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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9 19:07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범죄와 예술 그 사이, 그래피티
범죄와 예술 그 사이, 그래피티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17.06.01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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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피티(graffiti). 직역하면 낙서 미술이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도 그래피티라는 원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탈리아어로 ‘긁기’라는 뜻을 지닌 ‘graffito’의 복수형으로, 원래 의미는 벽 표면을 긁어 만든 드로잉을 의미한다. 

이러한 그래피티는 인류가 문화를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행해왔던 생활의 한 흔적이기도 하다. 그래피티는 20세기 중반부터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공공시설물에 그림이나 문자들을 빠르게 그리는 형태로 발전해 나가며 우리 곁으로 더 다가왔다. 이는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스프레이 페인트(소위 우리나라에서는 ‘락카’라고 부르는 ‘래커(Lacquer)’를 말한다)라는 도구의 발전과도 맥이 닿는다고 할 수 있겠다.

뱅크시(Banksy)는 영국의 그래피티 예술가로서, 스텐실(stencil) 기술로 제작되는, 정치 풍자적인 내용의 그래피티 작품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텐실은 디자인 기법의 한 종류로서 종이에 어떤 물체의 모양을 그리고 그 그림 부분을 잘라 내 구멍을 뚫고, 그 위를 잉크 롤러로 문지르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로 뿌려서 모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뱅크시는 2000년 이후부터 그림의 제작 속도를 높이기 위해 스텐실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인 이유는 그가 사회 비판적인 그래피티를 그리는 예술가로 유명하지만, 정작 그의 정확한 실체를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뱅크시도 가명이다). 

그의 정치적, 사회적 논평이 담긴 작품은 전 세계 도시의 거리, 벽, 다리 위에 제작된다. 현대적인 감각과 대중을 이끄는 공감 능력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의 그래피티가 공공기물 파손 등의 행위라는 지적도 상당했다. 

우리나라에서의 그래피티는 어떨까? 실제로 정치적 풍자가 담긴 그래피티가 내용이 아닌 형식적인 측면에서 형사사건화 된 경우가 있다.

A씨 등은 G20 홍보 포스터에 쥐를 그려 촬영한 사진을 인터넷에 게시하기로 하고, 서울 모 백화점 앞 노상에 설치된 G20 홍보물에 쥐 그림틀을 대고 검은색 스프레이를 뿌렸다. 이런 식으로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에서 G20 행사 홍보 목적으로 설치한 홍보물 13곳에 스프레이로 쥐를 그려 넣었다. 검찰은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가 관리하는 공용물건을 손상하였다며 기소했다. 

A씨 등의 변호인은 A씨 등이 행한 행위는 일종의 그래피티 아트로서 예술행위이며 이는 예술표현의 자유보다는 예술창작의 자유에 가까우며, 이 사건으로 인해 입은 지극히 적은 경제적 손실과 예술창작 또는 예술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되어야 할 가치를 비교하면 이 사건 행위는 위법성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 제22조가 보장하는 예술의 자유는 창작소재, 창작형태 및 창작과정 등에 대한 임의로운 결정권을 포함한 예술창작활동의 자유와 창작한 예술작품을 일반 대중에게 전시·공연·보급 할 수 있는 예술표현의 자유 등을 포괄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예술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기본권은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자체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창작물이나 공공안내문, 게시판에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물건을 훼손하는 경우에는 비록 그것이 예술작품의 창작과 표현 활동의 영역에서 발생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 행위가 형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범죄에 해당하는 이상 예술창작과 표현활동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A씨 등은 G20 홍보물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G20의 의미를 담아 쥐 그림을 그려 넣었으며, 이러한 행위를 그래피티 아트라는 표현 방식이라고 주장하지만, G20 홍보물은 G20에 관한 홍보, 안내, 공지 등을 표현하는 공용물건인 점, 변호인은 이 사건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적다고 하나 재물적 가치만을 따졌을 때 적다는 의미일 뿐 이 사건 홍보물이 갖는 홍보기능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결코 손실이 적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근거로 뱅크시를 꺼내들었다. 뱅크시도 스프레이를 이용하여 낙서 형식의 벽화를 만들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표현물이나 창작 작품 위에 그래피티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뱅크시의 작품과 이 사건의 쥐 그림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홍보물이 아닌 벽에 쥐 그림을 그렸다면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일까?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한 길거리 벽화를 그린 B씨에게 법원이 벌금형을 내린 적이 있다. B씨는 대구지하철역 인근 벽과 박근혜 대통령 생가 터 안내판을 비롯해 대구 일대 5곳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과 닭을 합성한 그래피티를 그려 재물손괴 혐의가 적용되었다. 

그림은 닭 부리를 달고 있는 박정희 전(前) 대통령의 모습이었고, 그 밑에는 ‘PAPA CHICKEN(아빠 닭)’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래피티를 그려 1년6개월의 실형이 구형되었다가 무죄가 선고된 사건도 있었다. 공사장 철제 담장에 대통령 풍자 그래피티를 한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C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C씨는 서울 지하철역 인근 공사장의 철제 담장에 일본 욱일기(旭日旗)를 배경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웃고 있는 모습 아래 ‘사요나라(さようなら·안녕히 가십시오라는 뜻)’라고 적은 그래피티 등을 그렸다. 공사장 철제 담장의 수많은 그래피티 가운데 C씨의 그림만 그린 다음 날 누군가에 의해 지워진 점과 C씨만 기소된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그래피티가 지워진 것처럼 런던의 한 지역에서는 밤사이 벽이 뜯겨져 뱅크시가 담벼락에 남긴 작품이 감쪽같이 없어지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연유는 다르다. 뱅크시의 작품을 팔기 위해서였다. 뱅크시가 이 담벼락에 빈민국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세태를 풍자한 낙서를 하였는데, 이 뜯겨져 나간 벽은 미술 경매 행사장에 등장했다. 논란 속에 경매는 잠정 중단되었지만, 결국 이 그래피티는 약 11억 원에 팔렸다. 

뱅크시의 작품에 세계는 열광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뱅크시가 그린 그래피티를 찾아다니고 있다. 뱅크시의 그래피티 앞은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뱅크시의 그래피티가 불법이라며 단속하던 경찰들이 오히려 벽화의 훼손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지금도 행여나 자신이 거주하는 집 담벼락에 뱅크시가 찾아와 그래피티를 그리고 사라지지는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글은 <Arts&Culture> 6월호와 인터넷(www.artsnculture.com)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파운트’ 자문
www.fount.co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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