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블] 이탈리아·베네치아, 바다의 도시 축복하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트레블] 이탈리아·베네치아, 바다의 도시 축복하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 승인 2017.11.0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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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치아의 석양.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은 도시 경관의 초점이 된다.<정태남>

이탈리아 반도의 북동쪽 육지에 있는 베네치아-메스트레(Venezia-Mestre)역을 출발한 기차가 속도를 줄이면서 4km에 달하는 다리 위를 지날 때, 차창에는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멀리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곳에 숨어있는 듯한 베네치아가 서서히 실루엣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은 마치 불가사의로 가득한 미궁(迷宮)처럼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온다. 산타 루치아 역에 도착해 밖으로 나오니 자동차라곤 한 대도 안 보인다. 이곳의 교통수단은 모두 배이기 때문이다.

역 앞 광장에서 베네치아의 심장 산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곳에서 말하는 ‘버스’는 ‘증기선’이란 뜻의 바포렛토(vaporetto)라고 하는 중형의 선박인데, 물론 지금은 증기기관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 대운하에서 본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정태남>

바포렛토가 대운하를 따라 서서히 물살을 가르기 시작하자 좌우로 황홀한 광경이 서서히 펼쳐진다. 대운하 양쪽에는 창(窓)과 주랑(柱廊)으로 확 트인 옛날 귀족들과 부유한 상인들의 우아한 건물들은 밝게 채색되어 물 위에 떠 있는 듯 가볍게 보인다. 정말로 베네치아는 환상과 실제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곳이다.

산타 루치아 역을 출발한 바포렛토가 대운하를 따라 남쪽으로 향한 지 40분쯤 지났을 때, 오른쪽 전면 멀리서 커다란 쿠폴라(돔)가 보름달처럼 서서히 솟아오른다. 바포렛토가 그 옆으로 다가가자 바로크 양식의 하얀 성당이 거인처럼 눈앞에 나타난다.

이 성당은 베네치아 도시 경관의 초점을 이루면서 스카이라인을 지배하는데, 17세기 후반 이후 카날레토, 터너, 과르디 등과 같은 유명한 화가들은 베네치아의 풍경화를 그릴 때 이 성당의 모습을 화폭에 즐겨 담았다. 이 성당의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Santa Maria della Salute). 그런데 산타 마리아(Santa Maria)는 ‘성모 마리아’이고 델라 살루테(della Salute)는 ‘건강의’라는 뜻인데 왜 뜬금없이 ‘건강(Salute)’이라는 말이 붙여졌을까.

지금부터 약 400년 전의 일이다. 1629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 베네치아에 흑사병이 창궐해 2년 동안 베네치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5만 명이 희생되었다. 당시 베네치아 사람들은 이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기도를 하고 또 전염병 퇴치의 성인 산 록코(San Rocco)에게 바치는 성당도 짓는 등 별의별 종교적 수단을 동원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흑사병이 수그러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반세기 이전인 1575년에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당시 베네치아 원로원은 건축가 팔라디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레덴토레(Redentore·구세주) 성당을 짓도록 하여 기적적으로 흑사병을 퇴치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1630년 10월 베네치아의 원로원은 ‘시시한’ 성인들이 아니라 이번에는 아예 성모 마리아에게 직접 바치는 성당을 세관 옆 부지 위에 짓겠다고 공포했다.

성당 신축 공모전에서는 20대의 젊은 건축가 롱게나(B. Longhena)가 구상한 팔라디오 풍의 디자인이 선정되었고, 이 계획안에 따라 성당 공사는 1631년에 시작되었는데 그 사이에 흑사병은 수그러들었으니 성모 마리아는 베네치아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은총을 베풀었던 셈이다.
 

▲ 베네치아 바로크 건축의 정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정태남>

이 성당은 50년 동안 공사가 진행돼 1681년에 완공되었는데 평생 이 성당 건축에 정열을 쏟았던 건축가 롱게나는 다음해에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라구나의 지반은 상당히 약하다. 그렇다면 이런 약한 지반 위에 어떻게 저런 엄청난 석조건물을 세울 수 있었을까. 베네치아의 건물들이 가볍게 보인다고 해서 건물 자체가 가벼운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실 베네치아 사람들은 맨땅 위에다가 건물을 세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통나무말뚝들을 땅속 깊숙이 촘촘하게 박고 그 위에 돌을 얹어 지반을 완전히 다진 다음에 그 위에 건물을 세웠던 것이다. 이를테면 베네치아는 숲 위에 세워진 도시라고나 할까. 이런 공법은 고대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이 성당건립의 경우 지반을 다지기 위해 100만 개 이상의 통나무 말뚝을 땅속에 박아 넣었다.

바포렛토는 이 성당을 뒤로하고 계속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나간다. 성당의 웅대한 모습은 서서히 청초하고 우아한 형태로 바뀐다. 멀리서 본 이 성당은 저녁노을에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섬세한 실루엣을 드러내는데, 그 형태는 온유하고 자비로운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이 성당은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베네치아를 보호하고 축복하는 듯하다.

※이글은 <Arts&Culture>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11월호와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분야 외에도 역사·음악·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필자는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도 하고 있으며, 그동안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등 여러 책을 출간했다. europe21taina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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