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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 모두 화투 패만 잡으면 ‘타짜 김혜수’
우리 국민 모두 화투 패만 잡으면 ‘타짜 김혜수’
  • 이만훈 언론인
  • 승인 2018.03.02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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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은 폭탄주·노래방과 함께 ‘3대 국민 오락’…서민 애환과 시대 풍자 담겨

‘내가 어머니, 동생 가족, 미혼인 여동생과 설 차례를 마치고 결혼한 여동생 가족이 다녀간 후 자정 무렵 처갓집에 도착하니 고스톱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얼핏 보니 똥을 먹고 있는 처남패가 좋아 보였다. 세 판 돌았는데 열 피였고 고도리까지 가능한 패였으나 나는 큰 처형의 패를 보면서 “형님 고도리 나기 힘들겠네”라고 했다. 고도리를 포기하고 쌍피를 먹은 처남은 고를 부른다. 투고까지 하여 피박, 광박까지 씌울 찬스가 되었으나 마지막 판에 더 이상 먹지 못해 나가리가 되고 만다. 대박을 놓친 처남도 쓰리고를 막겠다고 용을 쓰던 큰 처형과 막내 처제도, 그리고 지켜보던 가족들도 모두가 ‘산다는 게 다 뭣인지’ 숙연한 자세가 된다.’

얼마 전 있었던 설 연휴 동안 어디서 본 장면 같지 않은가? 하지만 실화가 아니라 김성기의 단편 <고스톱>의 첫 장면 줄거리(2005년)이다. 물론 작가가 겪고 본 체험을 바탕으로 엮은 것이니 실제로 우리네 명절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건 분명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설과 추석 등 명절 비용에 ‘고스톱 밑천’이 필수 항목으로 자리를 잡은 우리나라에서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기왕 나온 김에 설 얘기를 더 해보자. 우리 민족은 신라 때부터 섣달그믐날이면 묵은해를 보낸다 하여 ‘과세(過歲)’라 하고, 다음 날인 정월 초하룻날이 되면 ‘세배(歲拜)’라 하여 서로 만나는 사람끼리 새해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보냈다. 조선 중종 때 성현(成俔·1439~1504)이 지은 <용재총화(慵齋叢話)>에도 나온다. ‘설날에는 사람들이 모두 일손을 놓고 다투어 모여서 노름판을 벌이고 술을 마시면서 놀고 즐긴다. 또 새해의 첫 쥐날, 말날, 용날, 돼지날에도 이같이 논다…모든 관청이 사흘 동안 쉰다(元日人皆不事 爭聚梟虞之戱 飮酒游樂. 新歲子午辰亥如之..諸司限三日不仕)’고.

설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음주 오락을 하며 즐기는 풍습은 이렇게 뿌리가 깊다. 기질적으로 먹고 노는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놀아도 그냥 노는 게 아니라 음주가무는 물론 노름을 하며 논다. 노름은 놀이에서 나온 말로 익사이팅(exiting) 한 놀이다. 오늘날 우리가 ‘고스톱 공화국’에 사는 연유다. 흥이 많고 끼까지 넘치면 세상이 신나게 마련이다.

고서에 수록된 한국의 ‘풍류문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누군들 먹고 놀기를 좋아하지 않을까마는 감히 말하건대 우리 민족만큼 유난스럽지는 않으리라. 물론 여기서 먹고 논다는 건 밥이나 축내면서 빈둥거린다는 뜻이 아니라 삶을 즐긴다는 얘기다. 다른 말로 풍류(風流)로 치면 우리 민족이 최고란 말이다. 우리 민족이 오죽 먹고 노는데 호가 났으면 사람을 통하는 것 말고 딱히 통신수단이랄 게 없던 3세기 우리 조상들이 살던 곳에서 수만리 떨어진 중국에까지 전해져 <삼국지>란 책에 기록됐을까.

