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R
    9℃
    미세먼지
  • 경기
    B
    미세먼지
  • 인천
    B
    미세먼지
  • 광주
    B
    미세먼지
  • 대전
    B
    미세먼지
  • 대구
    B
    미세먼지
  • 울산
    H
    9℃
    미세먼지
  • 부산
    H
    10℃
    미세먼지
  • 강원
    H
    8℃
    미세먼지
  • 충북
    B
    미세먼지
  • 충남
    B
    미세먼지
  • 전북
    B
    미세먼지
  • 전남
    R
    10℃
    미세먼지
  • 경북
    B
    미세먼지
  • 경남
    H
    10℃
    미세먼지
  • 제주
    B
    미세먼지
  • 세종
    B
    미세먼지
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로마 캄피돌리오 언덕에 세워진 철학자 황제 기마상
로마 캄피돌리오 언덕에 세워진 철학자 황제 기마상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 승인 2017.08.01 18: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로마의 전설적인 일곱 언덕 중에서 캄피돌리오 언덕은 예로부터 가장 신성한 언덕으로 여겨져 왔다. 이 언덕 위에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광장은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세 개의 건물에 둘러싸인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좌우의 쌍둥이 건물은 현재 캄피돌리오 박물관(Musei Capitolini)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가운데 건물은 로마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세 건물이 이루는 공간 안에 들어서면 포근히 감싸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느낌은 카메라에 도저히 제대로 담을 수가 없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기마상이 세워져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세상을 향하여 전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밝은 빛을 연상케 하는 광장 바닥 패턴은 우주를 상징하는 커다란 타원형 틀 안에 담겨 있다. 그렇다면 기마상의 주인공은? 그는 마치 명상에 잠긴 듯 오른손을 들어 마치 세상을 평정하는 듯한데….

기마상 좌대는 포로 로마노 안에 세워져 있던 디오스쿠리 신전에서 뜯어온 돌로 미켈란젤로가 제작했다. 좌대 왼쪽 옆구리에 기록된 라틴어 문장을 읽어보면 ‘하드리아누스의 아들이며 트라야누스의 손자이며…등등으로 나가다가 세 번째 줄 한가운데에 M. AVRELIVS라고 보인다(옛날에는 U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 V이다). 그러니까 기마상의 장본인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즉 2세기 후반의 황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면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를 이어받는 로마제국의 황금기 5현제(賢帝)시대의 마지막 황제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스토아학파 철학자로서 후세에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가 전장에서 틈틈이 그리스어로 쓴 <명상록>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데, 당시 로마 사회 최고의 도덕적 가치 기준을 기록한 사료로서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처럼 수염으로 잔뜩 덮여 있다. 

그런데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이러한 황제가 통치하던 로마제국은 온통 수많은 전쟁과 재앙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니까 황제의 정신세계가 고명한 빛으로 밝혀져 갈 때 로마제국의 영광 위에 멸망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로마제국의 청동상이라면 왜 이렇게도 흠집 하나 없이 세월의 때가 거의 묻지 않았을까? 그야 복사본이기 때문이다. 원본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이곳에 서 있었지만 대기 오염에 의한 부식을 막기 위해 캄피돌리오 박물관 안에 보존되어 있다.

이것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로마제국 황제의 기마상이니 소중히 다룰 수밖에 없을 거다. 밖에 세워져 있는 원본을 실내에 보존하고, 원본이 있던 자리에 복사본을 만들어 세워놓은 것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유물을 보존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

중세 사람들은 로마제국 황제의 기마상들을 녹여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모조리 용광로에 집어던져 넣었는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기마상만큼은 이 ‘대학살극’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어떻게 해서 이것이 가능했을까?

이 기마상은 원래 로마 시가지 남쪽에 있는 라테라노의 산 조반니 성당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마상으로 생각하고, 이 언덕으로 옮겨와 신주 모시듯 소중히 다루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기마상은 순전히 착오 때문에 로마의 가장 신성한 언덕 한가운데에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기독교의 관계는 어땠는가? 글쎄…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아주 괘씸한 황제였을 수도 있다. 그는 기독교에 대해 자기의 철학에 비해 유치하다는 이유로 경멸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고 당시 로마제국의 속주 갈리아의 수도이던 현재 프랑스의 리옹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하는 것을 방관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만약 중세 로마 사람들이 기마상의 장본인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이 기마상도 용광로 행 운명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엄청난 착오 덕분에 수많은 로마 황제의 기마상 중에서 하나라도 지금까지 보존할 수 있었으니 후세를 위해서는 천만다행인 셈이다.

※이 글은 <Arts&Culture>8월호와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분야 외에도 역사·음악·미술·언어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도 하고 있으며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등을 출간했다.
            europe21tainam@gmail.com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