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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2-05-27 19:30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뿌리 깊은 기업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뿌리 깊은 기업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 박흥순 기자
  • 승인 2016.10.04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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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명품 베르사체 되살린 지안 자코모 페라리스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필수 조건으로 위기대응력이 중시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대응한(혹은 위기극복에 실패한) 리더들의 사례들이 집중적으로 거론되며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같은 풍조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위기 대응 리더십이 필요한 지금 수많은 경쟁사를 뿌리치고 업계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나 GE를 구해낸 잭 웰치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무너져 가던 글로벌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를 되살린 ‘경영의 마법사’ 지안 자코모 페라리스 전 CEO를 떠올리는 사람은 흔치 않다.

지안 자코모 페라리스가 베르사체 그룹을 이끌게 된 2009년, 베르사체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1997년 7월 창업자 겸 CEO 지아니 베르사체가 의문의 총격으로 사망한 후 베르사체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아니의 형 산토가 CEO 자리를, 지아니를 도와 20년 넘게 일한 여동생 도나텔라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패션기업의 제작 총괄)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핵심가치를 잃어버린 기업은 뿌리부터 흔들렸다. 지아니 사망 전 연간 5억 유로의 매출을 올리던 베르사체 그룹은 10년도 채 지나기 전에 매출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재무상황이 악화됐고, 2000년대 들어서는 적자기업으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도나텔라는 화려하고 관능적인 베르사체 특유의 스타일 대신 차분한 디자인으로 방향을 완전히 틀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려 했지만 베르사체의 인기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베르사체 일가는 2003년 전문 경영인인 파비오 마시모 카치아토리를 영입했지만 카치아토리는 베르사체 일가와의 의견 차이 때문에 1년 만에 회사를 떠났다. 후임자인 지안 카를로 디 사리오도 구조조정과 비용절감 문제를 두고 오너 일가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급기야 베르사체 일가는 지아니가 수집했던 앤디 워홀, 앙리 마티스, 에드가 드가 등 유명 화가의 미술품까지 경매에 내놨다.

‘Back to the Basic’

페라리스는 취임과 동시에 2년 내 흑자전환을 목표로 삼았다. 직원 4분의 1을 해고하고 전 매장의 실적을 준엄하게 평가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그러면서도 디자인에 대한 도나텔라의 권한은 최대한 존중했다. 베르사체의 모든 제품이 그의 디자인을 거치는 체계를 만들었다.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도 디자인과 제품 개발 인력은 단 한 명도 감원하지 않았다.
창업자인 지아니가 구축한 패션 스타일로 돌아간 것도 일정 부분 그의 공이다. 페라리스는 “베르사체의 디자인은 미니멀리즘(Minimalism :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예술 흐름)이 아닌, 관능적이고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을 쓰는 스타일”이라며 베르사체 고유의 디자인 DNA를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페라리스는 자신의 와신상담대로 베르사체 그룹을 흑자로 바꿔놓았고, 해마다 매출이 두 자릿수로 늘어나는 고속성장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그가 취임한 해 2억7000만 유로였던 매출은 지난해 6억4500만 유로로 증가했다. 최근 2~3년 사이 명품업계 분위기가 급격하게 악화된 상황에서 일군 놀라운 성과다. 
지난해 프라다는 5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고, 휴고보스의 CEO 클라우즈 디트리히 라르즈는 매출 부진 탓에 최근 사임했다. 샤넬, 루이비통, 구찌 등은 최근 중국시장에서 ‘제품 가격 인하’라는 강수까지 꺼내 들었고, 일부 패션 브랜드는 매장 수도 줄이고 있다. 반면 베르사체는 올해 이탈리아와 미국 등의 주요 매장을 재단장하고 새로운 매장을 내는 데 최대 5000만 유로(약 625억 원)를 투자할 계획이라는 등 공격적 경영전략을 천명했다.