서진(西晉) 사람인 진수(陳壽·233~297)가 280~289년 사이에 편찬한 중국 삼국시대에 관한 정사(正史)인 이 책 중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는 부여, 고구려, 동예, 삼한 등 동이족 사회, 즉 한국 고대사회의 다양한 사실들이 수록돼 있는데 위치와 강역·인구·정치체제·사회조직·의식주와 풍속·신앙 등을 알 수 있다.

부여의 영고(迎鼓)를 비롯한 제천의례,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과 호랑이신 숭배, 삼한의 천군(天君)·소도(蘇塗)와 농경의례 등의 내용을 통해 우리 민족은 그 옛날부터 대단한 풍류 유전자가 있었음을 증언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흥이 많고, 음주가무는 물론 잡기(雜技)에 능했다는 얘기다. 잡기란 활쏘기·수박(手搏)·각저(角抵)·봉술(棒術) 등 전쟁에 필요한 체력·기술단련용을 포함한 각종 놀이를 말한다.

그러니 우리는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 1872~1945)가 인간의 특성으로 갈파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를 조상으로 둔 셈이다. 호모 루덴스는 ‘노는 인간’이라고도 번역되는데 우리 민족은 호이징하가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한 대로 살았으니까.

놀이는 곧 풍류다. 풍류가 있으면 쩨쩨하지 않다. 따라서 풍류객은 무골호인(無骨好人)이면서 무골호인(武骨豪人)이다. 기상이 늠름하고 호방하다. 현대 한국인도 노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오늘날 한국 땅에서 여가문화(餘暇文化)의 일상이다시피 한 폭탄주, 노래방 문화가 한국인에 따라붙는 ‘세계적 브랜드’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류(韓流) 열풍을 선도하고 있는 K팝이 거저 별안간 땅에서 솟아난 게 아니다.

여기에다 명실공히 ‘놀이의 왕’인 고스톱까지 있으니 이들 세 가지야말로 ‘노는 민족’의 위용(偉勇)을 세계만방에 떨치는데 앞장서는 ‘삼각편대’를 이루고 있다. 이들 삼총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국인임을 인증하는 표지(標識)이다. 폭탄주 한 잔을 못하고, 노래방에 가길 꺼린다거나 고스톱 판에 어울릴 줄 모르면 무늬는 한국인일지언정 EQ 상으론 이미 한국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굳센 버팀목이 혈연·지연·학연이라지만 이 같은 인연이 실제 힘으로 역할을 하려면 적어도 서너 번 이들 ‘놀이 3종 세트’를 함께 하는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친척도, 고향과 학교의 선후배도 그저 인사치레만 나누는 데면데면한 사이일 뿐 관계의 진정한 화학적 결합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3종 세트를 거쳐 사우나까지 함께 ‘때리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이지만 말이다. 두어 시간 고스톱을 치면서 함께 시시덕거리며 승패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사이 엔도르핀 수치가 올라가면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폭탄주로 시원하게 목 가심을 한 뒤 노래방에서 한껏 연예인으로 코스프레한 다음 사우나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면 쌈빡한 기분에 누구라도 금세 ‘1촌’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세 가지 중에서도 특히 ‘놀이’로서의 대표성은 뭐니 뭐니 해도 고스톱이 갖고 있다. 호이징하가 놀이 분류의 기본 범주로 ‘경쟁’과 ‘모의’를 제시한 것에 후학 로제 카이와(Roger Cailois·1913~1978)가 20년 후(1958년) 출간한 <놀이와 인간(Les jeux et les hommes)>을 통해 ‘운(運)’과 ‘현기증’을 추가했는데 고스톱이야말로 이 조건에 여지없이 들어맞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인 사이에 고스톱이 어떤 존재인지는 굳이 통계를 들이댈 것도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온·오프를 합치면 줄잡아 3000만 명이 즐기는 ‘국민 놀이’이니까. 가히 한국인은 ‘호모 고스톱쿠스(Homo Gostopcus)’요, 이 땅은 ‘고스토피아(Gostopia)’인 셈이다. 그래서 나온 유머가 있다. “미국인 셋이면 줄이 생기고, 이스라엘 사람 셋이면 정당을 만들고, 일본인 셋이면 상사(商社)가 생기는데 한국인 셋이면 고스톱 방석이 깔린다!”

