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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문재인 대통령에 ‘몹쓸 짓’, 그게 ‘추악한 중국인’ 민낯
문재인 대통령에 ‘몹쓸 짓’, 그게 ‘추악한 중국인’ 민낯
  • 이만훈 언론인
  • 승인 2017.12.29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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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때문이란 분석은 피상적…타인 존중 않는 야만적 근성이 원인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마냥 시퍼렇기만 하던 1983년 5월 5일 오후 2시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강원지역에 별안간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반복되는 중앙민방공훈련본부의 “실제상황”이란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7분간이나 계속됐다. 

이날은 모처럼 날씨도 화창한데다 어린이 날이라 웬만한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야유회를 가거나 동물원과 고궁 혹은 운동장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이내 곳곳에서 난리가 났다. 시민들은 잽싸게 짐을 챙겨 자리를 뜨면서 곧바로 가게로 달려가선 라면 등 비상식량을 사재기하는 등 수선을 떨었다. 

요즘은 북한이 핵실험을 몇 차례나 해도 눈 하나 꿈적하지 않을 정도로 간덩이가 커졌지만 그때는 너나 할 것 없이 정신없이 허둥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석 달 전 북한에서 이웅평(李雄平) 대위가 ‘미그(MIG) 19’ 전투기를 몰고 귀순하는 바람에 남북한 간 일촉즉발의 긴장이 계속되던 터였기 때문이다. 때마침 사건기자로 당직근무 중이던 필자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이렌의 진상은 얼른 파악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시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정말 전쟁이 터진 것인가? 기자들을 비상소집해 두어 시간동안 여기저기를 쑤셔댄 끝에야 당시 적성국가(敵性國家)로 털끝만큼의 교류도 없던 중공(中共)의 민항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했고, 긴급출동한 공군전투기의 유도로 춘천의 군비행장에 불시착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시 ‘포니’(취재차)를 타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 비행기는 9명의 승무원을 포함해 모두 111명을 태우고 중국 센양(瀋陽)을 출발해 상하이(上海)로 가던 중이란 사실과 주범 줘창런(卓長仁) 등 여자 1명을 포함한 6명의 범인에 의해 납치돼 우여곡절 끝에 미군 아파치헬기 비행장이 있는 춘천의 캠프 페이지(Camp Page)에 아슬아슬하게 강제 착륙됐음을 취재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휴전 후 그때까지 적대적 관계 속에 아무런 교류가 없던 중공측이 사건발생 당일 송환교섭을 위한 대표단과 함께 전세기를 보내겠으니 허락해달라는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결국 이틀 뒤 중공민용민항총국장 센투(沈圖)를 단장으로 하는 33명의 대표단이 보잉 707기를 타고 내한해 우리 당국과 협상을 통해 5월 10일 승객들을 태우고 돌아갔다. 중공이 이렇게 재빨리 움직인 것은 당시 납치된 승객 중 중공 최고의 미사일 전문가가 있었던 때문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다. 

어쨌든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있던 중공의 민낯을 볼 수 있었고, 훗날 양국 간 수교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왕년엔 우리도…”를 외쳐대며 반성 않는 중국

 

필자는 필담(筆談) 등을 동원한 취재를 통해 당시 중공의 생활수준이 우리나라의 60년대 초반 수준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때는 우리의 경우도 비행기를 타려면 꽤나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했었던 상황이고 보면 중공의 사정은 우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할 리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나름대로 당시 중공에서는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일 텐데 승객들의 복장이나 기내용품, 그리고 외견상 건강 상태 등을 보니 말씀이 아니었다.

승객 모두 ‘중산복(中山服)’차림인데다 기내에서 제공하는 휴지는 허접한 재생지였고, 수건은 광목 홑청 수준이었으며, 사과는 탁구공보다 조금 큰 능금 같았다. 과자란 것도 포장 및 디자인이 조악하기 그지없었으며, 필기도구도 연필 외에 볼펜이라는 것도 있긴 있었지만 거의 불량품 수준이었다. 

소위 ‘문화대혁명’이란 소용돌이가 끝난 지 8년이 됐고,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인 미국과 수교를 회복한 지 5년이 지나가는데도 ‘요 모양 요 꼴’이었다. 당시 한 중국인 지성은 자기 조국을 두고 “식어버린 재를 불어버릴 힘조차 없다”며 “폐병 3기에 들어선 환자 같아 조금만 찬바람이 불어도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재채기를 해대는 형국”이라고 개탄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왕년엔 우리도…”를 외쳐대며 반성이나 개선을 하려들지 않았다. 

이른바 루신(魯迅)이 <阿Q正傳>을 통해 중국인의 고질병으로 지적한 ‘정신승리법’에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명문가 출신의 파락호가 다른 사람이 남긴 찬밥덩이로 연명을 하면서도 “우리 할아버지는 장관을 지냈는데 저 자식의 할아범은 청소부였지”라고 우쭐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에 중국인 우국지사(憂國志士)들은 한 결 같이 중국인들의 골수에 박혀있는 폐단을 없애지 않으면 부흥(復興)은커녕 ‘멸족(滅族)’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각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보양, 중국인의 ‘추한 근성’ 대놓고 찌르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추악한 중국인>의 저자 보양(柏楊· 1920~2008)이다. 그는 중국의 ‘꾀죄죄한 현실’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은 영원히 옳다고 주장하는 ‘추한 근성’을 대놓고 찔러댔다. 그는 중국인의 ‘더러움, 어지러움, 시끄러움’을 비롯해 ‘단결하지 못하는 민족성’ 등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중국 전통문화에 있는 전염성 바이러스가 자손을 감염시켰고 아직 치료하지 못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심지어 “중국인은 진하고 독한 장독 속에 빠진 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족속”이라고까지 했다. 

