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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3-28 19:16 (목) 기사제보 구독신청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 망국적인 ‘탐욕’ 청소해야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 망국적인 ‘탐욕’ 청소해야
  •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 승인 2017.02.09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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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한 마디로 대답하기란 불가능하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맹자(孟子)는 성선설을 주장했고, 순자(荀子)는 성악설을 주장했다는 식으로 배웠다.

당시의 지식수준으로는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양자역학의 용어를 조금 남용하자면 인간에게는 선한 본성과 악한 본성이 중첩(重疊, superposition)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선함과 동시에 악한 존재라는 의미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본성이 개개인의 내면에 중첩된 상태로 있다가 상황에 따라 그 중 하나가 발현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생각일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선한 사람이 왜 갑자기 악한 행동을 하는지, 아니면 반대로 악한 사람이 뜻밖에 선한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간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는 법체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형성된 사회규범과 관습이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내면에 중첩된 자아를 갖고 있다가 그 가운데 하나가 드러나게 하는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 야기하는 지대추구행위

최근 몇 개월 동안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참담한 상황을 초래한 근원은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의 지대추구행위(rent seeking behavior)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관료, 재벌총수, 정치인, 그리고 권력을 등에 업은 민간인 등 실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연루돼 있다.

주지하다시피 지대는 토지를 소유한 지주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 바는 없지만 토지를 소유했다는 이유로 받는 대가를 말한다. 사실 정당하게 토지를 소유했고 정당하게 지대를 청구했다면 이 용어가 나쁜 의미로 해석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런 의미에서 지대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기에 지대라는 말에는 기본적으로 비생산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오늘날 이런 의미의 지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반대로 중요한 수입의 원천으로 부활했다는 사실이다. 지대는 이제 더 이상 토지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지대는 자신이 부가가치 생산에 기여한 것 이상을 노리는 모든 행위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용어가 됐다.

이런 의미의 지대를 얻기 위해 합법적 또는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체의 행위를 지대추구행위라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이 완전한 경쟁 상태에 있고 공공부문이 매우 투명해 어떤 비리나 부정의 소지도 없다면 이런 사회에서는 지대추구행위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사회 시스템 자체가 이런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탐욕스러운 인간이라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기여한 범위 안에서 보상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즉 본성이 청빈한 것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기에 그리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면에서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한 마디로 지대추구행위를 마치 자신의 능력을 당당하게 과시하는 행위로 간주하거나 권력의 측근이기에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모든 정황이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이런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태도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밈(meme), 즉 문화적 유전자로서 우리 모두의 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대추구행위가 우리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전 세계에 뿌리 깊게 내린 지대추구행위

이런 말을 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기우(杞憂)이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조선시대 탐관오리의 가렴주구(苛斂誅求)는 전형적인 지대추구행위였다.

일제 식민지 시절 크고 작은 친일 행위는 대부분 지대추구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완용이 작위를 받고 토지를 하사받은 것은 악질적인 지대추구행위였다. 독립협회 2대 회장을 역임했고 독립문의 휘호를 쓴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 이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앞에서 인간에게는 선한 본성과 악한 본성이 중첩되어 있다고 한 것은 이런 행동을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

그리고 남북 분단 이후 남한과 북한에서 이데올로기를 빙자해 많은 사람들이 각종 이권을 챙겼던 행위도 지대추구행위의 일종이다. 군사정권 시절 모든 경제적 자원을 통제한 권력과 유착한 일부 인사들이 각종 이권을 챙겼던 행위도 당연히 지대추구행위에 속한다.