굴러들어온 ‘화투’가 박힌 ‘투전’ 빼내다

무릇 어떤 사회현상이 나타나려면 항상 그것이 성숙하는데 필요한 문화적 토양이 있게 마련이다. 알다시피 고스톱은 화투놀이의 한 가지로,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성행하고 있던 화투놀이(민화투를 바탕으로 육백·나이론뻥·섰다·짓고땡·삼봉 등 다양한 형태)를 배경으로 등장해 애초부터 전혀 낯설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화투놀이 또한 일본서 도입되기 전 조선에 널리 퍼져있던 수투(數投) 놀이문화에 올라타 쉬이 퍼져나갈 수 있었던 건 주지의 사실이다. 수투는 투전(鬪牋·投箋)과 같은 말로 콩기름을 여러 차례 먹여서 빳빳하게 된 종이(너비 5센티미터, 길이 15센티미터쯤)의 한 면에 인물·새·짐승·벌레·물고기 등의 그림이나 글귀로 끗수를 나타낸 오락기구. 80목, 60목이었다가 나중에는 40목으로 간화(簡化) 됐는데 이를 이용한 놀이로는 ‘돌려대기’ ‘동동이’ ‘가구’ ‘우등뽑기’ 따위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40목으로 하는 ‘돌려대기’는 오늘날의 ‘짓고땡’의 원조로 가장 인기가 있었고, 두 목으로 끗수를 다투는 ‘가보잡기’(‘섰다’의 원형)도 유행했다.

투전 놀이는 18세기 초반부터 널리 퍼져서 투전을 전문으로 파는 장사꾼까지 등장할 정도여서 이를 이용한 노름이 판을 쳐 큰 폐해를 입혔으며, 관아에서 아무리 단속을 해도 효과가 없었다. 투전을 일삼는 패거리 중 기술(?)이 뛰어난 자는 스스로 ‘투전 국수(國手)’라고 우쭐댔는데 세상에서는 그들을 ‘툇자(놓을 놈)’라고 불렀고, 이것이 와전돼 오늘날의 ‘타짜’가 됐다. 원래는 투전장을 그리는 사람을 일컫던 말로 여러 벌을 한 사람이 그리므로 글자체가 똑같아야 했기 때문에 ‘타자(打字)’라고 한 것인데 워낙 솜씨가 좋아 실제 투전판에서 뛰어난 손재주로 속임수를 쓰는 꾼에 대해서도 은어(隱語)로 그렇게 불렀다.

영조 때 우의정까지 지낸 원인손(元仁孫·1721~1774)은 이조판서의 아들임에도 젊은 시절 타짜로 날렸을 정도이니 당시의 투전 열풍을 너끈히 짐작할 수 있다. 화투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이 땅에는 이렇게 화투놀이가 널리 퍼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실제로 화투가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투전은 그 위세를 물려주고 놀이판에서 사라졌으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꼴이었다. 배경이야 어쨌든 화투놀이가 투전을 제치고 성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이 단순하여 누구든지 쉽게 규칙을 익힐 수 있고, 또 놀이가 상당히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 머리를 쓰면서 게임의 승부를 예측하는 묘미도 곁들여져 상대방의 허점도 찔러보면서 자신의 승리를 시도한다. 일종의 지혜 겨루기이지만 생각지 못한 운(運)과 불운(不運)이 겹쳐져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그런데 화투놀이 가운데서도 재미로 치면 단연 최고봉인 고스톱임에랴!

