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창업자 신용호, 길이 없으면 만들다
교보생명 창업자 신용호, 길이 없으면 만들다
  • 권호 기자
  • 승인 2017.10.3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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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교육 위해 헌신...올해 탄생 100주년
▲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교보생명>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 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작가나 대학교수, 사업가,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도 탄다면 그 이상 나라를 위하는 일이 어디 있으며, 얼마나 보람 있는 사업입니까.”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이하 호칭 생략)가 1981년 광화문에 교보문고 개점을 결정할 때 임직원들에게 했던 말이다. 금싸라기 땅에다 서점을 들이는 것을 반대하던 임직원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대산 신용호는 평생을 교육과 보험을 위해 힘썼다. 그는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창안했고 생명보험 외길을 걸었다. <인사이트 코리아>가 그의 일생을 짚어봤다.

올해는 교보생명 창업자 신용호 탄생 100주년이다. 그는 1917년 8월 11일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송도리에서 신예범·유매순 부부의 6형제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들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바람에 집안을 이끌며 고생을 많이 했다. 그 탓에 집에는 늘 일제 형사들이 드나들었다.

신용호의 아버지 신예범은 영암 지역에서 처음으로 단발을 하고 신학문을 익힌 선각자이기도 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야학을 열어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호남 지방을 돌며 일본인 지주들에게 항의하는 소작쟁의를 주도했다. 그는 이로 인해 두 차례나 감옥에 갇혔으며 풀려난 후에도 일제의 감시에 시달리는 요시찰 인물이 되었다.

청년 신용호 ‘천일 독서’로 세상을 배우다

어릴 적 신용호는 여러 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폐병에 걸려 죽을 뻔했으나 “월출산 정기가 너를 죽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는 어머니의 강한 의지로 질경이풀을 달인 물을 먹으며 살아났다. 신용호는 보통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책을 통한 독학으로 실력을 연마했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천일 독서’를 목표로 각종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당시 신용호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헬렌 켈러>와 <카네기 전기>였다. 특히 <헬렌 켈러>는 신용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훗날 사업가로 성공한 신용호는 “사흘만 시력이 주어졌다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유용하게 쓰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하곤 했다. <카네기 전기>를 읽으면서는 취직보다는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신용호는 애초부터 취직할 생각을 갖지 않았다. 장사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한 그는 일단 경성(지금의 서울)으로 간 뒤 기회를 봐 중국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아버지 신예범에게 뜻을 밝혔다. 그러나 신예범은 경성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 유매순의 반대는 더 강했다. 꿈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며 야단쳤다. 그러나 신용호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마당에서 어머니가 있는 방을 향해 큰절을 올린 신용호는 목포역으로 가 경성행 야간열차를 탔다. 가출이었다. 1936년 3월이었다. 경성을 거쳐 중국으로 간 신용호는 1940년 24세 때 베이징의 자금성 동쪽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회사를 세웠다. 곡물 유통업을 하는 이 회사의 이름은 ‘북일공사’였다. 간판을 내건 지 2년 만에 직원이 100명을 넘어서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신용호는 장사를 통해 번 돈을 우리가 잘 아는 작가 이육사에게 틈틈이 보내는 등 그를 후원했다. 그가 빼앗긴 조국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1983년 세계보험협회(IIS)에서 보험계의 노벨상 격인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한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교보생명>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만들다

신용호는 해방된 고국에 돌아와 ‘민주문화사’라는 출판사를 만들었다. 이때 신용호가 좌우명으로 삼았던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경구는 1981년 교보문고를 열면서 서점 입구에 큰 글씨로 새겨진다. ‘민주문화사’는 1946년 말 펴낸 <여운형 선생 투쟁사>가 18쇄를 찍는 등 히트를 쳤다. 그러나 불합리한 서적 유통 구조를 접한 신용호는 사업을 접었다. 이어 ‘군산직물’ ‘한양직물’ ‘동아염직’ 등을 잇달아 창업했으나 6·25를 만나 좌초했다.

광복 이후 벌인 사업에서 신용호는 실패를 거듭했다. “오늘 이 개업식을 초라하다고 서글퍼 하지 맙시다. 선진국에서도 보험회사가 자리를 잡기까지 보통 50년이 걸립니다. 본인은 그 절반인 25년 이내에 우리 회사를 세계적인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제일 좋은 자리에 사옥을 짓겠습니다.”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 개업식에서 신 회장은 이렇게 약속했다. 창립과 동시에 출시한 ‘진학보험’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보험상품이었다.