일관성과 변화, 두 마리 토끼 다 잡아

“비즈니스에 특정한 룰은 없다. 만약 있다면 모든 제품이 그 룰을 따라 럭셔리 제품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럭셔리는 제품에 녹아 있는 일관된 철학이다. ‘그 브랜드 하면 떠오르는 그 무엇’, 바로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럭셔리 비즈니스는 이 일관성을 유지하는 장기적 비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페라리스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베르사체 경영에 접목시켰다. 그는 베르사체의 핵심가치를 ‘패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이라 정의하고, 그 기준에 맞춰 무분별하게 흩어져 있던 라이선스 사업을 정리했다. 성장전망이 좋은 인테리어 사업은 베르사체 그룹에서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기업의 실적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자, 페라리스 그룹의 재무구조를 탄탄하게 만들기 위해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했다. 2014년까지 베르사체 일가가 100% 소유했던 회사 주식 중 20%를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에 매각하고, 투자 관계자를 베르사체 그룹 이사회에 참여하게 했다. 블랙스톤은 베르사체 그룹의 기업 가치를 10억 유로로 추정하고 2억1000만 유로를 투자했다. 이와 동시에 페라리스는 장기적으로 베르사체 그룹의 주식을 상장할 준비도 하고 있었다.
그는 “창업자인 지아니의 디자인 세계를 존중한다는 공통의 이해를 바탕으로 디자인 부문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했다”며 그 덕분에 페라리스는 이전의 CEO들과 다르게 베르사체 오너 일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타 명품 브랜드와 다른 베르사체만의 DNA를 살리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집중시켰다. 동시에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면 불황은 없다고 판단, 브랜드를 스타일과 목표 고객군에 따라 차별화시키기도 했다. 꾸뛰르(고급 맞춤옷) 전문인 ‘아뜰리에 베르사체’, 관능적이고 화려한 베르사체 특유의 디자인을 선보이는 주력 브랜드 ‘베르사체’, 젊고 실험적인 제품을 만드는 ‘베르수스’, 라이선스 캐주얼 브랜드인 ‘베르사체 진’ 등으로 브랜드를 나눈 페라리스는 크리스토퍼 케인, 조너선 앤더슨, 안토니 바카렐로 등 젊고 신선한 디자이너들을 기용해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며 대중에게 찬사를 받았다.

▲ 지안 자코모 페라리스와 도나텔라 베르사체

경영의 진리 ‘소통’

그는 소통이 경영에 미치는 힘도 간과하지 않았다. 페라리스는 자신의 역할과 디자이너의 역할을 철저하게 구분했다. 일상적인 업무 결정을 내리기 전에도 패션기업의 실무진인 디자이너들에게 조언을 구하곤 했다. 그는 이 관계를 ‘전문적인 혼인’이라 부르곤 했다. 
페라리스는 “CEO인 나는 품질관리, 배송, 영업이익 개선 작업을 잘할 수 있지만, 제품은 디자이너의 창의성에서 나온다. 패션기업 경영자는 디자이너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야 할 뿐만 아니라, 디자인팀이 알맞은 주제에 맞춰 작업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실무자가 본인이 무엇을 만드는지 모르면 패션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상호 협력과 소통을 강조했다.
기업을 경영하는데 있어 CEO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과 실무진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내리는 의사결정은 큰 차이가 있다.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한 의사 결정이 최선이라 여기고 ‘독선의 우’를 범하기 전에 페라리스의 경영 방식을 곱씹어 봄은 어떨까.


지안 자코모 페라리스는…

구찌 기성복 부문 총괄, 질 샌더 그룹 CEO 역임

지안 자코모 페라리스는 2009년부터 올해 초 까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베르사체 그룹을 이끌었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는 고등학교 교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화학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섬유산업과 패션업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알려졌다. 이후 이탈리아 섬유업체 제냐(Zegna)와 미국 컨설팅업체에서 일하며 경영관리 기법을 배우고, 질 샌더(Jil Sander) 그룹 독일법인의 최고운영책임자(Chief Operating Officer. COO), 구찌그룹의 기성복 부문 총괄, 질 샌더 그룹의 CEO를 거치며 관록을 쌓았다. 
2009년부터 베르사체의 CEO를 맡아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그는 기업쇄신의 일환으로 베르사체 그룹과 결별한 뒤 지난 7월 28일부터 명품 브랜드 로베르토 카발리(Roberto Cavalli)의 CEO로 선임됐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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