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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2024-04-19 19:07 (금) 기사제보 구독신청
인성과 창조성 육성 그 열정과 집념
인성과 창조성 육성 그 열정과 집념
  • 권동철 전문위원
  • 승인 2016.07.04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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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Fine Art] 남종화가 아산 조방원
▲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 촬영-박옥수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 1926~2014) 화백은 1926년 전남 무안군 지도면(현 신안군 지도읍) 월산마을에서 출생했다. 선생의 함자는 방원(邦元), 호적상으로는 보원(輔元)이다. 1945년 20세에 남농 허건(南農 許楗)선생에게 그림을 사사했다. 일생동안 활달하면서도 무게 있고 대범한 운필 용묵의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회화세계로 일가를 이루었다. 

특히 그의 수묵 또는 수묵담채화의 세계는 한국화단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자칫 상고주의 전통의 틀에 얽매이기 쉽고, 근대기 이후 서구형식에 묻혀 사라져 가던 운필의 묘법과 필력, 육묵(흑, 백, 건, 습, 농, 담)의 고른 조화를 창의적으로 되살려 이룩한 것이다. 특히 분방한 필치 속에 시, 서, 화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시적 정취와 예술적 감흥이 감도는 회화세계로 현대 한국화를 진일보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정신문화와 후진양성

아산이 창작 못지않게 물적 정신적 열정과 집념을 쏟아온 부분이 후진 양성이다. 일제강점기 부터 해방이후에 이르기까지 격변시대의 풍랑을 건너온 그는 사회문화 전반의 심각한 혼돈과 정신의 공백을 올바른 주체문화의 부재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건실한 문화를 이끌어갈 주역들로서 후진 양성에 최대의 역점을 두었다. 1975년부터 80년까지 전남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 출강하면서 교육을 책임질 주체들을 통해 정신문화의 육성을 설파해 왔지만 아산의 교육열은 학교 밖에서 훨씬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실천되어 왔다. 
그의 화실과 처소, 후진들을 위해 열어놓은 공동화숙 등에서 실기와 이론 뿐 아니라 근본적 인성과 창조적인 세계관을 지도해 왔다. 특히 미래 한국 미술의 주역이 될 후배와 제자들을 올바르게 지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현실적으로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78년 전남 담양 남면 지곡리에 화숙용 가옥을 건립하여 제자들의 작업공간과 숙식을 무상 제공하는 등 후진양성에 열정을 쏟았다. 
아산이 사재를 털어 여러 곳에 마련한 이들 무상 공동 화숙에서 배출된 수많은 문하생들은(고운 박광식, 청곡 윤의중 외 26명 등) 그들 모임 ‘묵노회’ 등을 중심으로 한국화단의 중견 또는 청년세대로서 활발한 활동을 통해 남도 화맥을 잇고 있다. 또한 1988년 7월 전통문화예술 연구 계승 보존 및 미래지향적 발전과 후배 양성, 장학사업 연구지원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아산미술문화재단을 설립, 인재양성사업을 펼쳤다. 

▲ 산수도-8폭 병풍

전통문화보전과 공공미술관 

아산은 일제로부터 20세기말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의 격변기와 함께 하는 동안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와 전통문화들이 훼손되고 사라져가는 것을 심히 염려하여 이에 대한 타개책을 꾸준히 모색해 왔다. 따라서 일찍부터 사재를 털거나 분신이라 할 자신의 작품들과 교환하는 등 뼈를 깎는 고통과 장애들을 무릅쓰고 한국의 고서화는 물론 여러 분야의 문화재급 귀중한 유물 자료들을 수집해 왔다. 
그리고 이들 자료가 보다 효과적으로 보존 관리 활용되고 폭넓게 공유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988년 그가 일생을 바쳐 수집한 송강 정철,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 등 한국문화사를 빛낸 기라성 같은 유명 선인들의 서화류, 서간류, 목판각 등 무려 6,800여점의 소장품과 1만 4213㎡(4,300여평)부지를 전라남도에 기증해 공공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미술관로 288에 위치한 옥과미술관은 국내 최초의 도립미술관으로서 주목을 받고 있으며 지역사회 문화마당으로서 큰 몫을 하고 있다.  
(재)아산미술문화재단 김상기 이사장은 “기증 당시 미술관 명칭을 기증자의 호를 붙이기로 전라남도와 합의했으나 미술관 건립과정에서 미술관 명칭이 지역 이름으로 변경되어 큰 아쉬움과 마음의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후 선생님은 곡성군 죽곡면 연화리로 거처를 옮기시고 20년 동안 오로지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시고 2014년 5월(88세) 별세하셨습니다. (재)아산미술문화재단은 선생님이 남기신 친작 수묵산수화 및 소장품을 금년부터 도립 옥과미술관 상설전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전통먹그림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귀중한 유품을 잘 보존하는데 노력을 기울일 예정입니다. 특히 선생님의 작품이 전라남도가 추진 중인 ‘국제수묵화비엔날레’(2018년 예정) 행사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아울러 미술관 명칭 변경도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산은 미술 분야에 국한된 한사람의 화가이기보다 일찍부터 국악에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 여러 유무형의 지원 육성사업들을 펼쳐온 것도 그 같은 간절한 진심의 표출이다. 1968년 주변지기와 동료들의 뜻을 모아 광주시내에 남도국악원을 설립, 인간문화재와 국립국악단원 등을 강사로 초빙한 뒤 판소리와 거문고, 가야금, 아쟁, 춤 등 전통음악과 무용을 지도했다. 이 남도국악원은 예술의 거리로 옮겨 남도국악의 산실로서 중추적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아산 조방원 주요연보

제2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欲雨」로 입선(1953년)
제3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秋靄」로 입선(1954)
제4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曉」로 特選(1955) 「文敎部長官賞」受賞
제5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煙雨」로 特選(1956)
제6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煙」로 特選(1957)
제7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朝」로 特選(1958)
제3회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추천작가(1959)
제12회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초대작가(1963)
제12회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심사위원(1963)
제1회 전라남도 미술 전람회 심사위원(1965)
제3회 전라남도 미술 전람회  심사위원(1967)
남도 국악원 설립(1968)
서울 미도파 화랑 개인전(1976)
목포군 무안면 지명 중학교 아산장학회 설립(1977)
전남대학교 사법대학 미술 교육과 출강(1980)
재단법인 아산 미술문화재단 설립(1986)
묵노회전 남도예술회관(1987)
도립 전라남도옥과미술관 착공(1990)
무등문화상(광주일보사) 수상(1991)
성옥미술상(성옥문화재단) 수상(1992)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수상(1999)
아산 조방원 회고전(광주시립미술관 개관8주년 기념초대, 2000)
『아산 조방원 작품집』(열화당) 발간(2001)
의재미술상 수상(2004)
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 어록전 (서울 한국미술관)(2010년)

 

▲ 화집표지이미지

雅山 趙邦元(아산 조방원) 화집

화집(畵集)은 다섯 범위로 △아산 조방원편(篇)에는 작품 56점과 서예 6점을 실었고 △손정연(언론인)-아산 조방원 평전 △문순태(소설가)-크고 아름다운 산, 雅山 △최하림(시인)-먹산수와 無爲의 사상 △아산 조방원 연보와 도판목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2년 2월 초판발행 했으며 (재)아산미술문화재단이 펴내고, 펴낸 곳은 심미안으로 총 191쪽이다.

인사이트코리아, INSIGH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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