 분명히 목도한 남쪽의 많은 이들은 물론 북한의 주민들 사이에서까지 ‘리설주 여사’란 표현에 대해 낯설어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 그럴까?

우선, 리설주가 올해 만 28세로 한 국가의 퍼스트레이디로 대접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중시하는 문화에 익숙한 까닭에 왕조시대도 아닌 마당에 나이가 어린 여자에게 선뜻 ‘국모대접’을 하려니 어딘 지 모르게 고깝기도 할 테다. 여기에는 중국이 최고실력자의 아내한테 별도의 경칭을 추가하지 않고 그저 ‘시진핑(습近平) 주석의 부인(夫人) 펑리위안(彭麗媛)’이라고 부른다는 점도 작용했음직하다.

또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어린 나이와 더불어 이렇다 할 사회적 활동이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은의 나이 역시 아직 30대에 불과한데다 지난 6년의 집권 기간 동안 이렇다 할 경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공포정치를 펼친 점에 대한 불만이 상당한 판에 20대에 불과한 리설주마저 ‘여사’로 불리는 것에 대해 너그러울 수 없으리란 분석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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