국민들에게 매일 담배 한 갑 살 돈만 아끼면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이후 30년간 약 300만 명의 학생들이 학자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교육의 기회를 얻게 된 인재들이 1960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개발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하게 된다. 교보생명은 교육보험의 선풍적인 인기로 1967년 창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오르는 등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80년 대산은 종로1가 1번지에 광화문의 랜드마크인 교보빌딩을 세웠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개업 당시의 약속을 3년 앞당긴 것이다.

신용호는 교보생명 창립 이후 보험업계 ‘최초’ 기록들을 연이어 써왔다. 1977년 국내 최초로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개발해 퇴직연금시장을 선도했고, 1980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암보험으로 본격적인 보장성보험 시대의 막을 열기도 했다. 업계 최초 순보험료식 책임준비금 100% 적립, 계약자 이익배당 실시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교보생명은 한국 보험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아이에게도 존댓말 써라”, 경영지침 5가지

신용호의 ‘국민교육’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는 두 가지는 교육보험과 교보문고다.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지하 1층에는 우리나라 대표 지식문화기업 ‘교보문고’가 자리 잡고 있다. 연간 5000만 명이 방문하고 4000만 권의 도서가 판매되는 ‘국민책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 회장은 당시 개발도상국에 진입하려면 국민 모두가 어느 정도 지적 축적이 있어야 하고, 독서량을 늘려 스스로 학습하는 평생교육이 정착돼야 한다고 여겼다.

‘독서입국(讀書入國)’의 원대한 꿈은 서점을 통해 구체화된다. 1981년 6월 광화문 네거리에 교보문고가 문을 열었다. 서가 길이는 무려 24.7㎞에 달했다. 교보문고는 개장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명소가 됐다.

개점 후에도 신용호는 틈만 나면 교보문고를 돌아보며 기뻐했다. 그는 다섯 가지 지침을 정해 매장 직원들에게 알리고 이를 실천하도록 했다. 다섯 가지 지침은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존댓말을 쓸 것 ▲한 곳에 오래 서서 책을 읽어도 그냥 둘 것 ▲책을 이것저것 보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책을 노트에 베끼더라도 그냥 둘 것 ▲ 책을 훔쳐가더라도 망신 주지 말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좋은 말로 타이를 것. 여기에는 청소년들이 책을 통해 큰 그릇이 되고 국가와 인류에 공헌하기를 바라는 신용호의 소망이 담겨 있다. 5대 지침은 지금도 교보문고의 운영방침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보문고 입구 표지석에 새겨진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글귀는 신용호의 독서 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서울 최고의 중심지에 있는 사옥을 놓고 기업 홍보 또는 광고를 위한 간판을 제작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 신용호는 “광화문사거리가 유동인구가 많고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니, 시민들에게 좋은 글귀를 소개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 결과인지 교보문고는 현재 전국 24개 매장을 운영하는 등 종이책 유통 1위 회사를 뛰어넘어 온라인과 디지털콘텐츠 시장을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지식문화기업으로 성장했다.

▲ 왼쪽사진) 청년 신용호.<교보생명>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1996년 교보생명 이사회 부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한 뒤 2000년 5월 아버지 신용호 회장의 뒤를 이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교보생명>

장남 신창재, 교보생명 물려받다

1996년 5월 마흔셋의 산부인과 의사였던 신용호의 장남 신창재는 18년간 함께 했던 흰 가운을 벗고 최고경영자(CEO)의 길에 나섰다. 당시 암 투병을 하던 아버지 신용호가 “이제 그만 가업을 이어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천직으로 알았던 의사의 길을 포기해야 하는지 하는 고민은 컸지만 결단은 빨랐다. 1993년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일종의 ‘경영수업’을 했던 경험이 CEO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줬다. 생명을 다루는 업은 의사나 생명보험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신용호 창업자는 2003년 9월 세상을 떠났다. 향년 86세였다.