93세 ‘엄니’도 화투 패 잡으면 ‘타짜 김혜수’

 

고스톱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울 엄니’(필자는 어머니를 그리 부른다)가 산증인이다. 울 엄니는 1926년 병인(丙寅)생으로 졸수(卒壽), 망백(望百)을 넘어 올해 아흔셋이 되신 노인 중에서도 상노인이다. 하지만 진지도 30대 손주만큼 삼시 세끼 꼬박꼬박 드시고, 안력과 청력 모두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으시는 건강체이시다. 그렇다고 모두 성하시진 않으셔서 허리는 꼬부랑이고, 팔다리가 늘 쑤신다고 엄살(?)을 부리신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것도 어쩔 수없는 노인의 근력이다. 이런 울 엄니가 젊은이마냥 쌩쌩하실 경우가 있다. 바로 고스톱을 치실 때다. 실력도 대단하셔서 ‘쇼당’도 능수능란하게 부치시고, 다른 사람의 패를 읽어내는 능력도 나무랄 데가 없다. 거기에다 흔든 것을 까먹는 일도 전혀 없다.

5남 1녀를 키우시느라 평생 고생만 하신 게 안됐던지 오사바사한 구석이라곤 전혀 없던 아버지께서 고희(古稀) 넘은 엄니를 앉혀놓고 가르치신 결과이다. 선친께서 생존하실 적에 모임에 함께 가시면 선친을 대신해 아저씨들과 일전을 겨뤄 늘 돈을 따시곤 했을 정도다.

그러니 고스톱을 치시면 집중을 하시면서도 여유가 장난이 아니다. ‘포스’로는 영화 <타짜>의 김혜수에 전혀 꿀리지 않는다. 마을회관 노인정에 출근(?) 하실라 치면 하루 온종일 60, 70대 들과 고스톱을 치시다 저녁때야 돌아오시고, 어쩌다 우리 형제들이 모여 한 판 벌이는 날엔 자정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자식들은 힘들어 그만했으면 하는데도 당신 혼자서 독야청청(獨夜淸淸) 계속해서 “못 먹어도 고오~”를 외치신다. 팔이 욱신거리고, 어깨가 결리고, ‘꼬뱅이’가 쑤신다던 노친께선 어디로 가셨나 싶다.

고스톱에 홀릭 되는 네 가지 이유

하나, 무릇 무슨 놀이이건 간에 승패를 가리는 경우 이기고 지는 확률이 뚜렷하면 일단 게임 자체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 번번이 지는 사람이 좋아할 리 없고, 이기는 쪽에서도 ‘매가리’가 풀려 할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놀이는 승리를 위해 온갖 지략을 그러모아 ‘쪼는 맛’이 있어야 재미가 있고, 또 재미가 있어야 성행한다.

흔히 고스톱을 두고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한다.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요인으로 기술(머리+손재주)이 30%, 운이 70%를 차지한다는 얘기다. 이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화투의 패를 구분하고 규칙을 이해할 정도의 웬만한 지능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와 겨뤄도 승패에 있어 크게 꿀릴 게 없다. 그러니 너도나도 해볼 만하다고 덤벼들고, 또 그 바람에 쉬이 장이 서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이 참여자들이 보기에 운의 비중이 너무 커 두뇌 플레이를 할 여지가 없다고 느끼면 게임이 느슨해져 재미가 없게 된다. 놀이가 성행하려면 요행의 범위가 적당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놀이의 ‘골디락스(Goldilocks)’라고나 할까?

고스톱은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참여자들 간에 규칙을 정하는데 바로 이때 운과 기의 비중을 조정할 수 있다는데 매력이 있다. 예를 들어 ‘쪽(바닥에 내놓는 패와 뒤집는 패가 같은 가문인 경우 피를 한 장씩 받는다)’을 규칙에 집어넣거나 ‘조커’를 여러 장 운영하면 훨씬 더 가변성이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수시로 예상 밖의 상황이 연출되면서 게임이 보다 다이내믹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점수가 나더라도 어지간해선 ‘고’를 부르기 어려워 판이 좀스러워지고, 결과적으로 재미가 없게 되는 폐해도 초래할 수 있다. 운 대(對) 기의 황금비율을 잘 찾을수록 게임이 생동하는 이유다.

