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업가 신격호의 초라한 퇴장
위대한 기업가 신격호의 초라한 퇴장
  • 윤길주 발행인
  • 승인 2017.08.29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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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이하 호칭 생략)의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8월 초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롯데알미늄 등기이사직서 ‘퇴출’되면서 공식적으로 그의 시대가 끝난 겁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실권 없는 명예회장 직 뿐입니다. 이로써 대한민국 재벌 창업주 경영 시대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신격호는 불세출의 위대한 기업가였습니다. 그는 열아홉 살이던 1941년 무단가출해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주경야독하며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1948년 롯데를 창업합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다니 청년 사업가 신격호의 문학적 감수성을 느끼게 합니다.

패전 후 배를 채우기도 힘든 시절 ‘껌’ 회사를 창업하자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습니다. 금세 망할 거라 했지만 롯데는 승승장구하며 사세를 키워나갔습니다. 그것은 신격호의 탁월한 안목과 돌파력, 불굴의 투지 결과였습니다. 일본인에게 결코 질 수 없다는 결기로 일본 시장을 평정해나갔습니다. 기업보국(企業報國)이란 생각에 고국에 진출해 롯데를 자산 103조, 재계 순위 5위의 대기업으로 키웠습니다.

신격호가 롯데를 일본의 10대 재벌로 일으켰다는데 대해 많은 한국인이 자긍심을 가졌습니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신격호는 신화였고 롤 모델이었습니다. 매년 봄 고향 마을에서 돼지를 잡고 잔치를 베푸는 것을 보고는, 그의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에 애잔해하기도 했습니다.

70년 동안 쌓아온 신격호의 신화는 안타깝게도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금이 가고 말았습니다. 나이 95세에 이르러 한낱 채매 노인으로 취급당하며 자식들의 경영권 쟁탈전을 위한 볼모가 되고 만 것입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던 일본인 가신들은 그의 정신이 혼미해진 틈을 타 역모를 꾀하고, 지금은 일본롯데홀딩스를 쥐락펴락하며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신격호가 건재했더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하극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신격호는 강제 유폐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의 동생 신정숙은 2015년 말 서울 가정법원에 오빠에 대해 성년후견 개시를 청구했습니다. 질병·노령 등의 이유로 사무처리 능력이 없다는 게 이유입니다. 지난 6월 대법원은 이를 최종 확정했습니다. 한 시대를 호령하던 대 기업가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지 못하고, 법에 의해 ‘정신적 불구자’로 판정받은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편으론 후대에 물려줘야 할 ‘신격호’라는 유산이 훼손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의 인지 능력에 문제가 생긴 건 법원의 판단보다 훨씬 전으로 보입니다. 그의 큰아들 신동주는 아버지의 기억력이 2010년부터 감퇴해 2013년 전신 마취 수술 후 급속도로 악화됐다고 밝혔습니다. 신동주는 자신이 쓴 평전 <나의 아버지 신격호>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버지의 기억은 이미 수년 전에 파편화돼 흩어지거나 사라져버렸다. 기억의 증표를 다시 제시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어제 일을, 오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불행의 씨앗은 이때부터 싹튼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이상 증세를 알게 된 형제가 롯데 경영권을 놓고 암투를 벌이기 시작한 겁니다. 2015년 ‘왕자의 난’이 표면화 됐으나 그 전부터 형제는 지분 매입 경쟁을 벌이는 등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내전에 돌입했습니다. 롯데그룹 지주회사격인 일본롯데홀딩스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인 경영진이 모사꾼 노릇을 하며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신격호의 초라한 퇴장을 보며 우리 기업들의 승계 문제를 되집어보게 됩니다. 그의 나이 올해로 95세. 그가 아무리 강건하다 해도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진즉 후계 구도를 정리하고, 편안한 여생을 보냈어야 합니다. 그랬으면 형제간의 분란도, 자신이 일군 롯데가 일본인 손에 좌지우지되는 험한 꼴도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법정에서 “이 회사는 100% 내 회사다”며 지팡이를 휘두른 들 그것은 한 노인의 허망한 몸짓일 뿐입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도 때를 놓치는 통에 아들들의 경영권 다툼 끝에 결국 그룹이 쪼개지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기업에서 ‘형제의 난’이 벌어지고 있는데, 아버지 대에서 승계를 매듭짓지 못한데서 대부분 비롯됐습니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기지 않을 바엔 아버지의 권위와 힘이 살아있을 때 교통정리를 확실히 해둬야 합니다. 그게 가족 간 비극을 막고, 기업을 위하는 길입니다.

신동주·신동빈 두 아들은 당대의 영웅인 아버지의 명성에 큰 흠집을 남겼습니다. 자신들의 탐욕으로 기업에 엄청난 리스크를 안기고, 그 피해는 주주들과 국민 경제에 돌아갑니다. 형제는 욕심을 내려놓고 무엇이 아버지가 창업한 롯데라는 기업을 위한 것인지 머리를 맞대야 할 것입니다.

지금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질을 해대면 롯데는 국민·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소멸하고 말 것입니다. 당장은 형제가 함께 국부유출로 이어질지 모르는 일본 경영진의 ‘찬탈 기도’를 막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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