문민정부가 들어섰던 시절에도 지대추구행위는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의 아들들이나 친인척이 비리에 연루된 것은 명백히 지대추구행위에 해당한다. 이들 외에도 적지 않은 인사들이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리 허망하게 생을 마감하지 않고 끝까지 당당하게 시시비비를 가렸다면 이후에는 권력을 등에 업은 지대추구행위가 조금 완화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 정말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지대추구행위는 권력의 최상층부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말단직부터 고위직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각종 인허가를 미끼로 은연중에 대가를 바라는 자체가 지대추구행위다. 실제로 뇌물을 주고받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에 연루된 기업들 가운데 다른 경쟁 기업들보다 특혜를 받기 위해 로비를 했다면 이들도 지대추구행위를 한 것이다.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강화하기 위한 일체의 행위도 이에 해당한다. 대기업 임직원들이 납품업체를 상대로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것도 지대추구행위에 해당한다. 백화점 임직원이 입점 업체를 상대로 별도의 향응을 요구하는 것도 지대추구행위다. 법조계에 만연한 전관예우도 전형적인 지대추구행위다. 심지어 교육계나 종교계도 이런 행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현실은 정말 통탄할 일이다.

한국사회는 기나긴 지대추구행위의 역사로 점철되었기에 지금도 별다른 죄의식 없이 이런 행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역사가 현재의 지대추구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를 하는 자들은 그리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에게 그 정도의 특권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한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왜 우리사회에는 이런 행동이 만연해 있으며 조금도 완화될 조짐이 없는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사회에만 특별히 문제가 있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저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최근 일련의 저서를 통해 미국 사회에도 지대추구행위가 만연해 있어 이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되고 성장의 잠재력이 고갈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의 로버트 라이시 교수도 『자본주의를 구하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이 2013년 보너스로 267억 달러를 받은 이유는 일반 미국인보다 훨씬 열심히 일했기 때문도, 더 똑똑하거나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미국 정치·경제에서 특권을 쥐고 있는 기관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형 은행에 돌아간 지원금은 납세자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라이시는 이런 유형의 지대추구행위로 인해 부와 소득의 상향재분배가 일어난 후 선심 쓰듯이 사회보장 명목으로 소득의 하향재분배가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미약하다는 것이 문제다.
 

기업가 정신으로 지대추구행위 극복 가능

사회 전반에 지대추구행위가 만연하는 경우 각종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는 것은 물론이고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고갈시킨다. 나아가 도덕적 해이와 지대추구행위가 결합하게 되면 이런 비효율이 더욱 심화될 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일할 의욕을 잃게 되며 사회적 자본인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한 마디로 국가존망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해결책은 있는가. 쉽지 않겠지만 우선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 실정에 맞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수적으로 기업은 많아졌는데 오히려 기업가정신은 약화되지 않았나 우려된다.

기업가정신은 보통 창의력을 바탕으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을 선도함으로써 끊임없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자세를 말한다. 이것은 곧 기술혁신, 경영혁신, 사회적 혁신 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려는 도전적 정신과 과감한 태도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가정신은 지대추구행위와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기업가정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이 비단 기업의 경우에만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이든,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든 기업가정신은 어디에나 필요한 요소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 메이지유신 시절 수많은 기업을 창업하고 사회에 환원했으며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존경받는 시부사와 에이치가 『논어와 주판』에서 논어의 구절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역설한 것은 우리도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부귀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부귀를 누리지 말아야 한다.(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나라에 올바른 도가 행해지는데도 가난하고 비천하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고, 나라에 올바른 도가 없는데도 부유하고 고귀하다면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한국 사회에 이런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지대추구행위가 점차적으로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논어에서 강조했듯이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부귀가 아니면 애초부터 바라지 말아야 한다. 우리말에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속담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따라서 “정당하게 벌어 명예롭게 산다”로 바꿔야 할 시점이다.

또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생활고로 신음하는 데 자신만 호의호식하는 것이 과연 자랑할 만한 일인지 한 번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자유시장경제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런데 자신이 누리는 부와 명예의 대부분이 지대추구행위의 결과라면 과연 당당할 수 있겠는가.

논어에서 지적했듯이 올바른 도가 없는데도 부유하고 고귀하다고 자랑하는 것은 정말 부끄럽고 천박한 행동이 아닌지 스스로 물어야 할 시점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 변해야 한다.

앞으로 전개될 미래는 결코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지리멸렬(支離滅裂)하면 한국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점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인터넷 <논객닷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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