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상황판과 고용탑상의 그늘
일자리 상황판과 고용탑상의 그늘
  • 양재찬 경제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7.03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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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일자리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대로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돼 두 달째 가동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매일 상황판 지표를 보면서 일자리를 챙기겠다고 했다. 상황판에 표시되는 고용률·청년실업률 등 지표는 매일 업데이트되는 게 아니다. 대부분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통계인데, 날마다 들여다본다고 뾰족한 방안이 나올까.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된 지 한 달이 되어가는 6월 21일, 문 대통령이 주재한 일자리위원회 첫 회의에선 ‘고용탑상’ 제정 방안이 제기됐다. 1970년대 수출을 독려하기 위해 1억불 수출탑, 10억불 수출탑 등을 시상했듯 고용 1만명 탑, 고용 2만명 탑 등을 만들어 포상해 달라는 기업들 건의였다. 

정부 반응도 긍정적이다. 7월 중 주요 정책과 예산 사업을 수립하고 평가할 때 고용영향평가를 강화하고,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할 때 검토할 모양이다.

문 대통령도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기업인들에게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면 업어주겠다”고 말해 고용탑상 제정 가능성을 높였다. 일자리 기여도가 높거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모범적 고용 사례를 보여주는 기업에 대통령이 직접 고용탑상을 시상할 수도 있어 보인다.

대통령이 일자리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상황판 숫자를 가리키며 재벌과 기업별 일자리 동향을 비교하고 챙기면 공무원들은 숫자의 노예가 되고, 기업들은 정치적 압박으로 받아들일 게다.

관료들은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숫자 맞추기에 골몰해 정책이 왜곡될 수 있다. 권력 눈치를 보는 기업들이 단기적으로 고용을 늘려도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정권 임기와 기한이 같은 일자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지 않은 정부는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실업률이 높아진 2010년, 이명박 정부도 일자리위원회와 비슷한 국가고용전략회의를 개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먼저 일자리 문제를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는 해로 만들자고 했다.

수출탑을 주듯 ‘고용창출 100대 기업’에 고용탑을 주자는 아이디어가 당시에도 나왔다. ‘일’자가 4개 있는 11월11일을 ‘고용의 날’로 정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이런 이벤트로 치장된 ‘2010 고용회복 프로젝트’는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됐다. 

박근혜 정부도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했다. ‘고용률 70%’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고, 청년희망펀드까지 모금했다. 그러나 결과는 시간제로 쪼개고, 공공근로로 채우는 방식이 동원돼 고용률 제고는커녕 일자리 질만 나빠졌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위원회는 어떤 성적을 낼까. 전국 지자체장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이 속속 설치되고 있다고 한다. 광역·기초 단체장들의 대통령 따라 하기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다만 여기서 분명한 것은 상황판 설치나 고용탑 제정만으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근원적 처방이 절실하다. 11조원 일자리 추경으로 재정이 마중물을 대도 민간 부문이 움직이지 않으면 메마른 땅에 물주기다. 일자리 창출의 주체인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신(新)기술을 활용한 신(新)기업들이 날개를 펴도록 규제를 혁파하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하이테크 벤처기업을 키워야 한다. 생계형 자영업이 넘치는 서비스업을 교육·의료·관광·콘텐츠 등 미래형 수익산업으로 개편해야 한다. 

정부가 중재에 나서 사용자·근로자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노사정 대타협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역동성을 높이는 일도 긴요하다. 일자리 확대는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노동개혁 등 정책 변화에 힘을 쏟는 것이 일자리 늘리기의 정석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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