둘, 고스톱의 매력 가운데 또 한 가지는 내기의 강도(強度) 역시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임의 성격과 주머니 형편 등을 감안해, 얻은 포인트에 따라 지불해야 하는 돈의 계산방식과 액수의 한도를 정해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점당 1000원일 경우라도 맥시멈을 3만원으로 한다든지 돈을 내는 기준을 득점의 홀수 단위로 하는 방식(3점에 2000원, 5점 3000원…)으로 말이다.

내기를 수반하는 놀이는 요행의 적당도(適當度) 만큼이나 거는 돈의 규모가 게임의 흥행 내지 재미를 결정한다. 능력에 비해 ‘내기 돈’이 세면 게임이 움츠러들고, 반면에 약하면 긴장감이 떨어져 밋밋해지게 마련인데 고스톱은 이를 능소능대 자율(自律) 할 수 있으니….

셋, 여기에다 고스톱은 다른 게임에 없는 ‘업’이라는 패자부활(敗者復活)의 장치를 갖추고 있어 당장은 루저(loser)라 하더라도 최종 파국 때까지 희망 속에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 규칙은 일단 점수를 낸 사람이 스스로 득점 처리를 포기한다는 선언으로 ‘업’(어원은 Up이거나 ‘엎어’로 추정)을 외치면 성립이 되는데, 자신이 선이 돼 다시 득점을 하면 4배, 다른 사람이 나면 2배로 계산하는 방식이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인기를 끌었던 컬링(Curling) 경기에서 득점 찬스인 후공(後攻) 때 1점밖에 나지 못할 경우 득점을 포기하고 그 엔드(end)를 ‘블랭크(blank)’하는 것과 같은 취지다.

다만 컬링이 이점이 많은 후공의 기회를 살려 대량 득점을 얻기 위해 목전의 작은 점수를 포기하는 것인데 비해 고스톱은 점수의 ‘뻥튀기’를 노린다는 점이 다르다. 둘 다 노리는 결과가 100% 보장되는 것이 아니란 점에선 같지만 일단 재시도가 성공할 경우라도 컬링은 역시 그때의 득점만 계산되지만 고스톱은 무려 4배로 계산하니 성취감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물론 재시도가 실패하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비록 작은 점수라도 챙길 것을 내팽개친 데다 다시 돌린 판의 실점(다른 사람은 두 배로 계산한다는 걸 잊지 말라!)까지 감안하면 안팎으로 본 손실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하지만 몇 번만 성공하면 그야말로 ‘짚세기’를 신다가 졸지에 벤츠를 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내기 놀이의 속성이 ‘No venture, No money’가 아니던가? 갈수록 빈부의 격차가 고착돼 ‘흙수저’ 타령이나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역전 드라마의 짜릿함을 맛보게 할 수 있다는 건 고스톱만의 특장(特長)이요 미덕이다.

넷, 고스톱이 대중의 열광적인 사랑 속에 우리나라의 ‘국민 놀이’가 된 데는 그 탁월한 민중성(民衆性)에 힘입은 바가 크다. 고스톱에서 가장 특이한 규칙은 무엇보다도 피가 특별히 존중받는다는 점이다. 종래의 화투 즉 민화투는 광과 열, 띠가 차례로 20점, 10점, 5점을 받게 되며 가장 많은 장수를 갖고 있는 피는 점수와 상관이 없다. 점수도 띠, 열, 광이 곱으로 늘어나 소위 지체가 높을수록 점수를 많이 받는다. 민화투는 단적으로 신분을 차별하는 봉건사회를 나타낸다. 민화투에서의 피는 한마디로 띠, 열, 광을 벌어들이는데 동원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못 가진 자, 즉 상놈의 역할은 가진 자(양반)의 재산을 증식시키는 구실을 할 뿐이다.