1983년 대만 둥하이(東海) 대학에 이어 이듬해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추악한 중국인’이란 제목으로 한 강연을 시작으로 계속된 보양의 이 같은 질타는 그야말로 질풍노도(疾風怒濤)처럼 중국과 중국인을 후려쳤다. 화교를 포함한 중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보양의 칼이 중국과 중국인의 가장 아픈 곳이자 정말 감추고 싶은 상처를 속속들이, 그리고 깊숙이 찔러댔기 때문이다. 극렬한 거부 반응과 함께 비이성적이고 추악한 공격이 그한테 쏟아졌다. 그를 향해 단순한 사대주의가 아니라 ‘숭양미외(崇洋尾外)’, 즉 ‘서양을 숭배하고 외세 혹은 외제에 꼬리치는 놈’이라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한편에선 이를 계기로 중국과 중국인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차분히 되새기고 자성해 문제를 해결하는 발판으로 삼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1980년대에 <추악한 중국인>으로 상징되는 보양만큼 중국인 사회에 영향을 미친 인물은 없었다. 거의 절대적이었다. 특히 문화혁명으로 영혼이 피폐해진 중국의 지식인들이 ‘반성을 통한 각성’을 위해 받아들이고 열광했던 니체와 사르트르, 프로이트보다 오히려 더 셌다. 

중국인은 바뀐 게 아니라 바뀐 척 했을 뿐

그리고 30여년이 흐른 2017년 12월-.
한국의 문재인(文在仁)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그냥 놀러간 게 아니라 시진핑(習近平)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위해서였고, 의전 상 최고수준인 ‘국빈(國賓)’으로서였다. 

그런데 중국은 아주 몹쓸 짓을 했다. 차관보급이 공항영접을 한 것을 시작으로 총리가 오찬을 거부하고, 정무적 판단이 허용되지 않는 서열 100위 밖의 외교부장이란 자가 ‘아래 것’ 다루듯이 문 대통령의 어깨를 툭 치는가하면 손님으로 하여금 열 끼 중 여덟 끼나 ‘혼밥’을 먹게 했다. 또 정상회담 뒤 공동성명을 생략하고, 한·중 경제인 회담에 기업 최고위 인사가 대거 불참하는 가하면 그것도 모자라 한국 대통령이 있는 지근거리에서 공식수행기자들을 집단 폭행했다.

양국은 수교한 지 25년이나 되는 최고의 경제파트너이자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다. 그럼에도 중국은 상대국 정상한테 ‘요런 짓’을 자행했다. 

혹자는 그 까닭을 “사드 문제로 중국에 까불었던 한국을 혼내줬다고 인민들에게 선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중국의 뜻을 거스르며 사드 배치를 강행한 한국을 줄곧 ‘미국의 앞잡이’라고 비난해왔는데 갑자기 국가주석이 한국 대통령과 만난다는 사실을 그대로 알릴 수 없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나라 지도자의 체면을 위해 인민을 가상현실에 가둬놓고 상대 국가원수를 모욕했다는 분석이다.

일견 타당한 주장이다. 하지만 이 같은 분석은 지극히 피상적이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그네들이 ‘추악한 중국인’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1992년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으로 대변되는 남순강화(南巡講話)를 계기로 개방의 물꼬를 틈으로써 개혁성장의 틀을 마련하고, 혈맹인 북한의 극렬한 반대에도 적대관계이던 한국과의 수교를 강행한 바탕에는 보양의 입김이 강하게 서려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 현재 중국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모두 ‘80년대 청년들’로 이를 테면 ‘보양 키즈(kids)’다. 

그렇다면 중국인도, 중국도 바뀌었어야 맞다. 헌데 그들은 바뀐 것이 아니라 바뀐 척 했을 뿐이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그동안 줄창 강조한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른다는 뜻)’란 것도 따지고 보면 때가 오기까지 본성을 감추란 얘기로 읽힐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보양은 일찍이 중국인의 ‘추악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한 적이 있다.
“중국은 5000년이란 유구한 역사와 함께 광활한 국토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인은 넓은 식견과 깊은 도량, 확 트인 가슴을 가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중국인은 돈이라도 좀 생기면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굽실거린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신통방통하게 여긴다. 더구나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도 쥘라치면 호시탐탐 상대방을 자기의 노리개로 만들 준비를 한다. 또 자기보다 직위가 낮은 사람은 저팔계의 등뼈만도 못한 무능한 인간으로 취급한다.”
어디, 이 정도면 중국이 문 대통령에 대해 왜 그런 만행을 저질렀는지 요해되지 않는가?

시 주석은 얼마 전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마오쩌뚱과 맞먹는 권위(?)를 인정받고 집권 2기에 들어간 절대 권력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인들은 틈만 나면 새로운 가치체계를 세워야한다고 외쳐댄다. 그러면서 ‘존엄(尊嚴)’을 핵심으로 인문정신의 정립을 내세운다. 인격의 존엄, 생존의 존엄, 도덕의 존엄을 수립해 시장경제에 걸 맞는 현대인이 되게 하자는 것이 골자다. 보양도 2002년 새로운 저서 <우리는 존엄하게 살아야 한다>를 통해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현대인이 되려면 자기의 존엄을 강구하는 동시에 타인의 존엄도 존중할 것이 요구된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타인의 존재가치에 대한 인정(認定)으로 문화인이라면 당연히 지켜야할 덕목이다. 문화인의 반대말은 야만인이다. 중국과 중국인은 아직 멀었다, 문화란 타이틀을 논하기에는.

이만훈 언론인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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