어느덧 신창재 회장이 의사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한 지 올해로 21년이다. 신 회장은 1996년 교보생명 이사회 부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한 뒤 2000년 5월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 2000년 당시는 교보생명이 2540억 원의 적자와 2조4000억 원에 이르는 자산손실을 내는 등 말 그대로 파산 직전이었다. 스스로 “보험업에 무지했던 게 축복”이라고 말하는 신 회장은 20년간 교보생명을 한국 금융회사 중에서 가장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로 만들었다.

취임 당시 3500억원 수준이던 교보생명의 자기자본은 지난해 7조6000억 원 가량으로 20배 이상 불어났다. 지금은 생명보험사 빅3(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 1958년 8월 7일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 개업식에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신용호 창업자.<교보생명>

혁신 No.1 생보사…고객중심 보험문화 선도
 

신창재 회장은 교보생명의 고객중심 경영을 이끌며 생명보험 산업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 교보생명은 올해 경영방침을 ‘반걸음 앞서가는 상품·채널 혁신’으로 정하고 생명보험 본연의 가치인 ‘고객보장’을 확대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보험업계가 저금리·저성장 장기화, IFRS17·신지급여력제도 도입 등 어려운 경영환경에 처해있지만 생명보험 마케팅의 양대 축인 상품과 채널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려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것.

교보생명은 지난해 ‘상품·채널 혁신 No.1 생보사’가 되겠다는 ‘비전2020’을 선포하고 생명보험의 본질적 가치인 고객보장을 확대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상품 혁신’은 탁월한 가치 경쟁력을 갖춘 상품·부가서비스 개발을, ‘채널 혁신’은 모든 고객접점의 서비스 역량과 품질을 혁신해 고객만족도를 더욱 높이겠다는 의미다.

교보생명은 상품·채널 혁신을 향한 방안으로 상품·서비스 가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우수한 채널조직을 늘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고객의 선택 폭을 넓히고 보장급부 경쟁력을 높인 종신보험, CI보험을 개발하는 등 생명보험 고유의 영역인 가족생활보장상품을 확대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고객의 재정적 보장과 심리적 안정이라는 ‘고객보장 가치’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바로 이 같은 ‘가족생활보장 상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고객 니즈에 부응할 수 있도록 건강·의료·장기간병 등 생존보장 니즈를 반영한 특화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질병관리 중심의 헬스케어서비스도 건강증진, 질병예방, 사후관리까지 확대했다. 뿐만 아니라 재무설계사(FP)의 고객보장 컨설팅 역량을 더욱 강화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종신보험, CI보험 등 생명보험 본질에 충실한 가족생활보장상품의 완전가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고객이 실질적인 보장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난 7년간 펼쳐온 평생든든서비스도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서비스 품질을 더욱 차별화시키고 있다.

교보생명은 2011년부터 신규계약보다 기존고객에 대한 유지서비스에 초점을 맞춘 ‘평생든든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이 서비스는 모든 재무설계사(FP)들이 모든 고객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가입한 보험의 보장내용을 다시 설명해주고, 보장받을 수 있는 사고나 질병이 없었는지 를 확인해 보험금을 제때 찾아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금까지 매년 150만 명의 고객을 직접 만나 보장내용을 일일이 설명하고, 고객이 모르고 있던 ‘놓친 보험금’ 7만여 건, 375억 원을 찾아주기도 했다.

앞으로도 고객이 적절한 시기에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고객별 맞춤 서비스를 통해 보다 내실 있는 유지서비스를 펼칠 예정이다.

교보생명은 디지털에 기반 한 신성장동력 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기술인 블록체인을 보험서비스에 접목하기 위해 정부가 주관하는 ‘사물인터넷(IoT) 활성화 기반조성 블록체인 시범사업’ 사업자로 선정돼 참여하고 있으며, 보험업계와 공동으로 블록체인 도입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사진설명
1. 1983년 세계보험협회(IIS)에서 보험계의 노벨상 격인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한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교보생명>

2. 1995년 4월 21세기 미래기반 구축을 위해 ‘교보생명’으로 상호를 변경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신용호 창업자.<교보생명>

3.1958년 8월 7일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 개업식에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신용호 창업자.<교보생명>

4.1992년 5월 고객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리모델링한 후 교보문고 재개장 기념 테이프 커팅 하는 신용호 창업자.<교보생명>

5.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1996년 교보생명 이사회 부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한 뒤 2000년 5월 아버지 신용호 회장의 뒤를 이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교보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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