반면 고스톱은 피, 띠, 열, 광끼리 모아서 계산한다. 각 패가 나름대로의 점수를 지니고 있는 동시에 일정한 기준에 이를 때 비로소 1점이라는 자격을 얻는다. 즉 피는 10장, 띠와 열은 5장이 1점이며 광은 제각기 1점이다.

그러나 고스톱은 아주 절묘한 규칙을 갖고 있다. 고스톱은 피가 가장 불리할 것 같지만 실은 가장 유리하다. 이는 스톱할 수 있는 각각의 필요한 장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스톱을 부르려면 광은 3장, 열과 띠는 7장, 피는 12장을 모아야 한다. 그런데 광은 모두 5장임으로 60%, 열은 9장임으로 77.8%, 띠는 10장으로 70%를 가져와야 하지만 피는 24장이어서 50%만 먹으면 된다. 고스톱을 칠 때 피를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광의 경우는 60%만 먹으면 되니 열과 띠보다 수월하게 점수가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도 절묘함이 숨어 있다. 즉, 비광이 포함되는 경우는 3장을 먹어도 2장으로 간주하는 규칙이 비결이다. 적어도 광으로 3점을 나려면 비광을 제외한 광 4장 중 3장을 가져와야 하므로 80%를 가져와야 한다. 광으로 나는 것이 띠로 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스톱은 특히 1980년대 민주화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규칙 개정을 통해 점점 피를 우대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각종 변형 고스톱에서 보너스나 벌금을 피로 지급케 하고, 의외성을 키우기 위해 도입한 ‘조커’도 결국 쌍피 대접을 하는 게 대표적이다. 특히 조커의 경우 독자적으로 흔들 수 있는 3장이 투입되는 게 대부분이지만 많을 때는 10장을 채택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6장만 있으면 그 자체로 점수가 날 뿐만 아니라 ‘따따블(3장씩 두 번)’ 계산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상대 게이머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피 바다’ 의 엄청난 위력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

이와 함께 ‘피박’이 생긴 것도 민중의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피박이란 누구든지 기본적으로 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웅변하는 경고성 규칙이기 때문이다. 민중을 우습게 여겨서는 어떤 경우든 곤란하다는 사회적 의식과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이는 실제로 고스톱의 역사로도 증명된다.

80년대 민중 운동과 더불어 ‘국민 놀이’ 등극

 

고스톱은 그 기원이 분명하지 않다. 일부 국내 학자들은 투전에서 점수가 난 뒤에도 계속 진행을 원할 때 소를 모는 것처럼 “이랴”를 외치고, 그 판을 그치고 싶을 때 고삐를 당길 때처럼 “워”를 하는 ‘소몰이’가 그 원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화투가 투전이 유럽으로 전해져 카드가 된 뒤 다시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국수주의적 주장일 뿐 논거(論據)가 뚜렷하지 않다. 대신 일본식 화투인 하나후다(花札)의 코이코이(こいこい·來來)를 바탕으로 하치하치(88の遊ひ方) 방식이 가미된 놀이라는 일본 학자들의 학설이 보다 설득력이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코이코이에서 야쿠(役·일정한 패의 모임으로 득점이 되는 것)가 완성되면 플레이어가 경기를 계속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으며, 경기를 계속시키려면 “코이코이”를 부르고, 하치하치 역시 이미 이겼는데도 점수를 더할 자신이 있으면 “사게(下げ·GO)”를 선언, 계속 칠 수 있는 점이 고스톱과 닮았다. 다른 사람이 나거나 자신이 점수를 더 내지 못하면 지게 되는 방식도 같다. “코이코이”는 어감(語感) 상 “와라, 와라”로 “고~”와 비슷하다.

이 같은 유사점 때문에 1950년대 국내에 들어와 활동한 일본 태생의 세계적인 육종학자인 우장춘(禹長春·1898~1959) 박사가 해박한 확률·지식을 바탕으로 하나후다와 투전을 접목시켜 고스톱을 만들었다는 설(設)이 그럴싸하게 나돌기도 했다.

사정이야 어떠하든 고스톱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70년대 초로, 대중적인 놀이로서 민중 속에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였다. 박정희의 18년 독재가 10.26으로 무너지면서 찾아온 이른바 ‘서울의 봄’이 전두환 세력에 의해 짓밟히면서 실망한 민중이 허탈함과 시름을 달래기 위해 고스톱을 통해서나마 비판과 풍자를 하기 시작한 게 계기였다. 전두환을 우두머리로 하는 5공의 무지막지한 공포정치에 드러내놓고 대들지는 못하지만 어느 날, 어느 구석에서부터인가 정치풍자를 시작으로 세태를 비판하는 내용이 고스톱 규칙에 등장하면서 들불처럼 번져나갔던 것이다.

그 시작은 이른바 ‘싹쓸이’라는 규칙을 처음 도입한 세칭 ‘전두환 고스톱’-. 전두환 일당이 5.18로 싹쓸이해 비합법적으로 정권을 탈취했다는 비판을 담아 새로운 변형 규칙의 테이프를 끊으면서 등장한 이 고스톱은 싹쓸이(바닥에 패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버린 상태)를 하게 되면 다른 플레이어의 패를 마음대로 빼앗아올 수 있어 단숨에 역전이 가능하도록 규칙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민중들은 고스톱을 통해 싹쓸이의 폐해와 전두환 일당의 ‘만행’을 곱씹으며 자조(自嘲) 속에서도 한껏 조롱하고 즐겼다.

이는 민중이 살아있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확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금세 전국에 퍼졌다. 당시 공안당국이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행위로 간주해 강력히 단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고스톱’을 모르면 간첩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풍자 고스톱에 문패(?)로 등장한 인물만 전두환·최규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대통령을 비롯해 김종필·이순자·전경환·이민우·장세동·홍삼(DJ의 세 아들) 등 정치인과 이병철·정주영 등 재벌을 포함해 10여 명이나 됐다. 또 아웅산 고스톱을 비롯해 5공비리, 6공비리 등 정치적 사건은 물론 이철희·장영자 사건, 삼풍 사건을 꼬집고 비트는 고스톱이 유행했고, 이 밖에 뷔페 고스톱·차이나 고스톱·퉁수 고스톱·사우디 고스톱·엿장수 고스톱 등 실로 다양한 형태가 명멸했다(최근에도 촛불 고스톱이 등장했지만 별로다!).

이처럼 고스톱은 민중 운동사와 맞물려 진화해오면서 피를 우대하는 규칙이 강화되고, 이 같은 특성이야말로 고스톱으로 하여금 국민의 다수를 이루는 민중의 사랑을 받아 ‘국민적 오락’으로 등극케 했던 것이다.

21세기는 ‘놀이하는 사람’의 시대

우리는 흔히 어떤 유착(癒着) 관계를 꼬집어 말할 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악다구니 잘 쓰는 정치인은 물론이거니와 교수, 법조인, 종교인 등도 즐겨 쓴다. 심지어 방송 등 언론에서도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 점잖은 편은 아니지만 이보다 더 머리에 쏙 들게 하는 비유가 없기에 그럴진대 이는 고스톱이 국민 대중과 그만큼 친숙하다는 증거일 테다.

독일의 철학자 노베르트 볼츠는 <놀이하는 인간>에서 “19세기까지는 ‘생산자의 시대’였고, 20세기가 ‘소비자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놀이하는 사람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특히 “쾌락 추구 활동인 놀이는 사행성(射倖性)이 있다고 억압할 게 아니라 미음 놓고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패배할 가능성이 없는 놀이는 재미가 없으며, 게임에서 졌다고 인생의 패자는 아니다”며 “놀이를 통해 리스크에서 배우는 흥분, 승리에 대한 도취, 실패로 말미암은 좌절을 스스로 극복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놀이는 삶의 위대한 자극제”라며 “놀지 않는 사람은 병든 사람”이라고 역설한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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